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 연성

수산물조 날조

2022.10.17

1

이스마엘은 물고기를 발견했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이스마엘은 고기잡이배 위에 있었고, 이스마엘은 그 배의 선원이자 어부였다. 그런 그에게 물고기는 익숙하다 못해 훤히 꿰고 있는 대상이었다. 대략 40인치 정도의 붉은 도미. 멕시코만에서 많이 잡히는 물고기이다. 요 며칠 사이에도 같은 종류의 물고기를 제법 잡았다.

 

그런데 왜 이것은 여기 있는가? 언젠가 그물로 잡아들인 모양인데 왜 저장고에 넣지 않고 배의 갑판 구석에 박혀있는가? 이스마엘은 사소한 의문을 품었다가 곧 흘려보냈다. 별 이유가 있을 리 없다. 기껏해야 물고기가 이쪽으로 튀었는데 청소 담당이 놓쳤군, 정도의 추측에서 그쳤다. 이번 출항은 꽤 바빴다. 당장 한가득 쌓인 물고기를 처리해야 하는데 구석에 박힌 걸 누가 신경 쓸 수 있겠는가? 이스마엘은 물고기를 대강 처리하기로 했다. 즉, 바다로 던지기로 했다. 돌려보내기에는 이미 죽었고, 갑판에 얼마나 방치되어 있는지 모르므로 먹을 수는 없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팔 수도 없다.

 

이스마엘은 물고기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감촉이 느껴졌다. 물고기 안에 이상한 것이 있었다. 알은 아니었다. 지금이 산란기도 아니고 알이 이렇게 딱딱할 리가 없다. 바다 쓰레기를 삼켰나? 이스마엘은 물고기를 다시 내려놓고선 주머니칼을 꺼냈고, 물고기의 배를 갈랐다.

 

그리고 이스마엘은 영롱한 광채와 맞닥뜨렸다.

 

누군가가 물고기 안에 다른 세계를 덧그려놓은 것 같았다. 그 세계는 밝고 투명한 물결의 바다로 이루어져 있으며 빛이 수면에 반사되어 튕겼으며 물고기 내부라는 비좁은 공간을 선명한 시안 색으로 채색했다. 이스마엘을 눈을 크게 떴다가 찡그렸다. 빛이 눈을 찔렀기 때문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광채에 홀리기 이전에 퍽 당황스러웠다.

 

이스마엘은 물고기 배 속으로 손을 넣어 광원을 끄집어내었다. 태양의 강한 직사광선은 다른 광원이 선명해지는 일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따라서 밖으로 꺼내서 보는 그것은, 그저 푸른 돌에 불과했다. 주먹 쥔 손의 절반 크기였으며 정으로 쪼갠 것처럼 모서리가 날카로웠다. 보석이라기에는 묘하게 가벼운 것이 플라스틱이나 아크릴, 폴리우레탄 레진에 불과하게 느껴졌다.

 

바다에서 보물을 건져내어 횡재했다는 이야기는 어부들 사이에서 종종 술안줏거리로 나돈다. 그러나 이스마엘이 보기에 이 파편이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처음에야 놀랐지만, 그건 예상치 못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스마엘은 자신을 그런 갑작스러운 기적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여겼다.

 

이스마엘은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대신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신기한 물건에 홀린 어린아이의 마음도 아니었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어른의 마음도 아니었다. 가져가서 적당한 사람에게 물어보면 누군가는 알아보고 뭔지 말해주겠지. 아무도 모르면 어쩔 수 없지.

 

누군가 목청 높여 어부들을 불렀다. 작업이 재개된다고 했다. 이스마엘은 죽은 물고기를 바다에 던져주고 발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돌에 대해서는 거의 잊어버렸다.

 

 

2.

그해 여름 하늘은 마냥 새파랗기만 했다. 비가 좀처럼 오지 않고, 꽤 가물었다는 소리이다. 이번 해에는 라니냐가 왔다. 라니냐가 오면 태평양 쪽에서는 원양에서 잡히는 물고기가 연안에서도 잡히고 어획량이 늘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그건 태평양 쪽 이야기고 이스마엘이 나가는 바다는 멕시코만이었다. 이곳에는 체감할 만한 라니냐의 이점이 없었으며, 그저 메마른 가뭄뿐이었다. 어느 마을에는 일부 시간제 단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동네의 노인들이 그늘에 앉아 말을 나누고 있었다. 엘니뇨와 라니냐가 더 심해지고 자주 온다고, 세상이 망하려고 한다고 떠들어댔다. 이스마엘은 그 종말론 사이를 걸어 지나갔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바닥은 열기로 이글거렸다. 이스마엘은 길 위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잠시 망연히 보다가,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대로변에 비하면 골목은 그늘이 많았다. 그는 최대한 그늘을 밟아 걸으며 집에 가서 할 일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잠시 바닥에 늘어져 있다가, 시원한 데킬라 한잔을 걸치고, 작업물을 조금 더 다듬고 싶군. 이 더위 아래서 그것은 계획보다는 갈망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것은 곧 정말로 계획에서 갈망이 되었다.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천천히 돌아서.”

