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에오르제아 베이스볼

더그아웃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부상이었다. 아니, 예상할 수 있던 부상이 있었던가. 운동을 한 지 10년이 더 되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모로가 쓰게 웃으며 어깨에 얹었던 얼음 주머니를 고쳐 잡았다. 유니폼이 아닌, 맨살 위였다. 평소였다면 닿이는 것 만으로도 질색할 차가운 주머니였음에도, 어깨의 열기를 식히기에는 부족하게 느껴졌다. 아. 움직였기 때문일까. 무심결에 튀어나온 신음에, 그를 둘러싸고 서 있던 이들이 움찔했다.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숨죽인 침묵만이 흐르는 와중, 타임을 요청한 감독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발소리만이 선명하게 들렸다. 감독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모로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뛸 수 있겠어?”

“미쳤어, 감독님?”

선후배 간의 상하관계가 엄격한 만큼, 그들을 통솔하는 감독에게도 자연스레 권위가 따르기 마련이다. 특히 경기 도중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심각한 얼굴의 감독에게 건방질 정도로 당돌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야구부원은 매니저 뿐이었다. 빵빵하게 차 있는 가방을 뒤적이던 매니저는 그 안에서 막대사탕 하나를 꺼내 뜯었다. 누구도, 매니저의 말에 토를 달거나 행동을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쿵쿵. 화가 난 듯 신경질적인 걸음걸이로 모로에게 다가온 매니저는 쥐고 있던 사탕을 불쑥 내밀었다. …먹으라고? 그제야 고개를 든 모로가 매니저를 올려다보았다. 먹여줘야 돼? 그렇게 말한 그는 모로의 입에 사탕을 물렸다. 딱딱한 것이 앞니에 닿아 조금 아팠지만 모로는 얌전히 사탕을 입 안에서 굴렸다. 라임맛이 났다.

“누가 봐도 저렇게 부었는데, 뭘 더 뛰래.”

“아니, 밀비야. 나는 그게 아니고….”

프로 선수 출신이었던 감독은 고등학생, 그것도 운동을 하는 남학생들이 작아 보일 정도로 여전한 거구의 남자였다. 거칠게 자라난 수염과 선글라스, 라는 강렬한 인상의 남자가 자신의 가슴께에도 닿지 않을 정도로 작은 학생에게 쩔쩔매는 모습은 나름대로 진귀한 구경거리였지만 부원들에겐 일상이나 다름없었기에 그들은 아무런 반응 없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게 아니면 뭔데? 얘들은 아빠처럼 고물이 아니라고 했잖아!”

“고물…, 아니, 아빠는 그냥 선수들의 의견을 일단 들어보려고…”

“다쳤는데 의견이 어딨어? 빨리 실어서 병원 데려가.”

“…내가?”

“아, 그럼 면허도 없는 내가 가?”

“그게 아니라… 아직 경기 중이잖아, 밀비야...”

“애들이 하지 아빠가 하는거 아니잖아.”

아는 야구 규칙이라고는, 세 명이 아웃되면 공수 교대를 한다는 것 뿐. 그렇게 제대로 아는 것이 없는 매니저라고 해도, 경기 중에 전달 사항이 수 없이 생긴다는 것을 모를 리는 없었다. 이기는 것 보다도 중요한 건 너네 몸이야. 밀비가 늘 입버릇처럼 하던 소리를 모르는 선수는 없었다. 밀비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앉은 모로를 흘긋 바라본 감독의 입에서도 비슷한 한숨이 흘렀다. 꼭 닮은꼴에 모로는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바람이 새는 듯한 웃음을 흘렸다.

“일단, 투수는 하디로 한다. 외야 빠진 건 라세, 네가 채워.”

“네.”

거침없는 선수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것은 감독이 아닌 밀비였다. 이미 분위기는 정리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웃은 감독이 쓰고 있던 자신의 모자를 벗어 밀비의 머리에 씌웠다. 선글라스도 줘. 헐렁한 탓에 흘러내려 눈 앞을 가린 모자를 손가락으로 밀어 올린 밀비가 손을 뻗었다. 그제야 굳어있던 더그아웃에 웃음소리가 흘렀다. 감독은 얌전히 선글라스를 벗어 밀비에게 건넸다.

“최대한 빨리 다녀올 테니까, 하던 대로만 하고 있어.”

“네!”

“무슨 일 있으면, 작은 주장한테 말하고.”

해결해 주는 건 없겠지만. 아무튼 알아서들 하고 있어. 커다란 손은 다시금 밀비의 머리에 씌워진 모자를 쓰다듬듯 가볍게 내리 눌렀다. 감독의 시선이 다시 모로를 향했다.

“그렇게 됐으니까, 일어나. 일단 병원부터 가야겠다.”

“…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모로의 어깨 위로 무엇인가 덮였다. 아이싱을 위해 벗어 두었던 유니폼이다. 아이스박스에서 새 얼음 주머니를 꺼내 온 밀비가 이미 제 역할을 잃은 어깨 위의 주머니를 거두어 가며 모로를 바라보았다. 시야를 가리는 것이 귀찮았던 모양인지, 모자는 챙을 뒤로 해서 쓴 상태였다.

“얌전히 갔다 와.”

똑바로 바라보는 시선에 거부할 말을 찾을 수 없어서 모로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테고리
#2차창작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