華山歸還

그거, 사내에게도 통해?

화산귀환 청명송백

回憶沉寂 by 율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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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산의 말코들이 사랑 같은 걸 알면 얼마나 안다고?

산에 살며 목에 날이 선 검으로 하루종일 수련하며 도나 닦는 놈들이 연모나 연정 같은 감정을 알면 제까짓게 얼마나 알겠는가? 도사는 도(度)의 경지를 깨닫고 정통하기에 도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깨달음 속에서 연정의 도를 깨닫게 해주진 않는다. 가르침을 받지 않았으니 우매한 것이 당연하고 정도를 알지 못하니 멈추는 법 또한 모르는 것이 당연지사(當然之事)라.

"어떻게 한다고?"

"그때 확 손을 낚아채면서 고백하는 거죠."

그런 돌산의 말코에게 순애와 연정을 가르쳐주는 것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인지 아는가? 말하는 족족 호기심에 어린 눈빛으로 청명의 눈앞. 저들끼리 친해보이는 처자 셋 중 하나가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알맞은 예시를 보여주겠다며 가라앉은 눈빛으로 몸을 돌려 제 친우 중 하나의 손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낚아챈 손을 제 가슴 위로 올리고 이미 꺄르르 웃고 있는 친우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말했다.

"야. 시집 오거라. 널 위해서라면 하늘에 있는 저 반짝이는 모든 것을 네게 줄게."

"어머! 깔깔깔! 네가 사내였으면 나는 벌써 반쯤 도끼에 찍혀 넘어갔을 것이다! 깔깔!"

"이거 순 약팔이들 아냐?"

사기꾼 집단 같으니라고. 처자들 그리 안 봤는데 이거 완전 돌았구만, 돌았어. 처자의 말을 들은 청명은 순 엉터리라며 그런 말에 잘도 속아넘어가는 사내와 여인이 있겠다고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앞에서 저들끼리 좋다고 웃어넘기던 처자들은 저마다 연정을 모르는 도사가 어찌 이 설레는 고백을 받는 마음을 알겠냐며 아쉬워했다. 연기를 했던 처자가 청명을 향해 얄궂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잘 생각해보시지요, 도사님. '시집 오거라' 이 한마디는 아녀자에게 제법 많은 것을 상징한답니다. 몸도 주고, 마음도 주고. 하물며 남은 앞길의 평생을 제게도 나눠 달라는 사내의 야심찬 고백이지요. 오롯이 나만 감당이 가능했던 내 인생에 전혀 타인인 본인이 스스로 개입하여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준다는 뜻이니까요."

그러자 청명이 되물었다. 그렇다면 하늘에 있는 저 반짝이는 것을 준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고. 닿지도 않을 것을 준다고 약속하는 것은 평생을 쥐지 못할 것을 거짓속에 감춰 약속을 하는 건데 속이 빈껍데기인 허황된 말이나 다름없지 않냐고. 그러자 연기했던 처자가 아닌 옆에 있는 다른 처자가 대신 답변하여 온화한 얼굴로 답을 이었다.

"도사님, 순진하시기는. 저희가 진정 저 닿지도 않을 반짝이는 것을 원하여서 그리하라고 고개를 끄덕이겠습니까?"

"? 소저들이 원하니까 그걸 주겠다는 거 아니야?"

"큰일 날 소리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랍니다. 닿지 않는 것을 가지기 위해 승낙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녀자가 모든 것을 주듯이, 사내도 제게 모든 것을 줄 각오로 헌신하려는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승낙하는 것이랍니다."

설령 그것이 영원히 제 손에 떨어질 일이 없다 하더라도. 그것을 알지라 하더라도. 그것을 위해 제 모든 것을 쏟아부어 옆에 있는 이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의지와 다짐, 각오를 말이다. 청명은 그 이야기를 듣고는 한참을 말을 하지 않고 혼자 곰곰히 생각하다 삐뚤어진 입으로 산 너머를 바라보았다. 화산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꽤나 자주가는 길이고 이 길로 빠지면 익숙한 얼굴과 마을을 볼 수 있는 어딘가의 방향이었다.

'모든 것을 내어줄 각오로 헌신⋯⋯⋯⋯.'

그가 속에서만 소리내어 읽더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는지 작은 코웃음을 쳤다.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 아니던가. 행복, 평화⋯ 그런 것이 제게 어울릴 것이라곤 맹세컨데 단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다. 앞으로도 영원히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가 화산을 위해서라면. 또한 제 자신을 위해서라면 과거도 그래왔듯이 지금도 그런 안일한 단어에 목이 매다 못해 닳아서는 안된다고 수없이 채찍질을 해왔다. 따지고 보면 그건 청명에게 채찍질 수준도 아니었다. 응당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고 나아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그 굳건한 다짐을, 옳다 생각한 순리를 무너뜨리는 사람이 청명의 속에 은은히 점거하며 나타났다. 화산 안에 있다면 청명이 억울해서 미쳐 날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화음의 처자들 세명에게 조언 따위를 구해보겠답시고 앞에 서서 말도 안 되는 이 이야기를 들어줄 상황조차 나오지 않았을 것이란 이야기다.

'이송백, 니가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지?'

누가 알겠는가? 이 연정도, 연모도 모르는 사내가 이런 얼척이 없는 이야기를 들어서라도 한번쯤 걸려봐라 하고 싶은 사내가 종남에 있는 저랑 똑같은 말코 중에 하나일 것을. 청명이 자신의 대충 묶은 머리의 꼬다리 부분을 검지로 살살 긁다가 이내 에라 모르겠다, 질러나 보자고 생각한듯 뒤로 묶은 풍성한 머리카락들 속을 엉망으로 털어냈다. 그러더니 처자들이 원했던 말과는 다른 뜻밖의 말을 꺼내놓았다.

"그거 있잖아. 사내에게도 통해?"

"어머?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사내에게도 통하다니요?"

"내가 처자들에게서 조언을 얻어 그 말 그대로 들이 받을 사람이."

더럽게 안 통할 것 같은 사내 놈이거든.

따스한 봄. 한참을 흐드러지는 매화가 온산에 만개하여 달큼한 향을 가득 적시는 가운데, 아무런 향을 내지도 않고. 그렇다고 향에 적셔지지도 않은 단 하나의 우직한 소나무 위로 누군가가 날려보낸 꽃잎이 조용히 안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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