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2018~)

[민폐혜리] 비

2019. 05. 08


 비가 퍼붓는다. 야자가 끝난 뒤의 교실에는 아무도 없다. 그 추적하고 음산한 빗소리가 마구 창문을 때리고 있다. 불이 다 꺼진 복도는 비상구를 알리는 전등만이 환하고 안팎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둡다. 내게 우산은 없다. 중앙 계단 아래에는 나와 같은 처지의 애들이 어떡하냐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다시 교실로 들어간다.
 의자를 꺼내지 않고 그냥 책상에 걸터앉는다. 가방을 열까 잠깐 고민하다가도 내버려 둔다. 왠지 무기력하다. 나는 이 미묘한 감정을 비 탓으로 돌린다. 교실은 환하고 조용하다. 창밖은 어둡고 시끄럽다. 바람까지 세게 불어 쏴아, 쏴아하고 소리가 난다. 약해질 것 같지가 않다. 엄마를 부를까. 괜히 휴대폰 액정에 불을 밝힌다. 그만두자. 다시 화면은 캄캄해진다.
 열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교실 문이 갑작스레 소리를 낸다.
 “너 집에 안 가?”
 “가.”
 문의 입을 벌린 사람에게, 나는 그만 말을 건넨다. 검은 머리칼에서 물이 떨어진다. 교복도 젖어 있다. 황민폐. 나는 그를 안다. 같은 반이다. 그러니 여기로 들어왔겠지. 어쩐지 바보 같은 생각이다. 그 애는, 나를 본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똑바로 보고 있다. 시선을 피하면 지는 것 같아 나는 뚫어져라 그 애를 본다. 나는 그의 한쪽 눈 밖에 볼 수가 없다.
 “너는.”
 그는 자기 사물함에서 우산 하나를 꺼낸다. 그냥 맞고 가려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올라온 듯 했다.
 “우산이 없어서.”
 나는 그 애 손의 우산을 보지만 빌릴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저건 그 애의 것이다.
 “좀 그치면 가려고.”
 교실 바닥이 그 애가 데려온 물로 흥건하다. 잘 가. 나는 의례적인 인사를 한다. 순간 밖이 환해진다. 곧 요란한 소음이 뒤따른다. 아무래도 그칠 것 같지가 않다. 그 애는 교실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말이 없다. 계속 교실 안과 밖이 대조된다. 거침없는 빗소리가 창문을 타고 들어온다. 이곳에는 정적 뿐이다. 마치 오후 수업의 쉬는 시간과도 같은 정적이다. 아, 조금 다르다. 어색한 침묵이 고이고 있다. 그 애는 물끄러미 나를, 본다. 여전히 말은 없다. 대신 그 애는 행동한다. 우산을 들고 내 책상을 향해 온다. 민첩하고 조용하게. 우산을 내 곁에 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니가 쓰고 가라.”
 “너는.”
 그 애가 내게 했던 너는, 이란 말을 나는 돌려준다. 우산을 쥔다. 손잡이는 그 애 탓에 젖어 있다. 차갑다.
 “안 쓸 거면 주던가.”
 “아냐."
 책상에서 벗어나 교실 불을 끈다. 그 애는 어느새 문가에 서 있었다. 나를 기다리는 거야. 나는 최면처럼 내게 속삭인다. 가야 한다. 교실도 복도도 모두 어둡다. 내가 나오자 그는 문을 잠근다. 우리는 계단을 내려간다. 현관에도 아무도 없다. 비만이 우리를 반긴다. 퍼붓고 있다. 이미 웅덩이가 이곳저곳 생겨 있었다. 나는 우산을 편다. 작다. 그 애는 나보다 먼저 걸어간다. 비를 맞고 있다. 이미 젖어 있던 어깨가 더 젖는 것이 보인다. 견딜 수 없어진다. 나는 그 애를 따라 뛰어간다. 웅덩이를 밟았는지 양말이 축축해진다. 마침내 그 애에게 우산을 씌워준다.
 “나 이 앞에서 버스 타면 되니까 그냥 거기까지만 데려다줘.”
 그 애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는다. 아니다. 비에 가려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의무적으로. 우리는 빗길을 걷는다. 지나가는 차의 전조등이 빗길에 비친다. 우리의 어깨는 모두 조금씩 젖어 든다. 평소였다면 무슨 말이라도 했었을 텐데 아무 말도 꺼낼 수 없다. 그 어떤 말도 지금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게 느껴진다. 버스 정류장에는 사람이 없다. 나와 그 애만 있다. 버스가 빨리 왔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우산을 그 애에게 다시 돌려 준다.
 “조심해서 가. 오늘 고마워.”
 그 애는 어. 하고 짧게 대답한다. 나는 버스에 올라 그 애를 본다. 내가 건넨 우산을 접고 있다. 왜야. 나는 대답 없는 물음을 속에서 꺼낸다. 그리고 그 애는 창 너머에서 아무것도 쓰지 않고 빗길을 걸어가기 시작한다. 비는 여전히 세상을 수몰시킬 듯 쏟아져 내리고 그 애의 등은 젖어 간다. 내 손 역시 아직 그 애가 건네 줬던 손잡이의 빗물 때문에 젖어 있다. 버스가 출발한 뒤에도 나는 빗속에서 그 애를 찾으려 애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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