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소본능

하지만 두 번 다시 이곳에 돌아오진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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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암시 가정 내 가스라이팅 언급 정신질환 및 가정내 이슈에 대한 가벼운 묘사(블랙조크 맥락) 암시적 불링…

*언젠가의 트윗에 나왔던 것처럼 ‘걍자캐au에 관계캐언급 이수준…’인데요 그래도 님캐가 나왔으니까 가져가세요 오컬트 소재긴 한데 분류:‘인간의 무서움’ 2ch번역블로그 카테고리

주하나는 충동적인 인물 중에서는 신중하며, 신중한 인간 중에서는 충동적이다. 최소한의 윤리의식과 사회적 상식은 가지고 있고, 굳이 따지자면 그런 걸 제법 잘 준수하는 편이긴 하지만, 농담으로도 ‘사교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방어기제를 기반으로 한 안전선 내에서, 밑도 끝도 없이 제멋대로 구는 건 남들처럼은 못 사는 인간이 광인 취급 받지 않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다.

따라서, 그녀의 이 앞뒤 맥락을 훌쩍 건너뛴 발언에 대단한 의도는 없다. 8할쯤 제정신 아닌 사람에게서 그럴듯한 논리를 기대하는 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나 귀신 본다.”

그리고 이 갑작스러운 발화의 상대가 된 센죠가하라 후즈키는, 주하나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의 반응을 보인다. 쌍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하나, 혹시 약이 안 맞아요?”

주하나가 정신병원을 다닌다는 건 굳이 숨기던 일은 아니다. 주하나는 딱 현대인의 평균 수준의 정신질환을 앓았다. 센죠가하라는 주하나가 하나 있다는 형제-센죠가하라는 얘기만 들어봤다-가 죽은 뒤에 달에 한 번씩 상담을 받는다는 것도 알았다. 정신병 토크는 당사자성이 있다는 전제 하에서 컨텐츠다. 없으면 입 닥치는 게 사회적 매너고. 하지만 현대인 대부분이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으니 21세기의 정신병 토크는 흔한 블랙 코미디의 소재라고 볼 수 있다.

 

“잘 맞는데.” 그건 잘된 일이다. 상담사가 안 맞거나 약이 안 맞으면 얼마나 고생을 하던가. 이 과정에서 둘은 병원과 상담과 상담사와 다니는 병원 근처에 있는 제과점 얘기로 5분을 소모했다.(센죠가하라는 주하나가 다니는 병원 5분 거리의 제과점의 딸기타르트가 1인 가구가 소비하기엔 부담스럽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그리고 겨우 원래의 화제로 돌아온다:

“오늘이 음력으로 4월 1일은 아니겠죠.”

“나 그런 기념일 챙길 정도로 유머있는 사람 아니다.”

“그건 그래요.”

센죠가하라는 주하나가 대단히 유머러스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인정한다. 농담의 7할이 정신질환과 퀴어성과(그리고 또래 집단의 야만성의 흔적) 가정 내 이슈로 진득거리는 블랙코미디인 사람을 유머러스하다고 분류하기는 어렵다. 잠시 대화가 끊긴다. 센죠가하라는 주하나에게 스틱 슈가를 건네고, 주하나는 그걸 라떼 위에 뿌린다. 센죠가하라는 정신과 약과 카페인도 상극이 아닌지를 생각하고, 그는 생각의 절반 정도는 입 밖으로 내는 인간이므로, 여기서 또 ‘정신과 약과 카페인을 동시에 섭취해도 되는가’에서 시작하여 담배와 술과 기타 중독성이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가 엇나가기 시작해 ‘도파민에 취약한 인간은 외부자극으로부터 멀어져 헬스나 다니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낸 뒤에야 원래 궤도로 돌아왔다. 화제가 참 중구난방했다.

 

“꽤 뜬금없네요.”

“그러면 이런 얘기를 분위기라도 잡고 해야 하냐.”

우리 사이에?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이 없다. 센죠가하라는 스스로가 골때리는 인간이라는 자각이 있고, 심심찮게 주하나의 골을 깡깡 내려치고 다니긴 했는데, 주하나도 만만찮게 골때렸다. 하나도 평범하진 않지. 센죠가하라는 인정한다. 그의 친구는 가끔-아니면 꽤 자주-거의 대부분의 경우-제정신이 아니었다. 보통은 긍정적인 의미로. 뭐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나랑 어울리지도 않았을테니까. 센죠가하라는 이런 방향에서의 자기객관화가 꽤 잘 되는 편이었다.

 

“그러면요?”

“그러면 뭐.”

“말하는 데에 이유는 있지 않아요?”

“아마,” 주하나는 뜸을 들인다.

“없을 걸.” 실없는 대답이고 센죠가하라는 납득한다. 저건 그냥, 아무한테나 말해보고 싶었던 사람의 태도였다. 기왕이면 들어도 자기랑 손절은 안 하고 미친 사람 취급도 안 하면 좋겠다는 조건이 붙어서 센죠가하라가 그 대상이 된 것뿐이다. 정말, 그뿐인 일이다. 화제를 또다시 돌린다.

 

“병원은 가봤어요?”

이건 ‘약이 안 맞나요’의 변형이다. 유년기부터 정신병원을 들락날락거린 사람이라서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당사자성이라는 건, 상대방에게 ‘민감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할 때에 불쾌감을 줄여줄 수 있는 하나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있어서 주하나도 크게 다를게 없긴 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와 PTSD를 같은 선상에 놓기는 어렵긴 하지만, 적어도 서로의 정신질환에 대한 이야기를 모욕이나 공격의 수단으로 쓰지는 않으리란 최소한의 확신은 있었다.

센죠가하라가 우려하는-또는 호기심을 가지는-의심하는 건 이런 쪽이다. 유년기 경험이 환각이나 환청 등의 손상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가설은 꽤 합리적이다.

 

“그런 거면 좋았겠지.”

그리고 이건 부정이다. 센죠가하라는 주하나가 ‘굳이’ 이런걸로 거짓말을 하는 인간은 아니라는 걸 안다. 저 말인즉, 현대의학의 영역에서 검사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는데 아니더라, 를 뜻할 거다. 센죠가하라가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주하나가 이해를 바라고 한 말은 아닐테니 적당히 반응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거 유감이네요.”

“어.”

“하나.”

“뭐.”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한거예요?”

주하나는 눈을 끔뻑인다. 안광없이 혼탁한 눈이 데굴데굴 굴러간다. 혀를 차는 소리. 못마땅한 티를 낸다.

 

“너 인생 너무 좆같이 살았어.”

그리고 이건 꽤나 맥락에서 벗어난 말이다. 맥락 안에 넣고 추론해보면 귀신인지 뭔지가 보인다,와 연관짓는 게 알맞다. 센죠가하라는 별 흥미는 없었던 여름 특선 호러-오컬트-왓챠평점 3점대-등등을 떠올린다.

 

“뭐 붙었어요?” 이거 꽤 비현실적이군! 센죠가하라는 생각한다.

“끌리기 쉬운 체질인가 봐.” 주하나는 꽤 진지했다. 센죠가하라는 주하나가 저를 꼭, 결로 때문에 곰팡이가 번식하기 시작하는 벽지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본다고 느낀다. 그건 꽤 모멸적일 법도 하지만, 센죠가하라는 주하나가 보는 게 자신의 ‘뒤쪽’이지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 짜증을 내진 않는다.

 

“위험해요?” 위험해도 신경 안 쓸 사람의 어조였다.

“떼어내면 되는데.” 알아서 잘 처리할 사람의 태도였다.

“어떻게 하는데요?” 주하나는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사람 있는 데서 하면 미친년 소리 듣기 좋은 방식으로.”

들어봤다는 뜻인가? 센죠가하라는 묻지 않았다. 안 묻는 게 예의라서 안 물어본 건 아니고 주하나의 신랄하고 비관적인 말 7할은 경험에서 근거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 말은 조만간 단둘이 있을 때 적당히 해결해주겠다는 뜻이다. 뭐 붙은 거 떼주겠다는 말을 풀린 신발끈 묶어주겠다는 말처럼 하는 건, 저 사람답다. 오컬트를 장르에 적어두고도 호러 판정은 못 받은 점은 꽤 유쾌했다.

 

“한국 영화처럼요?”

“한국 영화 뭐?”

아, 이 사람 영화 안 좋아했지. 센죠가하라는 주하나가 현대인답게 할 일 없으면 약속 루트에 영화관을 넣어놓지만 영화 보는 눈도 취향도 딱히 없음을 떠올린다. 주하나는 그린 듯한 ‘스토리 상관 없고 소재 상관 없고 배우의 겉껍데기와 미장셴이 근사하면 좋다’파였다. 남들이 예쁘고 좆같다고 하는 것도 예쁘니까 괜찮다고 하는 인간이었다는 뜻이다.(그리고 남들이 스토리는 괜찮다고 하는 것도 안 예쁘다고 좆같다고 했다.) 센죠가하라라고 대단히 아는 게 많은 건 아니었으니 이미지를 구체화한다.

 

“굿하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그쪽은 무당.”

“달라요?”

“그쪽은 열에 아홉이 가짜라도 전문적인데 이쪽은 진짜인데 통밥이라는 점에서 신뢰도가 낮지?” 가봤다는 뜻인가? 센죠가하라는 주하나가 질문하면 대답을 해줄지를 생각한다. 아마도 해줄 거다. 주하나는 정말 숨기고 싶은 일은 아예 기억을 안 한다. 나도 모르니 남한테 트집 잡힐 일이 없다는 논리는 기가 막혔으나, 센죠가하라가 주하나에게 뭐라 할 처지는 아니었기 때문에(적어도 주하나는 인생에 빨간줄은 안 그였다)상담 열심히 받으라는 얘기나 하고 말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주먹구구식이라고.”

“통해요?”

“니 객사 안 당할 정도로는 통해.”

“사람도 죽어요?”

사람도 아닌 게? 센죠가하라는 뒷말을 생략했다. 말하지 않는 것도 알아차리는 사람을 대상으로 할 때, 문장을 구성하는 몇몇 요소들은 느슨해진다. 센죠가하라는 굳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 표정을 숨기려고 들지 않는 친구를 관찰한다.

 

“꽤 쉽게.”

