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네트라와 고향의 사람들 (1)
2022.04.01 그리고 변화에 대해서.
페네트라는 이불 사이에 구겨져 있었다. 그 몰골은 쓰레기를 둘둘 말아서 길거리에 버린 비닐봉지와 비슷했다. 실제로 그가 걸친 방호복의 비닐 재질이 그런 인상을 주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시작은 순백이었을 방호복이 먼지와 흙 따위로 더럽혀져서 그다지 깔끔하지 않다는 점도 일치했다.
그 사실을 페네트라도 알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원래도 깔끔하고 예의 바른 인상착의와는 거리가 멀었으며, 이리저리 쫓기는 험난한 생활에서 깔끔함이란 사치에 가까워졌다. 방호복을 의무적으로 걸치고 있는 것이 페네트라가 표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이자 최선이었다.
어쨌든 그 이유를 떠나서도, 페네트라는 지금은 제 옷차림에 신경 쓰지 못한다. 원래 자는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깨워서 이 주제에 대해 페네트라와 논해보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이다. 페네트라는 대략 열네 시간은 자야 할 상태였는데 아직 그중 세 시간밖에 채우지를 못했으므로, 깨어난 페네트라는 그 대화에 별로 응하지 않을 것이며 재촉하면 그 상대는 매우 폭발적인 거부와 마주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페네트라는 집-자신의 가족이 거주하는 곳-에 오기 위해 삼 일 밤낮을 걸었다. 그마저도 최대한 빨리 다다르기 위해서 걸음을 더 재촉해야 했다. 죽음이란 갑자기 찾아오는 법이므로.
가족 중 누군가의 부고를 들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페네트라의 가족 중 아버지인 루텍 야클과 언니인 카렐 파비우스는 안드로이드였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안드로이드란 빠르고 파괴적으로 멸종해가는 족속이었다.
치료제 제작 방법이 퍼지면서 안드로이드는 나날이 죽어갔다. 페네트라는 그들을 보호하려고 여러 행동을 펼쳤으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모래시계가 떨어져 아래에 쌓이듯, 무수한 안드로이드의 시체가 쌓였다. 그리고 위의 모래가 결국 줄어들 듯, 안드로이드는 계속해서 죽어갔다.
체코에서 지난 한 달 동안 총 600여 건의 안드로이드 파괴 사건이 접수되었다는 소식은 페네트라를 거의 미치게 했다. 체코는 안드로이드의 권리가 높은 편이었음에도 결국 그리되었다. 페네트라는 당시 스위스에 있었고, 급진파 벨로피스트와 벌이던 교전을 벌이는 중이었는데, 그 활동을 어느 정도 정리할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인내심을 다 쏟아내어야 했다. 그리고 며칠 전에 간신히 마무리되었고, 페네트라는 마무리가 되자마자 곧장 집으로 달려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가족이 집을 비우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제 가족, 파비우스들은 외출을 좋아한다. 페네트라는 가족이 아직 살아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흔적을 찾아 집을 돌아다녔고, 확실할 수 있게 되자 모든 긴장이 풀렸다. 그간 쌓인 피로가 갑자기 페네트라를 덮쳤고, 페네트라는 그저 쓰러져 자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간신히 어린 시절에 쓰던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 어린 시절에 썼기 때문에 꽤 작아진, 야구 방망이와 축구공 따위의 문양이 그려진 이불을 끌어안고 기절하듯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두 시간 정도를 추가로 채웠을 때 페네트라는 눈을 떴다.
충분히 잤기 때문은 아니다. 사소하지만 분명한 기척이 느껴졌다.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이다. 네다섯 명이다.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페네트라는 조용히 이불을 헤치고 총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일어나서 문 옆에 등을 기대는 대신 침대를 통과해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분명한 말소리가 들렸다.
“엄마, 아빠.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니까요.”
페네트라는 그대로 굳었다. 이 목소리는 안토닌이었다. 자신의 동생, 안토닌. 통화로 변질되지 않은 목소리는 성인이 되고서는 거의 처음 듣지만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글쎄다, 안토닌. 나는 너처럼 생각할 수가 없겠구나. 너희 아빠도 그러는 것 같고. 카렐. 네 생각은 어떠니?”
