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트리거 소재 : 주변인의 사고, 부상
-속보입니다. 런던에서 헬싱키로 향하던 영국항공 A320편 항공기가 기상이변현상으로 인해 추락하는 사고가…
-승객 76명과 승무원 6명이 크게 다쳐 인근 병원으로 이송 중으로…
-근래 잇따른 기상현상으로 인한 항공기 사고가 시민들의 불안을 초래하고 있어…
병원의 공기는 익숙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머글 병원의 소독약 냄새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떠올리며 모건은 피식 웃었다. 호그와트 졸업 직후 자세 교정을 받고 싶다며 얼떨떨한 부모님을 졸라 정형외과에 갔던 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런 상황에도 웃음이 나오다니, 충격이 덜한 것인지 현실감이 덜한 것인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마른세수를 한 그는 주차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서 어머니께 앤더슨 씨의 안부를 전하고, 비행을 마친 동기에게 문제는 없었는지 묻고… 그리곤 좀 자야겠어. 머리가 멍했다. 다음 비행이 또다른 기상현상으로 취소된 덕분에 여유가 생긴 참이었다.
마야 앤더슨은 강한 사람이었다. 세계를 휩쓸고 다니는 모험가이자 군인이었던 그가 돌연 제대를 선언하고 민간 항공사에 입사하겠다던 그는 회사에서 가장 우수한 기장으로 손꼽히기에 이르렀다. 모건이 입사했을 때 즈음부터 그랬더랬다. 애초에 영국항공에 들어가겠다고 마음먹은 것 또한 그 때문이었다. 올해는 꼭 앤더슨 씨의 옆자리에 타겠다고 큰 소리를 쳤었는데. 이제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마야 앤더슨은 꼭 다른 사람 같았다. 수척해진 얼굴로 모건을 맞이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그는 더 이상 걸을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얼굴이 너무도 평온해 모건은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앤더슨 씨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절규했더라면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을까?
동료의 사고로 병원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번 해에만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만큼의 사고가 있었고, 그 때마다 앤더슨 씨는 모건을 데리고 병실에, 때로는 장례식장에 방문하고는 했다. 그는 이러다간 항공사가 금방 망하기 전에 파일럿이 전부 그만두고 말 것이라는 농담섞인 말을 덧붙이는 것 또한 잊지 않았고, 어디서 본 것인지 건강해지라는 의미로 품 한 가득 향이 강한 꽃다발을 가지고 온 모건의 등을 세게 내리치기도 했었다. 익숙해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모건은 울지 않게 되었고, 웃음을 가장하는 법을 배웠고, 무던해지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정신을 유지하고 있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순간 뒤에서 경적 소리가 울렸다. 신호가 바뀌었는데 출발하지 않은 그에게 뒷 차가 성질을 부리고 있었다. 모건은 성급하게 엑셀을 밟았다. 아버지께 물려받은 고물 자동차가 거친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아감. 그것이 어려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날 수 있는 하늘을 향해서, 더 넓은 세계를 향해서, 마야 앤더슨이 있는 곳을 향해서 모건 미들턴은 항상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고작 이런 것이 될 수 밖에 없었는가? 한 달을 미처 채우지 못하고 일어나는 항공 사고. 동료들의 부상과 죽음. 직장을 관두는 이들, 불안한 사회 속에서 추락하는 회사의 주가,(물론 모건은 그것까지는 신경쓰지 못했다.) 나아가던 길이 순탄하기를 기대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그는 헤쳐나가는 과정에 기대를 거는 편이었기에. 하지만 나아간 끝에 마주한 것이 절벽이라면.
절벽을 뛰어넘어 도약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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