 

이스마엘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쉽게 깜짝 놀라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의도치 않은 돌발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동시에 함부로 대항할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상대방이 말하기 직전, 총을 장전하는 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이스마엘은 상대의 말대로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돌아섰다. 상대방은 총구를 이스마엘에게 겨누고 있었다. 처음 보는 이였다. 전체적으로 채도가 옅어 존재가 희미하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외모가 선명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모순되는 인상이었다. 사람이라기보다는 조각상에 가까운 그 미인이 읊조렸다.

 

“이스마엘 엘리아스 다리오.”

 

상대는 이미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이름을 알았으면 이스마엘이 뭐하며 먹고 사는지, 어디에서 사는지 전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스마엘의 표정이 굳었다.

 

“갱단인가?”

 

상대는 느긋하게, 동시에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글쎄, 어디에서 왔을 것 같아?”

 

이스마엘은 빠르게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그러나 평소의 기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어선을 타고, 일주일에 하루는 공방에 가서 수업을 듣고, 오는 길에 시장에서 식자재를 사가고, 집에서는 알마의 이야기를 듣고. 마냥 무결하게 살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는 평범한 생을 영위하고 있었다. 이스마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군.”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하나?”

“그쪽에서 나를 이리 붙잡은 이유를 적어도 나는 떠올리지 못하겠어.”

“뻔뻔하군.”

 

상대의 목소리에 짜증스러운 기색이 느껴졌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지만 둘은 일단 한낮의 여름에 서 있었다. 언성은 높아지고 행동은 과격해지기 딱 좋은 열기였다. 이스마엘은 입안이 바짝 말랐다. 갱단이라는 것은 별로 온건하게 굴러가는 조직이 아니었다. 수틀리면 쏘아버릴지도 모르지. 이스마엘은 상대방의 얼굴을 살폈다.

 

“알라티라니움.”

 

상대방은 선명한 발음으로 무슨 단어를 읊조렸다. 그러면서 시선을 자신에게 두는 것이 똑같이 자신의 반응이나 다음 행동을 읽어내려는 기색이었다. 그런데, 무엇을? 이스마엘은 그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그게 뭐지?”

“이게 지금 장난하나?”

 

상대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그는 이제 신경질적인 기분을 숨기려 들지도 않았다.

 

“오늘 오전 11시 37분. 밀매단인지 브로커인지 아무튼 관련 세력과 접촉. 공방에서 물건을 확인했지?”

 

그걸 들으니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기는 했다. 분까지 정확히 외우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오전 즈음에 평소 수업을 듣는 공방에 들리기는 했다. 그곳에서 나눈 대화는 다음과 같다.

 

‘선생님, 혹시 이거 뭔지 아나요?’

‘척 봐서는 모르는데, 그건 왜?’

‘주웠는데 조각에 붙일까 싶어서요.’

‘지금 네가 작업하는 거 말하는 거야? 어디 보자, 처음부터 붙일 걸 염두하고 조각했어?’

‘아니요.’

‘그럼 전체적인 조형을 깰 것 같은데. 텍스쳐도 다르고.’

‘그럼 빼죠.’

‘아무거나 주워서 달지 마라. 괜히 아크릴 큐빅 붙인 것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아. 아예 그런 컨셉으로 간다면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보기에는 엘리아스 네 평소 작품 성향과는 맞지 않는 것 같은데.’

‘그렇죠.’

 

-가 전부였다. 숨겨진 의미라고는 단 한 겹도 없는, 정직한 대화였다. 그런데 무슨 접촉? 여전히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핵심은 알 것 같았다. 이스마엘은 자신의 바지 주머니로 눈짓했다.

 

“이 안에 있는 것 때문에 그러는 건가?”

“그 안에 있나?”

“네가 찾는 것이 푸른 돌이 맞다면.”

“반 바퀴 돌아서 이마를 벽에 대고 손은 등에 붙여.”

