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단편
“어, 야. 나 핸드폰 잃어버렸나봐.”
호연이 잘 가다말고 멈춰서서는 한 발자국 뒤에서 그렇게 말했다. 아까 다 챙겼냐고, 잊어먹은 물건은 없느냐고 물었을 때 건성으로 대답하더니만 결국엔 뒤늦게서야 잃어버렸다 말하는 꼴에 혈압이 올랐다. 말만 그런게 아니라, 진짜 혈압이 올라서 손목에 차고 있던 워치에서 급성 고혈압에 주의를 요하는 경고 메세지가 출력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자식만 어떻게 해도 요 근래 받았던 고혈압 경고 메세지 양이 절반 이상 줄어들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법에 걸리지 않으면서 저 자식을 어떻게 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이번에도 충동을 속으로만 삭혔다.
아무래도 1900년대를 빠져나오다가 떨어트린 것 같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방금 막 2차 대전 중인 소련 땅 한복판에 불시착했다가 겨우 빠져나온 참이었다. 우주 대 평화의 시대를 향유하는 두 사람에게 세계 2차 대전은 말 그대로 지뢰밭 그 자체였다.
아무튼 수민은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말하는 호연을 지긋이 노려보며 귀찮다는 듯 말했다.
“그냥 돌아가서 하나 새로 사. 어차피 핸드폰 이미 박살 났을걸? 알잖아.”
수민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두 사람이 불시착한 곳이 어디였는지를 떠올리면 절대 돌아가서 찾아보자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마실 가듯 시간여행을 나온 터라 따로 구비한 방어 시스템도 없었고, 원래대로라면 일반인이 사용 가능한 시간여행 좌표 중 2차 대전 같은 방어 시스템 없이 접근해선 안되는 시간의 좌표는 있지도 않았다. 즉, 중앙 관리청의 허가 없이는 돌아갈 수도 없다는 얘기였다. 불시착 정도야 어쩌다 한 번 씩 있는 일이니 중앙 관리청에 상황을 설명하면 넘어가주겠지만 그들의 의지로 그 시간대로 돌아가는 것은 해선 안될 일이었다. 고작 휴대폰 하나 찾자고 시간 관리법을 어기면서까지 2차 대전에 갔다는 말을 믿어줄 개체는 이 드넓은 우주에 단 한 명도 없었다.
호연은 그럼에도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타임 로드 한복판에 서서는 그만 가자는 수민의 말에도 발걸음을 떼려하지 않았다. 답답하게 구는 호연의 행태에 결국 짜증이 솟은 수민이 고혈압 경고 메시지를 신경질적으로 꺼버리며 소리쳤다.
“아, 왜! 뭐가 문젠데 대체!”
“아니…. 나 거기에 인격 메모리 저장해놨단 말이야.”
뭐? 수민이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호연을 끌고서라도 가려던 손에 힘을 풀었다. 뭘, 어디에 저장해놨다고?
“너 제정신이야? 미친 게 아닌 이상 누가 인격 메모리를 거기다 저장해! 워치도 아니고!”
“워치는 집에 두고 왔지! 네가 갑자기 불러내서 그냥 그대로 휴대폰 주머니에 넣은 채로 왔던 거란 말이야!”
호연이 그렇게 말하기는 했으나 딱히 수민을 탓하는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시간여행이 보편화된 세상을 사는 사람이었고, 예기치 못한 사고가 커다란 눈사태가 되어 두 사람을 덮쳤을 뿐이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서로의 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호연의 인격 메모리가 저장된 핸드폰을 어떻게 할 것이냐 였다.
“일단 중앙 관리청에 얘기는 해야겠지?”
“당연하지. 따로 백업해둔 메모리는 없어?”
“없어…. 원래 쓰던 워치에서 핸드폰으로 임시적으로 백업해놓고 옮기는 걸 까먹어서….”
뭐야? 수민이 호연의 미친 짓에 기함을 했다. 이번에는 할 말이 없던 호연이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슬그머니 숙였다.
수민은 얼마 남지 않은 타임 로드의 개폐 시간과 이미 박살 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호연의 인격 메모리를 생각하며 머리를 굴렸다. 타임 로드가 닫히기 까지는 대략 30분 남짓, 지금이라도 중앙 관리청에 연락을 넣는다 해도 두 사람의 민원이 완벽하게 처리 되기 까지는 1시간이 넘게 걸릴 것이었다. 인격 메모리 관련 사항은 엄중히 다뤄지는 사안 중 하나였으니 어림잡아도 일주일은 넉넉히 잡아야 했다.
아무리 머릴 굴려도 떠오르지 않는 해결 방법에 수민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옆에 선 호연도 점점 불안함이 커지는 지 새하얗게 질려서는 애꿎은 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수민이 문득 제 손목을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고혈압 경고 메시지를 띄우던 워치가 보였다. 워치…? 수민이 워치와 호연을 번갈아보았다. 그러고보면, 호연이 여기 서 있다는 것은 아직 인격 메모리가 무사하다는 증거였다. 인격 메모리가 대화 도중 부서졌다면 분명히 말하다 말고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을 터였다.
수민은 곧장 제 워치에서 여분의 백업용 메모리 파일을 열었다. 수민이 이틀 전 메모리를 백업한 덕분에 아직 비어있는 파일이 하나 남아있었다. 수민은 새하얗게 질려 어떡하냐는 말을 중얼거리는 호연의 팔을 붙잡아 당기며 얼른 워치에 지문 인식을 하거나 아니면 눈 크게 뜨고 홍채 인식을 하라며 재촉했다. 호연은 갑작스러운 수민의 행동에 당황한 듯 어어? 하고 멍청한 소릴 뱉었지만 무언가 해결 방법을 찾았구나 싶었는지 곧 군말없이 수민의 워치에 제 생체 정보를 입력시켰다.
남은 시간은 대략 12분. 워치는 곧 사용자 추가까지 10분 정도가 소요된다는 메시지 창을 띄웠다. 호연은 메시지를 보고 놀라서 수민에게 이래도 되는 것이냐 물었지만 수민은 그럼 이대로 타임로드 한복판에서 죽을 것이냐고 일갈했다.
남은 시간 5분, 3분….
띠롱–
‘사용자 추가 등록이 완료 되었습니다. 자동으로 인격 메모리를 백업합니다.’
워치가 인격 메모리 백업까지 완료했음을 알리는 메시지 창을 띄우기 무섭게,
“곧 타임 로드가 폐쇄됩니다. 아직 안에 계신 이용객께서는 신속히 타임 로드를 벗어나주시기 바랍니다.”
타임로드 폐쇄 안내가 울렸다. 수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호연을 잡아끌었다. 아무래도 한동안은 타임 로드에 다시 들어올 일이 없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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