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리화랑] 마녀와 고양이
평화로운 철권 세계관. 이제 할로윈이니 내가 화랑이 고양이 귀랑 꼬리랑 방울다는거 보고 싶어서 갈기는 재미없는 빌드업. 2023년 10월 22일 연성.
화랑은 제 앞에서 너무나도 당당하게 양손을 내밀고 있는 부잣집 아가씨, 리리를 보며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빈 손도 아니고 그 양손에 들려있는 건 형태를 알 수 없는 의상과 각종... 액세서리들이었다. 그 의상들과 액세서리들을 훑어 본 화랑이 다시 한숨을 푹 쉬었다. 자신을 급하게 찾아온 손님이라는 말에 하던 훈련도 중간에 끊고 응접실로 왔더니 커피도 아니고 홍차를 우아하게 마시고 있던 리리가 저를 보더니 다짜고짜 손에 뭔가를 잔뜩 든 체 저에게 양손을 내민 것이었다.
" ...우리 도장엔 홍차 없는 걸로 아는데 "
" 그럴 줄 알고 셀프로 준비해 온거니까. 그나저나 이걸 보고도 첫 말이 그거야? "
" 기가 막혀서 말을 돌릴려고 한거야! 뭔데 이 이상한 의상들은! "
화랑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리리의 손에 들려있는 이상한 의상과 액세서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해댔다. 그래, 리리의 손에 들린건 퍼슈트 의상과 액세서리들이었다. 그것도... 고양이 쪽으로. 화랑은 제 눈에 들어온 형형색색의 퍼슈트와 오렌지 빛의 고양이 귀와 꼬리, 리본. 그리고 큼지막한 방울들의 향연에 눈이 어지럽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다 털썩 리리의 맞은 편에 앉았다.
" 그래서 이런 걸 왜 가져온거야? "
" 당신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
" ...오늘 10월 31일 화요일 아냐? "
" 하여간에 은근히 이런 쪽은 센스가 없더라. 오늘 할로윈이잖아, 할로윈! "
" 그런 기념일 같은 거 알게 뭐야. 그래서 할로원인데 어쩌라고? "
" 코스프레하고 놀자고 "
" 네네, 안녕히 가세요. 여기 손님 나가신... "
" 아, 재미 없게. 당신도 겨우 21살이잖아! 맨날 그렇게 도장에서 훈련만 할거야? "
" 나이랑 할로윈이랑 무슨 관계야. 그리고 바이크 레이싱이나 이런거면 모를까 코스프레하고 논다니. 내 취향에서 아웃이라고 "
" 댁 취향은 상관없어. 내가 그렇게 놀고 싶은거니까 "
" ...우와, 어이가 없어서 순간 말이 안나왔네. 너무 막나가는거 아냐? 난 댁 아빠처럼 무조건 오냐오냐, OK가 아니라고 "
" 우리 아빠가 백배는 더 멋지시거든? 아니 그것보다... 당신이 나한테 이럴 수 있다고 생각해? "
리리가 의기양양하게 내뱉은 말에 화랑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아, 박 터지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러고보니 며칠 전 바이크 레이싱하다가 저 부잣집 아가씨의 차를 살짝 친 것 같은데...! 기억을 떠올린 화랑이 황급히 반발에 나섰다. 아니, 그때 아무렇지 않다고 가라고 했잖아! 그 말에 리리가 코웃음을 쳤다.
" 내가 말하고자 하는건 그게 아니야. 분명 그때 당신... 백두산님한테 말도 없이 바이크 레이싱하고 있던거 아냐? "
" ...어디서 그런 훌륭한 협박술 같은걸 배웠어? 스티브냐? "
" 이름 바로 튀어나오는 걸 보니 어지간히 당신 약점을 잡고 이리저리 휘둘렀나보네 "
" ...언젠가 죽인다, 진짜 그 자식 "
" 근데 굳이 그 사람이 아니여도 당신이 백두산님한테 약한건 모두 다 알고 있을걸? 그걸 적극적으로 협상 수단으로 이용하는게 그 일뿐이지 "
아오씨, 왜 내 주위에 있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이런 인간들 뿐이야. 화랑이 제 머리를 거칠게 헤집는걸 본 리리가 작게 웃으며 홍차를 음미했다. 겉은 완전 양아치지만 속이 깊고 무엇보다 제 주위의 사람들에게만은 확실하게 지킬건 지킨다는 걸 아는 리리로서는 화랑의 이 반응이 그저 재미있을 뿐이었다. 그런 성격이라 가지고 놀기도 좋은거지만. 그나저나 제멋대로지만 자신이 믿는 사람들에게는 곁을 내주는 딱... 고양이 같은 남자야, 당신은.
