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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에나] 입맞춤 세 번이면 회피 불가능

아키토 X 이혼한 에나 / 2022. 08. 09

기억의 조각 by 匿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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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 근친

마지막 아키토와 에나의 대화는 키에님 (@AkitoS2Ena)의 멘션에서 착안했습니다. 연성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나가 시노노메 에나로 돌아왔다. 각종 이혼 절차는 결혼 절차보다 훨씬 복잡했다. 둘이 하나가 되는 것보다는 하나가 둘이 되는 일이 더 어려운 법이다. 시노노메 남매가 각자로 한 차례 분리될 때 그러했듯이. 에나의 이름 앞에 따라붙는 성이 다시금 시노노메가 되었다는 게 어쩐지 우리가 결혼한 것만 같았다. 시노노메 에나. 역시 이쪽이 더 잘 어울렸다. 몇 년간 부르지 못했던 이름을, 나는 곱씹는다.

 그랬다. 에나는 용케 결혼했었다. 그 여자에게 아까울 정도로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부모님도 비슷했던 것 같다. 곱게 키운 딸을 맡길 수 있을 것 같다나 뭐라나 마음에도 없을 소리를 했다. 곱게 키운 적도 없으면서. 에나는 아버지로부터 별별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것을 그대로, 제 방에서 표출했다. 물건을 집어 던지고, 울고, 소리를 질렀던 에나를 기억한다. 걱정한답시고 방에 들어가서 한마디 해주면 베개는 어김없이 내 얼굴로 날아왔다. 이따금 정도가 심할 때는 나를 할퀴기도 했다. 그런 애가 전남편 옆에서는 늘 웃었다. 예쁜 얼굴이었다. 항상 그렇게 웃고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귀찮은 일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에나는 제 성질을 오래 억누르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냥 타인과 맞물리지 못했던가. 시노노메 에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나는 안도했다.

 에나의 비위를 맞춰줄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었다. 저 성질 맞추기가 여간 쉽지 않아야지. 서류를 접수한 에나가 뭘 보냐는 표정으로 흘겨본다. 에나의 왼손 약지는 비어 있으면서도 뚜렷하게 반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얼마 전까지는 그 자리를 감싸고 있던 무언가가 있었던 것처럼. 나는 거기에 있던 것을 알고 있다.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는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던 반지였다. 예물을 고를 때 따라갔던 기억이 났다. 에나의 전남편은 부인될 사람의 취향을 영 몰랐던 모양이다. 아니면 에나가 티를 내지 않았던가. 전남편이 고른 반지를 보고 에나는 나를 팔꿈치로 쿡쿡 밀었다. 자기는 적극적으로 말할 자신이 없으니 너라도 말해보라는 심보였겠지.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자기야, 나는 이것보단 저게 더 좋은 것 같은데.”

 “그래요, 제가 보기에도 저게 더 두 분께 훨씬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이를테면 이랬다. 자기라는 호칭이 역겹게 들렸다. 나는 치솟는 구역질을 억누르고 언제나 그랬듯 연기를 했다. 안 그러면 에나의 하이힐에 발가락이 부러질 것 같았다. 결국 두 사람은 명목상으로는, 신부의 남동생이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반지를 예물로 결혼하게 됐다. 실상은 신부 의견의 반영이었으나 사실 내가 보기에도 에나가 고른 게 훨씬 예쁘기는 했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들의 사랑은 고작 몇 년에 지나지 않았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사유를 묻지는 않았다. 나 역시 그러했다. 궁금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물어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다만 좋지 않게 헤어진 것은 아닌 듯했다. 에나는, 이따금 그 사람 얘기가 나오면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낯이었다. 그러니까 독립하기 전에는 평생을 ‘시노노메 에나’와 같이 살았던 시노노메 아키토가 모르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게 너무나도 싫었다.

 “어이, 에나.”

 “뭐.”

 “팬케이크라도 먹고 들어갈래?”

 “귀찮아. 포장해서 가.”