이번에는 엄마, 렌카의 목소리였다. 그들은 가족이었다. 드디어 만나게 된 가족이다. 페네트라는 눈물이 새어나올 것 같았다. 바닥을 통과해 훌쩍 뛰어내려서 그들을 안으러 가고 싶었으나 제 손에 총이 들려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간신히 자제했다. 최소한 총은 내려놓고, 계단으로 평범하게 내려가는 것이 그들을 놀라게 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그다음에 들려온 말에 페네트라는 굳어서 무슨 행동도 취할 수 없게 되었다.
“엄마, 카렐이랑 아빠는 괜찮아요. 문제는 저희 둘이잖아요. 저희가 눈 감고 치료제를 딱 한 번만 맞으면 된다고요. 왜 자꾸 그러세요?”
......치료제라는 단어가 왜 안토닌의 입에서 나올까? 페네트라는 혼란스러워졌다. 치료제 같은 이야기는 페네트라가 항쟁하는 세계에서나 나오는 소리이다. 이 집이 아니라, 가족들에게서가 아니라. 페네트라는 치료제 제조법이 모두에게 공개되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떠올렸지만, 그렇다고 충격이 가시지는 않았다. 안토닌이? 안토닌이 치료제에 대해 언급한다고? 어째서 네가?
안토닌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물론 요즘 치료제 구하기가 꽤 어려운 것 알아요. 하지만 일단 맞기로 정해두면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다고요. 저번에도 구할 기회가 있었는데 엄마가 거부하시는 바람에 무산되었잖아요.”
“안토닌! 그 치료제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네 아빠와 누나가 어떤 존재인지 내가 이야기해야 알겠어?”
치료제는 안드로이드로 만들어지고, 아빠와 언니는 안드로이드이다. 그것은 페네트라도 알고 엄마도 알고 안토닌도 알 것이다. 그런데 안토닌. 너는 왜 그러는 거야? 안토닌은 이어 말했다.
“지금 아빠랑 카렐을 팔아넘겨서 치료제를 구하자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겠어요.”
“그럼 다른 자들을 팔아넘겨 만든 치료제는 잘만 먹을 것이고?”
“왜 그렇게만 생각하세요. 안드로이드 중에도 지원자가 많이 있었다고요. 치료제를 거부하는 건, 그들의 성의를 거부한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어디서 그런 말장난으로 나를 속이려 드니! 동시에 수많은 안드로이드가 실종되었다. 시장에 발을 수십 년 담고 지낸 사람이야. 얼마나 많은 안드로이드를 지원자로 포장해서 내놓았을지, 내가 그걸 꿰뚫어 보지 못하겠어? 레드 마켓이 딱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짓을 벌이는 건 내가 용납 못 해!”
“저라고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요? 하지만 지금 우리 가족이 죽을지도 모르잖아요. 딱 한 번만 눈 감고 먹자고요, 예? 아니, 당장 먹자는 것도 아니에요. 다만 치료제를 구하면 그때…….”
“안토닌!”
이번에는 카렐의 고함이 벼락처럼 내리쳤다. 동시에 책상을 때리는 소리가 탕, 하고 울렸다. 어릴 때 카렐이 그러면 부모님이 주의를 시키고는 했는데, 지금은 아무도 말리지 않는 기색이었다.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너는 나랑 아빠를 눈앞에 두고도 그런 말이 나와?”
“눈앞에 두고 있으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어떤 말이 나오는데? 갈아먹자는 말?”
“나랑 엄마가 어떻게 되면 너랑 아빠는 어쩌는데?”
“안토닌, 그만.”
지친 아빠의 음성이 안토닌을 제지하려 들었다. 그러나 안토닌은 계속 이야기했다.
“안드로이드는 보호자가 없으면 안 된다고요. 지금은 엄마가 보호자를 맡고 있고, 저도 있지만 둘 다 잘못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세요? 지금 상황에서 누가 안드로이드 보호자 같은 걸 맡겠어요. 협박이 들어오거나, 안드로이드를 노리는 이들의 표적이 되기나 할 텐데! 이 마을에 안드로이드를 가진 가족 몇몇이 자취를 감췄어요. 사실 저희도 위험해요. 요즘 이상한 주문 많이 들어오는 것 알고 계시잖아요. 노골적으로 수상한 곳으로 저희를 끌어들이려는 주문 같은 거! 저번에 한번은 위험하기까지 했잖아!”
