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 타입 / 드림 / HL

로스트아크 아만 드림

커미션 by 말차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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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공포 4,848자]

♪ 엔플라잉 - Blue Moon

(로스트 아크 플레체 스토리 이후의 시점을 담고 있습니다. 이점 유의해주시고 읽어주세요!)



정신차리라는 듯, 차가운 호수의 물이 온몸을 때렸다. 여기저기서 나를 지칭하는 단어를 외치는 다급한 목소리들이 귓가에 울렸다. 하지만 내 시선 끝에 있는 사람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을 하고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환상인 걸 알면서도, 호수에 빠지는 바보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누군가 그런 질문을 한다면, 여기 있다고 대답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였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시간은 오늘 아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랜만에 온 루테란의 공기를 느긋하게 들이쉴 새도 없이, 루테란의 왕이자 친우인 실리안의 부름에 황급히 성으로 향했더랜다.


“아, 그대. 도착하자마자 미안하네만, 나와 함께 레이크바에 같이 가줄 수 있겠나?”


레이크바 마을에서 날아온 서신의 내용이 심상치 않아 급히 갈 채비를 하는 와중에 내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 불렀다며 미안하다는 그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같이 레이크바로 향했다.

마을 사람들이 실종되었다가 하루 아침에 멀쩡히 돌아온다는 얘기였던가. 실종된 사람들은 사라졌던 기간동안의 일을 단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는 것 치고, 현재 마을 분위기는 꽤 평화로웠다. 그리고 보니, 실리안을 처음 봤었던 마을도 여기였나. 그땐 왕자였는데. 어느덧 한 나라의 왕다운 면모를 갖춰가는 친우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앳된 목소리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저기, 왕의 기사님!”

“…?”

“와, 정말 왕의 기사님이시네요. 소문만 들어봤었는데, 직접 마주하니까 정말 멋지시네요!”

“…”


내가 아무말 없이 바라보자 소년은 당황한 듯한 얼굴로 허둥지둥하다가 기억난 듯, 아! 하는 추임새와 함께 말을 이어갔다.


“아, 그으… 아! 펜던트 안 필요하세요? 이게 저 멀리, 림레이크에서부터 물 건너 온 펜던트인데요…”

“...”


장사꾼이었군. 그동안 마주쳤던 여러 장사치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한숨을 삼키며 뒤를 도는데, 급한 목소리가 내 발을 잡았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 이걸 지니고 있으면!”

“…보고 싶은 사람?”

“예! 이걸 지닌 채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던가- 뭐, 만나고 싶은 사람은 한 명씩 다 있잖아요? 왕의 기사님이어도! 하튼, 생각만 하면 마주칠 수 있게 해준다네요! 마법처럼요!”

“…”


그 얘기를 듣는데 왜 아만, 네가 생각나는 걸까. 나도 모르게 소년이 건네듯 뻗은 손에 들린 펜던트 목걸이를 쥐었다. 별 거 없어보이는 펜던트인데. 애초에 진짜 그런 게 있다면, 대륙을 돌아다니며 한 번쯤은 들어봤을 텐데. 역시 장사치들이란… 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돌려주려는 순간, 저 멀리 나무 뒤로 익숙한 형체가 시야에 걸렸다. …아만? 아니, 환상이겠지. 네가 여기에 있을 리가…

그 순간, 부드러운 밀색을 품은 잿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원래는 좀 비싼데~ 특별히 왕의 기사님이시니까… 어어어? 어디 가세요?!”


소년의 외침을 뒤로 하고, 푸른 원을 바라보며 다가갔다. 환상치고는 너무 선명한데. 진짜 너일까? 아만. 만나면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는데… 손을 뻗어서, 한 걸음만 더 다가가면 닿을 거리였다. 한 걸음만 더 가면. 손이 무언가에 닿자, 앞에 서 있던 형체는 안개처럼 흩어졌다.


“...”


분명 손 끝에 닿은 촉감이 생생했는데. 멍하니 손 끝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나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그레이스! 그대, 무슨 일인가?”

“…아. 실리안.”


설명을 하려 아까 쬐끄만 장사치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는데, 그 소년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허. 꼭 뭐에 홀린 것 마냥… 어느 동양의 나라에서는 이럴 때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말을 한다고 하던데. 한숨을 쉬려다가, 나를 바라보는 걱정스러운 눈빛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정말인가?”

“응. 그냥… 여기도 변한 게 없구나, 싶어서.”


나의 말에 실리안은 주변을 돌아보더니 그렇군.이라고 내뱉은 후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보니, 여기가 그대와 아만과 처음으로 같이 왔었던 마을이군.”

“...”

“아만과 그대가 없었다면 난 왕위에 오르지 못했겠지. 다시 한번 고맙네. …아만에게도 이 말을 전해줄 날이 올 거라고 나는 믿고 있네.”


