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

가을 밤의 축제(2)

2020.03.29

“누나, 누나. 저기 축제를 열고 있어.”

“그러네? 이런 시골에 무슨 일이래.”

“가보자!”

 

앤디는 베시의 손을 잡아당겼다. 어릴 적부터 앤디는 고집이 셌다. 그리고 그걸 말리는 것은 베시의 역할이었다. 베시는 단호하게 딱 잘라 말했다.

 

“안 돼, 앤디! 이만 늦었으니 돌아가야지. 축제 구경은 다음에!”

 

앤디가 배시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러더니 씩 웃었다.

 

“돌아가다니? 어디로?”

 

그 천연덕스러운 웃음에 베시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게, 왜 돌아가야 하지? 그 전에 어디로? 그러나 그 의문도 지워졌다. 먼 데서 흥겨운 음악 소리가 들려왔고 그 음이 벌써부터 베시를 감쌌다. 분위기에 휩쓸려 기분이 가볍게 올랐다. 앤디는 다시 축제 쪽으로 베시를 끌었다. 베시는 경쾌하게 따라갔다.

 

촛불이 가득한 거리는 울타리가 길게 세워져 있었다. 울타리 밖에 있는 두 아이는 울타리를 따라 걸었다. 울타리 안의 희미하지만 재미있을 것이 분명한 풍경에 앤디는 안달이 나는 것 같았다. 둘은 머지않아 입구를 찾았다. 두 나무가 양쪽에 있었고 높은 가지는 서로를 향해 뻗었고 위에서 엮어 들어간 반원 형태의 입구였다. 노란 눈의 까마귀들이 나무에 까악거리며 자리를 잡고 있다가 두 아이를 일제히 내려보았다. 그리고 그 앞의 긴 키의 해골이 신사처럼 빼입고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해골의 텅 빈 눈구멍이 두 아이를 내려다 보았다. 베시는 재미있는 분장이라고 생각했다. 해골은 딱딱 이를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입장하시려면 입장권이 필요합니다.”

“입장권이라니, 언제부터 그런게 필요했다고.”

 

앤디가 볼멘소리를 내었다. 해골은 딱딱거리며 곧 말을 바꾸었다.

 

“입장하시려면 입장료가 필요합니다.”

 

베시는 난감해졌다. 처음 보는 축제의 초대장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었으니 입장료도 바뀐 것은 한결 나았지만 그들에게는 돈도 없었기 때문이다. 주머니를 뒤적거려보았으나 고작 동전 서너 푼이 다였다. 군것질거리도 못 사 먹을 정도다. 베시는 그래도 희망을 걸고 물어보았다.

 

“입장료는 얼마인가요?”

“그건.”

 

해골은 흡족하게 웃었다. 입술이 없었으므로 턱을 좀 움직이는 것 밖에 없었지만 어쨌든 목소리는 유쾌했다.

 

“손님께서 이미 가지고 계십니다.”

 

베시는 눈을 깜빡였다. 내가 주머니에서 꺼내지 않은 돈이 총 얼마인지 어떻게 알았지? 잠시 깜짝 놀랐지만 신기했고 곧 유쾌해졌다. 동네에 종종 오는 마술사처럼 묘기를 부렸구나! 베시는 동전을 스스럼없이 꺼내 내주었고 해골의 긴 손뼈가 건드리려는 순간 앤디가 베시의 손을 잡아챘다.

 

“됐어, 누나. 내가 입장권이 있으니까 내가 낼게. 누나는 내 파트너가 되면 둘 다 들어갈 수 있어.”

“네가 입장권을 어떻게 가지고 있어?”

“비밀이야.”

 

앤디는 그리 말하며 샐쭉 웃고 해골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편지 같은 걸 꺼내는 대신 뭐라 속삭였다. 베시는 의아하게 보았다. 뒤의 불빛이 번졌고 그래서 앤디가 어딘가 뿌옇게 보였다. 이윽고 해골은 빙글 돌며 길을 열어주었고 정중히 인사했다.

 

“그럼 앤디군, 그리고 파트너 숙녀분. 입장을 허가합니다. 아무쪼록 즐기시길 바랍니다. 가을 밤의 축제를!”

