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Longest Night
2019 1차 신 초기 백스 백업
" 아저씨는 생일 언제에요? "
" ..생일 ?"
" 네. 나는 5월 31일이구, 슈는 8월 10 일이잖아요. 아저씨는요? "
" 글쎄...잘 모르겠는데. "
" ?? 아저씨는 생일 없어요? "
" 아니, 그건 아닌데.. 바빠서 까먹었어. "
" 허얼.. 어떻게 생일을 까먹을 수가 있어요? "
" 하하, 글쎄.. 아, 슈가 부르는 것 같은데. "
" 헉! 맞다! 네잎클로버 찾기로 했는데! "
저만치 달려나가는 아이를 보며 신은 빙그레 웃었다. 아이는 제 가족들과 함께 꽃밭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남몰래 흐뭇해한 신은 푹신한 의자에 몸을 묻었다. 자연스레 읽던 책으로 눈을 돌렸지만 이미 하얀 건 종이요, 까만 건 글자였다. 신은 안경을 벗어 내려놓았다. 생일. 아이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애초에 태어난 일을 기념하는 건 인간의 관습아닌가.
아저씨!
아니, 사실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와서 누구의 것인지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가 언제 태어났지?
신은 아주 낡은 기억을 더듬어야만 했다.
네가 태어난 날? 모르는데.
신아. 절대로 포기하지마.
너 이새끼! 너! 내가 찜한 거 몰래 처먹냐!!!?
왜 내 연인을 죽였느냐?
미친ㅋㅋ놈ㅋㅋㅋㅋㅋㅋ
신은 아주 오래된 것들을 떠올렸다. 헤아릴 수 없는 추억들이 한아름이었다. 놓아버리기엔 한없이 애틋하기만 한 기억들. 문득 그곳이 떠올랐다. 제가 태어난 장소. 그곳은 지금 어찌 되었던가. 억새가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소식은 들었다. 좋든 싫든 그곳의 소식은 오고가는 상인편에 종종 들려오곤 했다. 바닷가와 어우러져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지. 그 곳에는 평화의 신을 모시는 신전이 세워졌다고 하던가. 참으로 기묘한 인연이었다. 가장 잔혹했던 전쟁위의 세워진 신전이라니. 하기야, 그 안에서 태어난 자신만큼 기묘하진 않을 것이다.
무척 예쁜 곳이라 들었다. 아이들이 다 큰다면 한 번쯤은 다시 되돌아보는 것도 좋겠지. 만약 아이들에게 이곳이 내 고향이라는 걸 알려주면 조금 좋아할까. 아예 그곳에서 살자고 하는건 아니겠지. 상상만 해도 사랑스러웠다. 봄바람 탓인지, 저 아이들 탓인지, 기분이 들뜨는 것 같았다. 희끄무레하게 뜬 눈에는 화환들을 쓰고 함께 달리는 아이들이 자리했다. 무릎의 담요는 따뜻했고, 꽃내음은 달았다. 그동안 신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주 오랜 날을 다른 이들과 함께했고, 그만큼 아주 오랜 밤을 홀로 보내야만 했다. 외로움에 지쳤을 때도 있으나 이제는 그 것을 극복하는 법도 알고 있었다. 긴 밤이었지. 한없이 쓸쓸한 밤이었다. 아무리 껴입어도 온도를 느끼지 못하는 몸은 마냥 서늘했다. 제 온도를 전하기만 하느라 미처 전해받질 못했던 나날들이었다. 추운 것에 질려 일부러 위험한 화산에 뛰어든 적도 있었다. 결국 두 다리를 잃고서야 자신은 아직도 춥다는 걸 깨닫지 않았던가. 아, 참 힘들었더랬다. 뒤늦게 다리를 수복하려했을때 얼마나 품이 들었던지. 지옥보다도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우습게도, 지금에 이르러선 힘들었던 시간이 그저 추억이었다. 신은 책장의 모서리를 더듬었다. 며칠 전 새로 구한 책이라 그런지 아주 빳빳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책은 낡아서 해질 것이다. 가루도 남지 않고 바람에 흩날리겠지. 신에게 시간이란 그런 것이었다. 잠시 졸고 일어나면 모두가 흩어져 없어지고 마는 찰나. 그러나 자신은, 그 찰나속일때 비로소 자신일 수 있었다. 울고, 웃고, 화내고.
이 세상에 저와 같은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들도 자신과 함께 했으나 지금은 모든 것에 관심을 두지 않은지 오래였다. 간혹 연락이 될때면 가장 먼저 듣는 말은 무엇하러 고생하냐, 였다.
신아, 너도 알지 않느냐. 결국 모든것은 사그라들을터인데. 나는 네가 안쓰럽단다. 상처입고 괴로워해 스스로를 저버릴까봐.
신은 이제껏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지금의 아이들이 그 이유였다. 이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그 오랜 세월을 버텨온 것이라 해도 좋았다. 더할나위없이 사랑스러운 이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을 지켜보고싶었다. 때로는 시련에 주저앉고 다시 일어서며 결국 선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오래오래 바라보고 싶었다. 자신은 그들이 힘들때 얼마든지 돌아올 수 있는 안식처가 될 것이다. 잔뜩 응석을 받아주고 엄하게 키우며 바른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제껏 자신이 키워낸 생명들이 한 둘 이었던가. 신은 자신있었다.
주변 온도가 더 내려갔다. 아무래도 눈이 내릴 모양이었다. 물론 자신과 아이들이 있는 곳은 화창한 봄과 같았다. 마법의 힘을 빌려 사시사철 온화하도록 조치를 취해놨으나 주변 기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신은 아이들을 불러 차례차례 따뜻하게 껴입혔다. 머리카락에 붙은 분홍빛 꽃잎들이 나풀거렸고, 신은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양 조심스레 그것들을 떼내었다. 실컷 놀았지? 자, 들어가서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자꾸나.
아이들을 재우고, 산책이나 할 요량으로 나왔을땐 이미 눈이 내리고 있었다. 자신의 예상보다 낮이 빠르게 저문 탓에 햇빛이라곤 한 줌도 없었다. 벌써 그렇게 되었던가. 신은 시간을 가늠했다. 일 년 중 가장 빨리 해가 가라앉는 날. 가장 느리게 다시 떠오르는 날. 제가 머물렀던 어느 지역에선 오늘을 작은설이라 불렀다. 동방의 그 작은 국가는 액운을 맞고 새해를 기다리기 위해 오늘 팥죽을 먹는다 했다. 이맘때쯤이면 팥이 항구로 들어오곤 했다. 내일 아침은 팥죽을 쑤어줘도 괜찮을 것이다.
날이 무척 어두웠다. 아마 오늘도 이 밤에 깨어있는 사람은 신 혼자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외롭지 않았다. 더이상 외로울 것도 없었다.
그는 아주 오랜 밤들을 홀로 지내온 만큼, 아주 오랜 밤을 채우는 법도 알았다.
부디 내년에도 오늘이 찾아오기를.
신은 조용히 속삭였다. 아주 오랜 밤을 채울 첫 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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