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
“죄송합니다. 저희 서점에 들어왔던 재고는 다 나간 것 같네요.”
손님이 셋만 들어와도 붐빌 듯이 좁은 독립 서점의 주인은 미안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분의 다른 시집은 남아 있는데, 하고 말끝을 흐리며 웃는 그에게 적당히 고개를 숙이고 문간을 넘었다. 10월 말의 찬 공기가 코끝에 훅 끼쳤다. 히터를 틀었던 건지 건물 옆의 실외기가 웅웅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작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선 서울의 뒷골목. 한때 익숙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익숙하지 않은 장소. 다리에 닿는 실외기의 바람이 찼다. 도진은 실외기에서 조금 비껴서서 스마트폰의 지도 앱을 확인했다. 이번이 다섯 번째 독립 서점이었다.
무슨 시인이 새 시집을 냈다고 했다. 필규가 좋아하는 시인이었다. 시에는 통 관심이 없는 도진은 그의 이름도 알지를 못했다. 근처의 서점 사장 현에게 물으니 요즘 들어 나름 핫한 시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현대 시를 조금이라도 찾아봤다면 그녀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할 수가 없다고. 그리 말하며 서가에서 길쭉한 유광 표지의 시집 두어 권을 꺼내 도진에게 건넸다. 얇은 내지를 팔랑팔랑 넘겨보았지만 도진의 눈에는 필규가 빠진 아름다움이 보이지를 않았다.
“친필 사인본이요. 그러고 보니 그런 게 있긴 했죠. 얼마 전에 통판에서 주문 신청을 받았는데……. 우리 지역에서는 시집이 거의 안 나가서 주문 안 했거든요.”
무슨 시인의 새 시집 초판본은 특이한 사양을 갖고 출판됐다. 내지에 작가의 친필 사인이 있다는 것만이 유일한 특이사항은 아니었다. 초판본 한정으로 시의 배열이 아주 달랐던 것이다. 인터넷 서점에 등록된 시집의 차례와는 다른, 시인의 또다른 의도가 담긴 두 번째 차례가 초판본에는 있었다.
“걔가 그 시인을 좋아한다고요? 별일이네.”
“원래부터 시를 좋아했다고 하더라고……. 소설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우리 가게에서 뭘 사가는 걸 본 적이 없어서 몰랐네요.”
변호사는 바쁘니까 별 수 없나, 하며 현은 카운터에 늘어놓았던 시집 두어 개를 도로 추렸다. 언제나처럼 서점 사장 외에는 도진 한 사람만이 손님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작가님이 찾고 계신 그거, 재고가 아마 독립 서점에만 풀렸던 거로 기억하는데.”
무슨 시인의 초판본은 독립 서점에서만 판매되었다. 대형 서점의 매대에도, 인터넷 서점의 차트에서도 초판본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간간히 중고장터 사이트에서 원가의 세 배 값을 붙여 판매하는 장사꾼들이 보이기는 했지만 필규는 그런 행위에 참여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았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생일 선물로 준비된 것이라고 해도.
현은 손에 잡힌 삼색 볼펜을 손가락으로 돌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제 와서 시집 초판본을 주문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권이라도 떼어오는 건데. 그런 상념이 살짝 들린 얼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시선을 떨군 도진의 시야에 검은 고양이의 꼬리가 보였다. 이름을 항상 까먹는 검은 고양이가 느릿느릿하게 매대 사이를 지난다. 제 주인과 주인의 친구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아는 사장들한테 연락은 해 볼게요. 다 팔렸을 것 같긴 한데 또 모르니까. 지방 쪽에는 있을 수도 있겠죠. 있으면 제가 산다고 할게요.”
다음 날 현은 아쉽게도 제가 알고 있는 사장들의 손에는 초판본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비보를 전했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건 그 때문이었다. 서울에는 작은 가게들이 많다. 골목 사이사이에 세를 들어 자신의 일터를 꾸린 빛나는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는 물론 책을 파는 사람들도 있다. 도진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일전에, 서울에 살았을 때 자연스럽게 체득한 상식이었다.
동네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왔다. 길고 긴 시간이었다. 통행량이 적은 도로를 달리며 느슨하게 덜컹이는 버스 안에서 도진은 서울의 독립 서점을 검색했다. 이백 오십 개를 훌쩍 넘는 수가 검색망에 잡혔다. 이곳들을 전부 순례할 수는 없다. 그들이 밀집된 지역을 살폈다. 경복궁 옆 서촌에, 신촌의 대학교 근처에, 한강 앞 망원역 부근에 그들은 모여 있었다.