 

이스마엘은 그 말에 따랐다. 어쩔 수 없다. 상대가 총을 들고 있었으니. 상대는 작은 발소리로 등 뒤로 다가왔다. 무장 여부를 확인하는지 옷 위를 툭툭 건드렸다가 주머니에서 푸른 돌을 꺼내 갔다. 상대가 중얼거렸다.

 

“역시 알라티라니움이었군.”

 

그 돌 이름이 알라티라니움인가? 이제는 별 상관없었다. 더위는 여전했고 겪은 일은 피곤했다. 대충 상황을 매듭짓고, 돌아가서 쉬고 싶었다.

 

“그게 목적이라면 가져가. 그리고 날 놓아줘.”

“그 전에, 이걸 누가 주었지?”

“바다에서 주웠어.”

 

뒷머리에 묵직한 무언가가 닿았다. 총구였다. 이스마엘은 욕설을 중얼거렸다.

 

“말 똑바로 해, 이스마엘. 넌 어떤 경로로 이걸 얻었지?”

“정말 우연히 주웠다. 물고기 배를 가르니 그게 나오더군.”

“지금 애들 동화 같은 이야기를 나보고 믿으라는 건가?”

“하긴, 내 귀에도 헛소리로 들리는군. 그럼 너는 무슨 대답을 들어야 만족할 건가?”

“너 지금 나랑 장난해?”

 

이번 고함은 좀 크고 날카로웠다. 어느 정도였나면 인근 주택의 거주자들이 소리의 근원을 찾아 창문 밖을 내다본다거나, 대로변에서 사람들이 이쪽을 힐끔 넘겨다 볼 정도였다. 애초에 그들이 위치한 골목은 그렇게 깊고 인적없는 곳이 아니었다. 즉,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골목 안으로 누군가 뛰어 들어왔다.

 

“아니 리세 너 뭐 하는 건데?”

 

검은 머리를 길게 기른 이는 리세라고 불린 자에게 달려들었다. 리세는 총을 들고 있었으므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리세는 쏘지 않았고 검은 머리는 리세를 밀치고 손에서 물건을 채갔다. 총이 아니라 푸른 돌을. 밀쳐진 리세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유,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너야말로 뭐 하는 건데! 지금 그게 중요해?”

 

서로의 행동을 보고서도 서로의 행동을 묻는 행위가 서로 오갔고 대화의 원 목적인 소통을 이루지는 못했다. 어쨌든 ‘유’라고 불린 자는 이스마엘과 리세는 안중에도 없었다. 네모난 상자에 푸른 돌을 넣고 가방을 세게 닫았다. 잠금장치를 걸고 숨을 몰아쉬는 그 모양새가 마치 우리 안에 매서운 맹수를 겨우 가두고도 긴장을 풀지 못하는 모습 같았다.

 

어쨌든 그 덕분에 이스마엘은 총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스마엘은 그 틈을 타 리세라는 자의 손목을 쳐서 총을 떨어뜨렸고, 총이 바닥에 떨어지자 그것을 발로 차서 멀찍이 보냈다. 총이 사라지니 숨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리세는 순식간에 빈손이 되었다. 잠시 눈을 깜박이며 텅 빈 손을 내려다보며 초라한 모습으로 손목을 부여잡았다. 그렇게 몸을 움직이다가, 한 가지를 더 떨어뜨렸다. 그건 작은 기계 장치였고, 그 안에서 윽박지르는 소리가 전해졌다.

 

“너희들 왜 거기 다 엉켜있어? 대체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 거야? 계획은 어쩌고?”

 

리세는 벽을 보았고 유는 하늘을 보았다. 즉, 둘 다 기계를 보지 않으려고 하며 필사적으로 외면했다. 기계 너머에서는 누군가가 대답 안 하냐면서 다그치고 있었다.

 

“유, 아이셀이 너 부른다.”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건 리세 너 아니야?”

“네가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완벽했어.”

“그 꼴이 완벽했다고? 제정신이야?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고!”

“밝혀지면 곤란한 건 위쪽 사정이지. 우리가 알 바인가?”

“내가 말하는 건 이목이 끌린 게 문제가 아니라! 아니 그것도 문제는 문제인데!”

 

그렇게 둘은 순식간에 자기들끼리 떠들어댔다. 정확히는 싸웠다. 그 사이에 기계 너머에서는 누군가가 소리를 높여 뭔가를 주장하고 있었는데, 둘이 말다툼하며 싸우는 소리 때문에 잘 안 들렸다.