 에나는 변했다. 나는 뒤통수를 벅벅 긁는다. 시노노메 에나는, 나의 누나는 쓸데없이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다. 막 나온 팬케이크를 앞에 두고도 수십 장을 찍어대고 나서야 먹어도 된다고 포크를 내밀곤 했다. 에나의 SNS에는 수십, 수백 장의 사진 가운데 가장 예쁜 것만 올라갈 수 있었다. 포장은 모양이 뭉개진다고 싫어했다. 에나의 계정에 새로운 사진이 올라오지 않은 지도 제법 오래 되었다. 팔로우는 하지 않았지만 계정을 외워버리고 말아 종종 들어가고는 했다. 아니, 자주. 나는 우리가 좋아하던 팬케이크 가게로 발을 옮겼다. 에나는 키도 발도 작아 걸음이 나보다 훨씬 느렸고 거기에 맞춰주는 게 언젠가부터 생긴 내 습관이었다. 언제 들었는지도 짐작되지 않는, 그런 오래되고 낡고 먼지 쌓인 습관.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를 서랍 속 짐을 닮았다. 우리는 제법 거리를 두고 걸었다. 에나는 나와 가까이 있기 싫어하는 것만 같았고 내게는 그런 에나에게 다가갈 이유가 없었다. 넓은 도로 위에서 우리는 완벽한 타인이었다. 가게까지 뻗은 길이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에나가 이혼을 선언하고 전남편과 완벽하게 갈라서 집으로 돌아온 뒤 둘이서 처음으로 걷는 길이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게 껄끄러웠다.

 주문한 팬케이크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도 고역이었다. 원래 이랬던가. 나는 에나가 결혼하기 전을 떠올린다. 그때는 이렇지 않았다. 에나는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울고 소리치고 성질을 부렸으며 그런 밤이면 내가 작작 좀 하라고 방문을 두들기곤 했다. 지금의 에나는 멀쩡했다. 화를 내지도 울지도 않는 게 소름 끼쳤다. 그러면서도 팬케이크 계산은 한 살 터울 남동생에게 맡기는 것이 더더욱 그랬다. 나는 평생 미혼으로 살아왔는데. 결혼까지 한 번 하고 왔으면 살 때도 되지 않았나. 닿지 않을 불평을 웅얼댄다.

 주문하신 팬케이크 나왔습니다. 이런 가게가 으레 그러하듯 점원은 웃는 상이다. 목소리가 나긋나긋했다. 박스째로 예쁘게 포장된 그것을 내게 건네준다. 당연히 나였다. 에나는 들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상자는 따뜻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왔던 길을 그대로 밟는다. 가게 안도 그랬는데 거리에 온통 교복 차림인 아이들이 널렸다. 장소가 장소라서 그럴까. 에나가 오래전 다녔던 중학교의 교복이 꽤 자주 보였다. 카미고도 마찬가지였다. 교복도 거리도 그때와 다를 게 없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 속에 있었다. 정확히는 에나의 과거였다. 나는 나의 과거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내가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에나 뿐이었다. 화구를 샀을 에나. 늦은 시각에 교복 차림으로 배회했을 에나. 이따금 친구와 함께 쇼핑했을 에나. 나와 팬케이크를 먹던, 에나. 에나를 흘끗 바라본다. 아무 감흥 없는 얼굴이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나는 저 얼굴이 팬케이크를 앞에 두고도 변함없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눈이 마주친다. 고개를 돌린다. 에나는 잠깐 눈을 흘길 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께서 계실 시간이 아니기는 했다. 에나가 접시를 꺼내고 팬케이크 포장을 푼다. 모양이 조금 무너져 있었다. 당연했다. 에나는 사진도 찍지 않는다. 옛날에는 이런 것도 소재가 된다며 냉큼 카메라를 들이밀곤 했다. 그런 모든 부분에서, 나는 새삼스레 변화를 실감한다.

 “안 먹어?”

 “먹을 거야.”