익숙한 지명들이었다. 기분이 좋지 않아졌다.
서촌에 있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을 도진은 기억한다. 허름한 외관의 서점 안에 들어가 두 사람은 각자의 책을 골랐다. 인파가 조금 있어 도진은 줄곧 그의 소매를 잡고 있었다. 두 사람이 고른 건 아주 오래된, 표지가 다 해진 추리소설 두 권이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억하고 있지만 떠올리지 않는다. 그것만이 도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어였다.
아는 사람들이 근무하는 신촌의 대학교. 도진의 사촌 형과 필규의 동생이 함께 연구라는 걸 하고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교과서를 읽어보지 않은 도진에게는 미지의 장소인, 대학교. 화학이라는 단어에서 도진이 느낄 수 있는 건 도천영과 윤서천, 두 사람의 이미지에서 비롯된 새카만 반감뿐이었다.
그래서 도진은 우선 망원역으로 향하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노선도 앞에 섰다. 초록색의 2호선이 정가운데에 박혀 있었다. 그 사람은 항상 2호선을 보면 자신을 떠올릴 수 있겠다며 웃었다. 실제로 그러했으므로 도진은 의식적으로 2호선에서 시선을 돌렸다. 망원역은 다른 선로 위에 있었다.
망원역에 도착한 후로는 닥치는 대로 독립 서점을 찾아다녔다. 아늑한 목재로 꾸며진 독립 서점의 사장은 그건 애저녁에 팔리고 없다며 웃었다. 소파에 큰 테디베어 인형이 놓인 포근한 독립 서점의 사장은 발품을 좀 일찍 파셨어야 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계산대 너머에서 커피를 내리다가 재고를 확인하던 독립 서점의 사장은 다 나갔다는 짤막한 한 마디를 남겼다. 이름 모를 LP판을 닦던 독립 서점의 사장은 우린 안 들였다며 눈썹을 팔자모양으로 만들었다. 하루에 이만큼 다양한 사람과 얘기해 본 건 근 십 년 들어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 때 쯤, 도진은 처음으로 결이 다른 대답을 들었다. 망원을 거슬러 올라 홍대라는 지명이 보일 즈음이었다.
“그거요, 죄송해요. 저흰 다 나가고 없어요. 근데 서초 쪽 사장이 자기네는 몇 권 남았다고 하더라고. 혹시 시간 되시면 그쪽으로 가 보실래요?”
서초요, 하고 도진은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네, 서초요. 딱딱하신 분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 그런가 시집이 별로 안 팔린다고. 설마 이런 리미티드 에디션도 안 팔릴지 몰랐다고 그러더라고. 앤틱한 철제 선반에서 연두색 메모지를 주워든 그녀는 곧 서초 서점의 주소를 적다가 도중에 펜을 내려놓았다. 혹시 모르니까 전화 좀 해 볼게요. 그새 팔렸을지도 모르잖아요. 무상의 선의를 도진은 얼떨떨하게 받아들었다.
이십 분 후 도진은 서초행 지하철에 타고 있었다. 별로 타고 싶지 않았던 동그란 2호선 전철에 몸을 싣고, 결코 보고 싶지 않았던 역명을 차례차례 지나치고 있었다. 이번 역은, 내리실 문은, 장암 방면으로 가실 고객께서는, 다음 역은……. 디지털이라는 말이 싫었다. 과학의 발전을 느끼게 하는 영단어들이 덩달아 싫어졌었다. 그와 반대로, 이번 역은 서초, 서초역입니다. 어딘가 안정감이 있는 단어였다.
출구 표지판에서 대법원이라는 단어를 보았다. 필규가 다니는 변호사 사무실은 한 정거장을 더 나아간 곳에 있다. 그 정도의 지리 정보를 익힌 건 최근의 일이었다.
마음씨 좋은 독립 서점 주인이 써 준 메모를 보고 마지막 목적지로 향했다. 대법원과 검찰청을 뒤로 하고 건물이 빽빽이 들어선 골목을 걷는다. 법무법인 간판이 주르륵 세워진 4층짜리 건물 1층에 그 서점은 있었다. 불법주차된 차량이 입구를 막아 들어가는 데에 조금 애를 먹었다. 흰머리가 섞인 긴 머리를 올려 묶은 주인은 당황스러워하는 도진을 보고 웃었다.
