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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au

센죠가하라와 주하나 중 어느 쪽이 교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느냐하면 당연하게도 센죠가하라였다. 근사한 겉껍데기나 괜찮은 집안이나 ‘입만 다물고 있으면’ 괜찮은 분위기나 가끔식 학교에 찾아오는 어른들의 존재같은 건 그 애를 꽤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주곤 했기 때문이다. 그것의 실상이 어린애들 사지로 몰아처넣는 생각없는 어른들의 만행이든 말든, 센죠가하라는 그런 거를 신경쓰는 인간이 아니었고 굳이 알리려고 들지도 않았으니, 남들 보기에 그럭저럭 괜찮은 꼴이었나보다 싶기만 했다. 그에 반해 주하나는, 그냥 평가의 대상 자체가 아니었다. 극소수를 제외한 사람에게는 벽을 친다는 인상이 강했고, 친절하지만 다정하지 않았으며, 성실하지만 매사를 성가셔하는 티를 냈다. 아마 한 학년 위에 재학 중인 형제가 달에 두 번은 병원 신세를 지는 탓에 예민해진 모양이라고 정상참작을 해주는 경향이 있긴 했지만, 하나 있는 보호자라는 게 오늘내일 하는 연년생 형제에, 겉껍데기는 근사하지만 성질머리는 고분고분한 것과는 거리가 먼 어린 여자애에 대한 평가는…대체로 긍정적이진 못하다.

“알 반가.”

주하나는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센죠가하라는 대단히 영특하거나 눈치가 빠르지는 않았으나-오히려 사회적 적응도는 평균치 미달이었다-저를 대상으로 한 평가가 어떤 것인지를 모를 정도로 둔하지는 않았다. 관심, 호의, 동경.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품을 수 있는 감정들을 그 애는 썩 좋아하지 않았다. 주하나에 대한 평가를 굳이 전달한 건 그에 대한 반작용이다.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 무관한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썩 제대로 된 건 아닐거라고 생각했다.(“비약이야.” 이건 이 사고의 흐름에 대한 설명을 들은 주하나의 평가다.) 들은 당사자의 반응이 냉랭하다 못해 싱거운 건 예상 밖의 즐거운 일이다.

“신경 안 쓰여요?”

“그거 얘기한 거 누군데?”

모른다. 센죠가하라도 그닥 남에게 관심이 있는 인간은 아니다. 같은 반 사람 이름 하나하나 기억하고 다닐 정도의 섬세함은 없다. 말 자주 거는 사람이나 특이한 사람 이름 정도는 기억하지만, 대단한 관심이 없는 사람은 기억 못 한다. 그런 맥락에서 벗어나, 그는 약간의 의문을 섞어 묻는다.

“들으면 알아요?” 주하나는 꽤나 당당하게 대꾸한다.

“모르는데?” 센죠가하라는 헛웃음을 뱉는다.

“그러면 왜 물어본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내 욕 한 걸 왜 신경써야 하냐고.”

욕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긍정적이지 않은 평가’라고 했다. “그래서 그거 둘이 뭐가 다른데?” 주하나가 묻는다. 센죠가하라는 그런 원색적인 비난은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주하나에겐 그리 괜찮은-설명이 아니었던 것 같다. 영 시들시들해져서 책상에 엎드리기나 한다.

“남 말 신경을 쓰니?”

“안 쓰세요?” 주하나는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너 안 쓰잖아.” 말이 모호하다 싶었는지 한 번 정정한다.

“싫어하지 않아?”

센죠가하라는 눈을 깜빡인다. 조용히 고개를 기울인다. 입가를 매만지는 손. 표정엔 큰 변화가 없다.

“그렇게 보여요?”

“짜증나보이긴 하던데.”

음. 고민하는 듯한 소리. 주하나는 그 소리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소리를 내뱉는다.

“존나 배불러 터졌다고 생각했어.”

“욕은 당신이 저한테 하는 거 같은데요.” 주하나는 코웃음친다.

“말 한 번 안 섞어봤으면서 냅다 남 얘기 전해준 건 너 아니냐.” 센죠가하라는 질문한다.

“그러면 안 되는 건가요?”

“진심으로 물어보는 거야?” 이건 주하나가 ‘질문’과 ‘의문’을 구분해낼 만큼의 의지가 없었다는 뜻이다. 능력 부족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아는 게 나은 거 아닌가요?”

“알기 싫은데.”

주하나는 시계를 확인한다. 센죠가하라는 이 사람이 굳이-이런 무의미하고 쓸모도 없고 가치도 없고 친분 형성에도 도움이 안 되는 대화에 어울려주는 건, 지금 당장 집에 못 가기 때문이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럴 이유가 있나? 윗학년에 행사가 있던가? 이 나이 먹고 오빠랑 같이 하교하는 것도 좀 깬다 싶은데, 각별하다 못해 징그럽다는 얘기는 들은 거 같기도 해서 맞는 추측 같기도 했다. 물어볼 정도의 관심은 없었다. 중요한 건 ‘왜’ 대화를 끊지 않느냐가 아니다. 대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난 걔네 이름도 몰라.”

“이름 들으면 알지도 몰라요.”

“들어도 모를걸.”

“어떻게 확신하세요?”

“왜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을 신경써야해?”

폐쇄성이다. 본인한테 중요한 극소수의 사람 외에는 신경 쓸 여유가 없고, 신경 쓸 여유를 만들 생각도 없다는 걸 감추려고 들지를 않는다. 내가-왜-그래야 하는데? 당당하다 못해 뻔뻔스럽다. 동경도 시기도 선망도 호의도 가지지 않는 인간이다. 사람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에게 대단한 관심도 없는 사람이다. 센죠가하라는 ‘질문’한다.

“제 이름은 아세요?”

“그건 알아.”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신경 안 쓴다면서요.” 주하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인다.

“나 얼굴 봐서 그래.”

“농담이에요?”

“절반 정도.” 보긴 본다는 뜻이다.

“남은 절반은요?” 이어지는 답은 아까의 농담보다는 무성의하게 흘러나온다.(정말 얼굴은 마음에 들었나보다, 라고 센죠가하라는 생각한다.)

“너무 자주 들려서 외웠어.”

“저한테.”

복도에 발소리가 들린다. 느리고 규칙적. 주하나는 휴대폰을 확인한 뒤 가방을 챙기기 시작한다.

“아무 관심도 없네요.”

그러면 그 사람은 정말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눈이나 끔뻑이고 마는 거다. 진심어린 의문을 담아서, 이제야 주하나는 센죠가하라에게 질문한다.

“가져야 해?”

센죠가하라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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