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챠

가챠 타입 5

포켓몬스터 스칼렛·바이올렛 - 테사

처음으로 좋아한다는 걸 자각했을 때는 암담했다.

남들은 다 행복하다고 했는데, 자신은 영 그렇지 못했다. 질척거리는 감정이 제 목을 조였다. 숨이 막힐 거 같으면서도 좋아하는 걸, 동경하는 걸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삶의 원동력이 됐다.

‘그것도 벌써 몇 년 전 일이네.’

모두가 보는 앞에서 테사 씨에게 고백했다니.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저지르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난 지금 고백했구나. 이제 테사 씨에게 이런 감정을 품었다는 걸 들켰구나. 하지만 고백한 걸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후련해졌다. 드디어 당당하게 테사의 눈을 마주하며 대화할 수 있게 됐으니까.

그래서 테사의 대답을 들었을 땐 기뻤다. 아주 조금이나마 이뤄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았으니까. 더 이상 조마조마한 마음을 부여잡지 않아도 됐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페루, 무슨 생각을 그리 하나요?”

“아, 테사 씨.”

어느새 계절은 겨울이 됐다. 밖으로 나설 때마다 서늘한 공기가 스치듯이 지나갔다. 말할 때마다 새하얗게 입김이 모락 피어올랐다가 사라진다. 계절이 변했음에도, 몇 년이 지났음에도 페루는 여전히 테사 곁에 있다.

“벌써 어른이 된다는 게 실감나지 않아서요.”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더라? 페루는 하나, 둘 손가락을 꼽아보았다. 엊그제 일어났던 일만큼 생생한데. 멋쩍은 듯 페루가 가볍게 웃어 보였다. 테사는 그런 페루를 귀엽다는 듯 웃으며 손을 뻗었다. 그러나 테사의 손은 페루의 머리 근처에서 멈추었다. 페루는 테사의 행동 하나하나 눈에 새겼다.

“쓰다듬어 주셔도 돼요.”

허락하자마자 테사의 손이 조심스럽게 페루의 머리 위에 올라갔다. 결 좋은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쓰다듬었다. 따뜻한 손길에 페루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안 돼, 테사 씨에겐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하지만 테사는 그런 페루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조금 전에 페루가 그랬듯 이번에는 테사가 부드럽게 말했다.

“기쁠 때는 웃어도 된답니다, 페루.”

“아… 네. 테사 씨.”

과연 이 감정을 꽁꽁 숨길 수 있을까? 주체할 수 없는 기븜이 페루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제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일순 멈추었다. 억누르듯 참는 목소리가 페루의 귓가에 꽂혔다. 페루는 슬쩍 테사를 보았다. 마치 자신이 귀엽다는 듯, 두 눈매와 입꼬리를 부드럽게 휜 테사의 모습에 눈에 들어왔다.

“우으….”

“아, 실례했네요. 기쁘게 웃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그만.”

“저도 이제 어른이 돼요! 더 이상, 애 취급은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요.”

작게 변명해보았지만, 두 사람의 나이 차는 제법 되는 편이었다. 아마 그건 페루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도 바뀌지 않을 사실이기도 했다. 테사는 웃음을 멈춰보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페루를 언제까지 어린애로 대해선 안 됐다. 페루는 하루 빨리 어른이 되길 바랐으며, 며칠 뒷면 그 소원이 이뤄진다.

“그나저나 벌서 어른이 된다는 게 믿기질 않네요. 페루는 많은 게 바뀌었어요. 한때 조마조마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 와서는 모두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죠.”

“으… 그땐 진짜, 제가 어딘가에 홀렸었나 봐요.”

“후회하지 않아도 되는 일인 걸요? 어릴 때는 누구나 헤매는 법이죠. 한두 번 헤매고 나서야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기도 하고요.”

“테사 씨….”

페루의 방황은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아니, 휴학계를 제출했을 때는 진짜 큰일이라도 벌어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모든 행동에 저를 향한 감정이 있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안심했다. 어떻게 이리 선명한 감정을 여태껏 모르고 있었을까.

페루는 조심스럽게 테사의 곁으로 다가갔다. 한 발짝만 나아갔을 뿐인데 두 사람은 손가락 하나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좁아졌다. 페루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테사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좋아해요, 테사 씨. 대답은 제가 어른이 된 이후에 주셔도 돼요.”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