“변호사들이 돈을 그렇게 벌어도 이 근처 주차는 어떻게 할 수가 없지.”
왼손으로 천장을 가리키는 그의 오른손에는 길쭉한 판형의 시집이 들려 있었다.
“연락 받았습니다. 이거 찾으러 오셨죠?”
도진에게 시집을 내어주며 주인은 또다시 웃었다. 내가 변호사들을 너무 과대평가한 거 있죠. 하기사 원래도 시집이라면 거의 안 나가는데 내가 무슨 기대를 하고 이걸 열 권이나 주문한 건지. 아직도 네 권이나 남아있어요. 손님처럼 발품 팔아 온 분들한테만 은근히 꺼내주는 신셉니다. 그런 고로 도진은 한 권을 더 샀다. 필규의 몫 외에 여분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싶었다. 자신이 읽거나, 그렇지 않으면 현에게 전달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도화에게……. 소설도 읽지 않는 그가 시를 읽을 거라고는 기대되지 않지만…….
이젠 세 권의 재고가 남은 서초의 독립 서점을 나섰다. 얄팍한 시집 두 권을 담은 종이 봉투는 무겁지 않았다. 그럼에도 도진은 맥이 탁 풀렸다. 법무법인이라는 글자가 난무하는 골목을 나와 연결된 다른 골목에서 몇 걸음을 비틀거리다가 담배를 물었다. 한참을 쓰고 있는 묵직한 본체의 전자담배에서는 여전히 커피의 향이 풍겼다. 도진은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 하지만 커피향 담배는 피울 수 있었다……. 목을 넘은 연기가 신경을 때려 걸음을 부추겼다. 담배를 끄고 골목 밖으로 나왔다. 큰길이 보였다. 그 바로 옆으로 거대한 건물이 보였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라는 딱딱한 글씨가 건물의 정문 현판에 써 있었다.
오동현이 운전하는 진유선의 세단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정문을 넘은 건 오후 두 시 이십육 분 가량의 일이었다. 유선은 다음 주에 있을 재판 관련으로 상대 검사를 만나야 했다.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한 그는 능구렁이 같은 화법으로 유선의 심기를 다소 긁는 경향이 있었으나 그녀가 판단하기에 오늘의 만남에서 소득은 충분히 있었다. 중앙지검의 주차장에서 시간을 죽이며 유선을 기다리던 동현이 업무가 끝난 그녀를 데리고 로펌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어!”
발견은 동현이 빨랐다.
“뭐야?”
뒷좌석에 앉은 유선이 날카롭게 물었다. 중앙지검 정문 앞 신호등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던 동현의 시선은 근처 보도블럭에 가 있었다.
“저기, 종이 봉투 들고 있는 저 분, 그 분 아니야?”
“누구?”
동현이 가리키는 부근을 그제야 유선은 볼 마음이 들었다. 정문 앞 횡단보도 앞에서 아무 로고도 그려지지 않은 종이 봉투를 들곤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 유선이 모를 수 없는 남자였다. 저도 모르게 혀를 한 번 쯧 차고 나서 유선은 차창에서 몸을 물렸다.
“맞네.”
“말 걸어볼까?”
“니가 왜?”
“중앙지검에 일 있어서 오신 걸 수도 있잖아.”
“그래서?”
“그러니까, 음. 우리가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거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며 유선이 한숨을 쉬었을 때 동현은 이미 운전석의 차창을 내리고 있었다.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변호사 윤필규가 잠시 편집자로서 일했을 시절에, 그는 출판사 내에서 어떤 사고를 당했다. 생명이 위독할 정도의 피해를 입고 병실에 누워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필규를 유선은 우연히 조우했었다. 물론 그의 병상 옆에 앉아 무선 이어폰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도진 역시 마주했었다. 첫인상이 좋을 수가 없는 인간이었다. 시커멓게 내려온 다크서클에 치렁치렁한 머리카락. 단정하지 못한 몸무새를 유선은 혐오했다. 하지만 혐오의 대상은 의식을 잃은 필규의 곁에서 떨어지려 하지를 않았다. 유선은 제 마음속의 혐오가 점차 분노로 바뀌어 가는 양상을 감지했다.
