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단편
이것은 해인이 어느 겨울날 만난 강아지 귀신을 키우게 된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해인은 겨울을 좋아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귀신들이 눈을 좋아하니까.
해인은 어려서부터 영안을 가진 선천적으로 독특한 성질을 타고난 사람이었는데, 그렇다고 무당처럼 신기가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해인이 볼 수 있는 것은 구천을 떠도는 흔히 신기 있는 사람들이 잡귀라고 부르는 영혼들로, 그들과의 소통은 바디랭귀지가 최대였다. 해인이 보는 귀신들은 그게 사람이든 동물이든 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편인데 그런 귀신들도 눈이 내릴 때 만큼은 혼란스러워 하지 않고 비교적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 날이면 해인도 한결 편안하게 밖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해인이 목에 ‘하늘이' 라고 적혀있는 목걸이를 한 강아지를 만난 것도 그 어느 겨울날이었다. 하늘이는 해인의 집 앞에서 아침부터 시끄럽게 짖어대던 강아지로, 처음에는 앞집에서 개를 키우나보다. 산책가는 중인가보다. 우리 집 주변에 귀신이 많아서 짖나보다. 하며 알아서 주인이 챙겨가겠거니 머리 위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을 청하려 했지만, 하늘이는 대략 30분 가량을 특정한 리듬에 맞춰 짖어 결국 해인을 깨웠다. 잠에서 깨어 집 앞에 나간 해인은 하늘이를 보고는 비몽사몽 아기 백구인가 생각했는데, 가만히 다시 생각을 해보니 해인의 집 근처로는 죽은 강아지들 말고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한 해인이 기겁을 하며 하늘이를 집에 들였다. 귀신과의 소통은 그게 사람이든 동물이든 바디랭귀지 밖에 없던 해인이 죽은 강아지의 짖는 소릴 들었다는 것은 꽤 큰일이었다.
“하늘이…?”
집에 들인 강아지의 목걸이에는 하늘이라는 이름표와 함께 뒤에 주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해인은 하늘이가 죽은 강아지라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싶어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소리샘으로 연결된다는 안내 음성을 대략 3번 정도 듣고도 연결되지 않는 전화에 해인은 전화 걸기를 포기하고 다시 하늘이를 살폈다. 하늘이는 해인의 집에 들어온 후 혀를 내빼고 꼬리만 살랑거렸다. 낯선 곳일텐데도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어지간히도 사람을 좋아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인은 하늘이의 보송보송한 앞발을 붙잡고 여긴 왜 왔어? 다시 짖어봐바. 나한테 할 말 있어? 하고 연신 질문을 던졌다. 알아들을 거란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해인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을테고, 사람도 아니니 입 모양으로 알아들을 리도 없었다.
그때였다. 하늘이가 그런 해인의 행동에 다시 짖은 것이. 선명하게 들리는 왕 소리에 해인이 놀라 쥐고 있던 앞발을 떨어트렸다. 하늘이는 별 기색 없이 다시 또 왕 하고 짖으며 해인을 감싸고 빙빙 돌더니 하늘이를 데리고 들어왔던 문으로 달려가 나가려는 듯 문을 박박 긁었다. 해인이 문을 열어주자, 하늘이가 그대로 달려 눈이 쌓인 집 앞 대로까지 나가는 모습에 해인이 기겁하며 그 뒤를 쫓았다. 주변에는 눈으로 인한 강제 휴일을 맞은 산 사람은 없고 죽은 것들만이 눈과 섞여 주변이 희뿌옇게 만 보였다. 하늘이는 그 희뿌연 것들이 유달리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까지 달려가서는 멈춰서서 또 왕 하고 짖었다. 그러고는 눈을 파내려는 듯 바닥을 팍팍 파댔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죽은 것이 바닥을 판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해인은 당황스러운 눈으로 그 모습을 멀뚱히 쳐다보다가 무심결에 그대로 들고 나온 휴대폰을 보았다. 화면에 떠있는 010을 제외한 낯선 번호. 해인이 그대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울리고 잠깐. 곧 하늘이가 앉아있던 곳 안에서 미세하게 진동이 울렸다. 해인은, 곧장 전화를 끊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112에.
하늘이의 옛주인은, 묻지마 범행에 당한 피해자였다. 폭설이 내리던 날에 그대로 바깥에 버려져 눈에 파묻혀버렸고, 하늘이는 그런 주인의 곁을 맴돌다가 해인을 깨웠던 그날 새벽에 얼어죽은 것이었다. 하늘이는 뉴스를 보는 해인의 무릎에 앉아 또 왕 하고 짖었다. 옛 주인을 알아보는 것일까. 해인은 그런 하늘이를 위로하듯 가만히 하늘이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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