" ...액세서리만 하는거면 "
" 의상은? "
" 외출 금지, 팔굽혀펴기 1000번 하고만다 "
" 어쩔 수 없네, 딜 "
퍼슈트 같은 의상을 들이밀면 무조건 액세서리는 받아들일거란 리리의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화랑은 일단 리리의 요청대로 샤워 후 옷은 가벼운 청바지에 흰 티셔츠, 그리고 철권 7 리그 때 걸쳤던 자켓을 걸치곤 다시 응접실로 돌아왔다. 이거면 되는거야? 음, 오케이. 그럼 이제... 리리가 각종 액세서리를 든 가방을 들고 음흉하게 웃는 모습을 본 화랑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리리가 처음 손에 쥔건 고양이 귀 머리띠였다. 당신 머리 색이랑 맞춘다고 돈 좀 썼지. 고작 고양이 머리띠에 돈은 무슨. 주황색의 고양이 머리띠를 보던 화랑이 퉁명스럽게 내뱉은 말에 리리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화랑의 머리에 고양이귀 머리띠를 씌우고는 이내 머리띠에 달려있는 장치를 관자놀이에 부착시키더니 허리에 착용하는 고양이 꼬리까지 착용시키게 했다.
" 뭐야, 그냥 액세서리 아니었어? "
" 이 리리님께서 그런 평범한 머리띠로 만족할 것 같아? 무려 뇌파로 작동되는 고양이 귀와 꼬리라고! "
" ...또 이상한거 사와가지고는... 아니다, 설마... "
" 메이드 인 보스코노비치! "
" 아, 그 박사 진짜! "
그 유명한 안드로이드 알리사 보스코노비치의 개발자인 제페토 보스코노비치의 발명품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버럭 화를 낸 화랑의 뇌파를 읽어낸 고양이 귀와 꼬리는 즉각 반응을 보였다. 마치 화를 내는 고양이처럼 귀와 꼬리가 바짝 선 것을 본 리리가 짝짝 박수를 쳤다. 작동 기가 막히네, 역시 제페토 박사님. 그 반응에 한숨 쉬기가 무섭게 귀와 꼬리가 평상시로 돌아갔다.
" 사실 할로윈을 즐기기 위한 것도 있지만 제페토 박사님의 이 장난감들 성능 테스트도 겸하고 있으니까 "
" 어쩐지... 아무리 그래도 아가씨가 다짜고짜 놀자고 찾아올리 없다고 했더니... 근데 왜 나야? 돈 줄테니 테스트 하자고 하면 환장하고 달려들 폴씨나 로우씨도 있을텐데 "
" 그 아저씨들이 이런 거 달고 다니는거 보고 싶어? "
" ...미안 "
아무리 그래도 그건 자기도 아니라고 생각한건지 순순히 사과를 한 화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난 괜찮다는거야? 180이 넘는 양아치 같은 남자가 이런거 하는게? 그 말에 리리가 잠시 할 말을 잃어버리고 빤히 화랑을 바라보았다. 뭐야, 왜. 그 시선에 고개를 다시 갸웃거리자 뇌파에 반응해 고양이 귀와 꼬리도 쫑긋 움직이는걸 본 리리가 손으로 제 이마를 탁치며 짧은 한숨을 쉬었다. 진짜 이런 면에선 순수한건지 아니면 진짜 자기 마스크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건지 모르겠다니까. 방울을 긴 리본 끈에 꿰어 든 리리가 말없이 화랑의 목에 리본을 나비 모양으로 묶어 달았다. 커다란 것도 있었지만 과하다고 생각해 작은 사이즈로 단 방울은 가벼운 움직임에도 맑은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나비냐, 무슨. 밝은 노을빛의 머리색과 대비되는 푸른 리본에 달린 방울을 가볍게 톡건드린 화랑의 눈 앞에 리리가... 목걸이와 목줄을 들이밀었다.