필규를 코마 상태로 만든 범인은 따로 있었다. 그것이 명료해지자 도진은 병실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로펌 업무에 치여 눈코뜰 새 없이 바쁘던 유선도 조금만 틈이 생기면 필규의 사건을 조사하러 나섰다. 두 사람은 몇 번이고 교차했다. 유선은 도진의 얼굴을 볼 때마다 인상을 찌푸렸다. 이 인간이 윤필규의 무엇을 안다고 이렇게 나서는지 모를 일이었다. 유선은 윤필규라는 개인에 관해서는 자신이 있었다. 그의 대학 시절을, 로스쿨 시절을, 짧은 로펌 시절을 아는 건 자신뿐이었으니까. 겨우 서른 몇 살을 먹은 윤필규의 십 몇 년을 함께한 동지니까. 윤필규는 그녀에게 있어 소중한 사람이었다. 일방적이라는 자각은 있었다. 그가 자신을 떠나면 법조계라는 바닥에서 쉽게는 살아가지 못할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하지만 필규는 어느 날 갑자기 로펌을 떠났다. 대학 시절의 연줄로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원고를 받았다. 서도진이라는 작가를 만났다. 편집자 윤필규는 작가 서도진과 사랑에 빠졌다.
필규는 처음으로 나를 긍정했어요…….
병원 앞 벤치를 비추는 가로등 옆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그는 중얼거렸다.
함께라면 나아질 수 있다고 해 줬어요…….
그리 흐느끼는 도진을 바라보면서 유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패배감을 느꼈다.
온 힘을 다한 재판에서 겨우 단어 하나로 꼬투리를 잡혀 어이없이 졌을 때의 기분과 흡사한, 더러운 절망감이었다.
세단의 조수석에 떠밀리듯 앉게 된 도진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들고 있던 종이 봉투를 껴안았다. 룸미러로 유선과 시선이 한 번 맞으니 어깨를 움찔 떤다. 팔에 힘이 들어가 종이 봉투가 우그러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유선은 미간을 찌푸렸다.
중앙지검에 일이 있지는 않았다. 그 근처의 독립 서점에 들를 일이 있었을 뿐이다. 독립 서점에서만 파는 책을 사려고 했다. 다 사고 나와서 이젠 돌아가려고 하던 참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동현의 신변잡기에 도진은 더듬거리며 답했다. 뒷자리의 유선은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를 조수석에 태우자고 한 건 오동현이니 손님 응대에 대한 책임은 오동현에게만 있다…….
“망원을 돌다가 여기까지 오신 거라고요? 힘드셨겠네요. 차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현이라도 끌고 오시지 그러셨어요.”
“오늘은 무슨 일이 있다고 해서요…….”
“걔가요?”
입가를 비죽이던 동현이 빌트인 내비게이션의 액정에 시선을 두었다. 대기 모드인지, 지도는 나오지 않고 검은 바탕에 오늘의 날짜와 시간만을 띄우고 있다. 날짜인지 시간인지를 확인한 동현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아, 하는 탄성을 질렀다.
“맞다~ 성묘 갔겠구나.”
세단의 앞유리에 교대를 가리키는 교통표지판이 보였다.
“성묘?”
“항상 이때 쯤이면 친구 성묘를 가거든요. 뭐라더라. 주말에 가면 사람이 많아서 싫으니까 자기는 꼭 평일에 간다고. 기일 있는 달 세 번째 수요일에 성묘를 가겠다고요. 정작 그 애 기일은 달 초순인데도 말이죠.”
언제 봐도 특이한 성격이에요. 동현은 교대 방면으로 운전대를 돌리면서 씩 웃었다. 회전하는 차 안에서 도진은 눈동자를 굴리다가 그렇군요, 하는 짧은 말로 답했다. 현의 행방보다는 자신이 지금 어디로 끌려가고 있는 건지 파악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동현이 이끌던 화제는 자연스럽게 윤필규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몇 년 전의 소동에 유선과 함께했던 동현은 필규와 도진의 관계를 알고 있다. 그 이후 편집자 윤필규를 출판사에서 끌어내 로펌으로 복직시키는 데에도 동현이 제법 손을 썼다. 윤 변호사님은 정말 젠틀하셔서 좋아요. 담배도 안 피우시던데. 자리도 항상 깔끔하시고요. 남이 들으면 허울뿐인 칭찬으로 받아들여질 법한 말이었지만 윤필규에 한해 그것은 명백한 진실이었다. 도진은 작게 맞아요…… 하며 호응했다.