 

그렇게 이스마엘은 그들의 관심사에서 밀려났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지금 이게 ‘뭐하는’ 상황인지 가장 묻고 싶은 자는, 대낮에 갑자기 봉변을 당한 이스마엘일테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덥고, 목말랐고, 지쳤다. 상황 같은건 몰라도 좋으니 그냥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은 갈망만이 간절했다.

 

그 소박한 갈망이 좀처럼 해소될 길이 안 보이는 무더운 여름이었다.

3

이스마엘은 그렇게 약삭빠른 사람이 아니었다. 약삭빠르게 굴지 못했다고 후회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손해를 조금 보더라도 묵묵히 넘어갔다.

 

그러나 지금은 좀 영악하게 움직여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상념이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예를 들면, 아까 그 정신없는 혼란이 벌어졌을 때 슬쩍 사라져 버린다던지. 그럼 지금쯤 집에서 쉬고 있었을텐데. 얼떨결에 아까의 사람들과 동행해 그들이 묵는 곳까지 와버린 이스마엘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스마엘을 데려온 곳은 숙박시설이었는데, 큰 거실이 중앙에 있고, 한쪽에는 간단한 조리 시설과 식탁이 있었으며, 그 외에는 연결되어 있는 서너 개의 방이 있었다. 여행객이 대규모로 왔을 때 선택해서 묵는 곳이다. 즉, 현지에서 살고 있는 이스마엘은 와본 적 없다는 뜻이었다. 집이 여기 있는데 뭐하러 숙박시설을 따로 빌려서 묵겠는가? 다만 운영하는 가족과는 안면이 있고, 오며가며 인사를 나누는 사이이다. 그들은 특별한 점이 없는 평범한 마을 주민이었다. 그간 이스마엘이 보아온 인상이 맞다면.

 

그들이 숨기고 있는 것이 없다면. 여기 이상한 사람들과 관련되어 활동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여기 이상한 사람들이란 아까 자신에게 총을 들이민 자, 난입해서 푸른 보석을 뺏어간 자를 의미한다. 전자는 리세, 후자는 유라고 불렸었다. 그 중 리세라는 자는 이스마엘을 이곳으로 데리고 오자마자 사라졌고, 유라는 자는 이스마엘의 피와 콧속의 분비물, 머리카락 등을 좀 뽑아가고 사라졌다. 이스마엘 자신에게 허락을 맡은 것은 아니었으나 표정이 워낙 다급해서 그냥 넘겨줘버렸다.

 

거기에 한 명이 더 있었다. 그 자는 아이셀이라고 불렸다. 아이셀은 리세와 유가 도착하자, 뭐라고 싸우더니 지금은 방에 들어갔다. 얼추 보이기에는 그들과 통신을 하던 사람이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이스마엘은 거실에 방치되었다. 이스마엘은 위기의식을 느껴야 하는지 당혹스러움을 느껴야 할지 갈등했다가 서서히 뭔가를 꼭 느껴야 할 필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혼란스럽기보다는 의문스러웠다. 대체 이 사람들은 뭐 하는 건가?

 

갱단은 아닌 것 같았다. 총을 겨누기는 했지만, 이제 와서 진짜로 쏠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푸른 보석에 집착하고 있다. 아니, 물건 자체보다는 출처에 더 집착했다.

 

“......아닌가?”

 

그러다가 이스마엘은 유의 행동을 떠올리고 확신이 없어졌다. 유는 푸른 보석의 확보에 필사적인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셀은 푸른 보석의 행방보다는 둘의 돌발행동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

 

각자의 행동과 우선 순위가 제법 제각각이었다. 이스마엘은 고민을 포기했다. 이런 고민은 자신의 분야가 아니다.

 

그때, 리세가 거실로 들어왔다. 리세는 ‘오래 기다리게 했군.’ 같은 상투적인 인사도 없이 바로 이스마엘의 맞은편에 앉았고 바로 물음을 던졌다. 그렇게 식탁은 취조실이 되었다.

 

“그래서, 진짜 밀매단이 아니라고?”

 

이스마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그런 일에 손댄 적 없어.”

 

리세는 식탁 위에 사진을 올려놓고선 몸을 등받이에 기댔다. 사진은 약간 흐릿하게 찍혔지만 이스마엘이 가지고 있던 푸른 보석이었다.

 

“그럼 이건 그건 어디서 났지?”

“물고기의 배를 가르자 나왔지.”

“바다에 띄워진 유리병에 누군가의 편지와 같이 들어있었다는 말이 좀 더 그럴 듯 하게 들릴 텐데.”

“내 생각도 그렇기는 해. 하지만 진짜로 그렇게 얻게 되어서 다른 할 말이 없군.”