" 내가 개냐! 개목걸이는 뭔데! "
" 당신은 목줄 없으면 어디론가 자유롭게 떠나버릴 길고양이 같으니까 "
" 누가 길고양이야! "
" 액세서리만 하는거면 오케이라며? 남자가 한 입으로 두말할거야? "
" 진짜 나중에 두고보자고, 아가씨...! "
결국 투덜거리면서 순순히 붉은 개목걸이를 받아들인 화랑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본 리리가 그제서야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좋아, 대만족! 목걸이에 달린 목줄을 손에 쥔 리리가 이러니 당신이 마치 내가 기르는 호랑이 같네. 하고 말을 건냈다. 그 말에 화랑이 그래, 고양이 취급보다는 낫다만 진짜 이게 재미있냐? 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그나저나 이 꼬리 은근 긴데... 간수가 좀 귀찮겠는데. 그리고 화랑이 그 생각을 하자마자 꼬리가 스르륵 움직여 화랑의 팔에 가볍게 감겼다.
" 어라, 뭐야? 무슨 생각했어? "
" 간수가 귀찮을 것 같다고. 그나저나... 그 박사 짜증나긴 하지만 실력은 확실하네 "
" 자, 그럼 나도 준비해야지 "
언제 들어와 있던건지 리리의 노집사, 세바스찬이 남은 액세서리와 퍼슈트를 차곡차곡 정리하고는 간이 탈의실을 설치하자마자 냉큼 들어간 리리가 잠시 후 나오자 그녀는 한 명의 마녀가 되어있었다. 후후, 오늘을 위해 특별 주문 의상이지. 그녀의 기행 아닌 기행에 익숙해져있는 세바스찬이 가져온 전신 거울에 저를 비춰보며 옷매무새를 다듬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화랑이 오늘 몇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쉬었다. 마녀와 그 마녀가 기르는 고양이가 아무래도 할로윈의 컨셉인 듯 했다. 자, 그럼 내 고양아 갈까? ...내가 아가씨네 솔트냐? 제대로 컨셉에 빠져버린 그녀의 말에 투덜거리던 화랑은 이렇게 된거 그녀에게 적당히 맞춰주기로 했다. 제 목에 길게 매달린 목줄을 잡아 끝을 그녀에게 내민 화랑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미소지었다.
" 목줄까지 채웠으니 끝까지 책임지라고, 아가씨? "
" 어머, 난 내 손에 들어온건 절대 안버린다고? "
그런 화랑의 도발 아닌 도발을 유연하게 받아친 리리가 그의 손에서 목줄을 받아 손에 쥐었다. 리리가 세바스찬이 건낸 악마의 날개가 달린 작은 호박 바구니를 받으려는 걸 화랑이 대신 받았다. 사탕이 가득 든 바구니었다. 아무래도 행사를 즐길 어린 아이들을 위한 선물인 듯 했다. 아가씨는 내 목줄이나 잘 간수하셔. 무거운건 내가 들테니까. 그 말에 리리가 작게 웃더니 여기서 제일 무거운건 다름 아닌 당신 같은데. 농담을 던졌다. 그렇게 리리에게 목줄이 잡힌 체 응접실에서 나와 도장을 나가려던 화랑은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 화랑아 "
" 윽...! "
" 어머, 백두산님. 오늘 하루 대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사람을 물건 취급하냐! "
다시 버럭 소리 지른 화랑의 뇌파를 읽은 귀와 꼬리가 바짝 서는 걸 본 화랑의 사범님, 백두산이 호오 감탄의 소리를 내며 천천히 다가와 그의 귀와 꼬리를 눈으로 천천히 훑었다. 엄한 사범님 앞에서 지금 제가 어떤 모습인지 알고 있는 화랑은 긴장했지만 백두산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 뇌파를 읽어 작동하는건가. 개발자는... "
" 메이드인 보스코노비치랍니다, 백두산님 "
" 역시 제페토 박사인가. 기술력은 제일이군 "
꽤나 여유롭게 리리와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걸 조금 어이없게 바라보던 화랑은 백두산의 시선이 저에게로 향하자 다시 긴장했다. 흐음, 화랑의 손에 들고 있는 사탕 바구니를 본 백두산이 가볍게 웃으며 그 말을 내뱉었다. trick or treat. 네? 백두산의 말에 무의식 중에 되물어 본 화랑은 리리가 손으가락으로 가볍게 바구니를 톡톡 건드리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바구니에서 사탕을 하나 꺼내 백두산에게 건냈다. 사탕을 건내 받은 백두산이 허허 웃으며 가볍게 화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뭐, 가끔은 이렇게 쉬는 날도 있어야겠지. 오늘 하루는 휴식이라고 생각하고 즐기고 오너라. 그럼 리리양, 잘 쓰고 돌려주게나 "
" 걱정마세요, 백두산님. 다만 그 말은 저 말고 다른 사람에게 해야 할 듯 하네요 "
" 하긴 그렇긴 하지. 그럼 잘 다녀오거라, 화랑아 "
...뭔가 마지막에 이상한 내용이 있던 것 같은데. 화랑이 그 말을 곱씹기 전에 리리가 목줄을 잡아당기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자자, 빨리 가자. 시간이 부족하다고! 알았으니까 잡아 당기지마, 말로 해! 우당탕탕 큰소리를 내며 도장을 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백두산이 사탕을 까 입에 넣었다. 고급스런 단맛이 일품이었다. 뭐, 이런 날도 있어야겠지. 제 1번 제자가 가끔 몰래 빠져나가 바이크 레이싱 같은 일탈을 하는걸 잘 아는 백두산은 오늘 같은 일은 일탈도 아니지, 라고 중얼거리다 조용히 제 폰을 꺼냈다. 그럼 나도 오늘 같은 날엔 좀 쉬어볼까. 간만에 리나 불러다 저녁이나 먹어야겠군.