“나 사무실에 내려주고, 배웅해드리고 와.”
로펌 근처까지 와서 유선은 그렇게 지시했다. 운전석의 동현은 흘긋 유선의 눈치를 살피다가 후속 질문을 삼켰다. 그러니까 어디까지 데려다 드리라고? 그건 유선은 말해주지 않았다. 되도록이면 집 앞까지 데려다 줬으면 했다. 오동현이 한참 동안 로펌에 발을 들이지 않았으면 했다. 왜냐하면, 잘 모르겠다. 그저 그런 비틀림이 유선의 내부에 스미고 있었다. 질투와 엇비슷한 감각이 신경을 찌른다. 화끈거리는 일차적인 감정을 유선은 줄곧 느꼈다.
그리고 유선은 사무실 앞에서 내린다. 운전석 차창 너머로 동현의 곤란한 표정이 슬쩍 보였다. 도진의 모습은 그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조수석에 앉아 이름 모를 책이 든 종이 봉투를 껴안고 있는 남자를, 왼손 약지에 필규와 같은 반지를 낀 그 남자를, 유선은 도무지 좋아할 수 없었다.
“노래……. 노래를 하라고?”
재떨이에 담뱃불을 지져 끄던 성훈이 끄덕였다. 눈을 가늘게 뜬 도화는 다시 물었다.
“커버……. 커버곡을 내라는 거냐?”
“낸다고 하기도 뭐한게, 형. 그냥 불러서 유튜브 채널에 올리는 거잖아.”
이문세의 ‘붉은 노을’을 빅뱅이 커버해서 새 음반으로 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그 정도는 도화도 알고 있었다. 캐릭터가 확실한 스트리머들은 자신과 어울리는 노래를 불러서 업로드하곤 했다. 몇 년 전부터 이상하게 뜨고 있는 버추얼 유튜버들은 캐릭터성의 극한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아예 정기적으로 커버곡을 업로드하는 모양이었다.
에이 젠장. 나도 좀만 늦게 인방 했으면 얼굴 다 가리고 했을 거야. 언젠가 성훈에게 투덜거리니 그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형, 그런 거 오타쿠 같다고 안 좋아했잖아. 맞는 말이었지만 도화에게는 나름의 융통성이라는 게 존재했다. 진짜 얼굴 대신 얼굴을 따라 움직이는 캐릭터를 띄워두어도 시청자들이 반발하지 않는 토양이 갖춰졌었다면, 그는 충분히 ‘모에’한 캐릭터를 내세워 방송을 했을 터였다.
인터넷 방송인 백도화와 실제의 백도화에는 약간의 갭이 있다. 그러니 전자의 자신을 캐릭터로 치환해도 그다지 문제는 없다. 인터넷 방송인 백도화는 이미 충분한 ‘롤 플레잉’을 하고 있으니까…….
“방음 부스도 있으니깐 마이크를 좀 사면 될 것 같은데.”
“뭔 소리야. 마이크 얼마 전에 바꿨잖아.”
“아니, 종류가 달라. 종류가……. 녹음용 마이크가 따로 있어.”
도화는 길게 한숨을 뱉었다. 던힐 6미리의 독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가 금세 허공으로 흩어진다. 아파트 옥상의 난간에 등을 기대고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을 천천히 빨아들였다. 일찍이 흡연을 끝낸 성훈은 멍청한 표정을 짓고 곁에 서 있었다. 애 같은 담배를 피우는 그다운 표정이었다.
“커버곡이라 해도 인마. 조회수 올리려면 요즘 노래를 불러야 되는 거 아냐? 뜬금없이 서태지 노래 같은 거 불렀다간 렉카들이 다 퍼가서 웃음거리나 만든다.”
어라? 입 밖으로 내고 보니 생각보다 좋은 전략이다 싶었다. 그건 성훈도 마찬가지였는지 멍청한 두 눈을 번쩍 뜨고는 좋다 좋아, 하며 박수를 쳐 댄다. 방향이 잡히면 계획은 빠르게 세워진다. 입가에 매달려 있던 담배를 떼어 재떨이에 비벼 끄는 찰나의 시간에 도화의 머릿속에는 이미 앞으로의 플레이리스트가 짜여져 있었다.