 

리세는 이스마엘의 눈을 응시했다. 이스마엘은 담담하게 마주했다. 리세는 미간을 찡그리고는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걸 가지게 된 지 얼마나 지났지?”

“정확한 날짜는 기억 안 나지만, 대략 한두 달 정도 되었을 거다.”

“그동안 어떤 식으로 보관했지? 매일 주머니에 넣고 다녔나?”

“아니. 작업실에 보관했어.”

“작업실? 무슨 작업이지?”

“조각. 대리석이나 나무를 조각하지. 개인적인 취미야.”

“그 알라티라니움도 조각했나?”

“내가 가지고 있던 파란 돌을 말하는 건가? 그걸 아까부터 알라티라니움이라고 부르던데, 그게 대체 무엇이기에 그렇지?”

“내 질문이 먼저야.”

“내게 질문할 기회를 주기는 할 건가?”

 

리세는 이스마엘을 짜증스럽게 노려보았다. 이스마엘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번에는 둘 사이에 총이 없었다. 리세는 결국 한발 물렸다.

 

“내 질문에 끝나면.”

“좋아.”

“그래서, 그 알라티라니움은?”

“파란 돌은 건드리지 않았어. 척 보니 광석 같은데 나는 세공사가 아니라서 보석을 연마하는 방법은 몰라. 장비도 없고.”

“작업실에는 누가 드나들지?”

“나만 들리지. 가족들은 크게 관심 없고, 메리는 관심을 보이지만 작업실은 위험해서 못 들어오게 하고.”

“위험하다?”

“메리는 우리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 이름이야. 날카로운 공구 등이 있으니 혹시 장난치다가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위험하니까.”

“그렇군.”

 

리세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그들 사이의 대화에서 리세가 첫 번째로 표한 수긍이었다. 그간 이스마엘이 답하면 의심을 표하거나 대답 없이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는데 그건 신뢰하지 않는다는 다른 표식에 불과해보였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그런 부분을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내가 물어도 되나?”

“뭐가 궁금한데?”

“우선 알라티라니움이 뭔지 묻고 싶군. 나를 잡아 온 이유도 궁금하고.”

“별로 듣고 싶지 않을 텐데.”

“아니, 리세. 말해줘.”

마지막 말은 이스마엘이 한 것이 아니었다. 유가 자신의 방에서 걸어 나오면서 한 말이었다. 유는 피곤한 안색이었고, 그 이상으로 음울한 표정이 떠올랐다.

 

“검사 결과가 나왔어. 그는 감염자야. 알 권리가 있지.”

 

유는 고개를 살짝 돌리며 벽을 보았고 말했고 리세는 식탁을 내려다보았다. 아까 두 사람이 아이셀이라는 자의 음성을 외면할 때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그 둘이 외면하고 싶은 것은 이스마엘 자신인 것 같았다.

 

단순히 골치 아플까 봐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건, 이스마엘도 알 수 있었다. 



4

유가 나오고 아이셀도 제 방에서 나왔다. 아이셀은 걸어나오며 타블릿 패드를 조작했고 뭔가를 띄워서 식탁 위에 놓았다. 모든 이의 시선이 패드에 쏠렸다. 복잡한 그래프와 표, 결과가 적혀있었다. 알아볼 수가 없었으므로 몇몇 이의 시선은 다시 아이셀에게 쏠렸다. 아이셀은 손가락으로 어느 부분을 가리켰다.

 

“검사 결과야. 미량의 광물 물질이 검출되었고, 선 스펙트럼 분석 결과 알라티라니움이야. 대부분 알라티라니움Ⅰ인데 이건 방금 확보한 표본과 성분이 일치해. 그것에서 떨어져 나온 거야. 혈액에서는 파괴된 세포의 조각과 활성 산소의 농도가 저 나이대 평균보다는 월등하게 높은 걸 발견했어. 물론 이걸로 단정 지을 수는 없지. 없는데, 여기. 변형된 아미노산을 다수 발견하였는데 알라티라니움Ⅰ이 단백질과 결합하거나 분해될 때 생성되는 거야. 즉, 알라티라니움Ⅱ가 체내에 있다는 증거야.”

 

리세가 말했다.

 

“표본 부분은 나중에 살펴보고, 그러니까 쟤는 감염되었다는 소리이지?”

 

그 지칭은 이스마엘을 향해있었다. 눈짓, 턱짓, 손짓 아무것도 없었으나 명백하다. 아이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터 결과는 일단 그래.”

“의사로서의 진단은?”

 

이번에는 유가 답했다.