그렇게 리리에게 끌려나오다시피 도장을 빠져나온 화랑이 도착한 곳은 한창 할로윈 퍼레이드로 시끄러운 도시에서 가장 큰 공원이었다. 그럼 연락하면 마중 나와 세바스찬? 리리의 그 말을 끝으로 가버리는 차를 보던 화랑은 자, 그럼 즐겨볼까? 라는 말을 하고는 제 목줄을 바로 잡는 리리에 작게 한숨을 쉬고는 귀와 꼬리를 살랑거리며 그 퍼레이드에 합류했다. 설마 아는 인간들을 만나지는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리리와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던 화랑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음? 로슈포르가의 아가씨와... 자네는 왜 그 꼬라지야? "
" 꼬라지라니, 이 불량 경찰이 "
" 안녕하신가요, 레이씨? 오늘 같은 날도 바쁘군요 "
" 이런 날이니 더 바쁘지.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있으니 안전을 더 챙겨야하니까 "
둘을 불러 세운 건 경찰인 레이 우롱이었다. 경찰복까지 챙겨입은 레이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손에 든 체 가볍게 돌리고 있으려니 화랑의 귀와 꼬리가 마음에 안든다는 휙휙 크게 움직였다. 아, 맞다. 그때 생각해보니 당신도 헬멧 안썼으면서 누가 누구한테 딱지 떼는거야! 진짜 사범님한테 들키기 전에 수습해서 다행이지! 고양이가 화를 내는 것 마냥 귀와 꼬리가 바짝 선 화랑의 말에 레이가 코웃음을 쳤다.
" 나와 그 쪽의 헬멧 미착용이 쌍방이라고 해도 속도위반이 남아있으니 딱지 떼는건 당연하지 "
" 아오, 진짜. 확 헬멧 미착용으로 찔러버릴까보다 "
" 증거 불충분으로 사건 종결이네 "
" 이 불량 경찰이 진짜 "
혀를 찬 화랑의 목줄을 리리가 잡아당겼다. 자자. 경찰님 방해하지말고 가자고, 고양아. 이름으로 좀 불러줄래, 아가씨? 짜증이 난 듯 꼬리가 난폭하게 휙휙 움직였지만 리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화랑을 재촉했다. 결국 그런 리리의 성화에 걸음을 옮기려던 화랑이 무언가 생각난 듯 바구니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손가락으로 튕겨 레이에게 건냈다. 사탕을 가볍게 모자로 낚아챈 레이를 향해 그거나 먹고 한눈 팔지 말고 일하셔, 불량 경찰. 이라고 말한 화랑과 그럼 수고하시길, 레이씨. 라며 인사를 건낸 리리가 떠나고 레이는 받은 사탕을 까 입에 던져넣으며 다시 모자를 썼다. 그러다가 문득.
" 그러고보니 왜 로슈포르가의 아가씨와 같이 있는거지, 그는 분명... "
레이와 헤어진 후 두 사람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꼬라지가 웃기다며 화랑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스티브나 - 그러다가 화랑에게 맞을 뻔 했지만 - 오늘도 역시나 돈을 벌기 위해 할로윈 인형탈 알바 중이던 폴과 로우. - 댁들은 대체 나이값 언제 할거야? / 절대로 배워서는 안되는 어른의 표본이군요. / 자네들 우리한테 너무하지 않나? / 일단 불쌍하니 사탕이라도 하나씩 드리죠 / ...그거 아주 고~맙네 - 오붓하게 데이트 아닌 데이트 중인 라스와 알리사까지.
