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존이설/청명이설] 타생지연他生之緣

[청명이설/검존이설] 他生之緣(타생지연) - 13. 운합무집

구화산에 트립한 유이설

* 급전개 주의, 개연성X, 무협알못, 원작설정숙지 잘 안됨 

* 雲合霧集(운합무집) : 구름이 모이고 안개가 모여옴. 많은 것이 모이는 상황. 

* 전편 소장본 구매 폼(설 이후 소량 재주문 예정):


 ❀  

"사고."

유이설이 자신을 부르는 음성에 뒤를 돌아 보았다. 그녀에게 다가온 청명이 유이설의 양 어깨를 감싸잡았다.

"?"

"오늘따라 왜 이리 성급해? 그러니까 초식이 하나 끝날 때마다 방향이 점점 어긋나잖아!"

유이설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청명이 다시 쏘아붙였다. 

"목구멍에 돌멩이라도 삼킨 것 마냥 균형도 다 깨져있고. 왜 이래? 다른 놈들도 아니고 사고가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이상했다. 그런 적이 없는데.

언제나 곧잘 균형을 찾던 그녀였다.

"하여간 빠져가지고선... 뭐 금방 돌아오겠지. 사람이 살다보면 잠시 맛이 갈 수도 있는거지. 괜찮아, 돌아올거니까."

"……."

"맞지?" 

청명이 그녀를 향해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그게 사고 특기니까. 균형 잡는 거."

유이설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언젠가 돌아올거야."

그리고는 홀린 듯이 대답했다. 다정한 어조로 격려하는 청명이 평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더 분발하고. 할망구 될 때까지 나한테 가만히 맞고만 있기는 싫을 거 아냐?"

유이설이 얼굴을 확 붉혔다.

"건방져."

"그럼 사고께서 이 건방진 사질 버릇 좀 손수 고쳐주시든지."

낄낄대는 청명의 웃음소리가 유이설의 귓전을 때렸다. 유이설이 꽉 주먹을 쥐었다.

"기다려. 혼내줄테니까."

기다려.

내가 정신 없이 뒤쫓을테니.

❀  

다음 순간, 유이설의 목숨이 끊어지던 시점의 시야가 다시 펼쳐졌다. 한때 그녀의 삶을 환하게 밝혀주던 빛이 거대한 바람 앞에 가녀린 촛불처럼 일렁이며 서있었다. 

은연중에 언제나 희게 작열할 줄만 알았던 그 빛이, 곧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그의 뒷모습이 눈앞에 일렁였다. 불로 지지듯 가슴이 아렸다.

시문령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과거와 미래의 흐름은 곧 생과 사의 물줄기와도 닿아 있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결국 나는 청명의 뒤만 쫓다가 죽음을 맞아버렸던 것이구나.

그리고 목숨이 완전히 끊어지기 직전, 이곳에 떨어지고 만 것이다. 전생의 청명이 있던 곳으로.

다시 시야가 암전되었다.

 

❀  

이번엔 언젠가 꿈결 속에서 들려왔던 청명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에게서 원하는 게 뭐야?

내가 원하는 건...

너를...

"헉."

유이설이 퍼뜩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자신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청명이 보였다.

"유이설...!

유이설이 가쁜 숨을 고르며 멍한 얼굴로 청명을 바라봤다. 초조함에 지친 기색이 만연한 그의 얼굴엔 안도의 미소가 옅게 떠올라있었다.

"청명."

"나 여기 있어. 천천히 숨 쉬어."

청명이 다시 유이설의 배에 진기를 불어넣었다. 다행히도 입마에 들기 직전 곳곳이 헝클어져 있던 기혈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유이설은 아직 몽롱한 얼굴로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돌아가야... 돌아가야 해."

"유이설…."

"지키지 못했어."

"...야."

"내가 약해서..."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조금만 더 강해서 지킬 수 있었더라면. 유이설은 계속 그리 중얼거렸다. 

‘무슨 지독한 꿈이라도 꾼 건지…….’ 

언제나 침착하고 고요하던 유이설이 마치 목숨 빼고 모든 것을 잃은 사람처럼 벌벌 몸을 떨고 있었다. 청해에서 돌아왔을 적 청명 자신의 상처를 보고 놀라던 모습보다도 더욱더 불안해 보였다. 살짝 곤란해하던 청명은 더 이 이상 못 들어주겠다는 듯, 유이설의 어깨를 부여잡아 제 쪽으로 돌렸다. 

"유이설!"

"……."

"너 정신 안 차려?"

"청명."