거짓말이 아니었다. 센죠가하라는 별일 아닌 것처럼, 인생에 유감이 참 많네요, 하는 말을 위로처럼 건넸다. 당연하게도 위로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

주하나의 인생이 언제부터 꼬였냐고 말한다면 태어나기 전부터 꼬였다고 말할 수 있다. 뭐가 구체적으로 대차게 불행한 건 아닌데, 사소하고 꾸준하게 불운한 일이 생겼다. 주하나가 센죠가하라에게 굳이 소개하진 않은 죽은 형제의 얘기를 이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센죠가하라에게도 그에 대해 언급 정도는 했을 거다. “생각해봤는데 나 너한테 무르게 구는 거 너랑 친해질 때쯤에 우리 오빠 죽은 거랑 영향 있는 거 같아.”정도로. 반응하기 어려운 발화에 대해서는 의도를 생각하지 않는 편이 낫다. 분명 아무 생각 없었을테니까.

 

주여명. 주하나의 하나뿐이었던 가족. 주여명과 주하나의 생일은 딱 11개월 차이가 난다. 연년생 형제라면 있을 법한 일이지만 주여명이 어린 시절 소아병동에서 나온 적이 몇 없는 애라는 걸 고려한다면 영 찜찜해지는 구석이 있다. 주여명은 구체적인 병명을 말하기보단 총체적으로 ‘덜 자란 상태로’ 태어난 인간이었다. 어정쩡하게 살아만 있는 부류 중 운 좋게-또는 운이 없어서 안 죽고 꾸역꾸역 살아만 있었던 거다. 그렇게 아픈 자식이 있는데, 굳이 자식을 하나 더 가지려고 한 인간들은 보통 제정신이 아니다. 고로 주하나는 제정신이 아닌 인간들 자식인데다 아픈 형제가 있는 가정에서 나고 자랐다고 볼 수 있다. 괜히 그 인간이 제정신을 당근하면서 네고까지 한 발언을 하면서 ‘그래도 내 애미애비가 날 키운 거치고는 제정신으로 자랐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부친은 잘 기억도 안 나고 솔직히 모친도 기억이 안 났다. 주하나는 불쾌한 것들은 금방 잊어버리는 나쁜 버릇이 있어서였다. 죽은 오빠는 그 둘을 잘만 기억했으니 주하나는 부모를 썩 사랑하는 자식은 아니었던 모양인데, 주여명이 그들에 대하여 드물게 역겹다는 티를 내며 “너 열 사십 도까지 올랐을 때도 나 입원했다고 너 집에 두고 왔었잖아. 너무 싫어.”같은 소리를 했던 걸 고려한다면 대단한 불효는 아닌 거 같았다. 자식 농사도 농사인데 뿌린 대로 거두는 법 아니겠는가? 주하나도 막 퇴원한 주여명이 기겁하면서 소아용 해열제 먹이고 재웠던 건 기억하고 있으니-그 정도였는지는 몰랐지만-금쪽이 나가서 부모의 아동학대 클립 돌아다녔을 집구석이 우리 집이라니 진짜 좆같다 싶었다. 주하나는 그걸 알아차릴 정도로는 짱구가 굴러갔다. 존나 어중간하게 대가리가 돌아가긴 돌아가서 꽃밭으로도 못 살고 아주 염병이었다.

 

아무튼 언제부턴진 모르겠지만 귀신인지 뭔지까지 보였다는 점에서 팔자 하나 기구했다고 볼 수 있는데, 솔직히 주하나 인생은 귀신 하나 보인다고 대단히 더 꼬이고 말 것도 없었다. 그냥 시작부터 하드모드였다. 앞서 언급된 패밀리이슈도 패밀리이슈였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부친이 고아에 모친이 조실부모한 외동이었다. (반대였을 수도 있다. 그들에 대해선 솔직히 뭘 기억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못 느끼면서 살았다.)

그들이 굳이 자식에 집착한 이유가 있는 거다. 정상가정에 미련있는 사람들이 인생에 안정기 찾아와서 낳은 첫째가 오늘내일해서 충동적으로 둘째 만들고 나서 생각해보니 첫째가 불쌍해서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었고, 이들이 죽기 전까지 있었던 일들은 주여명과 곧잘 언급될 걔 친구-선우현의 증언에 의하자면 대한민국의 아동학대는 훈육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로 요악됐는데도(막상 편애받은 주여명도 인생 내내 이 시절 기억 때문에 동생한테 미안해 죽으려고 했으니 뭘 위한 거였나 싶다.), 그들 죽은 뒤에는 부모가 없어서 곤란했다.

 

곤란했다? 열받았다? 잘 모르겠다. 그들은 귀신 보는 딸년 두고도 죽어서도 안 나타난 인간들이었다. 주하나는 자기가 보는 게 제대로 된 영혼보다는 사람 남기고 간 미련이나 후회나 증오같은 찌꺼기라는 걸 알았는데, 그들은 그런 것도 안 남기고 떠났다. 사고로 죽었고 뺑소니로 죽어서 죽는 데 몇 시간 걸렸으면서도.

주하나가 그들의 그런 걸 보고 싶었다는 건 아니다. 그들이 자기에게 올 거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고 싶은 건 다른데 주하나는 결국엔 오빠를 더 신경 쓴 부친이든 낳아놓고선 방치한 모친이든 사랑하지 않았고 사랑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대로 사랑받긴 했다는 이유가 붙으면 용서해주고 싶어지는 게 너무 많아서였다. 주하나는 용서하지 않을 권리가 있었고, 자신의 허비된 유년기를 위해 용서하지 않을 의무가 있었다. 일곱 살짜리 딸한테 교통사고로 죽은 남편 신원을 대신 확인해달라 울고불고 난리를 쳤던 모친도, 기억에 남는 좋은 일 하나 안 남겨준 부친도, 주하나는 그냥 지긋지긋했다. 그래도 주여명은 그들을 보고싶어 했다. 티는 안 내려고 노력한 거 같은데 솔직히 티 났다. 주하나는 걔가 그런 데에 부채감 느낄 시간에 패륜 소재로 스탠드업 코미디하다가 선생님한테 불려가고 그랬는데도 그랬다.(학교에서 제일 망나니같이 살던 남자애들도 패륜성 발화로는 주하나를 못 이겼다.) 그러니까 그들은, 억울하게 죽었는데도 울분이나 미련보다도 후련함이 더 컸던 거다. 그들도 그닥 행복하지는 않았다는 게 참 유감스럽긴 했다. 왜 죽어버렸냐고 탓할 수도 없다는 점에선 사소한 불운이었다. 근데 뭐 별 수 있나? 뭐 죽으신 본인들이 편하시다는데….

 

어찌됐든 부모 없는 인생도 그럭저럭 풀리긴 했다. 다 잘 되지는 않았다. 이상한 거 보이는 부모 없고 고분고분한 구석 없는 작고 깡마르고 예쁘장한 어린 여자애 인생이 쉽게 굴러가면 그거야말로 기적이긴 했다. 그리고 주하나 인생에 기적같은 건 없었고 존나 리얼리티였다. 공중파 평일 오후 대여섯시 프로그램보다는 주말 오후 열한 시에 하는 프로그램 종류였다는 점에서 리얼리티였다.(존나 완전 네거티브한 의미로.) 툭하면 새벽에 키패드 두드리는 아파트 주민이 있는데 그게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는 개최악실화가 인생의 장르를 설명해줬다.(이 사람은 아직도 누군지 모른다.)

그렇다쳐도 대단히 불행한 일이 생겼던 건 아니었다. 주하나는 기본적으로 악운은 강했다. 또는 최악은 피해갔다. 부모는 저 난리였지만 하나 있는 형제랑은 친했고, 모친이 생전에 부탁해뒀던 후견인도 좋은 분이셨다.(앞서 언급된 선우현 군의 고모님 되신다.) 얼렁뚱땅 가족처럼 지냈던 선씨 남매들도 좋은 사람들이었고,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이랑은 초중고 같이 나와서 대학까지 같은 데 들어갔다. 나쁘게 말하자면 인생이 폐쇄적이었다. 유입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닌데, 남는 게 몇 없다. 딱 둘이다. 고등학생 때 남사친이랑 대학 가서 사귀었던 전애인. 라인업 하나 끝내줬다.

 

“그거 우리랑 잠깐 친했던 애들이 다 개자식이라서 그래.”

이혜지가 심드렁하게 말한다. 앞서 언급된 소꿉친구 중 하나다.

 

“그랬나?”

“난 네가 정도 이상으로 빡치면 잊어버리는 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 지 혼자만 속 편해서 열받는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열받는 건 알겠는데 왜 다행이야?”

“내 생각에 너 그거 기억하면서 살았으면 지금까지 죽인 사람이 이승만이랑 비슷했을 듯?”

정치적 발언은 위험하지만 정치적 성향이 비슷하다는 전제 하에서 적당한 유머 코드다. 이혜지는 주하나의 인내력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혜지가 생각하는 주하나는 고작 저딴 것들 때문에 자기의 남은 인생이 꼬이는 걸 못 참아서 인생에 빨간줄 안 긋고 살아온 인간이어서다. 주하나는 이혜지의 이런 비관적인 점을 꽤 좋아했다. 좋은 사람으로 봐주는 사람은 고맙지만 똘추새끼라는 객관화를 해주는 사람은 편해서였다.

 

“내 인생에 개자식이 그 정도로 많았구나.” 문예주가 첨언한다.

“그 개자식들 우리랑 공유하니까 외로워하진 않아도 돼.”

“혹시 너네가 그 개자식은 아니고?”

“우리는 일심동체인데 자혐하는 정신병자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 정신병자들의 당사자성 조크다. 당사자성이 없으면 기만이 된다. 사용할 때 고려할 것.

“우리 언제까지 이런 농담이나 하면서 사는 거지.”

“늙어 죽을 때까지?”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냈으니 반올림 이십 년 지기다. 유입이 가끔 있긴 했는데 다 망해서 남은 게 얘네 정도였다. 이유는 많다. 어린애들 우정이 흔히 그렇듯 흐지부지됐다, 정도면 낫다. 추론을 위한 정보 목록: 그들이 나고자란 동네는 신축 부촌과 기존 주민들이 섞여살면서 빈부에 의한 격차가 나뉘고 선생들도 애들 차별하고 당장 이 셋도 가정의 금전적 여유 측면에서 차이가 꽤 심하게 났으며 이혜지는 안드로진이고 문예주는 레즈비언이며 주하나는 바이다. 메인스트림을 신나게 역행하는 인간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다.

