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7?
00.
나이 든 노부부는 그들의 어린 딸을 바라보며 이미 다 자란 아들을 떠올렸다.
“죄송합니다. 전 그분들 이외의 사람에게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어요. 대신 제 동생을 잘 부탁드립니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더듬더듬, 한 자 한 자 과할 정도로 곧게 발음하며 고개를 숙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침착한 목소리와 상반되는 참담한 얼굴이었다. 어린 나이에 현실과 타협해야 했으나 정체성을 버리지 못한 그 아이를 떠올리면 길가에 널린 풀을 뜯어먹은 것처럼 입이 그렇게 쓰더라.
노부부는 그날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 같이 생각했다. 우리는 왜 그 아이의 부모가 될 수 없는 걸까? 그 아이의 마음이 변하는 날이 올까? 그 아이도 우리에게 엄마, 아빠라고 불러주면 좋겠는데. 딸아이만을 집에 데려온 때에도, 몇 년간 함께 살던 때에도, 그 아이가 독립해 집을 나가던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토록 길던 고민의 시간은 오늘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노부부는 서로를 마주 보고 슬픈 미소를 지었다.
“세라, 벌써 4시간이나 자리에 앉아 있었단다. 잠시 쉬었다가 마저 읽으렴.”
“엄마.”
착하고, 예쁘고, 상냥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가슴으로 낳은 딸아이가 한참을 쥐고 있던 낡은 노트를 식탁에 내려두었다.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저 더 이상 못 읽겠어요. 한국어 공부 좀 열심히 할 걸. 보세요, 노트가 이렇게 많은데 4시간 동안 한 권도 다 못 읽었어요.”
세라는 식탁 아래에 있는 커다란 택배 상자를 가리켰다. 그 안은 그가 읽고 있던 노트만큼 낡은 노트들과 옛날 비디오 플레이어에서만 재생될 오래된 비디오테이프 몇 개로 빼곡히 차 있었다. 노부부와 어린 딸이 읽을 수 있는 글자는 각 노트의 표지에 적혀 있는 ‘notebook’이라는 영어 단어와 한글로 적힌 아이들의 이름, 그리고 이름 옆에 적힌 숫자들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부부의 오랜 고민이 끝난 것은 글씨를 읽지 않아도 읽을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언어를 모른다고 해도 차마 정갈하다고는 할 수 없는 글씨체, 하지만 최대한 예쁘게 보이기 위해 노트의 뒷장에 자국이 남을 정도로 꾹꾹 눌러쓴 애정. 그 아이의 부모는 그렇게 장장 18년 동안 한 아이를 위해 매일 밤을 할애했다. 노부부는 도저히 그 애정을 이길 수 없었다.
세라가 읽고 있던 노트를 덮었다.
“저, 엄마. 아빠.”
“그래, 아가야.”
“저기, 있잖아요. 저⋯⋯. 이것들, 하백에게 읽어달라고 하고 싶어요. 하백이 읽어줄까요?”
노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아이가 과연 읽어줄까? 알 수 없었다. 딸아이 역시 자신이 없는 눈치였다. 짧은 정적 끝에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읽어줄 게다. 그 아이는 널 사랑하잖니.”
세라가 말갛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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