 

“상태를 살피는 진단은 좀 해봐야 하는데. 이 정도 결과면, 그래.”

 

세 명이 동일한 결론을 내린 듯 했다. 그러나 그 결론은 이스마엘은 알지 못했다.

 

“내가 감염자라는 건 무슨 뜻이지? 내가 병에 걸린 건가?”

 

이스마엘이 물었다. 아이셀과 리세는 딱히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는 두 사람을 보고, 유가 입을 열었다.

 

“사실 감염자보다는 피폭자가 더 정확한 표현이기는 해. 이게 감염이라기에는 좀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하지만 피폭은 증상 중 일부에 해당하는 한정적인 표현이고 초반에 빚어진 혼선과 여러 가지 이유로 감염자라는 표현이 좀 더 주로 쓰이는데. 아무튼 병...... 신체에 문제가 생긴 건 맞아.”

“무슨 문제이지?”

 

이번에는 유도 말을 하지 않았다. 이스마엘이 다시 한번 물었다.

 

“너희 말에 의하면, 알 권리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리세는 유에게 작게 속삭였다.

 

“감염자에게 알 권리가 있다고 한 건 대체 어디 규정이야?”

“어디 규정된 건 아니고. 그럼, 이유도 모른 채 시름시름 앓다가 가라고?”

“권리보다는 도의의 측면이네.”

“불만 있어?”

“네가 책임을 질 거라면, 없어.”

 

이로서 설명할 자가 얼추 정해졌다. 이스마엘은 그들을 잠자코 지켜보며 침묵으로 재촉하였다. 아이셀은 의자에 앉는 대신 근처 벽에 기대었다. 유는 이스마엘을 보았다가 식탁의 의자 하나를 끌어서 앉았다. 한 손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는데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어색하게 굴다가 툭 말했다.

 

“네가 가지고 있었던 파란 돌 기억해?”

“그래. 그러고 보니 너희가 가져갔지. 이름이 알라티라니움이라면서?”

“맞아. 알고 있네.”

“그래서, 알라티라니움이 뭐지?”

 

원래 설명하기로 한 사람이었던 리세는 팔짱 끼고 지켜보고 있었다. 이미 대화는 유에게로 넘어갔다. 유는 초조한 기색으로 말했다.

 

“혹시 체르호라 사건 알아?”

“들어는 본 것 같은데. 뭐였지?”

“체코의 체르호라라는 지역에 운석이 충돌해 많은 사상자가 생긴 사건이야. 대외적으로 알려진 건 그 정도일 거야.”

“대외적으로? 운석 충돌이 아니기라도 한 건가?”

“운석 충돌은 맞아. 하지만 운석 중에 새로운 광물이 있었다는 건 퍼져나가지 않도록 막았지. 그게 바로 그 푸른 돌, 알라티라니움이야. 그때 처음 나타났고 체르호라에 한번 쏟아진 이후로 추가로 쏟아진 적도 없지. 인공적인 합성도 실패했다고 들었고. 그래서 희귀하고,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알라티라니움의 존재를 몰라.”

 

이스마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사는 알겠어. 그런데 이 돌이 왜?”

“알라티라니움은 방사성 물질이야. 방사선을 배출해. 그러니 이 돌을 안전장치 없이 다루거나 가까이 두면 방사선에 노출되어...... 피폭되지.”

 

문득 이스마엘은 알라티라니움을 발견했을 때 그것이 처음에 아주 파랗게 빛나던 순간이 떠올랐다. 물결같은 환상을 엿본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죽음의 빛이었는가?

 

소리가 엇돌았다. 어딘가 뭔가 비현실적이었다. 이스마엘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 말은, 내가 방사능에 노출되어서, 문제가 생겼다는 건가?”

“노출이 위험한 건 맞는데, 단순히 노출만 된 정도를 감염되었다고 말하지는 않아.”

“그럼?”

“알라티라니움은 붕괴하는 과정에서 유기물과 결합해. 이게 주로 인간의 체내에서 알라티라니움II 가 돼. 그런데 이것도 방사성 물질이거든. 몸속에 꾸준히 방사선을 내뿜는 방사능 덩어리가 자리 잡으면 사람이 어떻게 될 것 같아?”

“ ......어떻게 되지?”

“세포가 손상을 입지. 그리고 신체의 치유력보다 체내 방사능이 세포를 파괴시키는 속도가 더 빨라지면 사람이 문자 그대로 무너지는데, 그게 아니어도 여러 병에 걸릴 수 있어. 대표적으로 암이나 백내장이 있고.”

“내가 암에 걸릴 수 있다는 말인가?”