 

“너 진짜 기억 안 나냐.”

“내가 너무 빡쳐서 못 잊는 거 이학년 때 걔밖에 없는데.”

“이학년 언제.”

“고등학생 때.”

“그러니까 언제냐고.”

그러니까 일이 하나만 있었던 게 아니구나. 주하나는 인생의 난이도가 좀 좆같아진다. 진짜 사주를 봐야 하는 거 아닐까? 사주팔자 봤을 때 10대까지 인생에 마가 꼈다는 얘기 들었던 거 같긴 하다.(수능 끝나고 놀러가서 봤었다.) 주하나는 한숨을 내쉰다.

 

“1학기 때 걔 있잖아.”

“아.”

“걘 뭐.”

둘이 혀를 찬다. 그 시절, 주하나는 주여명과 정말 각별했다. 원래도 각별하긴 했는데 고등학생 땐 유독 그랬다. 실상은 정신 나간 헬리콥터 맘과 그에게 잡혀 사는 딸의 관계를 남매에 이식한 수준이었지만 남들이 보기엔 아주 달짝지근했다 이거다. 엄마가 딸을 사랑하거나 딸이 엄마를 사랑하면 뭐라고 해 쓰니야 그건 당연한거야 정신 좀 차려봐를 연년생 형제 관계에다 밀어넣었다 가정해봐라. 솔직히 좀 징그럽긴 했을 거다. 옹호하는 건 아니라 객관적으로.

그리고 주하나는 어릴 땐 좀, 객관적으로 만만했다. 걔한테 호의적인 인간이 없는 건 아니었는데, 소위 목소리 큰 애들은 대체로 주하나랑 사이가 안 좋았다. 원래 시스헤테로집단과 중학생 때부터 퀴어주셔서 감사합니다하면서 산 애들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그러니까 주하나는 목소리 큰 애들이랑은 사이 안 좋고 대단히 친구가 많은 것도 아닌, 체구 작고 예쁘장한 부모 없는 여자애였는데, 여자 좋아한다는 소문도 나 있고 정신병원 다닌다는 얘기도 있고(이건 소문 아니라 사실이었다. 그럼 조실부모하고 하나 있는 형제란 인간이 출석일수 아슬아슬할 정도로 아픈 애가 멀쩡할 리가?) 이상한 거 본다는 얘기도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남자 좋아한다는 소문이 났다면 진짜 좆같은 일이 있었을 테니 이 또한 최악은 피해갔다 볼 수 있다. 위로는 안 됐다.

 

그리고 이 언급되고 있는 ‘그거’는 그 시절에 니 오빠랑 붙어먹는거 아니냐는 말을 면전에서 헀던 녀석이니, 거기서 더 좆같았으면 어느 수준까지 갔을지 모르겠다 싶다. 사실 이 문제는 주하나가 제 형제랑 친밀해서 생긴 일은 아니고(만약 그게 원인이었다면 주여명도 이런 얘기를 들어봐야 했겠지만 그쪽은 동생이랑 사이 좋은 거 보기 좋다는 소리만 들었다.) 주하나가 그냥 고등학교 올라오면서부턴 쌈박질도 안 하면서 얌전히 지내면서 생긴 일이긴 했다. 지난 일이라 빡은 안 쳤다. 문예주는 “네가 걔 두드려패서 코 나가게 하고 이 세 개 갈았잖아.” 라고 말했지만 이건 못 들은 걸로 치기로 했다. 이혜지는 옆에서 쟤도 엇비슷하게 처맞았는데 왜 쟤 잘못인 것처럼 말하냐면서 쏘아붙였다. 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화제를 돌렸다.

 

“어떻게 수습은 됐네?” 이혜지가 대꾸한다.

“너 그때 꼴이 말이 아니었어서 그래.” 문예주가 설명한다.

“기억 안 나? 너 그때 약 안 맞아서 몸 개판 났었잖아.”

“약이 안 맞았던 시절이 왜 기억에 남아있을거라 생각하지?” 문예주가 한숨을 내쉰다.

“너 그때 못 자고 못 먹어서 삼십사 키로까지 빠졌었어.”

“그리고 걔 너보다 머리 하나는 큰 남자애였잖아. 그런 애랑 주먹다툼했는데 네 꼴은 멀쩡했겠냐? 네가 야무지게 쥐어패서 그렇지 겉만 보면 네가 더 심했어.”

“…졌어?”

“그게 중요해? 이겼어.” 삼천포로 빠지는 꼬락서니에 문예주가 한숨을 내쉰다. 반올림 이십 년지기인데 대화가 제대로 이어지는 꼴을 본 적이 없다.

 

“아무튼 그래서 뭐…. 걔가 애들 다 있는데서 말한 것도 있고, 말한 내용도 내용이고, 너도 만만찮게 쥐어터졌어서…. 그냥 적당히 묻기로 하고 끝났을걸. 우리 꼴에 사립이라서 어지간한 문제들 그냥 다 덮었잖아.”

아마 좀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을 거라 주하나는 추측한다. 지난 일이라 궁금하지는 않았다. 뭐 주여명이 화내고 고모님도 오시고 얻어맞았다니까 병원 다니고 그랬겠지. 문예주는 한 마디로 요약한다.

 

“아무튼 너 인생 좀 그랬어.”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새삼 그런 얘기 들으니까 심각성 느껴진다.”

“농담 아니라, 네 인생에서 니 오빠 지인들 빼면 나랑 세혁이랑 예은이랑.” 이혜지가 손가락을 까딱인다.

“네가 소개 안해주는 일본인 친구밖에 없잖아.”

주하나는 눈을 깜빡인다.

 

“소개해줘?”

“굳이?”

문예주는 굳이 말하지 않는 걸 이혜지는 ‘굳이’ 말하는 버릇이 있다.

 

“보나마나 제정신 아니겠지.”

“나에 대한 신뢰도 무슨 일이지?”

“근데 너 제정신인 사람 안 좋아해.”

물론 그렇다해서 문예주가 말을 안 한다는 건 아니다. 반올림 20년 인연이 다 그렇다. 상대에게 ‘선을 넘는다’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그래도 되는 사이라는 게 그들 사이의 인식이다. 오히려, 우리가 아니면 서로한테 누가 이런 말을 해주냐는 인식이 강했다. 문예주는 그래도 말을 좀 고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사회생활을 해서 그렇다. 이혜지는 대학 졸업까지는 힘냈다.

 

“네 그런 점 싫어하진 않는데, 너 기본적으로 좀.”

“좀 뭐.”

“약한 사람 좋아해.”

주하나는 눈을 가늘게 뜬다. 더 말해보라는 태도다.

 

“너 없으면 죽을 거 같이 구는 사람들 있잖아. 적어도 너한테 해는 안 끼칠 거 같은 사람들.”

“그거 우리 오빠 아냐?”

“몰랐냐?”

이혜지는 그러니까, 굳이 말을 할 때 브레이크를 안 건다.

 

“너 너네 형같은 사람 좋아하잖아.”

주하나는 냅다 비명을 지른다.

 

“이 씨발 이혜지 미쳤어?”

“그리고 너네 엄마 닮은 여자한테 약하고.”

문예주는 혜지야 그러다 하나 쓰러지겠다, 하고 그를 말린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주하나는 하루하루 떨어져가는 혈압을 정상 수준으로 유지해주려고 애를 쓰는 소꿉친구들이 고맙다 못해 절벽에서 밀어버리고 싶었다. 솔직히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인정은 해서 그랬다. 반박을 못 한다는 건 이들 사이에서 긍정으로 통용되고, 이혜지는 심드렁하게 말을 잇는다.

 

“닐 못 죽인 트라우마가 페티쉬가 되고 말고는 네 자유니까 내가 뭐라할 건 아닌데 지켜보는 우리 심정도 생각 좀 해봐, 나 너 그러다 언젠가 칼 맞을 거 같아서 너어무 무서워.”

“그 정도는 아냐.”

“맞아.” 한숨 소리.

“넌 우리가 이유 없이 걱정하는 게 아니라는 건 좀 이해해야 해.” 주하나는 이건 참 미안하다 싶었다.

 

*

 

어릴 적부터 보던 것들을 뭐라 불러야 하는지는 주하나도 잘 모른다. 그냥 보였는데, 남들은 모른다고 했다. 다행히도 그걸 처음 입 밖으로 냈을 때의 주하나는 몹시 어렸기 때문에 다들 상상친구랑 노나보다, 하고 말았고, 주하나는 어려서부터 눈치가 안 빠르면 곤란해지는 환경에서 자라 안 보이는 게 ‘정상’이라는 걸 일찍 알았다. 이런 환경은 주하나가 자기가 보는 게 뭔지 꽤 오랫동안-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이해하게 만들었다.

일단 그건 무언가의 흔적이었다. 여름철 음식물 쓰레기통 밑바닥에 남은 찌꺼기 같은 것. 영혼이나 감정 같은 사람에게서 파생된 것의 부스러기가 제대로 버려지지 못해 어딘가에 떨어지면, 보통은 별일 없다. 대부분의 학교에는 쥐가 살지만 어지간한 수준이 되기 전까지는 학교에 쥐가 있다는 걸 눈치 못 채는 거랑 비슷한 이유다. 하지만 그 사소한 음식물 찌꺼기도 오랫동안 방치되면 벌레가 알을 까고 구더기의 덩어리가 되는 것처럼, 대체로 ‘나쁜 것’이 오래 방치되어 좋은 꼴을 보는 경우는 없다. 나쁜 것은 언제나 나쁜 것을 불러온다.

그걸 막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발견 즉시 처리하는 거다. 쓰레기가 쌓이기 전에 버리듯이. 하지만 그런 걸 ‘어떻게 해야’ 없앨 수 있는지는 감각의 영역이다. 어릴 적에는 머리가 안 굴러가서 냅다 먹고 봤다. 왜 하필 먹으려고 들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구강기가 좀 오래갔나 싶다.(유년기 이슈와 연결지을 수 있는지 상담할 때 말했더니 손이 빨라지셨다.) 어려서부터 쥐덫에 걸린 쥐 껍질 벗길 수 있을 정도로 비위가 강해서 가능한 짓이었다. 속이야 좀 메스꺼웠는데 대단히 탈이 난 적은 몇 번 없어서 괜찮았다. 요령이 없던 시절엔 꼭 이런 식으로 박치기하고 깨지고 고생하고 그랬다.

