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2018~)

감정을 먹는 여자

2018. 06. 30


 그녀는 비현실적인 사람이다. 내가 만났던 사람 중 가장 그렇다. 아니, 세상에서 가장 비현실적이라고 해도 좋다. 그녀는 자신과 닮은 이들을 몇 알고 있다고 했지만, 나는 그녀만 만나 보았기에 오롯이 나의 경험에만 의존한 이 기록에서는 그녀의 비현실성에 대해서만 다루기로 한다. 
  그녀를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나는 그녀의 이름을 안다. 그러나 그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의 본명을 거론하는 것은 어쩐지 몹쓸 짓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므로 여기서는 그녀를 ‘이정식’이라고 칭하기로 한다. 정식 씨의 얘기를 이렇게 남기겠다고 마음먹었던 날,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써도 괜찮다고 했으나 나의 평온한 밤을 위하여 정식 씨는 당분간 정식 씨로 불릴 예정이다.
 이정식. 감을 먹는 사람.
 본격적으로 이정식 씨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그녀는 앞서 밝혔듯이 비현실적인 사람이다. 물론 그녀도 사람이기에 인간의 삶을 걸어왔다. 무난하게 9년의 의무 교육을 받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였으며, 곧 평범한 4년제 대학에 가서 한 학기 휴학하고 또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이리저리 헤맸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졸업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그녀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이후 그녀의 입을 통해 다루도록 하겠다.
 정식 씨는 실존하는 음식의 맛을 느끼지 못했다. 맛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살아오면서 만난 많은 음식은 그녀에게 아무런 맛도 선사해주지 못했다고 했다. 처음에 그녀는 자신이 ‘미각 소실’ 상태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후각은 온전했다. 후각이 온전한 상태에서의 미각 소실은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는 정보를 접하게 되자 정식 씨는 이에 대해 고민하기를 멈췄다. 병원에 가지 않고도 곧 맛을 느끼게 되었기에 고민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를 거쳐,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을 접하고 얘기를 나누고 갈등을 해결해주면서 정식 씨는 맛을 알게 되었다. 사람의 기억에 배어 있는 감정의 맛을.
 “저는,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 사람이 많았어요. 그래서 사실 ‘맛’도 조금 빨리 눈치챌 수 있었죠. 다른 사람들은 매일 그걸 느끼겠지만, 저는 조금 달랐으니까요.”
 정식 씨가 자신이 걸어온 삶의 자취를 내게 말해줬던 날 그녀는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그녀에게만 있는 묘한 부분이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고 생각한다. 정식 씨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으나 나 역시 정식 씨의 그런 부분에 이끌렸으므로.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내 속을 전부 긁어모아 보여주고 싶었다. 정식 씨라면 이 속을 전부 받아줄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정식 씨는 내가 멋대로 지은 이름대로 감정을 먹고 산다. 정확히는 감정을 통해서만 맛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앞서 스스로가 말했던 대로 주변에 사람이 늘 모여들었던 그녀는 그 맛에 쉽게 손댈 수 있었다고 했다. ‘감정의 맛’은 내가 뭐라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와의 대화 녹음본을 아래 문단에 첨부하도록 하겠다. 괄호 속은 내가 했던 말이다. 
 아. 지금부터 말하면 될까요? (네)
 제가 처음 감정의 맛을 느꼈을 때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고 하셨죠. 아마 중학생 때였을 거에요. 단짝 친구의 감정이었죠. 지금도 그 친구를 잊지 못해요. (친구를요? 아니면 감정을요?) 아마 둘 다? 하지만 감정 쪽이 더 강해요. 왜냐면 친구는 지금도 연락하거든요. 결혼식 때도 갔었어요.
 얘기가 샜네요. 그 친구가 그때 남자 친구가 있었거든요. 어렸을 때라 지금 얘기하면 하지 말라면서 화내긴 하는데, 그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애에게 푹 빠져서 친구를 차버렸어요. 친구는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고 가장 친한 저한테 달려와서 펑펑 울었어요. 전 어쩔 줄 몰라서 그냥 달래주고 있었는데. 