 

까마귀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며 입구가 열렸다. 환한 입구로 앤디와 베시는 신이 나서 뛰어 들어갔다. 아이들이 머물렀던 자리 위에 원을 그리며 비행하는 까마귀들이 제각각 까악거리며 떠들어댔다. 거짓말쟁이 잭. 아니야 잭은 거짓말은 하지 않았잖아? 그럼 사기꾼 잭. 사기꾼 사기꾼. 불쌍한 꼬마 아이, 가을 밤의 축제에 들어서고 말았구나. 들어가 버렸어 들어가 버렸어. 이번 밤엔 저 소녀구나. 재미있어. 아쉬워. 기대돼. 불쌍해. 이번 축제는 흥미롭겠어!

 

해골은 웃었다.

 

 

‘아직도 내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거야? 몇 번이나 말해야겠어? 크리스토퍼라고.’

“일 년에 딱 한 번 만나면서 너무 과한 걸 바라는 거 아니야?”

‘너는 더 만날 수 있어. 그러지 않을 뿐이지. 너는 외울 수 있어. 그러지 않을 뿐이었지.’

“그래. 나는 그럴 사람 아니니까 이만 갈래? 별로 반갑지 않다.”

‘재미없어. 네가 좀 더 이 세계로 넘어오면 좋을 텐데.’

“스승님을 불러서 쫓아내기 전에 썩 꺼져.”

‘그래, 난 신입이나 보러 갈련다.’

 

낙엽을 헤치고 건성으로 답하며 걷던 헤이즈는 멈춰섰다. 귀찮은 기색이 가시고 의아한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신입? 이 마을에서 누가 죽었어?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왜? 관심 있어? 유령의 일은 관심을 가지지 않더니. 방금까지는 사람이어서?’

 

유령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허공에 공기가 잔물결처럼 떨렸다. 헤이즈는 사납게 물었다.

 

“수작 부리지 말고 답해.”

‘알았어, 우리 마법사님. 유령 하나가 다른 아이를 하나를 꾀어내려고 하더라. 간만에 재미 있는 구경거리여서 구경꾼들이 몰리는 모양이야.’

“누구이지?”

‘누구를 말하는 거야? 주체자? 제물?’

“장난치지 마.”

‘킥킥킥 알았어. 여기 마을의 소녀던데. 이름이...... 베시라고 했던가?’

“뭐?”

‘그러고 보니 너랑 곧잘 어울리는 애였지?’

 

유령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헤이즈는 지팡이로 유령이 있던 자리를 훅 찔렀다. 유령은 여러 갈래의 연기가 되어 흩어지며 세 발짝 멀어진 곳에서 재구성되었다. 그리고 헤이즈를 보며 키들거리며 웃었다.

 

‘너도 보고 싶다면 가을밤의 축제로 찾아와.’

“너 좋은 말할 때 이리 안 와?”

 

그러나 유령은 해 아래 안개처럼 순식간에 지워졌다. 헤이즈는 인영이 사라진 자리를 노려보다가 근처의 나무 밑동을 세게 찼다. 그리고 머리를 세차게 긁다가 감싸 쥐었다. 분에 찬 기색보다 안절부절거리는 기색이 더 컸다.

 

“어쩌지?”

 

헤이즈는 숲을 보았다. 때는 가을밤이었다. 바닥에 마른 낙엽이 가득했고 텅 빈 가지 사이로 달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달빛은 속임수다. 친근해 보여 내딛는 다면 곧 그림자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그림자 아래의 곳은 윤곽 하나 집어내지 못할 어둠뿐이다. 끝없이 느껴지는 어둠 속에서 길을 잃게 될 것이다.

 

가선 안 된단다, 헤이즈. 스승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러나 헤이즈는 겁 없이 숲으로 들어갔다. 속임수임을 모르는 순진한 여행객같은 행동이었으나 숲을 보는 눈은 사냥꾼처럼 대담했다. 밤의 동물들이 요란스럽게 쑥덕거렸다. 헤이즈가 길을 벗어나 사라졌고 이내 숲은 고요해졌다.

출처: https://leavinggarden.tistory.com/63 [방치될 정원: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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