사와구치

번데기

사와굿 러닝중 로그

“사사키도 사사키만의 장점이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말은 했다만 뭔가, 더… 말해줘야 할까? 사와구치는 괜히 이 상황을 어색하게 여기고 만다. 자신은 같은 부의 선배라기엔 상냥한 맛은 없었고, 그렇다고 진지하게 칭찬을 해주자니… 등골부터 오소소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진짜 사람 간지럽게… 자타공인 사와구치는 까칠한 사람이었다. 사사키는 생각보다 예의바르고 똑부러진 후배였지만.

그야 그렇잖아. 보통은 먼저 가도 된다고 하면 쌩하고 돌아가버린다. 포동포동하고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에 베이비시터부에 관심을 가지던 학생들은 반나절만 체험해봐도 금방 돌아가 버린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과 ‘잘 어울리는’것은 분명히 다르다. 세상엔 그걸 잘 구분 못하는 사람들이 널렸지만서도…

‘귀여운 건 좋지만 뭔가 아이들은 성가시단 말이지~’ 예전에 부를 체험하러 온 남학생 중 한명이 그런 소리를 했을때 사와구치는 그만 폭력을 저지를 뻔 했으니. (주변 부원들이 막지 않았다면 또 모를 일이다.)

아기들은 귀엽지만 성장하는 인간의 미성숙함은 포용하기 싫다는 게 대체 말인지 방구인지! 덕분에 이번 신입부원들에 대한 사와구치의 선입견은 상당했다. 빙하기의 얼음 같이 두꺼웠던 편견이 지금이야 초봄처럼 많이 얇아졌지만, 늘 잔소리를 퍼붓거나 꿀밤을 먹이는 역할의 짜증나는 선배가 갑자기 좋은 말을 해줘도 좀… 그렇지 않나? 사와구치는 의외로 자기객관화가 잘 되어 있는 편이었다.

‘그리고 칭찬 같은거… 말로 꺼내도 그게 진심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는데?’

나는 너의 그런 점이 좋다고 생각해! 사실은 누구보다 상냥하고 다정하다는 거잖아?

오랫동안 위로를 받았던 말의 진의를 의심해야 할때는 늘 괴로운 법이다. 그야 자신이 너무 상대를 믿었던 탓도 있겠지만… 이제 다 묻어뒀다고 생각하는 과거의 편린이 자신을 찌르자 사와구치의 발걸음이 점차 느려진다. 괜히 취미니 부모님의 일이니 쓸데없는 거만 물어버렸네. 역시 성가신 선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변변한 친구도 없는 성격이라, 기특하다고 생각하는 후배에게 뭐라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항상 매사에 착한 것보다 선배님처럼 챙겨주시면서 엄격한 건 꽤나 선생님에 어울리니까요. 선생님은 카리스마가 필요한 법이죠.”

‘카리스마… 인가?’

사사키는 자신을 너무 높게 쳐주는 거라고 사와구치는 생각한다. 아니, 사실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사와구치는 그렇게 솔직하게 상대를 칭찬할 수 없다. 좋은 말 하나에도 인색하다. 어차피 좋은 사람이 되기엔 글러먹은 성질인 것이다. 가까운 인간관계 같은건 이미 진작에 포기했다.

손을 흔들어 보내곤 건널목을 마저 건너다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 보았다. 제법 큰 키였던 사사키도 이 정도의 거리에서 보니 조그맣다. 옆에서 보았을때 알록달록한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여져 있던 걸 떠올린다. 아이들을 위한 인형을 만들고 싶다고 했나. 표정도 없고 딱딱해 보이지만 사실은 상냥한 것이다.

“저기..! 사사키!”

사와구치의 말은 머뭇거렸으나 목소리는 건너편까지 닿을 정도였다. 막상 얼굴을 마주하니 역시 부끄럽다. 성격에도 안맞는 일을 충동적으로 하자니 더 그랬다.

“그, 말이지! 나는! 어…”

그러나 사와구치는 안다. 아이들은 칭찬을 해줄수록 더 밝게 빛난다는 걸. 그리고 우리 자신들도 아직 자라는 중이라는 걸. 어른스럽게 보여도, 겉은 딱딱하고 굳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네가 상냥하다고 생각해! 너도… 선생님이 잘 어울려!”

내뱉고 나니까 시원하다. 아니지 역시 뜨겁다. 얼굴에 열이 가득 차올라서 어딘가로 숨고 싶은 기분이다. 아~ 정말! 괜히 했다. 괜히 말했어!

“아무튼…! 그렇다고! 다음에 봐!”

바쁜 척 빠른 걸음으로 역으로 도망친다. 서늘한 공기에 진초록의 머리칼이 굽이치며 흔들렸다. 아직은 가을이지. 애벌레들이 꿈을 꾸기 위해 깊은 잠을 자는 시기이다. 하루하루, 별거 아닌 거 같은 일상이 쌓여 우리는 언젠가 우화한다.

‘진짜 괜히 말했어. 괜히 말했어!’

어쩌면 그건 이제 다 자랐다고 자만하는 사와구치에게도 해당되는 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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