 친구 뒤로 연분홍색의 몽글몽글 해 보이는 뭔가…? 뭔가라고밖에 설명을 못 하겠어요. ‘그걸’ 먹기 시작한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설명을 잘하지 못하겠네요. 어차피 저만 보는 거고, 솔직히 남에게 제 얘기를 거의 하는 편이 아니라서 설명할 필요를 못 느끼겠더라고요. 이렇게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일 자체가 잘 없거든요. 제 주변에는 제가 뭘 먹고 사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요. 사실 처음엔 저만 볼 수 있는 건지도 몰랐어요. 다들 보고 사는 줄 알았죠. 어쨌든 분홍색 연기 같은 것이 막 피어오르더니 곧 제 손으로, 또 제 입으로 들어왔어요. 처음에는 제 의지가 아니었거든요. 그냥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제게 그걸 강제로 먹였던 것 같은 느낌? 그런데 그 순간에는 충격이 컸어요. 제가 태어나서 맛을 처음 느꼈던 순간이었으니까요, 아무래도.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맛처럼 저는 제가 느꼈던 맛들을 표현할 수가 없어요. 달다, 쓰다, 시다, 짜다, 맵다. 이런 말들이 제가 느끼는 맛들과 과연 같을까요? 저는 그걸 확신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요. 어쨌든 처음 먹어 본 감정은 ‘맛있었어요.’ 지금은 여러 감정을 먹어봐서 알지만, 그때는 그 감정이 뭔지 몰랐어요. 그냥 맛있기만 했죠. 덧붙여 나중에 알게 된 그 감정은 사랑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저 스스로가 미웠어요. 되게 미웠어요. 친구는 슬프다고 울고 있는데, 저는 걔에게서 나온 그 애의 일부가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곧 일어났어요. 제가 ‘그걸’ 삼키자마자요. 친구가 갑자기 울음을 그치고 의연하게 일어나더라고요. 의연하다고 말해도 되나요, 이걸? 저는 그때 걔가 한 말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제가 가진 이 능력의 힘을 알려줬던 말이거든요. 나 이제 걔 하나도 안 좋아해. 왜 좋아했는지, 왜 울었는지도 모르겠어. 였나? 그러니까 제가 먹은 건 감정 그 자체였다는 거에요.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겠죠. 그, 세상의 음식도 맛만 볼 수는 없잖아요. 음식 자체가 사라지는 거니까. 감정 역시 그랬겠죠. 어쨌든 저는 뭐, 그다음부터는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크면서 친구들 상담도 종종 해줬고, 마음속의 고민거리 다 없애준다는 식으로 학교 안에서는 나름 이름을 날렸어요. 
  나름 만족스러웠어요. 그런데 막상 취업할 때가 되니까 뭘 하고 살아야 할지 막막한 거예요. 스펙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거든요. 그냥 적당한 회사에 들어가는 수도 있었겠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뭔가 저만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게 됐죠. (지금 하고 계신 일에 대해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네? 자세하게요? (─)씨가 써주시기로 했던 거 아니었나요? (저는 아직 정식으로 가본 적이 없는걸요.) 하긴 그렇죠. 다음에 한 번 힘든 일 있으시면 오세요. 특별히 무료로 봐 드릴게요. 그럼 잠깐 쉬었다가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얘기하도록 할게요.
 저는 어, 그 (──)역 로데오 거리 안쪽에 있는 곳에서 조그맣게 타로 카드 카페를 하고 있어요. 타로를 조금 볼 줄 아는 건 사실이지만, 사실 타로는 구실이에요. 누가 그냥 고민을 해결해드립니다! 라고 써 있는 수상쩍은 카페에 정말 고민을 들고 오겠어요? 보통 타로점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마음 깊은 곳에 웅크려 있는 감정을 품고 있는 거거든요. 저는 그걸 노려요. 아시잖아요. 제가 먹고 사는 것들. 어쨌든 타로점을 보러 오는 사람에게 점을 봐주고, 얘기를 가볍게 나누고, 저는 감정을 먹어요. 그게 끝이에요. 그러면 손님은 후련해진 얼굴로 나가는 거예요. 제법 괜찮지 않아요? 남의 감정을 마구잡이로 먹는 대신 타협 하에 먹는 거니까요. 나름 저 유명해요. 이런저런 SNS에서. 고민을 깔끔하게 날려주는 사람이라고. 특히 사랑 문제에 대해서. 
 사실 먹어서 해결할 수 있는 고민 중에서는 사랑 문제가 가장 깔끔하거든요. 그래서 효과가 가장 좋아요. 사랑뿐만 아니라 뭘 좋아하기 때문에 생긴 고민일수록 더 그렇죠. 좋아하는 감정 자체를 제가 먹으면 다 해결되는 일이니까요. 
 (혹시 기억에 남는 손님 있으세요?)
 있기야 있죠. 당연해요. 하지만 손님들에 대한 얘기는 그닥 하고 싶지 않아요. 감정은 그분들의 사생활과 너무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거라서. 저야 맛있는 것들을 먹을 수 있어서 좋지만, 그분들의 경우 즐거운 일로 저를 찾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슬픈 감정을 제게 남겨준 손님들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돈 받고 일하는 것이다 보니, 먹기야 먹지만 찜찜해요. 사실 슬픈 건 맛도 약간, 이상해요. 이상하다고 하면 실례가 될지도 모르지만.
 (예를 들어서요?)
