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조각

5부 20~21

🍀 by 린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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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어이! 잠깐 기다리라고.”

그렇게 외친 것은 그림이었다. 이 녀석,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유키의 한숨과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그림에게로 꽂혔다.

“계속 따돌리기나 하고! 불합격시킨 주제에 왜 우리까지 여기에 부른 거냐고!”

그림이 화난 목소리로 외칠 때 그 자리에 모인 1학년들은 모두 같은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유키 쟤, 왜 평소처럼 그림을 혼내지 않지? 그도 그럴 것이, 평소였더라면 지금쯤 그림은 유키에게 붙들린 채 ‘지난번에 분명 어른에게는 존댓말을 쓰라고 가르쳐 줬던 것 같은데?’ 따위의 잔소리를 듣고 있었을 터였다.

“그에 대해서는 제가 설명하도록 하죠! 저, 친절하니까요.”

“후냣! 학원장! 매번 갑자기 불쑥 튀어나오면 안 돼! 깜짝 놀란다고.”

“그건 실례. 놀래킬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유키가 한숨을 내쉬며 학원장을 노려보았다. 학원장은 유키의 한숨을 무시하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흐흠! 당신들도 선발 멤버와 함께 모인 이유, 그것은! 이 주말부터 보컬 & 댄스 챔피언십 본선까지 4주 동안, 출전 멤버의 강화 합숙을 할 숙소로 고물 기숙사를 대여하고 싶어서입니다!”

“강화 합숙?!”

“빈 방이 있기는 한데—”

쟈밀이 유키의 말을 끊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학원장. 같은 학원 내에서 합숙을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저희는 소속 기숙사에 각자의 방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팀워크를 함양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신들은 기숙사도, 학년도, 태어난 장소나 문화도 다르지요? 함께 생활함으로써, 상호 이해를 깊게 하는 겁니다.”

“확실히, 일류 음악 그룹이 팀워크를 높이기 위해서, 숙식을 함께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지.”

“폼피오레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러면 다른 기숙사의 멤버는 역시 생경함을 느껴 버리겠죠. 하지만, 고물 기숙사에서라면 전부 같은 조건에서 합숙을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미리 말해줘야 하는 것 아니야? 유키가 텅 빈 동태눈깔로 학원장을 쳐다보다가 다른 사람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보아하니 빌과 루크는 저 내용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 그래. 나한테 알려줄 거란 기대 한 적 없다. 실시간으로 유키의 눈이 텅 비어가는 걸 보면서 에이스와 듀스가 자기들끼리 소근거렸다. 야, 듀스. 쟤 상태 이상하지 않냐? 잘 모르겠는데. 어디가? 됐다. 걍. 카림이 즐거운 미소와 함께 염려사항을 말했다.

“기숙사 섞어서 합숙이라니, 엄청 재밌을 것 같아! 그래도, 나랑 쟈밀이 기숙사에 없는데, 괜찮은 거야?”

“그것에 관해서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학원장인 제 권한으로, 참가 멤버를 전면적으로 지원할 테니까요. 저, 무~척 친절하니까요. 학원으로서도, 당신들이 다른 학교를 이기고 ‘세계 제일’이 되었으면 하고 있고요.”

에펠이 유키와 그림 쪽을 쳐다보았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서서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그림이 화난 얼굴로 항의하는 것을 말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기다리라고! 우리, 선발 멤버도 아닌데 어째서 협력해야만 하는 거야? 절—대로 거절이라고.”

“이런, 그림 군, 그런 말을 해도 괜찮겠습니까? 만약 기숙사를 합숙소로 제공해준다면 대단히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요.”

“우냣? 뭐, 뭐야, 그 좋은 일이라는 게…….”

학원장의 말에 그림이 눈동자를 굴렸다.

“만약 팀이 우승했을 시에는, 나와 루크. 두 사람 몫의 상금을 고물 기숙사에 기부할 거야.”

유키가 다시 입을 연 건 그때였다.

“어째서인가요?”

“어라, 나는 그런 병아리 눈물만 한 출연료, 관심 없는걸.”

“빌을 위해 일해주는 서포트 멤버에게 예를 갖추는 건 당연한 거야.”

아, 예. 유키는 빌과 루크의 얼굴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시선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얼마만큼의 마들을 받을 수 있을지 셈하는 그림의 머리꼭지였다.

“500만 마들을 7개로 나눠서, 두 사람 몫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에, 그러니까…….”

“약 142만 마들.”

“후냣!? 그럼…… 참치캔을 4000개보다 많이 살 수 있다고!”

“비어 있는 방을 제공하고, 서포트하는 것만으로 찬스가 손에 들어오는데도 절~대로 싫은 것이군요. 고물 기숙사를 숙소로 써도 좋다면 수도관 등의 장비를 교체해줄까 했는데 말이죠. 하아. 정말로 유감입니다. 이 이야기는 없는 걸로…….”

수도관 운운하는 말은 유키에게 하는 것임이 틀림없었다. 며칠 전 수도에서 물이 새는 것 같다고 말했으니까. 치사해 죽겠다. 유키는 학원장을 쳐다보다가 그림을 흘끗 내려보았다.

“으으윽……. 참치캔 부호가 될 찬스……. 저기, 유키. 어떻게 할거야?”

‘제발 허락해 줘.’라는 말이 얼굴에 쓰여 있는 것 같았다. 유키가 오늘의 세 번째 한숨을 쉬었다. 그림에게는 미안하지만.

“글쎄, 나도 별로 내키진 않는데요.”

“유, 유키?”

예상 밖의 대답인지 학원장은 잠시 굳어 말이 없었다. 정적을 깬 것은 빌의 목소리였다.

“똑똑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멍청하구나. 너.”

“애초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아요. 언제는 제 처세가 똑똑한 사람이 할 법한 것이었나요?”

“142만 마들과 시설 정비면 나쁘지 않은 조건이야. 괜한 자존심 부리지 말고 평소처럼 굴어.”

“그런 계산이면 옥타비넬에서도 받아줄 텐데요. 그쪽 기숙사장과 대화를 나눠보시는 건 어떠실까요.”

“……너, 장난하니?”

“선배야말로 할로윈 접객 장소로나 쓰일 폐허에 묵으실 이유가 없지 않나요?”

“유키 군. 달리 원하는 게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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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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