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차 타입/드림/HL

엘소드 애드 드림

[실제 작업물 분량 : 미공포 2,157자 / 이니셜 처리]

L은 턱을 괸 채 실험자료에 집중하는 애드의 얼굴을 바라봤다. 백발에 가까울 정도로 연한 보랏빛의 긴 머리카락을 묶고선 날카로운 눈꼬리를 가진 삼백안이 종이들을 훑는 듯 이리저리 움직여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현듯 실험체를 자처한 날이 떠올랐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라 그런지 아직은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자신의 조수로 있던 이가 갑작스레 실험체가 되겠다고 한다면, 보통은 당황할 텐데. 애드는 그런 낌새 하나도 없이 흔쾌히 알겠다고 대답했더라지. 조수로 지낸 세월도 그리 짧지는 않았던 터라 그럴 사람이란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L이 후후 웃자, 애드는 실험자료에 고정했던 눈동자를 소리가 난 쪽으로 굴렸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쭉 저 얼굴이었다.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항상 미소를 짓는 얼굴이 여느 때와 같이 자신을 향해 있어서 다시 자료들로 시선을 옮겼다. 왜 웃느냐고 물어보면 그냥. 이라는 대답이 날아올 것이 뻔했기에. 싱겁고, 바보 같은 녀석. 조수라는 이름으로 옆에서 무슨 실험을 했는지 다 봐 놓고도 제 스스로 실험체가 되길 자처한 이. 애드는 제 발로 굴러들어 온 실험체, 아니 복을 걷어 찰 정도로 기회를 잡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나 이 몸의 실험체가 되고 싶다면 시켜줘야지.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L은 찌뿌둥한 몸을 풀기 위해 기지개를 켰다. 생각해 보니 실험체가 된다고 했을 때부터 담배를 피우지 못했었다. 정확한 실험 결과를 알기 위해서 이것저것 검사를 하느라 연구실에 계속 붙잡혀 있던 탓이었다.

조수로 있었을 때는 마음대로 피웠었는데. 물론 실내에서 피우면 애드가 쫓아냈었지만, 후후. 지금은 실험체니까 연구자의 말을 듣는 것도 좋겠지. L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저기 있지, 애드.”

“왜.”

“나 담배 피우러 가도 돼?”

애드는 순간 그걸 왜 나한테, 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평소의 얼굴로 돌아왔다. 조수로 지낸 세월이 있어서 마음대로 할 줄 알았더니. 나름대로 실험체라는 자각은 제대로 하고 있나 보군. 왠지 만족스러운 기분에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안 돼. 그리고 정확한 데이터 수집을 위해 앞으로 금연하도록 해라, 애송이.”

“뭐~? 갑자기 금연이라니.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거야?”

“지금은 내가 네 주인 아닌가? 내 실험체라면 내 말을 들어.”

L의 불만 어린 말에 애드는 올렸던 입꼬리를 내리고 종이에 파묻혀 있던 고개를 들었다. 날카로운 눈이 L을 향하고, L 또한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표정은 미소 짓고 있는 얼굴 그대로였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렇게 길지는 않은 시간 동안 눈을 마주치던 두 사람 중 가장 먼저 시선을 돌린 건 애드였다. 연구해야 할 게 산더미인데, 기분을 풀어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애초에 자신에게 실험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존재일 뿐이니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후로 실험자료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왠지 옆에서 따가운 시선이 제 얼굴에 꽂히는 느낌이 들었다. 애써 무시하려 해도 한 번 흐트러진 집중력은 도통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애드는 눈을 감고 한숨을 삼켰다. 이 몸이 어째서 실험체의 기분까지 신경을 써야하는 건지. 하지만 담배는 실험 결과에 영향을 줄지도 모르는 일이니, 변수는 최대한 없는 게 좋은데 말이지. 고민하며 잠시 주변을 둘러본 애드의 시야에 머그컵 두 잔이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커피는 마셔도 괜찮을 것 같은데.”

“...!”

조용히 들린 애드의 말에 L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렇게 잠시동안 애드를 빤히 바라봤다. 애드는 고개를 내린 채 시선을 자료에 고정하고 있었다. L은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애드의 뒤에 다가가더니, 살며시 안으며 말했다.

“사랑해.”

“...쓸데없는 소리 할 시간에 커피나 타러 가지 그래?”

“후후. 부끄러워 하긴.”

애드가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젓자, L은 작게 웃고서는 안았던 팔을 풀고 커피를 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L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애드는 한숨을 쉬었다. 사사로운 감정 같은 건 쓸모가 없는 관계에 불과한데도,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조수로 있던 세월이 있어서 그런 건지. 어차피 이 몸의 실험체가 된 이상 실험이 끝나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애드는 제 손가락 끝을 바라봤다. 손가락 끝에는 종이가 살짝 구겨져 있었다. 

“…….”

애드는 그대로 종이를 확 구겨버린 다음 책상을 쾅 하고 쳤다. 완벽한 이 몸에게 그런 사사로운 것따윈 필요가 없는데. 애초에 실험이 끝나고 자신이 과거로 가면 더 이상 안 볼 사이였다. 평생. 

그렇게 생각하며 겨우 머리를 식힌 애드는 구겨진 종이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쓰레기통 안으로 훅 들어간 종이 뭉치를 만족스럽다는 듯 한 번 바라보고, 다음 자료를 살펴보려는 순간 시야 안으로 컵이 불쑥 들어왔다.

안을 바라보니 검은 액체가 김을 모락모락 풍기고 있었다. 향을 맡아보니 커피였다. 컵을 들고 있는 손, 그 위로 팔을 쭉 따라 올라가면 자신을 바라보는 하얀 눈동자가 있었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항상 미소를 짓고 있으며 검은색 머리카락을 자신처럼 아무렇게나 묶은 이가.

애드는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뭐지?”

“애드는 열심히 연구하는데, 옆에서 나 혼자 마실 수는 없어서?”

“…흥. 일단 가져다줬으니 마시지.”

애드가 컵을 받아 들자, L은 뭘.이라고 말하며 싱긋 웃었다.

“이러니까 내가 조수일 때 생각나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만.”

“그래도~”

L은 애드가 실험 자료들을 내려놓고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익숙한 향, 익숙한 쓴맛, 그리고 익숙한 풍경을 눈에 담으며 L은 다시 입을 열었다.

“애드.”

“또 왜 부르는 거지?”

나는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우리 영원히 함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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