 그런 분들이 많거든요. 슬픈 마음 하면, 그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분들이 종종 오세요. 사실 요즘은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타로점보다는 고민 상담 쪽으로 유명해져서. 어디에다가 마음을 털어놓을 수도 없는 분들이 저를 찾으실 때가 있거든요. 그런 분들은 누가 그냥 자기 얘기를 들어주고 싶어서 오시는 거예요. 사실 저는 그런 감정은 먹고 싶지 않아요, 지금은.
 (이유가 있나요?)
 처음 슬픔을 들고 오신 분 때문에 그래요. 키우던 강아지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는데, 그 슬픔을 털어놓을 곳이 없다고 저한테 오셨어요. 그냥 한눈에 알겠더라고요. 그분이 품으신 슬픔을.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등 뒤로 새파랗게 넘실거렸거든요. 그분은 타로점도 보고 싶지 않다고 하셨어요. 그냥, 자기 얘기를 좀 들어달라고. 미미. 강아지 이름은 미미였는데, 그 애 이름을 부르면서 엄청 우셨어요. 제가 그때까지 만났던 사람 중 가장 많이 우셨어요. 저는 원래 사람들 감정에 공감을 못 하는 편이거든요. 그런데도 저도 그분을 보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사실 저도 그분의 슬픔을, 강아지에 대한 사랑을 먹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냥 꺼림칙하다고 해야 하나. 먹기 싫은 음식 같은 거 있잖아요? 사람들은 보통. 저한테는 그게 그랬던 것 같아요. 왜, 파란색 음식은 식욕을 낮춘다면서요. 저도 그랬던 거라고 생각해요. 굳이 이걸 먹어야 하나, 싶었는데 처음 감정을 먹었던 날처럼 그냥 그게 스르륵 들어오더라고요. 일 시작하면서는 먹는 행위 자체를 제가 다룰 수 있게 되었는데. 신기하게 그냥. 맛은 뭐, 아무 맛도 안 나는 걸 먹는 것보다야 나았지만. 그닥 좋진 않았어요.
 그리고 그분은 자기가 왜 울었는지도 모르겠었다면서 활짝 웃으면서 자리를 떴어요. 많이 본 풍경이지만, 조금 낯설더라고요. 그 손님 이후로도 꽤 되세요. 죽음을 들고 오는 손님들.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돼요, 저는 사실. 사랑보다 무거운 감정인데 그렇게 쉽게 떨쳐내는 게. 먹은 건 저이지만요. 사랑은 제가 손을 뻗어서 집어 먹는데 그 감정은 먹고 싶지 않아도 들어와요. 이제는 안 받을까 봐요. 
 안 받을까 봐요, 하는 말과 함께 정식 씨는 손을 내밀어 녹음기를 껐다. 
 나는 정식 씨와 몇 번의 만남을 가졌지만 사실 저 날의 대화 이후로 그녀를 볼 수 없었다. 내가 먼저 그녀의 가게로 찾아가면 되지 않겠냐고 누군가는 묻겠지만 어쩐지 무서웠다. 이전 언급한 대로 그녀에게는 묘한 부분이 있다.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그 부분이, 어쩐지 만나지 못하게 된 최근 들어서는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다.
 타인의 감정을 먹어 없앨 수 있지만 그 행위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 
 사람의 감정을 맛으로만 판단하는 여자. 
 무서울 수밖에 없다. 특히 사랑은 맛있어서 좋고, 죽음은 그닥 그래서 싫어요. 라고 환하게 웃으면서 말하는 모습을 보면. 
 아마 나 역시 ‘먹혔을’ 것이다. 나는 그녀를 좋아했었다. 그것이 성적인 의미였는지, 아니면 사람 대 사람 간의 호감이었는지조차 분간되지 않았던 ‘좋아함’이었다. 그러나 아마도 그것은 분명 사랑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게는 지금 그녀를 만나게 될 기회를 잡기 위해 애쓰고, 고심해서 연락을 보냈던 기억만이 남아 있고, 감정은 내 품을 떠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마 분명 그 날, 그녀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감정을 내게서 보고 몰래 먹어 치운 거겠지. 
 정식 씨를 다룬 이 기록은 여기서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녀의 이야기를 읽게 될지는 미지수지만 혹시 이 글을 읽고 그녀를 찾아가 볼 생각이 들었다면 전해 줬으면 한다. 아마 당신이 만날 정식 씨는 정식 씨가 아니겠지만, 정식 씨를 기록했던 사람이 그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고. 읽어 줬으면 한다고.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헤어질 때 정식 씨는 내게 두 명의 연락처를 주었다. 글의 시작에 언급했던 정식 씨와 ‘닮은 이들’의 연락처였다. 한 명은 글자를 먹어요. 도서관에서 일하고. 다른 한 명은 색깔을 먹는데, 그림을 그려요. 관심 있으면 연락 해 봐요. 나는 그 사람들에게 연락해둘 테니. 라는 말을 남기고. 내 손에는 지금 그 종이가 있다. 각각 그들의 이름과 이메일이 담긴 종이. 연락할지 말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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