그건 몰랐다. 페네트라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내가 어디선가 싸우는 동안 가족들도 계속 싸우고 있었구나. 죽을 수도 있었구나.
“안토닌. 그만 하라고 했다.”
“야, 안토닌! 내가 알아서 다 하거든? 너는 우리 일에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빠지시지? 학위나 따셔!”
아빠와 카렐이 다시 안토닌을 제지했다. 안토닌은 굽히지 않았다.
“내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논문이나 쓰고 앉아있어? 게다가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를 줄 알아? 아빠랑 카렐 네가 사람들에게 제대로 대항할 수 있어?”
“한 대 갈길 수는 있다, 왜? 어디 직접 보여줘야 믿겠어?”
“우리를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아? 제대로 대항할 수 있어? 팬케이크 데이 코드가 있으면서! ”
페네트라의 손끝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이래서 지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로, 해내고 싶었는데. 이런 세상에 서고 싶지 않았는데.
한동안 침묵이 일었다. 그 침묵 사이에서 안토닌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목소리에서 흥분을 걷어내고 애원 조로 바뀌어있었다.
“엄마, 제발요. 세상에 알라티라니움 방사능이 수두룩해요. 나랑 엄마가 아직 무사한 게 다행이지요. 이제는 안드로이드가 되지도 못해요. 치료제를 노리는 이들이 알코노스트 공장으로 가는 길에 잔뜩 깔려있대요. 수송원들이 총과 탱크로 무장하고 있어도 그 탱크를 뒤집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서 중간에 가로채 간대요. 저희가 이리병에 걸리면 우리 가족은 끝장이에요. 제발, 딱 한 번만 제 말을 들어주세요.”
엄마는 단호하게 물렸다.
“그만하자. 이리병은 앞으로도 지금까지 조심하면 돼. 그럴 일 없어.”
그러자 안토닌이 말했다.
“엄마, 아빠. 카렐. 제발. 페네트라를 생각해서라도요. 그 애는 아빠랑 언니가 그렇게 된 이후로 저희 얼굴도 못 보고 있어요. 저랑 엄마도 그렇게 될까 봐요. 페네트라가 평생 밖을 떠돌게 내버려 둘 셈이에요?”
그다음 순간 페네트라는 집 밖에 있었다. 페네트라는 숨을 거칠게 들이쉬며 땅을 짚고 있었다. 손에는 총이 들려있었고, 다리에는 어디선가 뛰어내린 것 같은 충격이 얼얼하게 번지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흐르고 사건이 벌어졌을까? 페네트라는 공포에 가득 차서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집 안에서 가족은 아직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아주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주 잠깐이었다. 페네트라는 비틀거리며 일어나서 창문에서 자신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달아났다. 집 안으로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정말 안토닌의 말대로였다. 가족을 볼 자신이 없었다. 아빠와 언니를 감염시켰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순간에 피어올랐던, 오랜 죄책감이 먼지에 바람을 불 듯 다시 일어났다. 이번에는 세상에 대한, 그리고 자신의 실패에 대한 책임까지 따라붙어서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그 방에, 그 집에 더는 있을 수가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페네트라 자신은 정말 어디로 가야 할까? 전 숲 지기의 오두막에서 지내거나 해야 할까? 평생 그리 살 수 있을까?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페네트라는 제 주머니에 넣었던 것을 뒤적이며 아직 그대로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안 된다. 그들을 꼭 만나서 ‘이것’을 전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페네트라는 도저히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아, 그렇지. 가족 말고도 이걸 주어야 할 사람이 있는데.”
페네트라는 입술을 달싹이며 말했다. 거의 회피하듯 내린 결론이었다. 심장을 죄는 심정으로, 계속해서 미뤄뒀던 만남을 페네트라는 한 번만 더 미루기로 했다.
어쨌든 일단 가야 할 방향이 정해졌다. 페네트라는 걸음을 내디뎠다. 휘청거리던 걸음은 점차 균형을 잡았다. 오랜만에 걷는 고향은 기억이 희미했지만, 발은 기억하고 있었다. 친구의 집으로는 하루에 열 번도 오가고는 가곤 했으니까. 오랜 제 고향 친구인 ‘이바나’에게, 한참이나 쏘다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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