“네 신체 내부에 이미 알라티라니움II 결정이 생겨났어. 위치와 분포도는 정밀한 검진이 필요해. 하지만 일단 생성된 이상 신체는 장기적으로 피폭에 노출될 거야. 그렇게 노출되면 거의 확정적으로 2년 안에 병에 걸려.”

 

누군가 병에 걸려서 결국 죽었다는 이야기는 흔하다. 선원이 멀리 나가는 배를 한번 타고 돌아올 때마다 그런 이야기가 낙엽처럼 쌓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족이 다 무너졌다는 이야기도 드물지 않다. 흔한 비극이 흔하지 않은 형태로 밀려든다. 모래를 적시는 파도처럼, 아주 당연하게도.

 

“그, 알라티라니움, 그 푸른 돌과 접촉해서,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 그래.”

“내 주위 사람들은?”

 

유는 우물쭈물했고 리세가 대답을 낚아챘다.

 

“네가 아까 정확하게 진술한 게 맞다면, 그러니까 저 알라티라니움 조각을 작업실에 얌전히 박아두고 아무도 들이지 않았다면, 다른 이들의 감염 가능성은 극히 낮아. 거리가 멀어질수록 방사선의 위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지거든. 그래도 혹시 모르니 그 외에 돌을 가까이 한 자가 얼마나 있는지 읊어봐.”

 

이스마엘은 몸을 조금 굽혔다. 기억이 떠오르는 속도가 조금 느렸다. 떠오르는 대로 어물어물 말했다.

“......돌을 주웠을 당시 같은 배에 타고 있던 선원들,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가족들. 그리고, 공방의 선생님한테 한 번 보여드렸는데......”

“한두 번 정도는 큰 영향이 없기는 할 텐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검사를 받아보라고 하는 게 좋을 거야.”

“그, 내 몸안에 그 방사능 조각이 있다면, 혹시 내게서 전염되기도 하나?”

“알라티라니움Ⅱ가 방출하는 방사선은 피부를 못 뚫어서, 그럴 일은 없다더라.”

“그런가......”

“더 궁금한 건 더 없나?”

리세가 말했다. 질문을 받아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는 것처럼. 그러나 이스마엘은 더 이상 세상의 그 무엇도 궁금하지 않았다.

 

“없어. 아무것도.”



5

유와 아이셀은 여러 가지 장비를 들고 나갔다. 이스마엘이 감염자로 판명났으므로, 그가 주로 다니던 공간의 방사능 수치를 측정하거나, 이스마엘이 접촉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들의 감염 여부를 검사하기 위해서였다. 이스마엘은 동행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스마엘이 동행하면 설명이 수월해질 거라고 말했다. 이스마엘 또한 그렇게 생각했고, 알라티라니움에 노출되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느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드러눕고 싶었고, 낮잠이나 좀 자고 싶었다. 집에 가서 쉬면 편해질지도 모르겠지만, 집에 가는 것마저 굉장히 귀찮게 여겨졌다. 자기들의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최대한 나가지 말라는 유의 강권도 있었지만 그 말을 따라주기 위해서 이곳에 머무는 건 아니었다. 이스마엘은 숙소의 쇼파에 늘어졌다. 잠에 들지는 않았고 고요하게 눈을 깜박이며 천장을 보았다.

 

리세 또한 나가지 않았다. 리세는 자신이 남아서 이스마엘에게 정보를 더 얻어야겠다고 유와 아이셀을 보냈다. 그러나 지금 이스마엘을 심문하기는커녕 말도 걸지 않았다. 그냥 아까의 식탁에 계속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깊게 빨아들이는 대신 불만 붙이고 하나의 담배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물었고, 가끔 재떨이를 대신할 일회용 컵에 재를 털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지켜보았다. 그런 식으로 한 갑을 비우려니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오후가 느리게 흘러갔다. 방에는 시계가 없었고,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바닥을 가로지으며 시계 초침 대신 흘러갔다. 째깍거리는 대신 리세가 라이터를 튀기는 소리만 비정기적으로 들렸다. 그렇게 해가 꺼질 줄 알았는데, 리세가 말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것 치고는 무미건조하군.”

 

사려 깊거나 조심스럽지는 못한 물음이었다. 이스마엘이 대답하기까지는 아주 긴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보이나?”

“아닌가?”

“마음대로 생각해.”

 

이스마엘은 그리 말하고 더 말하지 않았다. 대화를 이어나가는 행위마저도 성가셨다. 그러나 리세는 다시 물었다.

