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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마스터 SideM - 이세야 시키

겨울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공기가 차가워지며 손발이 트는 것도 싫었고, 추위를 대비하여 옷을 갑갑하게 입어야 하는 것도 싫었다. 눈이 오면 조금 들떴지만, 거리가 지옥의 빙판길로 변하는 건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역시 겨울은 썩 좋아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올해는 생각이 조금 바뀔 거 같았다.

모토키는 슬쩍 제 옆을 보았다. 이세야 시키, 세리자와 모토키가 좋아하는 아이돌. 시키는 즐겁다는 듯 대화를 하면서 동시에 모토키의 보폭에 맞춰 걸었다. 모토키는 최대한 시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가 떠드는 대화는 평범한 일상 속에 일어나는 게 전부였다. 같은 팀원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가, 어제 저녁밥은 무엇을 먹었다거나, 그런 이야기.

평범한 사람이라면 썩 귀담아듣지 않을 주제였지만, 모토키는 시키의 팬이다. 그것도 엄청난 팬. 그러나 모토키는 제가 팬이라는 걸 시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 이전까지 데면데면하게 지냈던 이가 팬이라고 밝히면, 어쩐지 꿍꿍이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름방학 이후로 정식으로 사귀기로 했지만, 아직은 영 익숙하지 않았다. 모토키는 어쩐지 사귀게 됐다는 게 어색했다. 친구로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상의 관계가 됐다. 정말,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 되는 걸까? 무심코 그렇게 생각할 정도였다.

문득 갑자기 든 생각이었다. 만약 내년에 반이 갈리면 어떻게 될까? 시키와 다른 교실에 있다는 걸 상상해보았다. 어쩐지 아쉬워졌다. 이렇게 쭉, 평생을 시키의 옆에 있고 싶었는데.

“그럼 모토킷치 이제 슬슬… 어라?”

“어? 왜 그래?”

“아니, 어쩐지 조금 슬픈 얼굴을 하고 있어서. 괜찮슴까? 혹시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슴까?”

슬픈 얼굴이라니. 모토키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시키를 보았다. 최대한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되었던 모양이다. 그만큼 모토키 안에서 시키의 존재는 매우 커다랗다고 몰 수 있겠지만. 그렇지만 막상 말로 하기에는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았다.

시키는 어쩐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모토키를 보았다. 이리저리 고개를 기웃거리며 생각하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자신을 위해 이렇게 챙겨주는 점도 좋았다. 머릿속으로 조용히 시키가 좋다며 난리법석을 피워보았다. 문득 시키의 표정이 좋지 못하다는 걸 깨닫고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말해주기로 약속했잖슴까.”

“아, 그렇지만. 진짜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건 아냐. 그냥 방학이 끝나고 내년이 되면, 반이 달라질 수 있잖아.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많이 못 있을 거 같아서… 그래서, 좀 울적해졌던 거야.”

시키가 울적한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았다. 기왕이면 그의 활짝 웃는 모습이 좋았기에 모토키는 최대한 횡설수설 변명을 늘어놓았다. 따지고 보면 변명도 아니었다. 많이 못 있게 되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것도 안 좋은 일에 속함다! 뭐, 확실히 반이 갈라지면 이렇게 지내는 횟수가 줄어들 수 있다지만… 근데 꼭 나쁜 거라고 장담할 순 없지 않슴까?”

“나쁜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니?”

모토키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쩐지 이해할 거 같으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시키는 씨익 웃으며 상체를 숙여 시선을 맞췄다. 검지 손가락으로 모토키의 볼을 콕콕 건드렸다.

“반이 다르면 내가 찾아가면 되지 않슴까? 그게 아니어도 전화를 하거나, 메일을 보내거나… 만날 수 있는 수단이라면 잔뜩 있슴다! 거기다 난 반이 갈라졌다고 해도 모토킷치를 계속해서 만나러 갈 생각인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슴까?”

“아….”

모토키는 제 얼굴로 열이 오르는 걸 느꼈다. 아니, 이게, 이게 무슨 말이야. 어쩐지 고백을 받은 거 같았다. 물론 실제 고백은 여름방학이 있었을 쯤에 받았지만, 그래도. 모토키는 최대한 쿵쿵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종종 시키가 이렇게 말할 때마다 가슴 아팠다. 괴로워서, 싫어서가 아니라 너무 좋아서. 거기다 저런 말을 듣고 기뻐하지 않으면 팬이 아니겠지.

계속해서 시키의 곁에 있을 수 있구나. 시키는 자신에게 소홀해지지 않겠다고 말해주는 모습이 좋았다.

‘시키가 저렇게 해주는데, 나라도 손 놓을 순 없지.’

시키가 잘해주는 만큼 자신도 잘 해줘야 한다고 다짐했다. 응, 기껏 시키와 사귀게 됐으니까.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실례이지 않을까. 모토키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어쩐지 겨울이 좋아질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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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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