 

주여명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데 감만 좋았다.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뭐 눈치채는 게 빠르다는 클리셰 같았다.(주하나는 이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의 형제는 중학교로 올라가기도 전에 제 동생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아는 걸로 모자라 뭘 하는지도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알았다. 남의 말을 죽어도 안 들어 처먹는 동생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몰랐다.

 

“…나 네가 이런 거 안 하면 좋겠어.”

이건 그 몇 안되는 탈났을 때의 일이다. 분에 넘치는 짓을 했다 크게 고생을 했다. 주여명은 변기를 붙잡고 헛구역질을 하는 내내 옆에 앉아 둥을 두드렸다. 걔는 비위가 약해서 이런 꼴 보는 것만으로도 메스꺼워했는데, 그날은 어떻게든 버티려고 해서, 주하나는 얘한테 들켰다는 걸 알았다.(숨기려고 한 적은 없지만.)

 

“알았어?”

“응.”

걔의 얼굴이 창백했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던 그는 사소한 스트레스만 받아도 앓아눕곤 했으니 자연스럽게 주하나는 고분고분해진다. 환자가 있는 집은 흔히 이렇게 된다. 위생에 집착한다, 체중에 집착한다, 등등. 우선순위의 재설정.

 

“네가 말하기 싫어하는 거 같아서 말은 안 했지만, 우현이도 눈치챘어.”

그래서 그 오빠가 종종 물이나 간식같은 걸 줬나? 주하나는 선우현이 그럴 때마다 어떤 얼굴을 했는지를 생각한다. 잘 기억은 안 났다. 주여명은 조심스럽게 묻는다.

 

“…엄마는 알았어?” 주하나는 얘가 뭐 이런 바보같은 걸 묻나 싶어진다.

 

“알았겠어?”

“…그렇구나.”

입 안이 비렸다. 피 나오네. 병원갈까? 괜찮아, 내 피야. 그래서 병원 가자고 하는 거잖아. 별거 아니니까 신경쓰지 마. 주하나는 빈혈이 없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호러 영화에선 저런 거 토하고도 잘만 뛰어다니더니. 주하나는 그런 것만 좀 억울했다.

 

“…이런 거 해야 해?”

“할 수 있어서 하는 건데.”

“그건 네가 해야 하는 일이야?”

“그건 아니지만.”

주하나는 눈을 굴린다. 주하나는 말을 썩 잘 하는 어린애는 아니었다. 아주 못하는 건 아니었는데, 장르가 한정되어 있었다 볼 수 있다. 자학개그와 비꼬는 말과 팩트로만 후려갈기는 데 특화된 언어습관은 이런 상황에선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실 귀퉁이에 먼지 쌓이잖아. 그거 방치하면 그쪽에 먼지로 된 공 생기고. 그런 거 치우는 거랑 비슷해.”

“그걸 왜 네가 치워야 해?”

목소리가 날카롭다. 주여명은 자주 아팠고, 아픈 사람 치고는 얌전했지만 그래봤자 환자였다. 아픈 사람은 필연적으로 외부 자극에 취약해진다. 주하나는 주여명이 목소리를 높인 것에 화나기보단 저러다 쓰러질까 무서워진다. 저도 모르게 소매를 붙잡았는지 주여명은 미안하다는 듯 눈썹 끄트머리를 내린다. 안심했다. 고작 저런 거에 휘둘리고 있다는 자각 때문에 우울해졌다.

 

“…알아. 잘하는 거야. 착해.”

“…근데 왜 화내?”

“화내는 게 아니라 속상한 거야.”

무슨 차이가 있는데? 주하나는 사람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데엔 영 흥미가 없다. 하려고 하면 할 수는 있겠지만 그에 맞는 반응을 보이는 건 어려웠다. 그냥, 솔직히, 사람에게 에너지를 쓰는 일 자체가 버거웠다. 그렇지만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걸 안다. 너무 어리니까….

 

“쉽진 않지?”

“아마.”

“번거롭고.”

“응.”

“그래봤자 아무도 안 알아주고 아프기만 하잖아.”

그나마 다행인 건, 주여명과 대화하는 건 대단히 어렵지 않았다는 거다. 견딜 만한 사람들은 몇 명 더 있었지만 주여명만큼은 아니었다. 이 나이대 애들한테 답답하더라도 화내지 않고 차근차근 말해주는 걸 바라긴 어렵다. 주여명은 그걸 할 줄 안다. 적어도 노력은 했다.

 

“다른 방법을 찾으면 안 될까?”

“어떤 거?”

“대화? 가능한가?”

“…말이 통하긴 하는데, 나 사람이랑도 잘 못 어울려. 알잖아….”

“그렇지만 이쪽이 도망치기 좋을 것 같아.”

주여명이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진심 어린 애정을 표현하는 거다. 네가 다치는 게 싫어. 아픈 게 싫어. 상처받는 게 싫어. 모르는 척하는 게 뭐가 나빠? 아끼고 사랑하는 걸 상자에 넣고 자물쇠로 잠그고 싶어하는 사람의 심리다.

 

그 행동원리의 기저에는 죄책감이 있다. 주여명은 하등 쓸모없는 일로 주하나를 불쌍히 여겼다. 제 동생의 불우한 유년기를 제 탓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덜 사랑받은 것. 예민했던 어머니의 히스테를 감당하는 데 소모된 시간. 부정하기엔 분명한 폭력의 흔적.(주하나는 잊어버렸지만.) 주여명과 주하나는 연년생이고 생일로 치면 십일 개월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주여명은 딱 부모의 무책임함과 나약함을 경멸하는 만큼 죄책감을 느꼈다. 그것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어쩌면, 태어난 순간부터 오빠보다는 ‘덜’ 사랑받은 주하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영영 부모의 제일은 될 수 없고, 다른 누군가의 제일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들 남매에게 서로는 서로의 제일이다. 명제나 죄책감 따위로. 그 정도 이유로. 주여명은 주하나의 선택지를 제멋대로 고를 수 있다. 걔의 울 것 같은 얼굴, 떨리는 목소리, 울음을 참는 듯한 비언어적 징조, 공포와 애정. 거절하는 게 대단히 매정한 일이 되어버리도록 만드는 건 주여명이 가장 잘 하는 일이다. 오로지 가식 없는 애정만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진심, 을 이용한다는 건 그런 거다. 진심어린 호의, 염려, 배려, 애정만이 개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대단한 걸 바란 건 아니다. 주여명은 그냥…주하나가 남들같이 살길 바랐다.

 

“어떤 건 네가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

“할 수 없어?”

그리고 주하나는 자신의 형제에게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걸 안다. 고작 연년생 형세만을 위해 살기엔 주여명의 유년기도 엉망이다. 편애받은 쪽도 멀쩡하게 자라진 못한다. 오빠한텐 나밖에 없어. 그렇다면 나도 쟤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적어도 주여명은 혼자 남겨진다면 그대로 죽어버릴 테고, 주하나는 그걸 바라지 않으니까.

하지만 주하나도, 주여명이 애정을 수단처럼 써먹는다는 걸 안다. 자기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 자신을 낮추는 인간은 존재한다. 그런 주제에 남들과 달라도, 이상해도,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지만 위험한 것만 안 된다고 말하는 거다. 주여명은 ‘절대로’ 다르다는 이유로 제가 아끼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 주여명이 견디지 못하는 건 마이너리티 속성이 아니라 그가 아끼는 사람들이 주류로부터 겉도는 거다. 흔해빠진 안전과 행복을 바랐다. 진심 어린 호의였다. 하지만 언제나, 진심 어린 말은 쉽게 저주가 된다. 주여명은 주하나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쉽게 사람을 저주할 줄 안다.

 

“넌 못 해.”

“…싫어?”

싫어, 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주여명은 그런 말이 사람을 상처준다는 걸 안다. 너는 못 한다는 말고 네가 그러는 게 싫다는 말 중에서, 왜 후자가 더 상처 주는 말이라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이미 전자를 말했기 때문에 후자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걸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이쪽일지도 모르겠다. 주하나는 주여명을 바라본다. 입 안이 비렸다. 피 냄새가 난다. 쟤는 이런 냄새 못 견디는데. 주여명은 날고기의 비린내도 못 견뎌서 고기도 못 먹는 인간이다. 취약한 인간. 그렇지만 주하나에겐 주여명밖에 없다. 그러니까, 걔가 할 수 없다고 하면 할 수 없는 거고, 싫다고 말하면 싫은 거다.

 

“…오빠가 싫다고 하면 안 할게.”

“내 말 들을 거야?”

주하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너무나도 당연한 걸 말한다.

 

“네 말이 더 중요해.”

주여명은 입을 달싹인다. 주하나는 상대가 말하지 않은 것을 읽어내려 애쓰지 않는다. 비겁해. 대놓고 비난할 힘은 없었다. 아니면, 걔한테 그러기는 좀 어려웠거나. 이걸 소중하다고 해야 하는지 병적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마 병적이라고 하는 게 맞을 거다. 소중하다, 아낀다, 사랑한다, 좋아한다, 귀하게 여긴다. 모든 것에 세모를 그어야 하는 관계는 참 어정쩡했다.

 

“그러면 약속해줄래?”

주여명의 목소리는 여전히 흔들렸다. 주하나는 그가 울 것 같다고 생각하고, 그건 불안한 일이다. 주여명은 원래도 잘 우는 사람이었는데도 그랬다. 사실 그들 남매 자체가 감정적으로 썩 안정된 인간은 아니었다. 주하나도 주여명 앞에서만 안 울었지 어릴 적엔 툭하면 화내고 울고 뒤집어지고 난리를 쳤다. 걔 앞에선 안 울었던 것도 우는 소리 듣는 건 피곤한 일이라 배려한 거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인간을 자극하는 게 싫어서 모친을 일찍 포기해버린 인간다운 효율적 사고다.

달리 말하자면, 주하나는 어릴 적부터 인생을 구성하는 사소한 부분까지 죄다 아픈 형제를 조금이라도 덜 자극하는 방향으로 재구성한 경향이 있었다 볼 수 있다.

 

주하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주여명은 여전히 울음을 참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입가가 가늘게 떨린다.

 

“…미안해.”

“왜?”