꿈 같은 현실과 생생한 기억 속에서 갈팡질팡 헤매이던 유이설이 그제서야 청명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눈호(湖)까지 차오른 유이설의 눈물을 엄지로 훔쳐주었다. 청명에게 몸을 기대인 유이설이 가쁘게 숨을 골랐다. 다행히도 입마의 전조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아직은 내면이 크게 흐트러진 상태이다. 심마에 들어서지 않으려면 진정이 필요했다. 청명이 유이설의 얼굴을 감싸 잡았다. 

"네가 못 지키긴 뭘 못 지켜?"

"나는…."

"나 지켰잖아!“

“…!”

그 말에 유이설이 멍한 눈으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다시 말해줘? 네가 나 지켰다고. 진짜 인정하기 싫지만, 네가 그 빌어먹을 함정을 먼저 알아채고 날 막아서지 않았다면 나도 자칫 위험할 뻔했어."

"……."

"그런데 자꾸 왜 그리 자책을 해. 자기가 한 건 깡그리 다 까먹고."

투덜거리는 어조였지만 그는 유이설을 위로하려고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었다. 그것이 유이설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흐트러져 있던 유이설의 얼굴이 다시 평정심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 이 곳에서도 그녀가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 

“나 하나 지킨 걸로는 성에 안 차서 그러냐?”

"...결코 아니야."

이제야 좀 정신 차리네. 청명이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유이설과 맞잡은 손으로 진기를 불어 넣어주었다. 밀려들어오는 기운의 속도에 맞춰 유이설이 숨을 골랐다. 다행히 깨어나고 나서는 회복이 빨랐다.

"아무도 너 책잡지 못해. 그러니 삽질은 관둬라."

"......응."

유이설이 마지못해 대답하고는,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해가 져가는지 사위가 많이 어두워져 있었다.

"우리 여기에 얼마나..."

“잠깐.”

“?”

청명이 급히 동굴 바깥으로 나서려는 유이설의 팔을 잡아 끌었다. 입술 위에 제 손가락을 올렸다. 

“놈들이 근처에 있어.”

“!”

앞뒤 맥락 없이 던져진 말이지만 그 의미를 모를 수가 없었다. 유이설도 덩달아 기감을 곤두세웠다. 음침하고 질척한 기운이 고요한 숲 어딘가를 가로질러 질주하고 있었다. 인원 수는 많아봐야 열을 넘지 않았다.

청명이 옆에 있는 유이설을 보며 혀를 찼다. 또 보나마나 자신과 같이 있겠다고 고집 부릴거, 이번엔 절대 봐주지 않고 꽁꽁 묶어다가 아무 거지 놈들 손에 돌려보내 버리려 했는데 바깥에 적이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는 이상 그것도 꾀하기 힘들었다. 

“이상해.”

“뭐가?”

“마교는 이렇게 은밀하게 움직이지 않아.”

유이설이 동굴 바깥에 시선을 던지며 이야기했다. 

유이설이 알던 마교는 이렇게 작은 단위로, 은밀하고 조용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중원에 침범하기 시작한 마교도들은 압도적으로 많은 머릿수로 밀어붙이며 최소 한 지역 정도는 완전히 피로 물들이려 든다. 

그들은 자신이 중원인을 심판할 의무가 있다고 믿기에, 자신들에게 거치는 존재가 있다면 망설임 없이 찢어발기고자 한다. 그런데 이들은 되려 추적을 따돌리고 다시 아무도 모르는 수면 아래로 내려가려 안달이었다.

대체 어째서이지? 

“…들키지 않기 위해…….”

유이설이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그 말을 들은 청명이 아리송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에게?"

"같은 마교에게."

"?"

"마교 전체가 아닌, 일부 분파의 움직임."

“전체가 아니라면...”

“일부의 움직임. 그것도 전체에 비해선 매우 작은 규모.”

마교의 일부가 마교 전체의 의지가 아닌 일을 꾸미고자 한다. 유이설은 그렇게 추리했다. 청명은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진작 기막을 쳤었지만 괜히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 놈들은 거기에서도 반골이라는 거야?”

“그래, 만약 그게 맞다면 우리뿐 아니라 같은 마교에게도 자신의 움직임을 들켜서는 안돼. 이단은 숙청을 당하니까.”

“그럼 그렇게 해서까지 하려는 일이 대체 뭔데?”

“...그건 나도 몰라.”

“뭔가 구린 일일게 뻔한데.”

생각이 벽에 막혔다. 마교놈들이 하는 짓이 거기서 거기라 생각했는데. 청명은 팔짱을 끼고 곤륜을 지원하러 청해에 갔을 적을 생각했다. 