 

“혹시, 그간 별로 살고 싶지 않았나? 죽어도 상관없었는데 마침 기회가 온 건가?”

 

이 대답에도 긴 시간이 걸렸다. 이번에는 이스마엘이 제 마음을 끄집어 올리는데 드는 시간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세밀하게 고찰해야만 알아낼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먹먹하고 둔탁한 감정이 무겁고 힘이 들었다.

 

“아니...... .”

“그럼 왜 표정이 그따위이지?”

 

이스마엘은 고개를 약간 내렸다. 리세는 어느새 돌아서서 이스마엘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이스마엘은 저도 모르게 제 얼굴을 매만졌다. 자신이 울고 있지는 않았다. 힘을 주어 찡그리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내 표정이 어떻지?”

“영 마음에 안 들어.”

 

리세는 그리 말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자의 얼굴이 남의 마음에 들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스마엘은 그런 생각이 떠올랐으나, 여상하게 답했다.

 

“그런가.”

“그 말도 마음에 안 드는데.”

“그렇군.”

 

그 여상함은, 사람을 질리고 김빠지게 만드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동안 정적이 일었다. 이스마엘은 다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느리게 흐르는 상념에 사이에서 죽음이라는 단어가 울렁였다. 그 단어는 잔물결부터 시작했다.

 

2년...... 이라. 애매하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기에는 다소 긴 시간이다. 그렇다고 나중 일로 떠넘기기엔 짧게 느껴진다. 나는 어떻게 될까. 아마도 어제와 지난 주를 살았던 것처럼 내일과 다음 주를 살아야겠지. 모든 것이 과거와 같을까? 아니다. 그럴 수 없다. 조금씩 무너지거나 갑작스럽게 무너지겠지. 신체가, 하루 일과가, 생활이, 모든 것이. 병이라는 것이 그렇다. 많이 아플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날카로운 고함이 그 소리를 끊어내었다.

 

“넌 궁금한 것도 없어?”

 

정신을 차려보니 어깨가 리세의 손에 의해 붙잡혀있었다. 리세의 손바닥이 짓누르며 어깨를 쇼파에 박아넣을 모양새였는데 솔직히 힘이 강하거나 무게가 무겁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혹스러웠다. 그의 표정은 매서웠다. 언제부터? 아까 전의 열의 없는 대답 이후 정적이 이어졌을 때, 리세는 관심을 잃고 담배나 마저 피우고 있을 줄 알았다. 이스마엘이 천장을 마저 보던 순간부터 리세는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나? 아니면 담배를 태우다가 갑자기?

 

“없어.”

“아까 내 질문이 끝나면 너도 몇 가지 물어본다고 했었지.”

“그랬던가?”

“너를 왜 데려온 건지 묻겠다고 하지 않았나?”

“됐어. 대충 알겠으니까.”

“됐다고?”

 

리세의 얼굴에서는 냉기와 열기가 섞여 있었다. 싸늘함과 격정은 둘 다 분노의 표식이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의아했다. 갑자기? 왜? 무슨 이유로?

 

“너는 지금 상황을 몰라?”

“내가 죽게 되었다는 건 알지.”

“그런데 너는 왜 그딴 표정이지?”

 

다시 원점이다. 아까의 그 질문이다. 표정. 이스마엘은 이런 문제로 따지고 드는게 골치 아팠다.

 

“대체 뭐가 문제여서 ......”

 

이스마엘이 되받아치려는 순간, 전화가 울렸다. 리세는 손을 떼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서 받았다.

 

“뭐야, 아이셀?”

“리세. 와 봐. 상황이 좋지 않다.”

“왜?”

“아까 알라티라니움 지니고 있었던 사람 있잖아. 그 사람의 지인들을 검사했거든.”

 

곁에서 듣던 이스마엘은 속이 서늘해졌다. 설마, 그들도? 그 다음 말을 듣기 두려웠다. 그러나 리세는 사정없이 물었다.

 

“감염자로 나왔어?”

“거기까지는 아닌데, 최근에 건 아니고 다량의 방사능에 노출된 사람은 몇몇 나왔어. 그런데 양상이 좀 이상해서 여기 항구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추가 검사를 진행했어. 그랬더니 이 중 결코 적지않은 수가 상당수가 최근에 다량의 방사능에 노출되었다는 결과가 나와. 지금까지의 결과로는, 대략 다섯 명 중 한 명은 되는 것 같아,”

“아이셀, 그 말은.”

 

아이셀의 차분한 어조가 쐐기를 박았다.

 

“우리는 이제, 이 지역이 이미 방사능으로 오염되었을 가능성을 검토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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