“전부 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기엔 주하나는 불필요하게 기민했다. 주하나는 하나뿐인 형제를 사랑했지만, 사실, 그 외의 선택지도 없었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아서 질투하는 것조차도 포기해야했던 대상에게, 주하나는 가끔-보다는 자주, 화가 났다.

 

“나.” 목소리는 멍하니 흘러나온다.

“오빠, 진짜 싫어.”

싸구려 원망이다. 레디메이드, 공장제, 대량생산. 쉽게 버리고 쉽게 다시 만들어지며 개별의 가치는 대단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당장 그걸 생산해낸 본인조차도 그 말에 대단한 의미를 담지 않는다. 너무나도 당연하니까.

그런데도 주여명은 울 것 같은 얼굴로 대답하곤 했던 거다. “알고 있어.”

 

*

 

“끝.”

의자가 끌리는 소리. 센죠가하라는 사람 한 명이 살기에는 불필요하게 넓은 집과, 그에 비해 딱 한 사람분의 가구만 들어찬 황량한 집안을 건성으로 훑어본다. 미감이 없는 인간은 아니니 인테리어를 못 한 건 아닐테고 안 한 눈치였다. 물어볼까 하다가 말았다. 물어봐봤자 “귀찮았어.” 정도의 대답이 돌아올 게 뻔해서였다. 소금 뿌리는 소리와 청소기 돌리는 소리가 이어지는 건 좀 우스웠다. 몸이 좀 가벼워졌나? 그것도 잘 모르겠다. 센죠가하라는 이런 쪽에 예민한 인간은 아니다.

 

“생각보다 평범하네요.”

“왜, 동물도 잡고 주문도 외우고 칼도 흔들고 그럴 줄 알았냐?”

“그런 거까진 아닌데.”

센죠가하라는 눈을 굴린다. 아는 듯 모르는 듯한 문장들을 생각한다. 확실히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미친년이라 할 만한 상황이긴 했다. 그리고 하나라면 그 소리 듣고도 미친년이 미친년이지 그럼 뭐냐는 소리나 했을 테고. 그건 웃어도 되는 상황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말로 하셨잖아요.”

“대화로 해결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안 되는 경우는요?”

“도망치지.” 웃음소리.

“상상이 안 가네요.”

“당초에 그런 건 잘 안 건드리려고 하긴 해, 위험하잖아.”

“제대로 배우진 않으셨어요?”

질의응답. 쌍방으로 이걸 ‘대단한’ 일로 취급하지는 않는다는 방증이었다. 어쩌면 카페라떼에 시나몬 가루를 뿌릴까 카푸치노를 시킬까, 가 이보다 더 대단한 무게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주하나는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오빠가 싫어했어.”

“싫어한다고 안 할 사람 같진 않은걸요.”

“나 오빠 말은 잘 들었는데.”

“안 듣는 데선 해보지 않았어요?

주하나는 어깨를 으쓱인다. 나름의 긍정이다. 센죠가하라는 자기가 추측한 주하나와 실재하는 그녀가 일치하는 점이 약간 즐겁다.

 

“우리나라 무속인 백에 아흔여덟은 사기꾼이야, 됐니? 이거 전에도 말했던 거 같은데.”

“한 번 더 말했다 쳐요. 남은 둘은요?”

“나 같은 거 아니면 진짜 무속인.”

어정쩡한 거 하나에 제대로 된 거 하나라는 뜻이다. 주하나는 스스로를 ‘어정쩡한 거’라고 표현할 정도로는 가차없다. 좋게 말하자면 객관화가 잘 되어있으며 보는 눈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술인의 소양이자 21세기를 살아가면서 정신질환에 시달리기 쉬운 특성이다. 주하나는 둘 다 해당됐다.

 

“만나보셨어요?”

“그냥 그렇게 살라고 쫓아내던데.”

안 봐도 상황이 보여서 우스웠다. 남 저주하지 말라고는 하더라. 어중간한 애들이 꼭 그걸로 푼돈 벌다가 좆된다고. 저주할 줄 알아요? 대충은? 감은 잡히던데. 해봤어요? 해봐야 해? 인생의 각박함을 아는 입장에서는 일정 부분 결벽적으로 들리는 구석도 있긴 하지만 실상은 ‘왜 내가 나한테 좆같이 군 인간들에 대해 그정도로 생각을 해야 하는데?’에 가까웠다. 이것까지 센죠가하라가 알았는지는 알 수 없고 주하나가 신경쓸 일도 아니었다. 남 저주 안 하고 잘 살았다는 결론은 사실이니 이것만 고려하는 게 낫다.

 

“그래도 네가 좆같이 살면서 너 못지않게 좆같은 놈들만 건드려서 다행이지.(센죠가하라는 이걸 욕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잠깐 고민했다.) 이쪽은 치우기 쉬우니까.”

“어떤 게 어려운데요?”

“억울하게 죽은 쪽.” 첨언했다.

“사고나, 살인이나, 학대같은 거.”

센죠가하라는 짧은 순간 그녀의 표정이 언짢은 듯 구겨지는 걸 봤다. 물어볼까 싶었는데, 안 하기로 했다. 아주 오래 알고지낸 건 아니었지만 상대의 어떤 반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추측할 수 있을 정도로는 친했다. 주하나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보통 가족 내 이슈고 그건 센죠가하라가 들어도 감흥 없고 이해도 못하고 머리를 쥐어짜내서 정신과 상담받을 때 말해야 할 것 같은 얘기네요, 따위를 겨우 말할 수 있는 소재였다. 요약하자면 그냥 말해봤자 재미없는 화제일 거 같았다. 배려 그런 거 아니고 진짜 재미없을 거 같아서.

 

“그런 경우엔 어떻게 하세요?”

“아무것도 못 하지. 나 제대로 된 무당도 아냐.”

“보이신다면서.”

“못 배웠다니까. 그쪽으로 방향 틀 정도로 제대로 뭐가 엮인 것도 아냐.”

하지만 엮였다 하더라도 시도는 안 했을거 같다고, 센죠가하라는 생각한다. 왜? 그냥. 그럴 거 같은 사람이라서. 정신질환과 무속은 대단히 궁합이 좋을 거 같지도 않았으니까. 보여서 정신질환이 심해지는 건지 정신질환이 심해져서 더 잘 보이는 건지는 알 수 없는 일인데 표본이 부족해서 통계도 못 만들 거 같아서 안타깝긴 했다.(문장의 구현적인 측면에서의 ‘안타깝다’이다.)

 

“불편하진 않아요?”

“어릴 땐. 큰 다음엔 별로.”

그리고 이 어릴 때 일을 센죠가하라에게 말해주는 일은 없을 거다. 있다고 하더라도 파편 뿐이다. 서로에 대해 모든 걸 알아야하는 사이는 아니니 그럴 수도 있다.

 

“죽은 건 안 무섭잖아. 산 게 무섭지.”

센죠가하라는 ‘산 걸 죽은 걸로 만드는’ 쪽이라 이해하기 어렵다는 얼굴이었다. 주하나는 야됐다말을말자로 대꾸했다. 이들의 대화는 종종 이렇게 끝났다. 선을 못 넘는 인간과, 그냥 넘는 인간은 가끔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

 

*

 

주하나는 무언가를 하나 좋아할 때면 아주 오래오래 좋아했다. 그렇게 되어먹은 습성이 있다. 아예 관심을 안 가지거나, 십 년 이십 년 품고 살 것처럼 좋아하거나. 그래서 가장 친한 지인도 여덟 살때부터 알고 지낸 오빠 친구 겸 피성년보호자 조카인 선우현이고, 가장 친한 친구도 초중고대(+학원)같이 나온 문예주 이예지였다. 좋아하는 것을 늘리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소수의 것에 공을 들이는 것이 그녀의 방식인데, 사실, 그리 건전한 방식은 아니라는 자각은 있었다. 옆에 없어도 살 수는 있는 인간이라서(농담이 아니라.)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주하나 정도면 양호했다. 주여명은 비유하자면 미드소마를 힐링물이라고 보진 않지만 저런 종류의 공동체를 욕망하는 부류였다.(비교대상으로는 부적절하다 싶지만 주하나 인간관계가 좁아터져서 별수 없다) 병적이라는 자각 있지만 가지고 싶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주여명은 어릴 적부터 좋아하는 것들을 한 상자에 넣고 공존시키고 싶어 했다. 주하나나 선우현은 그런 종류의 욕망을 징그럽다 매도하는 부류였는데 본질적으로 애착 인간의 그런 욕망 부정은 못 해서 호르가의 원년 멤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이제 노인이 되면 절벽에서 떨어질 일만 남았다고 농담했다가 네 정신병력에 그 농담은 자살암시라고 욕먹은 적도 있다.)

주하나가 주여명과 취향 8할 정도가 겹치는 건 이런 까닭이다. 취향이든 사람이든 자기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걔가 좋아하는 걸로 도배가 된 무균실에서 자랐다. 주여명은 어려서부터, 그러니까, 자기가 없으면 지 동생을 신경써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자기를 좋아해서 제 동생도 아껴줄 사람들만 골라서 좋아했다. 그리고 자기를 좋아해서 제 다른 친구들도 존중해줄 사람을 원했다. 대가는 이런 종류의 애정이 오가는 공동체다. 무조건적인 아군. 나쁘진 않았다. 좋은 것도 아니었다. 주하나는 그게 주여명의 보험이라는 걸 알아서였다.

주하나는 안다. 주여명은 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뿌리 깊은 우울이 걔의 천성이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좀먹힌 유년기는 그를 제대로 된 사람으로 만들어내진 못했다. 끝을 생각하면서 미래를 생각하긴 어렵다. 그런 인간이 자기 죽으면 천애고아 되는 여동생 때문에 견딘다는 걸 주하나는 모르지 않았다. 아픈 사람들 특유의 비관과 신랄함을 꾸역꾸역 눌러담으면서, 기형적인 애착관계로 탑을 쌓았다. 그게 그 인간의 닻이었다. 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주하나에게 이상할 정도로 친절했고 주하나가 아는 사람 중 제일 ‘정상’인 선우현은 이를 묵인했는데, 그건 그 관계 자체가 주여명이 주하나를 위해 만들어둔 유품이었음을 증명했다. 죽은 친구의 여동생을 죽은 친구의 분신처럼 여기며 애지중지할 인간들만 고르고 고른 정상은 갸륵했다. 평생 죽은 오빠 그늘 속에서 살더라도 그렇게 살면 외롭거나 곤란한 일은 없을 거 같았다.