생각보다 적의 숫자가 적었기에 매복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색을 벌이기로 결정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토굴을 발견했고, 거기서……. 

뭐였더라, 어떤 이상한 의식을…

청명이 무언가 퍼뜩 떠올렸다.

“청해에서도 그랬어.”

“...?”

“마음만 먹으면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는데 숨어버리더군. 딱히 지고 있던 것이 아니었는데도 말이야.”

유이설은 지난 기억을 떠올렸다. 매복을 하고 있던 마인들을 청명이 찾아냈었다는 소문이 퍼졌었지. 소문에서는 마교도들의 매복이라고 퍼졌지만 청명의 말을 들으니, 매복을 적발했다기보단 추격 도중 돌연 숨어들어간 마교도들을 추격하다가 찾아낸 것이라 보는 것이 정확하다. 

“뭐지? 그놈들이 이제와 목숨이 아까울리는 없고. 전쟁에서 싸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다고.”

“…….”

청명의 말이 일단은 옳았다. 전장에서의 무인에게는 싸움보다 중요한 것 따위 없다. 하지만 마교도들에게는….

“청명, 거기에서 마교도들이 때 뭘 하고 있었어?”

“그야, 이상한 의식을... 어?”

그 말을 들은 유이설이 팟 동굴에서 뛰어 지상으로 내려갔다. 절벽한 가운데에 난 동굴에서 빠져나간 유이설이 직각으로 솟은 절벽을 땅 위처럼 내달렸다. 다급한 심정과는 달리 마치 깃털처럼 신속하고 고요했다. 유이설의 귀에 뒤따라오는 청명의 전음이 들이닥쳤다. 

[말하고 좀 뛰어!]

[한시가 급해.]

[내가 앞장설거야.]

[늦춰줘?]

[이게...!]

승부욕이 만면에 드러난 청명이 순식간에 유이설을 앞질렀다. 질주하고 있는 마교도들과의 거리는 불과 수십 척. 온 힘을 다해 기척을 감추니 다행히도 눈치채지 못한 듯 했다. 두사람은 신중히 마교도들을 쫓았다. 추격을 당하는 도중 반격 대신 그들이 선택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

“어서 서두르지 못할까!”

마인들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속도를 더욱 높이며 숲속을 질주했다. 쫓기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면 고작 이동하는 데에 이렇게 내력을 소모하는 것이 결코 현명한 판단은 아니나, 그들에겐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전속력으로 달리던 마인들 중 한명이 돌연 뒤쳐졌다가, 다시 자신의 일행을 따라잡았다. 마기에 사로잡힌 눈은 실핏줄이 터져 붉었다. 선두에 있는 이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천마의 권능은 끊어진 힘줄도 새것처럼 이어주실 게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갈라진 입새로 나온 작은 목소리는 바람을 탈 새도 없이 그저 스러졌다. 분주히 질주하던 한 무리의 마인들이 이윽고 멈춰서고는, 촘촘히 짜여진 진법의 빈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지하로 이어진 굴로 뛰어내렸다. 

어둠 속에서 나뭇잎을 뒤집어 쓴 두 검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교도들이 돌연 모습을 감춘 곳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보기엔 그저 고요한 숲 한복판일 뿐이었다. 

"...이건 또 뭐야?"

"쉿."


“젠장... 잔재주는 좋아가지고 겨우 부쉈네.”

“여기가 줄곧 머물던 거처인 것 같아.”

놈들의 둥지에 들어섰다. 앞장 서 걷던 청명이 고개를 홱 꺾어 유이설을 돌아보았다. 땅 속의 차가운 냉기 때문에 안 그래도 서늘한 공기가 유이설의 엄동설한같은 눈빛과 합쳐져 팔뚝에 소름이 돋을 것만 같았다. 

“내 말 듣고는 있냐?”

“......서둘러.”

“어허, 어디서 내 앞을 넘봐. 아, 등을 찌르면 어떻게 해!”

청명이 자신을 앞지르려는 유이설을 한 팔로 제지했다. 크게 움직일 수는 없어 순순히 물러섰지만, 고요한 눈빛이 계속해서 불만을 줄줄 쏟아내고 있었다. 청명은 제 등에 콕콕 박히는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두 사람은 웬만한 고수가 아니었다면 한 치 앞도 보기 힘들었을 칠흑 속을 줄곧 걸었다. 때는 겨울에 접어들기 시작한 밤인지라, 아래로 경사가 진 땅 속의 공기는 걸음마다 더욱더 차게 식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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