실리안에게는 말해도 되지 않을까. 방금까지 아만이 여기에 있었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 귀에 들어가면 나든, 실리안이든 곤란해질 게 분명하다. 이따가 둘이서 조용히 얘기할 타이밍이 오면 그때 말해야겠다. 실리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


“어, 기사님! 아깐 갑자기 뛰쳐가셔서 놀랐다구요~”

“…”


실리안과 떨어져 조사를 시작한지 시간이 꽤 지났을 무렵, 언덕에 앉아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아까의 어린 장사치가 어디서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뒤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물건 값도 계산 안하고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 기사 아저씨들이 여긴 지금 위험하다고, 어린 애는 장사하면 안 된다고 끌고 가려 한단 말이에요.”

“아. 미안. 얼마지?”

“됐어요, 어차피 공짜로 드리려고 했거든요. 마을 사람들에게 들었는데, 기사님 덕분에 평화로워진 거라면서요? 대신 효과 확실히 보시면 소문 좀 내주세요~”


소년은 그렇게 조잘거리며 올라온 언덕을 다시 내려갔다. 저럴 거면 왜 온 건지. 다시 고개를 돌려 언덕 저 너머의 마을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호숫가에 잿빛 머리와 그 밑으로 익숙한 사제복이 보였다. 그럴 리가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이제 사제복은 입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언덕을 달려 내려가고 있었다.

마을쪽으로 내려가자, 실리안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나를 붙잡았다.


“그대? 어딜 그리 급하게…”

“실리안. 아만, 아만이, 호숫가에…”


또 사라지기 전에 붙잡아야 하는데. 왜 나를 떠났냐고, 소중한 친우로 생각했던 건 나뿐이었냐고 물어봐야 하는데. 물론 옷 주머니 깊숙하게 소중히 품고 있는, 누군가 전해주지 못했던 편지를 읽으면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지금에 와서 당사자에게 직접 듣는 건 또 다를지도 모른다. 지금 네 입에서, 그렇다는 대답을 들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해? 아만…

실리안은 일단 진정하라고 한 후, 호숫가에 사람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실리안의 뒤로 기사 둘이 무슨 일이냐며 걸어오자, 호숫가로 가서 누군가 있는지 찾아보라고 명령을 내린 그는 나를 데리고 한 민가로 들어갔다.


“일단 사람을 보냈으니, 아무리 아만이어도 그 시간 내로 마을을 빠져나가긴 힘들걸세. 그러니 우선 밥부터 먹고 진정하도록 하지.”

“...”


장난 반, 진심 반을 담아 밥은 연장자가 먼저 먹어야 하는 거 알지. 라고 하자 실리안은 웃음을 터트리며 당연한 소리군. 이라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내 머릿속에서 아만이 앗,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모험가님. 하며 쩔쩔매고 있었다.


*


모두가 깊이 잠든 한밤중. 문을 앞에 두고 나는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호숫가에서 돌아온 기사들은 개미 한마리도 없었다는 답을 내놓았다. 실리안은 그 답게 아만을 본 게 확실하냐며 다그치는 일 없이,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기사들을 물렸다.


나도 한 번 찾아볼 테니, 그대는 조금 쉬는 게 좋겠어. 오늘 아침부터 쉬지를 못했지 않은가.


나는 실리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부터 루테란으로 향하는 배를 타느라 쉬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니까. 그렇게 조금의 휴식을 취한 후 호숫가로 가기 위해 일어났을 뿐이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 이걸 지니고 있으면!


“...”


펜던트를 손에 조심히 쥐고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나가면, 네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오셨군요, 모험가님. 하며 반겨주기를 바라면서.


.


호숫가는 그리 멀지 않았다. 하늘에 높게 걸린 보름달이 훤히 길을 밝혀주어 금방 올 수 있었다. 호숫가에 도착하자 바람이 익숙한 향을 실어 보내주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향이 은은하게 코 끝을 간지럽혔다. …항상 아만에게서 났던 향인데. 조금 씁쓸하고 그리운 마음으로 호숫가를 둘러보았다. 호수는 마치 거울처럼 밤하늘을 그대로 비추고 있었다. 호수의 가운데에, 푸른 원이 빛나고 있었다.


“…”

“…”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고 있던 입술이, 느릿하게 열리더니 4글자를 담아냈다.


“…아만!”


나도 모르게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자, 풍덩-하는 소리와 함께 흑색으로 일렁이는 물결이 나를 감쌌다. 세상을 밝게 비춰주던 달은 형체를 잃어갔다.

사실은 알고 있었어.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그래도, 환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너에게 하고싶은 말이 많아서… 정작 널 만나면 무슨 말을 먼저 해야될지도 못 정했으면서. 지금부터라도 정해놓을까. 언젠가는 또 만날지도 모르잖아. 엘가시아나, 플레체에서처럼. 너는 따라오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너를 포기할 수가 없어, 아만. 네가 내 첫 친구여서인지, 아니면 다른 감정인지는 모르겠어. 모르겠지만, 나는.