" 그건 박사님이 만드신 뇌파 고양이 장난감 세트군요. 사용 소감은 어떠신가요? "
" 아주 좋아. 재미있어! "
" 착용한 건 난데 왜 아가씨가 대답하는거야? 그나저나 두 사람은 여기서 뭐하는건데? "
" 알리사가 할로윈 문화에 대해 알고 싶어해서 말이지. 그나저나... 왜 로슈포르가의 아가씨와 있는거지? 그는? "
" 나한테 묻지마, 하루종일 연락 없는 건 그 녀석도 마찬가지니까. 그리고 오히려 나보다 그 녀석이 뭐하는지는 당신이 더 잘 알지 않아? 미시마 재단 소속 북유럽 담당 위그드라실의 대표님? "
하루종일 연락도 안되는 자신보다 그와 같은 재단 소속인 당신이 더 잘 알지 않겠냐는 뜻의 말에 라스는 말없이 어깨를 으쓱 들어보였다. 그와 같은 미시마 재단인 것 맞지만 자신이라고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라스와 알리사하고도 헤어진 두 사람이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사람들이 묘하게 많아진다고 느낄 찰나. 리리의 팔에 꼬리가 조용히 감겨왔다. 어...? 그와 동시에 리리보다 화랑이 더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벌써 지친거 아니지? 뭐, 아가씨한테 인파를 뚫게 할 수는 없으니까. 빨리 쫓아와. 못쫓아오면 버리고 가버린다. 말과 달리 제 팔에 감긴 꼬리는 풀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여간에 말이랑 행동이랑 너무 다르잖아, 당신. 리리가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빨리라는 말과 달리 화랑의 걸음거리는 평상시보다 훨씬 더 느리고 부드러웠다. 아마도 리리 자신을 배려하는 걸테지. 정말이지, 싸울 때랑은 너무 다르단 말이야. 하지만 배려하는 와중에 직접 손을 내밀지 않는건 또 그 답기도 하고. 진짜 고양이 같단 말이야... 화랑이 길을 열어 사람이 조금 한산해진 곳에 도착한 리리가 벤치에 앉아 가볍게 기지개를 펴며 화랑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 홍차가 마시고 싶어졌어! "
" 여기에 홍차가 어디있어, 이 아가씨야 "
" 여기서 조금만 내려가면 내 단골 카페가 있으니까 "
" 이 모습으로 이젠 아예 심부름까지 시키겠다? 에휴. 마지막이야 "
지친건지, 아니면 대꾸할 기력도 없는건지 질렸다는 표정을 하던 화랑이 스르륵 리리가 놓은 목줄을 갈무리하며 휙 뒤돌았다. 금방 올테니까 얌전히 있으라고, 리리. 팔랑팔랑 가벼운 발걸음으로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지는 화랑의 뒷모습을 보던 리리가 다리를 꼬고 앉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내 심미안에 들어오는 고양이는 별로 없는데... 당신 것만 아니면 내가 어떻게든 손에 넣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고양이라니까, 그는. 혼잣말인지 아니면 누군가와 대화 중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던 리리가 이내 양손을 들어올렸다. 걱정마, 집사 있는 고양이는 건드리지 않으니까. 그럼 이제 돌려줘야겠지, 즐거웠어. 리리가 제 폰을 들어 단축번호 2번을 꾹 눌렀다. 그리고 잠시 후.
" 응, 마중 나와줘. 응? 그? 아아, 그라면 자기 집사가 데리러 올거야. 왠지 눈꼴 시린 장면보게 될 것 같으니 빨리 집에 가야겠어. 도착하면 따뜻한 홍차 준비해 달라고, 세바스찬? "
걷기 시작한지 얼마나 됐을까 문득 화랑의 머리 속에 한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잠깐... 이 근방에 카페 같은 건 못 본것 같은데? 무엇보다 그 아가씨가 제 집사가 끓여준 것 이 외에 다른 홍차를 입에 대는건 못봤는데? 설마 또 놀려먹은건가? 멈칫, 걸음을 멈춘 화랑의 고양이 귀와 꼬리가 쫑긋 움직인 순간.
" 산책은 재미있었어, 화랑? "
순간 하늘에서 떨어진 누군가가 화랑의 허리에 팔을 감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이마에 선명하게 나타난 문양과 붉게 변한 눈. 그리고 등에 나타난 새의 것을 닮은 날개까지. 화랑이 인상을 찌푸리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 정말이지... 어디까지가 그 아가씨랑 합의를 본 부분이야? "
" 하하, 그건 이따가 차분하게 알려줄게. 마중 나왔어, 화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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