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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N

ㅁㅊ 님 나페스 소설 작업물 / 24.02.18

지친 몸을 겨우 이끌고 키패드 여섯 자리를 꾹꾹 누른다. 삐용 삐용 삐… 오류를 알리는 소리가 제법 시끄럽다. 나 참 진짜.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긴 후 다시 여섯 자리를 시도한다. 달칵, 이번엔 똑바로 됐다. 오른팔에 힘을 꾹 실어 철문을 연다. 현관이 조용한 건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당연하지만, 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집은 아니니까. 그래도, 오늘 같은 날에는…. 훌쩍. 부정적인 생각이 들 즈음에 T의 허리께를 무언가가 쿡 찌른다. 시선이 향하고 이 초, 방금까지 죽을상을 하던 얼굴이 금세 또 밝아졌다. 옅은 웃음소리와 함께 깜짝이야 작게 반응을 한다.

다녀왔어? 짧은 질문이 오가면서부터 금세 다시 일상적인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번엔 웃음뿐만 아니라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응, 다녀왔습니다. M은 자연스럽게 T의 가방을 받아 든다. 괜찮은데… 만류에도 기어이 해내고야 만다. 더 나오려는 소리에는 미리 웃음으로 입을 막았다.

 

손 씻고 와서 밥 먹어.

잔소리가 먼저야?

 

자연스레 T의 눈썹이 일그러진다. 고맙긴 한데, 어쩐지 어딘가 좀. 손으로 눈썹뼈 위를 문질러 뭉갠다. M 씨 빡빡하네…. 가볍게 투덜대면서도 느릿느릿 화장실로 걸음을 옮긴다. 소리 하나 없었음에도 M이 불러 세워 까딱이는 손짓에는 도중에 바로 뒤를 돌아본다. 응? 물음에 M이 웃는다. 밥 먹고 이따 칭찬해 줄게요, 손 씻고 오자. 어린애를 어르는 투의 소리에 T의 입꼬리가 슬슬 올라간다. 에이 그래도. 한 번만 안아주지…. 여전히 좋다는 감정은 숨길 수 없다는 듯 웃는 얼굴을 했다.

 

 

 

밖에 많이 춥지? 우동 끓여 놨어.

매일 그렇게 저녁 안 해줘도 괜찮다니까 그러네. 너도 힘들잖아.

요리는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 괜찮아.

 

그래도. 괜한 죄책감에 끝까지 부정적인 소리를 멈추지 못했다. 내가 부담을 줬나? 냉장고 문을 닫으면서도 시선은 줄곧 T에게 향해 있다. 애교를 섞어 M의 뒤에 붙은 시간도 고작 일 초, 요리를 해 준 상대에 대한 동거인의 지당한 예의상 곧바로 앞에 내놓아진 그릇을 조용히 식탁 위로 옮긴다. 잘그락 소리 젓가락의 짝을 찾아 내려놓고 있자 질문이 들어온다. 어릴 때 야마토나데시코같은 사람 만나는 로망 없었어? 어… 일시적으로 수저를 정리하던 손이 멈췄다. 짧게 시선이 허공에 머물렀다 도로 눈을 감아 돌아간다. 물론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식탁를 정리해 가지런히 만든 다음 모영의 앞을 방해해 막아선다.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꾹… T의 두 손가락이 M의 볼을 가득 잡았다. 아프지 않게 힘을 주면서 또박또박 읊는다.

 

자꾸 그런 소리 할래? 나 그냥 M 씨가 좋은 거라니까.

 

제법 다부진 표정을 한 T의 얼굴에 시선이 향해 있던 모영은 결국 웃음이 터지고야 만다. 달래주는 말과 함께 손을 꼭 잡는다. 알았어, 일단 밥부터.