그게 왜 가능하냐면, 사람은 기본적으로 취약했던 시기에 자길 품고 간 사람에 대한 애정을 못 버리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단체상담 필요한 청소년 트라우마 집단에서 어디 가서 말하기 어려운 거 말 안 해도 알아주고 걱정해주고 챙겨주고 자발적 감정노동 해주면서도 을이 안 되는 센스 있는 또래 친구는 특별하다. 어찌 보면은 사이비 교주의 적성이 있다고 할 터인데 주여명은 뼛속까지 무신론자라 적당히 재능기부만 했다.

 

일단은 상부상조인게 걔 친구들도 주여명이 자원봉사한 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주하나는 그 오빠언니들의 인생이 어느 수준으로 개같이 꼬여먹었길래 학창 시절 친구한테 저렇게까지 잡혀서 사는지가 종종 의문스럽긴 했으나, 굳이 알고 싶지는 않았고(어차피 대한민국 정신질환 이슈라 하면 7할이 가족 문제고 3할이 친구 문제 아니겠는가 주하나 정신병 9할이 가족 이슈를 원인으로 하는 것처럼.), 솔직히 말하자면, 부담스러웠다. 주하나도 그들을 꽤 좋아했기 때문에 부담스러웠다. 그렇지만 싫은 티를 내기도 어려웠다….

 

“넌 동정에 취약해.”

주하나는 주여명의 문어체적 어휘 사용에 꾸준한 불만을 표현해왔으나, 주여명은 듣는 시늉도 안 했다. 일단 이 불만의 구체적인 원인은 ‘맥락을 고려하지 않음’, ‘존나 갑작스러움’, ‘아무튼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이나 똑바로 하라는 태도가 엄마랑 똑같음(주여명이 질색했다)’, ‘꼴랑 11개월 차이 나면서 가르치려고 구는 꼴이 배알 꼴림’, ‘그냥’ 등등이 있는데, 주여명은 11개월 연상 겸 가장답게 듣는 시늉도 안 했고 주하나도 대단한 불만은 아니었으니 대부분의 경우 흐지부지됐다. 다시 본론.

 

“갑자기 뭔 소리야 시발….” 말 곱게 안 하냐? 이건 남매 대화에 참관인으로 불려나온 올해로 십삼 년지기 선우현의 발언이나. 쥐뿔도 안 먹혔다. 대충 주하나 스물두 살 주여명 스물세 살 때의 일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해야 해?”

“어.”

“말하면 너 화낼 텐데.”

“알면 왜 처말한거지?”

주여명은 선우현과 걔 따라온 선유예를 힐긋인다. 싸움이라도 날 것 같으면 알아서 말려달라는 뜻이다. 주하나는 거 시발 우리가 싸워봤자 내가 외박하고 말지 뭐 그렇게 신경을 쓰냐…라고 생각했으나, 십삼 년 알고 지냈다는 이유로 이런 일에 불려 나온 저쪽 남매가 불쌍하고 고마워서 입 다물고 있기로 했다.

 

“너 불쌍하면 잘해주려고 해.”

이건 그래도 좀 쉽게 말했다. 주하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그래서 너한테도 잘해주잖아.”

약간의 악의가 섞였다. 주여명은 신랄하게 쏘아붙인다.

 

“그래서 하는 말이잖아.”

이건 그러니까, 주여명이 주하나를 대하는 태도 중 상당 부분이 좆같았음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자백이나 마찬가지다. 이거는 이 글의 초반을 약간 참고하는 게 좋은데, 주여명은 주하나의 보호자처럼 굴었다. 실제로도 보호자긴 했다. 십일 개월 차이도 연년생은 연년생이라 그랬다. 하지만 나이 차 얼마 안 나고 내내 아팠던 애가 부모 역할 대신한다고 해봤자 부모의 재현이다. 그리고 그들 부모는 아동행동교정 프로그램의 문제의 원인이 되는 부모였고. 주하나는 솔직히 주여명이랑 있으면서 자존감이나 자존심도 깎여나가는 경험을 꽤 자주 했다. 회복탄력성이 좋은데다 가스라이팅에 굴하지 않는 자기객관화가 끝내줘서 살아남았던 거지 주하나가 조금만 더 물러터졌어도 그들 남매관계도 끝났다. 주여명은 시도하기도 전에 못 할거라고 하다가도, 해보면 잘할 거라면서 해볼 시도도 안 했던 걸 도전해보길 권유했다. 말이 권유지 걔는 주하나가 자기 말이라면 싫어도 시도는 해본다는 거 알았다. 당장 미대 입시도 이런 이유로 시작했었다.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때의 일이었는데, 아마 이때 갑자기 진로 방향을 틀어버려서 2학년때 정신상태가 영 메롱이었던 거 같다.

주하나는 그게…사실…동생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게 해주려는 마음보다는 지 인생 살면서 못 해보겠지만 흥미는 있는 것들 대신 시켜보는 마음이라는 걸 알긴 했다. 근데, 그걸로 뭐라 하기엔, 지 오래 못 살거라 생각해서 저러는 게 안쓰러워서…그걸 또 받아는 줬다. 잘 됐으니 망정이지 안 맞았으면 귀찮아졌을거다.(곤란한 건 아니다. 뭐 재수하든 공시 준비하든 했을테니까. 사는 방법은 다양하다.) 표준 규격의 인생을 살아보라고 하길래 대충 남들같이 살아보려고 하면 꼭 중간에 한 번씩 저랬다. 아픈 인간들 특유의 변덕이었다. 안 들어주면 또 속상해하고. 속상한 일 생기면 또 아프고. 아프면 곤란해지고.

 

주하나는 주여명에게 한없이 물렀다. 걔의 태도 중 주하나가 맨정신으로 견딜 수 있는 부분은 1할도 되지 않는데 아직까지 집 안 나갔다는 점에서 그랬다. 넌 진짜, 마더이슈가 브라더 콤플렉스로 이어진 것 같아. 너네 오빠 모탁이잖아. 주하나는 이혜지의 말에 비명지른 적은 있어도 아니라고 한 적은 없다. 주여명은 죽은 모친을 안 닮아보려고 노력은 했는데 그녀를 쏙 빼닮았기 때문이다. 히스테릭하고 예민한데, 머리가 잘 굴러가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만큼 변덕적인데 또 통제광적이고, 꼴에 나쁜 사람 되기는 싫지만 가만히 있을 만큼 유순하지는 못해서 수동공격에 절여져 있는데… 사랑 하나는 확실하게 해줬다는 점에서 그랬다.

안다. 주하나는, 아무튼, 살면서 단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하면서 자란 적은 없다. 덜 사랑받은 적은 존나 많고 죄책감이나 죄의식이나 책임감이나 대리만족을 사랑이라고 슈가 코팅해서 문제였을 뿐이다. 어린 주하나는 어머니의 ‘그런’ 애정이라는 받는 대신 감정 쓰레기통 노릇을 했었는데, 그런 거치고는 솔직히, 객관적으로 맨정신 잘 유지하면서 자랐다고 생각했다. 죽은 남편 시체 볼 자신 없다고 딸 데려가는 여자 자식으로 자랐으면서 이만하면 선방하지 않았나? 주하나는 그녀를 동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사랑하지는 못했다. 그녀가 죽었을 때도 그런 사유로, 별로 슬프지 않았다.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후련했던 것도 없지 않다. 어차피 사는 거 각박했으니 여기서 더 각박해질 건 없고 속은 덜 썩히겠거니 싶었는데, 그때쯤 주여명이 맛이 가서 문제였던 기억은 있다. 사실 그 전부터 주여명은 제정신이 아니긴 했는데 엄마 죽은 뒤부턴 제정신인 날이 없었다.

원래도 주여명은 주하나를 아끼긴 했다. 처음부터 그랬다는 건 아니고(주하나는 어린 주여명의 정신머리를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주하나 아플 때 부모님이 자기 신경쓰느라 애 방치했다는거 알고 충격먹은 뒤부터 그랬다. 엄마 죽고 난 뒤부터는 좀 더 징그럽게 굴었다. 걔는 자기가 부모님한테 사랑받았던 방식 그대로…굴었는데, 그게 참 사람 망치기 좋았다. 주하나의 정신병이 아주 순조롭게 악화된 원인이기도 하다. 애틋해하고 동정하고 귀여워하고 싸고돌고 자립심을 기특해하면서 짓누르려고 들고 특별해했다가 지친 티 내고 오냐오냐했다가 현실감각 없다고 존나 무시하고 지 말 잘 들어처먹고 살아줘도 중간에 지랄하고 이 씨발 새끼가…. 주하나는 옆에서 선유예가 듣고 있어서 참았다. 선우현은 고려 안 했다.(어쨌든 그 인간은 연상이고 주하나는 연상은 배려 안 했다.)

 

“…지금 내가 어떻게 반응하면 되는 거지?”

“화낼래?”

“집 나가서 일주일쯤 안 들어와도 돼?”

“나한테 연락하기 어려우면 우현이한테라도 어디 있는지 말해둬. 걱정되잖아.” 평소라면 이쯤에서 선우현이 “나 빼고 대화해.”라고 참견했을 거다. 오늘은 조용하다. 이건 주여명이 정말 선을 넘었다는 뜻이다. 주하나는 선우현의 표정을 확인하려다가 만다. 남들 앞에서 이러는 거 정말 피곤했다.

 

“너는.”

주하나는 말을 고른다.

 

“지금 나한테 사과를 해야 해.”

주여명은 웃는다. 웃는 낯짝 하나만큼은 봐줄 만했다.

 

“듣는다고 기분은 나아져?”

“아니.”

“내가 없는 말 지어냈어?”

“나는 이게 다른 사람 있어서 순화한 말이라는게 믿기질 않는데.”

주여명은 어깨를 으쓱인다. 주하나는 이 와중에서 아 저 새끼 요즘 또 잘 못 먹더니 살 개빠졌네…같은 생각부터 했다가 내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우선순위가 뒤틀렸다. 환자랑 같이 산다는 건 이런 거다. 우선순위가 걔의 육신이나 정신적 건강에 맞춰져서 그 외의 걸 죄다 후순위로 밀어놓게 되어버린다. 주하나는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을 대상으로는 용서하면 안 되니까 용서하고 싶어도 안 할 수 있었는데, 쟤 대상으로는 그게 안 됐다. 제대로 화내고 싸우고 화해하고, 가 정상일텐데 화내는 것부터가 잘 안 됐다. 근데 그러면 너무 엄마 같잖아. 주하나는 다소 메스꺼워진다. 주여명도 그걸 알 거란 점이 제일 싫었다.

