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는

엔란 by 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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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즈노미야 란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잠시 시간을 확인했다. 하교 시간,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교문을 통과할 시간.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교문 앞에 서 있는 란을 두어번 힐끔거렸지만, 이내 큰 관심을 갖지 않고 지나간다. 학부모가 데리러 오는 일도 종종 있었기 때문에 (학부모라기엔 젊어보이기는 했지만) 그다지 이상할 것 없는 풍경이었다. 그는 코트 주머니에 휴대폰을 다시 밀어넣으며 고개를 들었다.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기다림은 때때로 불안하면서도 즐거웠다.

잠시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면, 교문 안 쪽에서 익숙한 인영이 걸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엔은 친구(당연히 같은 학교에 다니는 호즈노미야다.)와 함께 하교 중인건지, 줄곧 밝은 얼굴이었다. 즐거운 이야기를 들은 건지 작게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을 보면서 란은 잠시 그를 부르는 것을 멈췄다. 웃고 있는 그를 바라보는 것은 묘한 기분이었다. 언제나 경계섞인 표정으로 바라보던 어린 그가 떠오르기도 했고. 어느새 밝아진 그를 보면 다정한 마음이 기뻐하고는 했으나 란은 때때로 스스로의 그런 기쁨을 의심해야 했다. 그에게 있어 다정함은 곧 욕망이나 다름없으니. 그가 손을 내밀기만 하면 쉽사리 부서질 것을 알았기에 더욱 그랬다.

"앗, 형님!"

이엔은 금방 거기에 서 있는 란을 발견한 건지 활짝 웃으며 쪼르르 달려왔다. 란은 여태껏 피어오르던 자신의 상상을 지워내듯이 부드럽게 웃는다. 그는 숨기는 것에 능숙했다.

"웬일이에요? 미리 연락주셨으면 얼른 나왔을텐데."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미리 연락하면 재미없잖아..."

란은 다정하게 말하며 손을 뻗어 이엔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었다. 꼭 주인을 본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 기세이던 이엔은 옅게 뺨을 붉힌다. 란의 손이 머리에서 미끄러져 내려가 잠깐 그의 목덜미에 닿았다가,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내리고 만다. 언뜻 느껴지는 묘한 기분은 이엔의 뒤를 따라오며 저는 안보이냐고 툴툴거리는 친구에 의해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사실 사거리에 새로 생긴 카페 쿠폰을 받았거든... 같이 가고 싶어서. 시간 있어?"

"전... 당연히 있죠."

"히사루는?"

순간적으로 이엔의 시선이 그에게 닿았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곤, 고개를 저었다. 유리카 누나랑 방과 후에 같이 서점가기로 했어. 하는 그의 대답에 란은 조금쯤 눈썹을 늘어뜨렸다. 아쉽다는 표정에 히사루는 잠깐 이엔을 보고는 그럼 난 먼저 간다, 하고 뛰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엔은 부러 옅게 잔기침을 했다. 란은 언제나처럼 미소지은 채로 이엔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어쩔 수 없네. 그렇지? 이엔은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그에 대답하면서도 민망한지 조금 어색한 표정이었다. 란은 손을 뻗었다가, 그런 이엔의 뺨을 톡 건드렸다.

"형님?!"

"둘이서는 싫어?"

"시, 싫을 리가요....! 그런게 아니라."

형님이 혹시 싫을까봐요... 수줍은 듯 살짝 내리깔아진 속눈썹이 금빛 눈동자에 그림자를 드리우면 그 빛은 다소 어둡게 빛나고 만다. 아주 쉽사리 부서져버릴 거라고. 란은 한 손으로 잠시 제 입가를 가렸다가, 그대로 그 손으로 이엔의 손을 잡았다. 머뭇거리던 손이 꼭 힘을 주어 마주 잡아오면 그는 눈매를 둥글게 휘어 웃어버린다.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체온은 따뜻하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심장 소리는 조금 빨랐다. 어쩌면 조금 아플 정도로. 이엔이 슬퍼하면 아주 슬플거야. 그렇지? 누구에게 건네는 지 모를 물음은 하얀 입김과 함께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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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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