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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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 여름 방학을 맞이한 모건 미들턴은, 정말 드물게도, 힘 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방 한켠에는 며칠 전 도착한 O.W.L. 시험 성석 통지표가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언제나 자신이 모범생이며 뛰어난 학생이라고 자신만만하게 굴던 그는 잔인한 현실을 보여주는 성적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모건의 성적이 딱히 좋지 않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매번 낙제점을 받아 오더라도 표준 마법사 시험을 보게 되면 숨겨진 자신의 실력이 드러나 성적표를 전부 O로 채울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당연하게도 가능할 리가 없는 일이었다!
세 명의 미들턴 가족은 모건이 사춘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마법사가 되느니 마느니를 가지고 오래 다투었다. O.W.L 시험 성적 통지표가 도착한 순간 퀴디치 스타를 외치던 모건이 패배하게 되었음은 명확한 일이었다. 길고 긴 다툼의 끝에서 미들턴 부부가 제안한 것은 ‘마법사 사회에서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다는 증거를 제시할 것” 이었고, 모건은 O.W.L 시험에서 그것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했다. 따라서, 낙제점이 일곱 개에 그 중 넷이 T를 차지하는 성적표는 명백한 실패의 증거였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핑계를 대기에도 그나마 살아남은 세 개의 과목 -마법,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신비한 동물 돌보기-도 턱걸이에 그쳤으므로,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것이 현재 빨간 머리의 청소년이 힘없이 침대에 늘어져 있는 이유였다. 더욱이 이번 여름에는 여행을 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를 우울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부모님과 삼 년 내내 다투었으면서도 방학을 맞이하면 세계 곳곳으로 여행을 가는 것이 미들턴 가족의 전통이었다면, 올해는 달랐다. 어머니의 동료가 일주일 동안 미들턴 가에서 지내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부모님의 귀중한 휴가를 써 가며 맞이해야 하는 것인지, 모건은 마냥 불만스럽기만 했다. 아래층에서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그는 베개 아래에 머리를 파묻었다. 아무도 맞이하고 싶지 않았건만, 곧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모건, 마야가 곧 도착할 거란다. 이제 일어나서 준비하렴!”
비벌리 미들턴의 목소리는 다소 화가 난 듯 높아져 있었다. 의도적으로 그것을 무시하던 모건은 비벌리의 손에 이끌려 침대 밖으로 끌려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어지는 잔소리를 뒤로 하고 슬리퍼에 발을 찔러 쑤셔넣은 채 그는 누군지 모를 마야 앤더슨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마야 앤더슨이 도대체 누구길래! 어머니의 오랜 동료라는 것 외에는 아는 바가 없었기에 그 이름을 들어도 별다른 감흥이 생기질 않았다. 동료라면 군인이겠지. 그 사람도 파일럿일까? 얼굴에 차가운 물을 끼얹자 한 때 동경하던 직업에 대한 설레임이 잠시 들었다가 흩어졌다. 지금은 영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퀴디치 선수가 온다고 해도 그다지 기분이 좋아질 것 같지 않았다. (물론 괜한 심술에 가까운 생각이었다.) 모건은 수건으로 얼굴을 대충 닦아내고 화장실을 나섰다.
결론적으로 마야 앤더슨은, 정말, 정말로 “최고”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가 미들턴 가에 방문해서 함께한 첫 식사였을 뿐인데도, 모건은 쏟아지는 그의 모험담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많은 모험과 전투, 목숨을 건 임무와 비행… 그것들을 말하는 마야 앤더슨의 눈은 용기와 열정으로 빛났으며, 흉터 가득한 얼굴은 그 모든 이야기들을 증명해주는 듯 했다. 애초에 제 어머니가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 부터가 그의 진실됨을 보장하는 것 아니겠는가? 모건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치 빗자루를 처음 탔던 날처럼.
퀴디치 스타가 되기 위해서 공부를 잘 할 필요도, 마법을 뛰어나게 잘 할 필요는 없었다. 모건 미들턴의 퀴디치 실력 또한 또래에 비해 뒤쳐지는 편이 아니었기에 부모님의 반대를 극복한다면 퀴디치 선수가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퀴디치 선수가 된다 한들 그가 가게 될 곳은 퀴디치 경기장이 전부가 아니겠는가? 빗자루를 탔을 때 느껴지는 바람이 좋은 까닭은, 그것이 자신을 새로운 장소로 데려가 줄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모건은 새로운 곳을 밟을 때의 감각이 좋았다, 무엇이 일어날 지 알 수 없는 모험이 좋았다, 그 결과 자신이 이루게 될 알 수 없는 결과가 좋았다. 따라서 모건 미들턴은 마야 앤더슨처럼…
일주일은 짧은 시간이었다. 마야 앤더슨이 떠나는 날, 모건은 마야의 방 앞에 서 문을 두드렸다. 오래 걸리지 않아 마야 앤더슨이 문을 열고 나왔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그에게 오건은 이렇게 물었다.
“앤더슨 씨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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