 우리는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팬케이크 하나만 달랑 놓여 있는 식탁은 어딘가 넓다. 우리는 말없이 팬케이크를 먹는다. 원래 이런 맛이었을까. 미지근했다. 달고 폭신한 식감조차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 우리는 팬케이크를 좋아했는데. 어쩌면 그냥 그 자리에서 먹고 오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게 훨씬 나았다. 에나는 사진도 찍지 않고 묵묵히 팬케이크를 먹었다. 원체 우리가 대화를 자주 나누는 편은 아니었으나 이런 분위기는 드물었다. 숨이 막혔다.

 “맛없다.”

 “그럼 내가 다 먹는다.”

 “그러던가.”

 에나는 맛있었나보다. 나는 포크를 내려놓는다. 자리를 뜨지는 않았다. 말없이 팬케이크를 먹는 에나를 본다. 누나를 본다. 이혼한, 시노노메 에나를 본다. 전의 성이 무엇이었는지는 구태여 떠올리지 않는다. 에나가 문득 고개를 든다. 이리저리 흔들리던 시선이 내 입가에서 멈춘다.

 “뭘 봐.”

 “너 입에 크림 묻었어. 나이가 몇인데.”

 혀를 쯧, 찬다. 나는 머쓱하게 입가를 혀로 쓸었다. 단맛이 옅게 났다. 에나는 여전히 물끄러미 나를 본다. 그러다가, 몸을 일으킨다. 자리를 뜨려는 것처럼. 기다려 준 사람 민망하게. 그러나 에나는 제 방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발걸음이 향하는 방향은 내 쪽이었다. 우리의 구도는 역전되어 있다. 나는 시노노메 에나를 올려다보았다. 아주 잠깐이었다. 에나가 입을, 맞춰 왔다. 눈을 감을 수 없다. 에나도 그랬다. 긴 속눈썹이 인상적이었다. 남매임에도 각자 색이 다른 눈동자에 서로가 비친다. 에나가 입술에 바른 립스틱 맛이 났다. 그 정도로 가벼운 접촉이었다. 나는, 에나를 밀어낸다. 밀어낼 수밖에 없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에나는 밀려난다. 애초에 밀려날 생각으로 행동한 사람처럼.

 

 “미쳤냐?”

 “미치긴 뭘. 미친 건 너겠지.”

 “너 진짜…….”

 입술을 손등으로 문질러 닦는다. 짙지 않은 분홍색이 묻어 나왔다. 불쾌하지는, 않았다. 다만 떠올리게 되는 기억이 있었다. 우리가 동시에 떠올릴 날이 있다. 우리는, 그러니까 시노노메 에나와 시노노메 아키토는 이미 입술을 겹친 적이 있다. 그것도 에나의 결혼식 날에. 나는 그날을 기억한다. 잊을 수 없다. 잊히지도 않는다. 신부 남동생은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마음에도 없는 생글거리는 표정으로 낯선 사람들을 접대하다 보면 쉽게 지치고 만다. 하물며…… 됐다. 그 얘기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거기에는 정신과 육체가 모두 포함됐다. 나는, 명백하게 지쳐 있었다. 웬일로 비어 있는 신부 대기실에 다짜고짜 들어갈 정도로는 그랬다. 에나의 친구는 절대 많지 않았다. 고등학교는 물론이거니와 대학에서도 그랬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프리랜서로 그림 관련 일을 해서 사람을 접할 기회 자체가 드물었다. 남편을 어떻게 만났는지도 듣지 못했다. 묻지 않았다. 아버지는 몰라도 어머니는 어련히 알고 계시겠지. 그럼에도 신부 대기실은 덕담을 건네러 온 사람들로 한참을 북적이곤 했다. 지금은 아니었으므로 나는 편하게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자잘한 장식이 달린 머메이드라인 웨딩드레스는 에나에게 꽤 잘 어울렸다. 저 드레스 입겠다고 몇 달을 고생했는데 어울리지 않으면 손해였다. 제 버릇 못 버렸는지 휴대폰을 들고 연신 사진을 찍던 에나는 문이 열리자 환하게 웃더니 들어오는 사람이 나라는 걸 보자마자 표정을 구겼다.