아파트 정문으로 차가 한 대 들어온 건 그와 동시의 일이었다. 바퀴가 굴러오는 소리를 듣고 도화는 반사적으로 난간 너머를 바라봤다. 무의식적인 반응이었다. 이상하게 눈에 익은 차의 등짝이 보였다. 눈에 익다고 생각한 자신에게 도화는 의문을 느꼈다. 저것이 만일 이 아파트 주민의 차였다면 눈에 익다는 애매한 감상보다는 아아 누구누구씨가 퇴근했군이라는 확실한 생각이 떠올랐을 터였다. 그러니 저건 이 아파트 주민의 차가 아니다. 윤필규 씨의 차도 아니고 당연하지만 자신의 차도 성훈의 차도 아니고, 하물며 근처 서점 주인의 차도 아니다. 저건…… 오동현이 끌고 다니는 그 변호사의 차다.
도화는 멍청하게 웃는 성훈을 잘 달래 옥상을 내려가 그의 집 현관 안으로 밀어넣은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향했다. 아무도 살지 않는 2층에 내려 최상층으로 엘리베이터를 보낸 후 계단을 반 층만 내려간다. 계단실의 창문을 열고 바깥 상황을 엿들었다. 꺼지지 않은 엔진이 덜덜대는 소리를 배경으로 오동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히 들어가세요.”
“감사합니다…….”
서도진? 이 맥아리 없는 목소리. 서도진의 목소리다. 도화는 창문 옆에 바싹 붙어 이어지는 상황을 살폈다. 차 앞에 선 동현이 도진을 향해 인사하고, 아무 미련 없이 운전석으로 돌아가 차에 탑승한다. 그 사이 도진은 1층 공동현관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동현이 운전하는 변호사의 세단이 멀어지는 걸 확인하고, 도화는 남은 반 층을 더 내려가 공동현관으로 향했다. 이미 발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도진이 계단을 보고 서 있었다.
“도, 도화…….”
“안녕하세요. 어디 갔다 와?”
“그, 그러는 도화 씨는…….”
“나? 계단 오르내리기 운동 하고 있었지.”
도진의 작아진 동공이 도화를 슬쩍 훑었다. 땀이 전혀 배지 않은 이마에 시선이 향하는 걸 보면서, 도화는 흡연장에 추리닝 차림으로 나온 게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번이 첫 세트였거든……. 아, 그건 뭐예요? 뭐 사왔나?”
타이밍 좋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자연스럽게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는 도화에게서 도진은 시선을 떼지를 않았다. 그렇다면 조금 적극적으로 나가는 수밖에. 도진의 손에 들린 종이 봉투 안쪽을 티나게 훔쳐본다. 얇은 책 두 권이 들어 있었다. 모양새를 보니 같은 책 두 권인 듯싶었다.
“책 사 오셨구나. 근데 아까 그 분은 누구예요? 서점 사장님이 아니시던데?”
“…그냥 아, 아는 사람이요.”
“친구신가?”
“아뇨, 지인…….”
“그래요? 차 좋은 거 타고 다니던데. 뭐하는 분이에요?”
“그, 그런가…….”
자신과 동현의 관계를 도진은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반응은 귀중하다. 그의 반응으로 말미암아 오동현과 서도진의 행적을 역산할 수 있다. 불가능하다면 오동현을 찔러보는 수밖에 없지만. 그쪽을 찌르는 건 의외로 리스크가 크다. 형이 그 사람을 어떻게 알아요? 하며 역공이 들어온다면 도화로서는 마땅히 할 수 있는 대응이 없다. 전에 의뢰를 주신 적이 있어서 기억하고 있다고 둘러대는 것도 두 사람의 관계를 알지 못하는 지금으로서는 위험하다…….
“필규가, 생일이라서…….”
“응?”
“책을 사 왔어요. 서울에만 파는 책…….”
천천히 몸이 무거워졌다. 두 사람을 태우고 상승하던 엘리베이터가 목표한 층에 멈춘다. 부드럽게 열리는 문 너머로 도진은 발을 옮겼다.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아 열린 채인 엘리베이터의 문 앞에서 도진은 잠시 도화를 돌아보았다.
“도화 씨한테 같이 가자고 할 걸 그랬나 봐요.”
피곤한 투의 도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엘리베이터는 쩍 벌린 아가리를 닫아 홀로 남은 도화를 도로 가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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