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의 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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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부 뉴욕 주의 뉴욕에서, 미국 서부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까지의 거리는 자그마치 2,550 마일(육로 기준).

자동차로는 38시간, 기차로는 2일, 걸어서는 35일,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타더라도 6시간 가깝게 걸리는─ 빈 말로도 절대 ‘가깝다’고는 할 수 없을 거리이다. 제 아무리 시간이 썩어 나는 대재벌이라도, 운전에 도가 튼 레이싱 선수라 해도, 순간이동을 할 줄 아는 게 아닌 이상 일단은 혀를 내두르고 앞으로의 고난을 점치며 몸을 사리는 게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이 무지막지한 대장정을, 단 한 번의 ‘큰 판’을 위해 달려오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아 물론, 세상에 그런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 라스베이거스가 어떤 도시인가? 사막의 도시, 향락의 도시, 도박의 도시, 관광의 도시다. 드넓은 미국 땅에서도 당당히 불야성으로 손 꼽히는 곳이자, 세계의 내로라하는 ‘꾼’들이 동경해 마지 않는 곳. 기회가 된다면, 시간이 된다면, 만사를 제치고 달려갈 사람들은 세상에 차고 널렸다.

그러나 그 누구도, 매일─ 매주─ 매달 여섯 시간의 거리를 달려가며 출석 도장을 찍지는 않을 것이다. 뉴욕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하루에 한 번, 이틀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그만한 시간이 있고, 그만한 돈이 있고, 그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또 그만큼 라스베이거스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라스베이거스에 집을 짓고 자리를 잡는 게 낫다. 무엇하러 머나먼 뉴욕과 라스베이거스를 오가며 고생 같지도 않은 고생을 하겠는가. 누가 상을 줄 것도 아닌데.

당연한 말이다. 맞는 말이다. 백 번 맞는 말이다.

다비나 제네시스 또한, 온 마음을 다해 그러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말이지만.

그럴 수 없으니 문제 아니겠어.

그럴 수가 없으니,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 아니겠냐고.

에휴.

걸음걸음마다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래도 단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그녀의 주머니가 두둑하다 못해 당장이라도 터져 나갈 것 같다는 점이었다. 양쪽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부피감이 축 늘어지려던 마음을 강제로 끌어 올렸다. 동시에 다비나의 입꼬리도, 씰룩씰룩 올라갔다.

오늘도 참 보람찬 하루였어. 그지?

왔다 갔다 한 비행기 값도 벌었고. 두고두고 쓸 용돈도 챙겼고.

그 뿐이냐, 삶의 보람도 채웠다. 손 끝에서 짜하게 올라오던 승리의 쾌감이 아직도 생생했다. 테이블의 칩을 모조리 쓸어올 때의 기분은 또 어떻고. 짤랑짤랑짤랑 울리는 소리가 어찌나 경쾌한지 요 며칠 우울했던 기분이 싹 날아갔다.

아무렴, 이게 사는 거지. 이게 사는 맛이지!

터벅터벅 하던 발걸음이, 깡총깡총 사뿐사뿐으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입꼬리를 귀 끝까지 올린 다비나가 룰루루 콧노래를 부르며 도로를 향해 훨훨 날듯이 걸었다.

아, 정말 살 것 같다. 기분 째진다.

모세는 이 좋은 걸 왜 안 하고 사나 몰라. 기분이 이렇게 좋은데.

걔가 그러니까 나날이 성질이 나빠지지. 으휴. 별 재미도 없는 보고서 같은 거나 죽어라고 들여다 보고 말이야. 사람이 좀 즐기고 살 줄도 알아야….

“야.”

알아야….

“팔자 좋다?”

알….

….

“무시하냐? 깡 좋네?”

…싸늘하다.

등에 비수가 날아와 꽂히는 것만 같다.

폴짝폴짝 뛰던 발이 우뚝 멈추고, 활짝 웃던 얼굴도 돌덩이처럼 굳었다. 쩌적. 어디선가 가뭄에 땅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환청이면 좋겠지만 세상에 이렇게 싸늘한 목소리가 둘일 순 없다. 진짜든 헛것이든 간에, 이런 게 둘이나 존재해선 안 된다.