“모험가님!”


그래, 네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한 번만이라도, 환각이라도 좋으니까, 다시 듣고 싶어서… 

누군가 내 팔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실리안일까? 아까 실리안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는데. 자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네. 미안하다고 해야겠지. 왕의 기사란 사람이 왕을 걱정시키게 만들고. 이 밤중에 왕이 직접 돌아다니게 하고… 어느새 수면 위로 올라왔는지, 숨을 들이 쉬자 물이 아닌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동시에 갑작스레 물 먹은 몸은 물을 내보내려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으, 엄청 따갑네. 물로 뛰어드는 짓은 다신 못하겠다. 남은 환각에 홀려서 그런 줄 알겠지만… 환각인 걸 알았으니 뛰어 들었다고 보는 게 맞지 않나?

한참을 기침하고 진정한 후에야 나를 구해준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훤히 보이는 살색에, 가슴 중앙에는 조금은 익숙한, 붉은 보석이 보였다. …설마. 아래로 향해있던 얼굴을 조심스레 들자, 아직 기침을 하고 있는 잿빛 머리카락의 끝자락에 물방울이 맺혔다가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얼굴이 움직이는대로 머리카락의 일부가 밀빛으로 물들었다 다시 잿빛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아만?”

“쿨럭, 쿨럭…”

“그대! -아만! 괜찮은가?”

“난 괜찮은데, 아만이-”

“일단 둘 다 내 손을 잡게!”


물 속에 더 있다가는 아만이 큰일날 것 같아서, 먼저 아만을 뭍으로 올려보낸 다음에야 실리안의 손을 잡고 호수를 빠져나갔다. 아만은 조금 진정한 듯 서서히 기침이 멎고 있었다.


“…후우,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무모했어. 자네가 아무리 수영을 할 줄 안다고 해도…”

“전… 괜찮습니다. 모험가님이…”

“……아만.”


방금 전까지 널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할까, 고민했으면서 그 고민이 우습게도 막상 널 눈앞에 두니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바보냐고 화를 낼까 하다가도, 네 얼굴을 보면 화를 낼 수가 없어져. 

그래서, 하고 싶었던 수많은 말을 뒤로 하고 지금 당장 묻고 싶었던 말을 내뱉었어.


“왜, 여기 있어?”

“…”


널 보고 싶어서 찾아다니려고 할 때는 나에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으면서. 나에게, 따라오지 말라고까지 말했으면서. 너는 왜 여기 있는 거야? 무엇때문에? 나 때문은 아닐 거 아니야. 덧붙이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방금 먹었던 물 때문인지 턱끝까지 차올랐던 말들이 막혀진 채 나오질 않았다. 


“그러는… 모험가님은 어째서 호수에 뛰어드셨나요?”

“난…!”


…환각인 걸 알면서도, 네가 보고 싶어서. 플레체에서 봤던 네 환영과 겹쳐보여서…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다. 항상 차분하게 생각하려고 해도, 아만 네 생각만 하면 머릿속이 뒤죽박죽으로 섞여버려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내가 입을 다문 채로 한참을 있자, 아만은 무언갈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봐야겠습니다. 더 이상은, 저를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

“왜?”

“……”


아만이 푸른 달을 등져서일까,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한참 입술만 달싹이던 아만은 결심한 듯,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의 운명이 닿는다면, 언젠가는 만나게 될 지도 모릅니다.”

“...”

“그러니… 절 찾지 마세요.”


아만은 그렇게 말하고서 사라졌다. 텅빈 호숫가를 푸른 달만이 비춰주고 있었다.



+

“자네나 아만이나, 속에 있는 얘기를 안 하려는 건 똑같군.”

“무슨 말이야?”


호수에 빠진 죄로 두꺼운 이불을 둘둘 싸맨 채 장작을 아주 활활 태우고 있는 난로 앞에 앉아있는 명령을 받았다. 따뜻한 코코아까지 손에 쥐어준 실리안은 웃음을 머금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가 호수에 빠졌을 때, 아만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나타나더니, 호수로 뛰어들었지 뭔가. 그때 아만의 표정을 자네가 봤어야 했는데.”

“...”

“나는 자네가 왜 빠졌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대충은 알겠네. 아만도… 아마도 알고 있으니 그런 말을 자네에게 전했던 걸지도 모르지.”

“그런 말?”

저희의 운명이 닿는다면, 언젠가는 만나게 될 지도 모릅니다. …라고.”


우리의 운명이 닿는다면, 언젠가는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고. 

창밖 너머로 밝게 빛나는, 누군가의 눈동자를 닮은 푸른 달을 바라봤다. 


아만, 너도 저 달을 보고 있을까.

정말 우리가 운명이라면…


멀지 않은 날에, 너와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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