잘 먹겠습니다, 조용한 합장 소리가 퍼진다. 작은 소리부터 크게는 식기가 달그락대는 소리가 두어 번, M이 먼저 정적을 깬다. 오늘 힘든 일은 없었어? 일상적인 질문에 T의 시선이 다시금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위를 향했다. 음. 곧바로 고개를 젓는다.

 

있었는데, 지금 얼굴 보니까 다 까먹었어.

 

T의 제법 진지한 표정에 M도 이내 씹는 것을 멈췄다. 주변 공기가 조용하다. 아무 소리 없이 흘러가는 시간만이 일 이 삼 초침이 째깍대는 소리만 들린다. 그 후 동시에… 빵! 웃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그게 뭐야, 진짜. 조금 홍조가 오른 얼굴 위로 M이 애써 손으로 부채질을 한다. 갑작스러운 폭탄 발언에 다시 정적이 흐른다. 이번에는 제법 기분 좋은 정적이었다.

대화 섞인 저녁 시간이 이어질수록 M의 말이 많아진다. 젓가락질을 느리게 반복하는 것조차 버거운지 곧 아예 아주 내려놓는 지경이 됐다. 수저를 내려놓은 M을 T가 바라보면 어색하게 웃어넘기려 했다. 양 조절을 잘못했나 봐. 조용히 별명을 붙인다. 바보. 물론 좋은 의미로. 식탁 위로 손을 뻗는다. 괜찮아, 남겨. 내가 먹을게. 식탁 위에서 다시 식기가 달그락대는 소리가 생긴다. 그릇을 본인 앞으로 당겨 가져다 놓으면서 말한다. 케이크 사 왔는데, 그럼 그건 못 먹겠다. 응? M의 커진 눈이 제법 다급하다. 아니, 디저트 배는 따로 있지! 반사적인 반응, 식탁 위로 손을 뻗었다. 뻗은 손은 이어 결국 T에게 포개 잡히고만 만다. 농담이야, 당연히 알지. 이따가 꺼내 줄게.

 

 

들어오고 나서 냉장고 안에 넣어둔 조각 케이크 상자를 꺼내다가 일순간 표정이 굳는다. 삐걱삐걱 어설픈 동작으로 끊으며 냉장고 문을 닫았다. 모영에게 시선이 향한다. 응? 영문을 몰라 빤히 바라보는 모영을 진지하게 바라보다 고개를 기울인다. 근데. 나 말고 케이크가 더 소중한 거야? 이번에는 울 것만 같은 표정이 됐다. 작은 케이크 상자를 들고 선 채로 굳었다. 조금 원망스러움이 묻어나는 소리로 금세 어린애처럼 투정을 부린다. 무슨 말을 또 그렇게 해. 안심시켜주는 소리에도 섭섭한 마음은 어떻게 감출 수도 없이 티가 났다.

 

그렇잖아, M 아까도. 내가 다녀왔습니다, 하면서 안아달라고 했는데도 안 안아주고….

또 그게 서운했어?

 

M이 웃음을 짓는다. 애 같은 투정을 부리는 남자 친구를 온전히 애로만 바라보는 시선이다. 어떡하지, 귀여워서 어떡하지. 말을 대신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행동의 대답이 돌아온다. 탁자 위 케이크 상자를 올려놓고 가까이 다가와 팔을 벌린다. 빨리, 손도 씻고 밥도 먹었는데…. 의미가 노골적인 행동에 웃음이 터진다. 고분고분 품에 붙어 안긴다. M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맞닿은 살갗으로 순환하는 온기에 고개만 기울여 묻는다. 따뜻해? T는 말없이 감아 안은 팔에 힘을 싣는다. M의 어깨 위에 닿았던 T의 팔이 위를 향한다. 통수 위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머리칼 끝을 만지작댄다. 느린 행동과 느린 시간 사이에 한숨을 뱉는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라도 되는 듯 한 단어씩 꼭꼭 소중히 속삭인다.

주말에 시간 꼭 비워둬, 둘이 데이트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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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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