그렇지만… 이게 진짜라도 문제는 있지.

꼴까닥 마른 침을 삼킨 다비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맘 같아서야 그냥 줄행랑을 치고 싶지만 적의 정체를 제대로 알아야 도망도 잘 칠 수 있는 것 아니겠어.

안 봐도 알 것 같지만.

안 봐도 겁나 잘 알 것 같지만….

녹슨 나사가 돌아갈 때처럼, 목의 관절 관절이 부자연스럽게 마찰하며… 느릿느릿 삐걱이며 돌아갔다.

그리고….

비딱하게 고개를 기울인 모세와 눈이 마주쳤다. 검은 머리칼 아래 매섭게 치솟은 눈썹과, 부릅 뜬 눈, 야차처럼 형형한 눈동자가 노랗게 빛나며 다비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어진 침묵. 고요. 정적.

숨 막히는 대치 상황 끝에.

“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기 안 서?! 이 여자가 정말!!!”

뛰(튀)었다.

우당탕! 요란한 소음이 거리를 뒤흔들었다.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치는 다비나와 이를 악 물고 뒤쫓는 모세. 때 아닌 추격전에 놀란 사람들이 공원의 비둘기처럼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며 여기 저기서 욕지거리가 마구 쏟아졌다. 물론, 죽기 살기로 뛰기 바쁜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욕들이었다.

 

앞서 뛰는 다비나가 계단을 뛰어넘고 자전거를 넘어뜨리고 입간판을 쓰러뜨리며 전진하면, 그 뒤로 머리 끝까지 화가 난 모세가 검은색 코트 자락을 깃발처럼 휘날리며 내달렸다. 앞만 보며 몰아치는 것이 사람보다는 허리케인에 더 가까운 기세였다.

관자놀이와 목, 턱 가장자리에 핏대를 세운 모세가 외쳤다.

“누군 나잇살 처먹고 카드 놀이나 하고 있고!! 누군 저 하나 찾자고 비행기에서 다섯 시간을 뺑이 치는데!!! 시시덕대며 택시나 잡고 있어?! 제정신이냐?! 제정신이야?!”

사자후가 따로 없었다. 제 아무리 배짱 큰 사탄이라도 이런 고함 앞에서는 절로 회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문제라면, 모세가 굴복시켜야 할 것은 악마 ‘따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사냥개처럼 달려드는 모세를 피해 길가의 잡지 진열대를 쓰러뜨린 (와장창!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신문지가 휘날리고 가게 주인이 비명을 질렀다) 다비나가 지지 않고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그게 내 탓이냐?! 니가 왔지?! 내가 불렀냐?!”

“그걸 말이라고 하냐?! 지금?! 그게 말이야?! 주둥이가 뚫렸다고 말을 해?!”

“그럼 이 판국에 노랠 하리?!”

“저 인간이 그래도!”

“입이 뚫린 걸 어떡하라고!”

“이리 와! 와!! 주댕이를 칵 꿰매 줄 테니까!! 이리 와, 안 와?!”

“가겠냐?!”

“안 와? 안 와? 오냐, 안 오면 내가 간다!!”

헛 참, 누가 들으면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는 줄 알겠네! 너 이미 오고 있었거든!

한 마디 쏘아주곤 싶었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말 그대로 눈을 ‘까뒤집은’ 모세가 더욱 빠른 속도로 그녀를 쫓아왔기 때문이었다. 이런 XX…. 다급하게 육두문자를 주워 삼킨 다비나가 이를 악 물고 뜀박질에 박차를 가했다. 잡히면 죽는다. 분명 죽을 거다! 아냐! 죽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 (너무 깝쳤나? 하….)

“아오, 저 미친 새끼 저거! 돌겠네 진짜!”

“그건 내가 할 소리다, 이 여자야!!”

그렇게,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조명 아래로, 두 사람(은 아니지만 아무튼)이 만들어낸 폭풍이 거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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