 

“넌 불쌍한 거랑 사랑하는 거랑 구분을 못 해.”

“…그 논리라면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해하는 건 너야.”

“몰랐어?”

“지금 우리 가족 관계를 가족 상담 받아야 하는 상태로 만들고 있다는 자각 있어?”

주여명이 웃음소리를 낸다. 말끔하고 경쾌한 소리였다.

 

“우리 원래부터 받고 있었잖아.”

맞는 말이다. 주여명은 처맞는 말 사이에 맞는 말 끼워넣는 데에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주하나는 걔만큼의 재주는 없었다. 그래서 주여명이랑 대화하면 곧잘 말문이 막혔다. 하나 언니 불쌍해…. 주하나는 그냥 선유예나 끌어안고 위로받고 싶었다. 유예야 나 지금 내 오빠 죽여버리고 싶어…. 주하나는 선유예는 당연히 동생 연맹 답게 제 편을 들 거라 믿었고 대화 내용을 고려한다면 선우현도 제 편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게 동정이라고.”

“상당 부분.”

“문제 있어?” 주여명은 말끝을 늘어뜨린다.

“없을까?”

“똑바로 말해라.”

“너 사람보는 눈도 어중간한데 동정이랑 사랑도 구분 못 해서 이상한 사람한테 코 꿰일까봐 걱정돼.”

“누가 걱정한다는 말을 그따위로 하는데.”

“넌 나한테 뭘 기대하는 거야?”

이건 주여명이 죽기 삼 년쯤 전의 대화다. 학창시절의 주여명은 그래도 사람답게 말하고 생각하려는 시늉 정도는 했는데 이맘때쯤의 그는 멀쩡한 말을 하는 날이 더 드물었다. 순조롭게 모든게 나빠지기만 하는 시기였다. 육신이 개선의 가능성을 잃었다는 건 그 질량의 손실만 봐도 할 수 있었다. 옷 위로 뼈의 윤곽을 더듬을 수 있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먹는 양이 줄었고, 멀쩡히 소화시킬 수 있는 게 별로 없었고, 잔병이 잦아졌으며,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필연적으로 성질머리가 예민해졌다. 아픈 사람은 원래 다 그렇다.

그래서 환자가 있는 집은 흔히 망가진다. 그들 집구석은 이제와서 더 망가질 구석도 없었을 뿐이다. 주하나는 그게, 사실, 힘들었다. 예민한 사람이랑 붙어있는 게 힘들었던 건지, 걔가 슬슬 다 정리할 준비를 하는 게 눈에 보여서였는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불안해하는 게 보여서였는지, 전부 다인지, 는 모르겠다. 죽는데 너무 오래 걸리면 이래서 안 좋다. 깔끔하게 생각하고 털어버릴 수 없는 찌꺼기들이 생긴다.

 

“우현 오빠, 듣기만 할 거야?”

“나 너네 남매 싸움에 진짜 끼고 싶지 않은데.”

“안 껴?”

“안 껴.”

선우현이 항복 선언을 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어찌됐든 주하나가 집 안 나가고 본가에서 버틴 건(통학이 오래 걸리지 않은 것도 있지만)항상 중재해주는 제3자가 있어서였다. 그가 중재를 포기하는 건 보통 둘 중 하나다. 이미 같은 얘기를 둘이서 했는데 주여명이 고집을 안 꺾었다. 또는 진짜 끼기가 싫다. 이번에는 둘 다 같았다. 주여명도 이맘때쯤엔 선우현한테 꽤 못되게 굴었다. 도대체 왜 저러는지 모를 정도로, 예민하고 공격적이었다.

주하나는 이 시절의 그를 그가 죽은 뒤에야 이해했다. 아무튼 걔는 어린 나이에 성공한 작가였고, 쓰는 건 고독한 일이며 자신의 생각이나 사고, 세계, 가치관을 정제하는 과정은 스스로를 더듬는 일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의 밑바닥을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아무것도 쓸 수 없다는 게 주여명의 예술관이었다. 주하나는 형제가 남긴 텍스트 속에서 무형을 더듬어 유형을 이해하면서 자랐다. 상업적인 치장과 가감이 있긴 했지만, 걔가 쓰는 걸 업으로 삼은 건 적어도 걔의 형제였던 입장에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눈앞에 있는 실재보다 글 속의 그가 더…솔직해서였다. 그건 주하나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둘 다 결국엔 내면에 대한 이야기밖에 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온 것과 마찬가지로. 남조차도 자기 자신의 프레임을 거친 형태로만 묘사한다는 지적을 받은 인간의 유작을 통해서나 겨우 이해할 수 있었던 죽기 전의 삼 년은, 그가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았을 땐 평범한 아수라장이었다. 그가 글을 통해서 말한다:‘느린 죽음은 아무것도 정리할 수 없도록 만든다. 애정이 동정으로 변해가는 걸 호흡하는 것처럼 느낀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화를 내지 않는다. 시체에게 화를 내지 않듯. 그렇다면 그게 이미 죽어있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시점의 주하나는 그 텍스트를 읽은 적이 없다. 그녀의 앞에는 저딴 말을 하면서도 방긋방긋 웃고 있는 다 죽어가는 형제밖에 없다. 상냥한 목소리. 적의나 악의를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워서 불쾌했다.

 

“불쌍하지?”

“뭐.”

“나.”

“너?”

“불쌍해하잖아.”

웃는 얼굴이 나긋하니 보기 좋았다. 눈꼬리를 휘어뜨리고, 창백한 얼굴은 열이 올라 뺨만 발갛게 물들어있었다. 희고 마른 손가락이 어깨에 닿는다. 그 인간이 속삭였다.

 

“네가 누굴 불쌍해할 여유가 있다고 그래….”

그리고 이 날에 대한 선우현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예전에 주여명이 그랬을 때 솔직히 미친 새끼라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주하나의 평은 다음과 같다: “우리 오빠 미친 거 하루이틀 일인가.”

 

죽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원래 이런 얘기는 장례식에서 소주라도 댓 병 들이키고 해야하는데 주여명은 장례식도 하지 말라고 하고 죽어서 더 그랬다. 죽은 인간 말고 산 사람들 마음 정리하라고 하는 거였는데 왜 그리 고집을 부려서 돌아가게 만드나 싶다.

 

“야.”

“왜.”

“걔 왔냐?”

선우현은 주하나가 험한 걸 본다는 걸 안다. 지금도 주하나는 시야의 구석에 기어다니는 형상을 본다. 일단 절반 정도는 남아있으니 양호한 꼴이다. 한동안 고기 먹긴 글렀군. 인식했다는 걸 들키기 전에 시선을 옮긴다.

 

“안 오던데.”

“개자식이네.”

“걔 동생 앞에서 욕하게?”

“너도 할 거잖아.”

“걔가 나한테 보통 씹새끼였어야지….”

주하나는 객관적으로 걔가 죽기 전후로 상태가 좀 안 좋았다. 서로 앙금 털 대화할 기회는 있었는데 하필이면 상태 괜찮아져서 집 좀 들렀던 동안에 걔가 죽어버린 게 생각한 것보다 타격이 컸다. 우리집 사람들은 왜 죽을 때 혼자 죽는 건지 모르겠어. 외롭게 살다가 외롭게 죽는 게 인생이라지만 이렇게까지 꼬여야하나 싶었다. 병원에서 주는 약이 늘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개판이었다. 그렇다고 못 지냈다는 건 아니다. 주하나는 삼시세끼까진 몰라도 하루 두 끼는 챙겨먹고 주에 세 번 필라테스 다니고 할 일 다 하면서 불면증에 시달리는 정도의 인생을 살고 있었으니 현대인치고는 그래도 잘 지내고 있었다. 그냥 소모되는 에너지가 컸다.

 

“너 요즘 나한테 말 안 하는 거 있냐.”

“오빠 우리가 거의 친남매처럼 지내긴 했는데 이거 좀 부담스럽다.”

“넌 십육 년을 알고 지냈는데도 그런 말이 나와?”

걱정의 자격에 대한 얘기다. 주하나는 오히려 여기서 십육 년을 알고 지냈지만 나는 오빠 크게 다치면 중환자실 제일 먼저 도착해도 못 들어간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결국엔 남이었다. 서로에 대한 권리도 의무도 주장할 수 없다는 건 허망한 일이다. 하지만 이건 그를 상처줄 게 뻔했다. 주하나는 그런 걸 원한 건 아니라 침묵한다.

 

“난 네 사람 보는 눈 안 믿어.”

“갑자기?”

“니가 좋아하는 것마다 멀쩡한 게 없잖아. 그리고 너 요즘 상태 안 좋아. 병원 안 맞으면 꼭 바꾸고.”

“누가 들으면 내가 댁은 싫어하는 줄 알겠다.”

“너랑 나는 그런 거 따질 연차가 아니잖아.”

“이번엔 누구야. 혜지? 예주?”

“걔네가 말 안 하면 내가 모를 거 같냐?”

한숨 소리. 주하나는 오빠 한숨 자주 쉬면 일찍 늙는데 댁 인상 더러워서 일찍 늙으면 큰일나…라고 말하면 싸움이 날지를 고민했다. 삼천포로 사고가 계속 엇도는 걸 보니 상태가 안 좋긴 했다. 집중도 안 되고 몰입도 안 됐다. 일은 잘 됐는데, 주하나는 원래도 이런 애기를 해서 큰 문제는 없었나보다 싶다. 포커스는 자기 자신에게, 타자는 ‘나’의 프레임을 통해서만. 일종의 자화상이다. 좀 쉴 때라는 생각이 잠깐 스쳐갔다.

 

“그래서 또 뭔 이상한 앤데.”

“말 안 해.”

“주하나.”

“난 걔 좋아하고 걔도 나 좋아해.”

“그걸로 끝이 아닌 거 알잖아.”

그건 다소 의문스러운 말이었다.

 

“왜?” 잠깐 선우현의 표정이 굳었다. 주하나는 무시했다. 그들은 서로의 어떤 징조를 무시하는 게 용서되는 사이였다. 몇 년을 봤는데 그럼.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남과 같아진다. 그 경계가 아슬아슬했다.

