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단과 난간 - 序章
세 남매의 평온한 아침
"형!"
"혀엉."
"혀어엉..."
"오라부니이..."
구름 하나 없는 하늘 아래, 맑은 햇살이 밝다. 늦봄과 초여름 사이의 어드메는 따뜻하고 청량했다.
높지 않은 담장 아래로 늘어진 화단에는 연둣빛과 초록빛 사이의 화초가 보기 좋게 늘어섰고, 화단을 넘어서면 자갈 하나 없이 단단하게 다져진 마당이 펼쳐졌다. 마당 뒤로는 기와를 인 사랑채와 안채가 정갈한 분위기를 내었다.
조용하던 담 바깥에서 별안간 어린아이 특유의 높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무 대문이 삐걱이며 열리고, 어린아이 두 명이 타다닥 소리를 내며 너른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든다. 푸른 기운이 도는 머리카락을 곱게 빗어내린 남자아이가 그보다 더 작은 여자아이의 손을 잡은 채 디딤돌 앞에 서 있었다. 안에 있는 사람을 부르는 듯 자못 애처로운 목소리가 번갈아가며 형, 오라버니, 하고 외치는 소리에, 단정한 자태의 여인이 웃는 낯으로 문을 열었다. 문 안쪽으로는 비슷한 연배의 남성 한 명이 허허로이 웃으며 문 밖의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아가들 왔구나. 어쩌지? 형은 지금 자고 있는데. 기다릴래?"
"네! 형이랑 놀려고 왔어요."
"네!"
"아 맞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큰어머니!"
"안녕이 주무셔써요!"
아이들이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웃은 여인이 사근하게 대답했다.
"그래, 평온한 밤이었단다. 음, 건우한테 가 보자. 너희가 형에게 밤에 너무 늦게까지 깨어 있지는 말라고 얘기해주렴."
"네, 큰어머니!"
"네!"
"대답도 잘하고 착하네. 이리 온, 춥겠다."
여인은 작은 아이들이 신을 벗고 올라오는 것을 도와주었다. 다정한 손길에 잔뜩 신이 난 아이들은 곧 우다다 달려 꼭 닫힌 문 앞에 도달했다. 여인은 문손잡이를 탁탁 두드리며 기척을 내었다.
"건우야, 엄마 들어갈게."
"으에..."
예, 와 신음이 비몽사몽간에 뒤섞인 이상한 발음에 아이는 까르르 웃었다. 안에서 우당탕거리는 기척이 들린 건 딱 그즈음이었다.
"형 일어났나보네. 들어가자."
여인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저를 보는 아이들의 손에 문손잡이를 쥐여주었다. 아이가 신나게 손잡이를 당기자, 초여름 특유의 따뜻한 공기가 자못 서늘한 밤공기를 품은 방 안으로 밀려들었다. 방의 주인인 듯한 소년은 이제 막 잠에서 깬 듯 부스스한 몰골이었다.
"어머니 오셨어요. 청우랑 연우도 왔냐."
"그래,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정신도 못 차린 아들 데리러 왔지. 동생들이 형이랑 오라버니 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왔어."
"형아, 형아, 잘 잤어요?"
"... 죄송합니다, 어제 너무 늦게 잤나봐요. 그래, 류청우. 너는 잘 잤냐."
아이가 신나게 고개를 끄덕이자, 제 오라버니들이 하는 걸 지켜보던 여자아이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막 잠에서 깬 소년이 빙그레 웃으며 동생들의 머리를 쓰다듬는 걸 보던 여인은 흐뭇하게 웃고는 소년을 보고 입모양으로 점심은 같이 먹자고 전했고, 소년은 그런 어머니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손은 아이들의 머리 위에 둔 채였다. 양손이 죄다 동생들에게 잡힌 모습은 퍽 귀여웠다.
"형아, 나 심심해. 놀아주세요."
"오라부니, 노라주새요!"
소년은 제게 놀아달라 보채는 아이들을 보며 힘빠진 얼굴로 웃다가, 두 아이를 냅다 품고는 이불 속으로 쑥 들어가버렸다. 격한 움직임에 아이들이 잔뜩 신나 꺄륵거리며 소년의 몸을 주먹으로 퍽퍽 때리는 것에는 개의치 않는 듯 소년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으르릉거리며 괴물놀이의 괴물을 자처한 소년은 와앙, 하며 아이들의 볼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졸음이 가득하던 눈은 어느새 부드럽게 휘어있었다.
"가자. 밥은 먹었냐."
"형아랑 같이 먹으려고 안 먹었어!"
"배고파요..."
"가서 밥 먹어. 먹으면서 뭐 하고 놀지 생각해보게. 형 씻고 올게. 오라버니 씻고 올게."
"응!"
신이 난 아이들을 양어깨에 매단 채 걸어나온 소년, 류건우는 문을 열었다. 밝고 따뜻한 햇살이 들었다. 뒤뚱거리면서도 발발 뛰어다니는 여자아이, 연우를 앞에 보낸 채 한 손으로는 저만을 보며 환히 웃는 남자아이, 류청우의 손을 꼭 잡은 류건우가 잔잔한 미소를 입에 걸었다. 눈을 뜨자마자 소년이 좋아하는 사람들만 가득했으니, 오늘은 왠지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았다.
류건우가 열두 살이던 해의 어느 날, 어떤 일이 벌어지기까지 4년이 남은 어느 날이었다.
(아래로는 사담이 이어집니다.)
안녕하세요! 포스타입 작심삼월 프로젝트 참가작, 4월22일까지 토요일마다 연재될 <명단과 난간>으로 뵙게 된 티온입니다.
이 글은 카카오페이지 연재작인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의 2차 창작으로, 작중 등장인물 중 류청우와 류건우의 CP적 요소를 가진 AU 세계관을 다루고 있습니다.
실제 모티브가 되었던 설화의 경우, 여러 설화에서 추출한 부분이 뒤섞여있고 제 나름대로의 해석과 설정을 덧붙인 요소가 많아 고증에 맞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생물학적인 것들도 고증이 안 맞는다 생각하신다면 정답입니다... 또한 작중 유혈사태 등 트리거 요소가 등장할 수 있음을 유의해주세요. 직접적인 묘사가 있는 경우 해당 게시글 초반에 명시할 예정이지만, 간접적인 묘사 등은 별도의 안내 없이 언급됩니다.
늦었지만 즐거운 밤 보내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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