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밤의 축제(3)
2020.03.29
가을 밤의 축제를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무작정 숲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속삭임이 들린다. 어떻게든 꾀어내려는 온갖 것들의 속삭임. 그러면 그중 하나를 잡아채서 장소를 불게 만들거나 속삭임에 홀린 척 뒤를 따르면 된다. 간단한 것은 두 번째이다. 조금만 뒤따라 걸으면 금세 시끌벅적한 축제 음악이 놓칠 수 없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헤이즈는 그럴 인내심이 없었다. 귓가에 들러붙어 속삭이기 시작하는 박쥐 한 마리를 잡아서 장소를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박쥐는 재미없어하며 한쪽을 가리켰다. 헤이즈는 박쥐를 버려두고 축제 장소로 향했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헤이즈는 인상을 찌푸리며 다가갔다. 입구에는 해골이 있었고 곧 그를 보았다.
“이런, 간만의 손님이군요.”
헤이즈는 무미건조하게 물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어. 혹시 여기를 지나간 이들 중에 내 키랑 비슷한 여자아이가 있어? 다른 해에는 오지 않았고 이번 축제에서 처음 봤을 거야. 만약 왔다면.”
“글쎄요. 손님의 명단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비밀입니다.”
해골은 제 손뼈를 엮으며 태연하게 답했다. 헤이즈는 왈칵 성질을 냈다.
“됐어. 그럼 내가 들어가서 찾지.”
“손님, 여기에 들어오시려면 입장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헤골이 긴 팔을 뻗어 제지했다. 헤이즈는 눈썹을 삐딱하게 세웠다. 해골은 이를 딱딱거리며 다시 말했다.
“여기에 오시려면 입장료를 내셔야 합니다.”
“입장료가 뭔데?”
“당신이 올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한 대가를 알고 있을 텐데요.”
“난 여기 작자들과는 연락을 끊고 살아서.”
“그러면 이곳의 법칙에 따라 수수께끼로 드리죠.”
해골은 비밀스럽게 속삭였다.
“그것은 오늘 밤의 축제에 가장 어울리는 것입니다.”
헤이즈는 냉담하게 눈을 내렸다. 한참을 고민했으나 고민의 기색을 해골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다가 앞으로 내밀어 주먹을 쥐고 한 바퀴 돌렸다. 손을 펴자 비어있던 주먹에 작은 금덩이가 잔뜩 쥐어져 있었다. 해골이 그것을 보고 말했다.
“금. 그것은 분명 달빛처럼 노랗기는 하나 그것에 감히 비견할 수 없이 탁하지요. 게다가 청동만큼 오랜 마력을 품고 있지도, 은만큼 위험한 매력이 깃들어 있지도 않죠.”
헤이즈는 미련 없이 손을 털었다. 금은 모래가 되어 쏟아졌고 바닥에 닫기 전에 날아갔다. 헤이즈는 손을 모아쥐었고 다시 손을 펼치자 월광석이 그득히 차올랐다.
“월광석. 흥미롭군요, 달빛과 닮은 빛이 몹시 흥미롭군요. 허나 그뿐입니다. 금만한 전설조차도 없군요. 마법사들에게는 어떤 주술의 도구가 될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신비로운 돌일 뿐입니다.”
헤이즈는 슬슬 성질을 내었다.
“그따위 엉망진창인 수수께끼라면 뭘 가져다 붙여도 답이 될 수 있겠고 어떤 대답이든 갖은 핑계를 대며 답이 아니라고 거절할 수 있겠네, 그래?”
“우기시는 건 손님이시죠. 오늘 같은 밤의 축제에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너희는 아직도 거추장스럽고 쓰잘데기 없는 것을 원해? 살아 뛰는 심장을 원해? 피가 들러붙어 끈적하기 그지없는 것을? 아니면 시끄럽게 비명을 지르는 영혼? 썩어 문들어지는 시체?”
“저런, 손님께서는 축제의 유행을 이해하지 못하시는군요. 하긴 무리는 아닙니다. 가끔 안목을 갖추지 못한 분들도 계시니까요.”
해골은 능란하게 대꾸했다. 헤이즈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윌광석들이 과일처럼 은색 즙을 뚝뚝 흘리며 으스러졌다. 다시 말하는 헤이즈의 표정은 냉랭했다.
“입장권을 내지.”
헤이즈는 구멍난 고깔모자를 삐딱하게 잡아내렸다. 때가 탄 천이 검고 광택 어린 가죽으로 바뀌었다. 해진 망토는 부드러운 벨벳이 되어 흘러내렸다. 시골뜨기의 어설픈 분장이 아닌 정말 음산하고 위험한 마법사가 그곳에 서 있었다. 마법사는 날카로운 눈으로 해골을 올려다 보았다.
“이 정도면 되었겠지?”
해골이 그를 쓱 훑어보다가 씩 웃었다.
“입장권은 축제에 참여할 수 있는 자의 신분 증명. 밤의 세계에 한 발 걸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자체로 입장권이지요. 충분히 자격이 있는 분께서 왜 그리 뜸을 들이셨는지?”
“시끄러워. 네 알 바 아니잖아? 확인했으면 들여 보내주기나 해.”
“확인되었습니다, 마법사 헤이즈군. 입장을 허가합니다. 아무쪼록 즐기시길 바랍니다. 가을 밤의 축제를!”
해골이 비켜섰고 헤이즈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발을 내딛었다.
음산하고 괴기한, 그가 싫어해 마지않는 가을 밤의 축제로.
출처: https://leavinggarden.tistory.com/64 [방치될 정원: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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