 

“걔 나 이상한 거 본다고 했을 때도 별말 안 했어.”

“병원 가라고 했겠지.”

“그러긴 했지.”

일단 걱정이라는 건 알았다. 주하나는 꾸준히 남의 호의에는 약했다. 약한 것과 부채감을 느끼는 게 다르다면 전자인지 후자인지 모른다는 게 문제였으나 21세기 현대사회 살아가면서 남한테 감사할 줄 아는 인간이라는 것만으로도 그럭저럭 사람 구실은 한다 칠 수 있다. 21세기는 문명화된 야만의 시대니까. 슈가코팅. 날것 그대로인 게 설탕으로 덧씌워져서 돌아다니는 건 약간 역했다. 슬슬 단게 몸에 안 받는 나이가 되긴 했다.

 

“괜찮아, 오빠. 걔가 더 이상해.” 이건 별 위로가 안 되는 말이었다. 선우현은 착잡하단 듯 대꾸한다.

“니보다 이상하면 큰일이지….”

“그러니까…. 음.” 주하나는 웃음소리를 낸다.

“걔가 날 대단히 좋아한다는 생각은 안 하거든.”

“어.”

“근데 나만큼 걜 좋아해줄 사람은 없는 거 같아.”

그리고 이건 주하나가 센죠가하라를 마음에 들어하는 이유 중 가장 윗순번에 들어간다. 몇 번 말은 했다. 나 말고 누가 너를 이렇게까지 신경써주는데? 그게 가장 좋아하는 지점이었다는 건 유감이다. 누구에게? 당연히 센죠가하라한테.

 

“그게 마음에 들어.”

선우현은 다음 상담때 그 얘기도 꼭 하라고 말했다가 정강이를 걷어차였다.

 

*

이상한 게 보인지는 오래됐지만 그걸 악용해본 적은 없다.

말은 통했지만 제대로 된 대화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어정쩡한 것들이야 한풀 듯 얘기 들어주면 떠났지, 제대로 된 것들은 주하나도 피해다녔다. 방법, 을 생각해보면 더 나은 결과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주하나에게 그럴 정도의 의욕은 없었다. 주하나의 개입 범위는 언제나 ‘주여명이나 걔 주변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 였다. 교실 귀퉁이의 먼지를 치울 수는 있지만, 경찰이 나서는 시위에는 참여하지 못하는 정도다. 주하나는 그게 아주 불만스럽지는 않았다. 가끔 비슷하게 보이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 대부분이 주하나같이 살았다. 보인다는게 뭐 그리 특별하다고. 요즘 시대엔 제대로 된 무당들도 살기 힘든데 어정쩡하게 보이다 마는 그들같은 사람은 이걸 전공 삼아 일하기도 힘들다.(흥신소 한다는 사람은 정보수집할 때 쓴다 듣긴 했다.) 마이너리티의 소재, 이걸로는 괜찮았다. 마이너리티와 예술성은 그럭저럭 괜찮은 조합이다. 무의식중에 그로테스크해지는 건 대단히 마음에 들진 않았으나, 그걸 남들 보기에 괜찮게 만드는 게 센스다. 세상을 보는 프레임이 남들과 다르다는 건 창작자에게는 행운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편했다.

 

옛날부터 이상한 게 보였지만 그걸 무서워한 적은 없다. 주하나는 그, 살아있다고 말하긴 어려운 것들을 무서워하거나 꺼려해야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징그러운가? 이건 맞다. 그렇지만 벌레가 징그러운 것과 무서운 건 다르지 않나. 치우거나 피하면 되는 걸 두고 무섭다고 하진 않는다. 정말 무서운 건, 존재를 알고 위협이 되는데도 피할 수 없는 것들이다.

센죠가하라는 그런 측면에서 대단히 위협적이진 않았다. 일단, 피하려고 하면 피할 수 있는 것으로 분류해놔서 그랬다. 그 애의 충동성이나 폭력성이나 미숙한 사고방식 같은 걸 안전하다고 느낀 적은 없지만 여차할 때의 주도권이 자기한테 있는 이상, 주하나는 그 애를 위험하다고 분류하지 않는다. 같이 지내다보면 한 번은 인생이 꼬이겠지 싶지만, 그걸 고려하는 사람들은 좀 더 메인스트림의 인간을 선호하게 되어있고 주하나는 그런 사람들이랑은 기질적으로 안 맞는다. 결핍없는 사람들은 사랑스럽다. 사랑스럽지만 사랑할 수 없다. 주하나는 그보단 좀 더 글러먹은 것들이 좋았다. 너 어릴 적부터 이상한 거 너무 자주 봐서 머리가 이상해진 거 아냐? 자주 듣긴 했는데 보이는 건 취향과 별 관련 없다. 역함의 역치가 높아지는 데에나 기여했지. 취향, 을 만드는 건 언제나 사람이다. 하지만 머리가 좀 이상해진 거 아니냐는 거엔 동의했다. 부정할 만큼 부끄럽지도 않았다.

 

주여명이 죽은 뒤에도 주하나는 이사를 가진 않았다. 방은 세 개. 거실이 작고 방이 큰 구조. 주하나는 주여명이 죽은 뒤 제 것이 아닌 짐은 전부 버렸다. 주여명이 버리지 못한 부모님의 침대나, 상해버렸을 게 뻔한 화장품들(사실상 20년쯤 되긴 했다.), 옷, 이불, 사진, 악세사리, 기타등등의 사소한 유품들. 오빠의 물건들은 그래도 제멋대로 처리하는 게 좀 그렇다 싶어 걔의 친구들한테 가져갈 거 있으면 가져가라고 했는데, 뭐 대단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사람까지 불러서 정리하고 나니 빈 방만 두 개가 생겨서 이상하긴 했다. 뭘 채워넣긴 해야했는데 귀찮았다. 뭘 넣으면 그때부턴 청소하는 것도 좀 더 번거로워지니까. 동물같은 걸 키우기엔 현 정신상태가 엉망이었고, 사람을 들이기엔, 재워주는 것 이상은 좀 그랬다.

 

어릴 적부터 말이다. 꼭 새벽에 누가 문을 두드리곤 했다. 가끔은 문을 두드렸고, 어느 때는 키패드에서 경보음이 울릴 때까지 눌러서, 그들 남매는 여덟 자리 비밀번호를 눌러야 하는 키패드로 바꾸고 두 달에 한 번씩 비밀번호를 바꿔야만 했다. 누가 그럴 때마다 잠 못 이루던 날들이 있었다. 그게…주여명 고등학교 올라간 뒤부터는 멈췄었다. 걔는 항상 아파서 그랬지 허우대만 보면 그럴듯했으니까. 키 크고, 옷 입으면 말라보이긴 해도 빈약하게 느껴지진 않는 남자애. 주하나는 한참 자라서도 평균보다 약간 더 크고, 빼빼 마른데다 나이보다 까마득하게 어려보이는 여자였기 때문에, 가끔은 걔의 그런 점이 부러웠다. 주하나가 동경하는 건 큰 키와, 뼈대가 크고 굵은 육신과, 쉽게 부피가 늘어나는 근육이나, 소위 말하는 남성성이었는데, 아무튼 그런 걸 가지고 있으면 좀 더 안전하게 살 수 있을 거 같았다.(마초이즘 동경과는 방향이 다르다.) 안 된다는 건 알아서 때려쳤다.

 

그리고 지금 키패드를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둘 다 어느 정도 자란 뒤에는 다시 네자릿수의 비밀번호를 누르면 되는 걸로 바꿨더니, 네 번 눌리고 틀렸다는 소리가 들리고, 반복된다. 주하나는 슬슬 염증에 시달린다. 그녀의 형제는 너무 유명인사라서 걔가 죽었다는 걸 같은 단지 사람 중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마냥 싫어할 일은 아니다. 부모 없는 어린애들 둘이서 산다고 같은 아파트 사는 사람들이 참 많이 도와줬다. 그냥, 그래서, 걔가 죽었다는 얘기 들리자마자 이러는 걸 보면 그 사람들 중 누군가가 이랬구나, 싶어져서 마음이 안 좋았을 뿐이다.

 

주하나는 어려서부터 이상한 걸 봤다. 남들 안 보는 것, 남들이 징그러워 하는 것, 봐서 좋을 것 하나 없는 것. 죽은 사람인지 무언가의 찌꺼기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은 주하나의 인생을 약간 더 곤란하게 만들긴 했지만 대단한 장애물은 아니었다. 그건 존재했지만, 그냥 존재하기만 했다. 주하나를 힘들게 만드는 건 겨우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다섯 번 이상을 틀렸을 때의 소리. 주하나는 혀를 차는 소리를 듣는다. 공구 상자는 현관 앞에 있고 주하나는 아주 객관적으로 힘이 아주 세며 현관에는 cctv가 없다. 지금 당장 문을 연다면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잠들 수 없는 밤마다 생각했던 것들이 있다. 저주의 본질은 내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이다. 주하나는 이상한 걸 보고 그것과 소통할 수도 있었으며 정말, 마음만 먹으면…증거 따위는 없이, 아무도 의심할 수 없이, 누군가를 엉망으로 만들 수 있다. 어렸을 적엔 그러고 싶었다.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주여명이 말했다. 넌 할 수 없어. 넌 못 해. 애정을 담은 말은 쉽게 저주가 된다. 주하나는 할 수 없다. 그게 옳지 않다는 걸 알아서가 아니었다. 걔가 할 수 없다고 말해서였다. 그래서, 다행히도, 사고 안 치고 멀쩡한 인간으로 자랐다는 자각은 있다는 게, 주하나를 가끔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 애가 오늘 자고 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주하나는 센죠가하라 앞에서는 좀 더 멀쩡한 사람 흉내를 내고 싶어지곤 했다. 그 애가 치워드릴까요, 하고 말했을 때 즉각적인 부정을 할 자신이 없었고, 제 표정이 엉망이었으리란 자각이 있어 그 애한테 관찰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 있으면 그런 일이 언젠가는 생길지도 모르니, 조만간 이사를 가는 게 좋을 거 같았다. 마침 짐도 별로 없다. 옮길 걸 좀 더 줄일 수도 있을 거다. 그런 뒤엔 이곳엔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말아야지. 평생을 나고자란 곳에 대한 감상이라기엔 신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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