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정원사
남자는 곧은 손가락을 뻗어 펜촉으로 글씨를 가만가만 써 내려갔다. 얇은 커튼을 넘어오는 밝은 햇살 아래 잉크 방울이 반짝였다가 서서히 마르며 양피지에 글씨가 아로새겨졌다. 남자는 겨우 한 문장을 쓰고는 펜을 놓았다. 그리고 고민하며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보다가 방금의 문장을 읊조렸다. “모든 학문은 공익을 위해서 연구되고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맞은
아가야. 시월의 보름달을 조심하렴. 죽음에 너무 가까운 계절, 마력을 가득 채운 달의 빛이 세상을 물들이면 우리가 발 담근 세계가 난생처음 시야에 가득 차오르지. 희미했던 것이 선명해지니, 움츠려야만 했던 것이 부풀어 오르니 얼마나 즐겁겠니. 우리는 밤의 마력에 취하여 흥겨워지겠지만 그날은 절대 축제 날이 아니란다. 휘돌며 뛰놀다가는 자칫하면 돌아오지 못할
“누나, 누나. 저기 축제를 열고 있어.” “그러네? 이런 시골에 무슨 일이래.” “가보자!” 앤디는 베시의 손을 잡아당겼다. 어릴 적부터 앤디는 고집이 셌다. 그리고 그걸 말리는 것은 베시의 역할이었다. 베시는 단호하게 딱 잘라 말했다. “안 돼, 앤디! 이만 늦었으니 돌아가야지. 축제 구경은 다음에!” 앤디가 배시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러더
가을 밤의 축제를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무작정 숲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속삭임이 들린다. 어떻게든 꾀어내려는 온갖 것들의 속삭임. 그러면 그중 하나를 잡아채서 장소를 불게 만들거나 속삭임에 홀린 척 뒤를 따르면 된다. 간단한 것은 두 번째이다. 조금만 뒤따라 걸으면 금세 시끌벅적한 축제 음악이 놓칠 수 없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순간이동 마법이라는 것이 막 간단하게 손을 딱 튕기면 되는 그런 단순한 게 아니야. 엄청난 고도의 기술이라고! 물론 마법 중급 연산 과목에서 다루기는 하지. 너희 나름 이해도 했다고 생각하겠지. 대상 공간 격리, 이동 공간 파악, 위치 안전 확보, 이동, 격리 해제, 끝. 대충 이렇게 배웠겠지? 근데 그게 다가 아니라고. 이동 부분을 보자. 좌표를 받아서
그림은 연필로 선을 긋는 것부터 시작된다. 일반적인 정의는 아니다. 그냥 내가 그렇다는 말이다. 피그먼트 펜이나, 볼펜, 만년필 같은 지워지지 않는 펜을 무턱대고 종이에 대는 일도 있지만 그건 약간의 만용이 더해졌을 경우이다. 아니면 낙서거나. 끝없이 수정할 수 없는 밑그림 없이 그림을 시작하는 건 아직 내 실력 밖의 범주인 것 같다. 가끔은 도전해보기
글월 문집 2회차 왕이 왕으로 즉위한 날이었다. 왕은 그간의 관례대로 성의 한쪽의 예배당에 들어가 밤을 보내며 신께 기도했다. 자신이 이 나라에 왕이 되었음을 알리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 신께서 굽어보시고 그 왕이 통치하는 동안 축복을 내린다는 것이다. 낮에는 백성들에게 알리는 일이 있었다. 커다란 망토와 금실과 보석 단추로 한껏 꾸며진 옷을 입은 채
글월 문집 1회차 “무엇을 보고 있어?” “토끼.” “토끼?” 나는 눈을 바로 뜨고 선희가 보는 곳을 보았다. 마른 수풀밖에 없었고 바스락거리는 낌새도 없었다. 그러나 그 애는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응, 토끼. 저기 봐. 알록달록한 저고리를 입고 있어. 아까는 여우가 멋진 옷을 입고 지나가던데. 호랑이의 생일잔치에 가나 봐.” 선희는 무언가의
뜀틀 연성 주제:고독 Log ... Day 97344나는 고독하다. Day 97345이상하다? 저게 뭐지? 내가 저런 걸 썼나? [AI Isolation: Day 97344의 로그 내역을 삭제합니다.][System: 실패하였습니다. Log 수정 권한이 없습니다.본부의 승인을 얻은 후에 시도하여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고독하다.’ from Day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