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3] 베갯머리송사
아스엘 짧게
* 발더스게이트3 아스타리온xOC 글연성입니다.
* OC(타브) 이름은 '엘(Elle)'입니다. 이 글에서는 엘이라고 지칭합니다.
* 짧습니다. 약 2천자.
** 가내타브 엘 설정은 해당 링크 참조 : https://penxle.com/maria/1949193072
*베갯머리송사: 배우자가 잠자리에서 바라는 바를 속살거리며 청하는 일.
엘은 반짝 눈을 뜬다. 몽롱한 눈은 완전히 잠에서 깨지 못한 채 허공에 초점을 둔다. 방 안은 아직 온 세상이 잠든 것만 같이 적막한 공기만이 내려앉아 있다. 엘은 살짝 몸을 뒤틀어 보려다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조금 시선을 내리니 하얗고도 단단한 팔이 제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을 본다. 그제서야 엘은 서서히 정신이 돌아온다.
“으응, 엘…….”
부드럽고도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사랑스러운 연인은 혹여 잠든 새에 상대가 사라지기라도 할까 걱정하는 것처럼 틈을 주지 않고 단단히 등 뒤에서 껴안고 있다. 자연스레 귀 가까이 붙은 입은 조그맣게 연인의 이름을 잠결에 웅얼거린다.
엘은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아스타리온의 팔을 쓰다듬는다. 아스타리온은 더 이상 소리 내지 않고 다시금 침묵한다. 엘은 괜히 몸을 움직여 연인을 깨우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다시 잠에 빠지는 것을 택한다.
잠시 후, 엘은 부드러운 손길이 자신의 팔과 허리를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는 것을 느낀다. 작은 아이를 달래주듯이 엄지손가락으로 호를 그리며, 안정감을 주는 손길. 엘은 다시 천천히 눈을 뜬다.
“……깬 거야?”
엘이 묻자, 낮은 웃음 소리와 닮은 숨이 목에 닿는 것이 느껴진다.
“응, 근데 더 잘 거야.” 아스타리온은 조르는 듯한 투로 말했다. “자기도 더 자…….”
엘은 돌아 누워서 그의 표정을 보고 싶었지만, 몸을 감싸안은 팔이 빈틈없이 저를 붙들고 있었기에 할 수 없었다.
엘은 몸을 움직이는 것을 단념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이렇게 조금만 더 가만히 있으면 금세 졸음이 찾아올 것 같았다…….
엘의 귓불과 목 뒤쪽에 부드러운 촉감이 차례로 닿았다 떨어졌다. 쪽, 하고 귀여운 소리와 함께 아스타리온의 콧등이 엘의 살갗에 부벼졌다.
엘은 계속 눈을 감은 채 그의 접촉을 가만히 받았다.
아스타리온은 더 이상 밀접하게 접촉을 이어가지는 않았다. 연인의 목에 몇 번의 가벼운 입맞춤을 한 뒤 그는 어깨에 이마를 댔다. 그리고 그대로 움직임이 멈추자, 엘은 천천히 눈을 떴다.
“……악몽 꿨어?”
엘이 묻자, 아스타리온은 아주 미세하게 입술을 떨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엘은 그 무응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엘은 그의 팔과 손등에 걸쳐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그를 다독였다.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이런 밤에는 그저 서로 안아주고 도닥여주는 것이 가장 서로에게 위안과 도움이 된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아스타리온도 엘도 서로의 품을 가장 좋아했다. 온기도, 살이 맞닿는 감촉도, 단단히 감싸안은 힘도 무척이나 안정감 있게 느껴져서. 서로를 품에 안고 잠든 밤에는 시간이 멈춰서 영원토록 이 순간이 이어지더라도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얼싸안은 채 계속 몇날 며칠을 있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아스타리온은 머리를 엘의 어깨 뒤쪽에 꼭 붙인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내일은 시장에 같이 가볼까.”
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스타리온이 살짝 고개를 드는 것이 등 뒤에서 느껴졌다.
“한동안 시장은 안 갔었지. 간만에 큰 장이 열리는 곳으로 가서, 요즘 나오는 물건이 뭔지 구경해보자. 유행은 안 변했으려나. 예전에 옷가게 갔을 때 그 웃기지도 않는 모자, 아직도 유행일까.”
“자기가 나한테 굳이 굳이 사주겠다 했던 그거?”
아스타리온이 피식 웃었다. 엘도 따라 웃었다.
“아직 유행이면 좋겠다. 이번에야말로 꼭 너한테 씌워줘야지.”
“하기만 해봐. 너는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끈 풀리는 옷 입게 해줄게.”
“아핫, 순식간에 수배지가 온 거리에 나붙겠는데.”
“죄명은 풍기문란죄인가?”
시답잖은 대화 속에 키득거림이 섞여 울렸다.
아스타리온이 엘의 허리를 끌어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엘.”
“응.”
“내일 기대된다.”
아스타리온은 조그만 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나도야.”
엘이 웃었다.
아스타리온은 엘의 목덜미에 살며시 입맞추었다. 엘은 모를 것이다. 내일이 기대된다고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단언컨대, 평생에 걸쳐서 처음이다. 그러므로 그 말이 얼마나 크나큰 의미인지 엘은 절대로 모를 것이다.
아스타리온은 순수한 기대감으로 살짝 떨면서 연인의 체온에 몸을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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