 “누나.”

 “별일이네. 너한테 누나 소리도 다 듣고.”

 “진짜 결혼할 거야?”

 “당연하지.”

 “그 사람이랑 행복할 자신 있어?”

 “있으니까 하는 거야. 너도 나중에 알게 될걸.”

 입이 자연스레 열렸다. 내뱉는 모든 말이 전부, 충동적이었다. 목소리가 이질적이었다. 나는 이 질문에 책임을 질 자신이 없었다. 에나가,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눈앞이 흐렸다. 에나. 시노노메 에나. 나의 누나. 고작 조금 빨리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내 인생 전체를 흔들어 놓은 사람이 나를 떠나려 하고 있었다. 흔들리다 못해 무너진 삶이 나를 빤히 응시했다. 나는 그것을 무시한다. 내 시선이 향하는 것은 거행될 식의 신부였다.

 “왜 그런 얼굴로 봐?”

 “……”

 답하지 않는다. 그저 움직인다. 나는 에나를 내려다보았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내가 아는, 그리고 모르는 여자는 불쾌한 얼굴을 한다. 고개를 내렸다. 우리의 얼굴은 가까이에 있었다. 서로가 들이쉬고 내뱉는 호흡이 닿는다. 에나는 피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충동이 수작을 부리고 나는 거기에 기꺼이 흔들린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았다. 가벼운 접촉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충분했다. 에나는 나를 밀어낸다. 내 몸은 흔들리지 않는다. 당연했다. 그러나 물러난다. 에나의 입술은 옅어졌고 내 입에 립스틱 맛이 텁텁하게 남았다.

 “미쳤구나.”

 “어.”

 그것은 나의 전부였고 우리의 종말이었다. 에나는 역겹다는, 얼굴을 했다. 알 수 있었다. 아버지를 볼 때면 저런 얼굴을 짓고는 했으니까. 그것이 나를 향한다는 게 조금은 괴로웠다. 에나는 립스틱을 꺼내 바른다. 아무 일도 없었던 낯이 된다. 그 길로 신부 대기실을 뛰쳐나왔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선연했다. 당연하겠지만 우리는 그 일을 절대 입에 올리지 않았다. 몸을 섞지도 않았고 입술이 닿은 것뿐이었다. 우리가 남매만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다만 우리가 남매였으므로. 나는 두 번째로 닿았던 입술을, 떠올린다. 부드럽고 말랑하고 달았던 입술이다. 에나는 여전히 눈앞에 서 있다.

 “너는 날 사랑하니?”

 “……”

 무감각하고 덤덤한 어조였다. 나는 그 말투가 싫다. 굳이 나를 시험하려 드는 게 같잖으면서도 미웠고, 거부할 수가 없었다. 일말의 반항으로 나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 반응조차 시노노메 에나에게는 어떠한 답으로 작용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여자가 웃는다. 시노노메 에나가. 결혼사진에서처럼 부드럽고 상냥하게. 우아한 신부의 얼굴로.

 “아직도?”

 “……”

 아직도.

 그 단어가, 귀에 박혔다. 누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이, 어쩐지 기뻤다. 글러 먹었다. 너는 언제부터 알았어. 그렇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겁이 났다. 네가 결혼하던 그날이 아닌 다른 날을 거론할지도 몰라서.

 “그렇구나.”

 에나가 다시 고개를 숙인다. 내 뒤통수를 끌어당긴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는다. 두 번의 입맞춤과는 확연하게 다른 것이었다. 선연하게 단맛이 났다. 에나는, 아무렇지 않게 입술을 벌린다. 나는 주춤거린다. 모든 게, 처음 겪는 것이었다. 작고 따뜻한 혀가, 내 혀끝을 어루만졌다. 생경한 감각이었으나, 상관없었다. 나는 눈을 감는다. 이 입맞춤이 네 변덕이라도 좋으니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바라면서. 익숙한 행위를 나누듯 혀를 섞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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