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열 (단편)

[백호열] 기습은 의외의 순간에

* 둘 다 성인

* 보고싶은 부분만 쓰는 거라 짧을 예정

백호 군단은 백호가 농구의 성지라는 미국행 티켓을 거머쥐고, 떠나면서부터 백호 없는 백호 군단이 되었다. 백호의 성장은 군단의 성장 촉매와도 같아서, 저마다 미국으로 떠나는 백호의 뒷모습을 보며 인생의 목표를 하나씩 잡게 되었다. 게으르게 다니던 학교도 남은 시간이라도 성실히 다녔고 이미 손을 떠나보냈던 책을 택하기 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고찰하며 성장의 발판을 디뎠다. 등치 커다란 막내같기만 하던 존재가 그 큰 키만큼 거대한 존재가 되는 순간을 모두 지켜보고 함께 응원하고 그의 농구를 돕던 시기는 그들에게 꽤나 즐거운 성장 동기가 되었다. 백호가 저렇게 크게 자랐는데, 우리도 뒤쳐질 수는 없지! 가 그 이유였다.

백호가 크게 성장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만큼

우리 역시 그에 걸맞는 사람이 되리라.

백호 없는 백호 군단은 그렇게 미래를 위해, 짧은 이별을 택했다.

백호 없는 백호 군단이 백호 있는 백호 군단으로 다시 모인 것은 약 10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결혼은 커녕 연애도 못 할 놈들이 하나둘 연인을 만들고 결혼을 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렇게 한 곳에 모인 것은 처음이었다. 백호 없는 백호 군단 시절 각자의 인생을 위해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었다. 머나먼 미국 땅에서 백호가 하는 경기를 보면서, 백호의 인터뷰에서 친구에 대한 키워드가 나올 때마다 거론되는 자신들의 존재가 그에게 오점이 되지 않게. 그것은 백호의 자존심이기도 했고 동시에 백호 군단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의 과거를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미래를 향한 걸음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다. 백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얼룩진 학교 생활에 대해서 호쾌하게 얘기했다. 그런 백호에게 질 수 없었다. 백호 없는 백호 군단은, 백호 있는 백호 군단으로 다시 모일 때까지 그렇게 의지를 불태우며 앞으로 나아갔다.

“와, 제수씨 너무 예쁜데. 제수씨가 어쩌다 너 같은 놈을 만난 거냐?”

“어허! 그런 말이 어딨냐? 우리가 얼마나 환상의 짝꿍인지 알아?!”

“넌 그래서 이제 결혼 준비한다고?”

“아마 내년 쯤에 할 것 같아. 준비해야할 게 많더라고.”

“일단 너는 살부터 빼야할 것 같은데! 그래가지고 턱시도가 몸에 맞는 게 있겠냐!”

“뭐라고! 이 고급진 보-디에 감히!”

웃음이 터졌다. 서로의 미래에 다시 만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낄낄거렸다. 잘 나간다까지는 못 하더라도 다들 번듯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찰떡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녀석도 있었고, 이런 쪽에 흥미가 있었다고? 싶을 정도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직장에서 일을 하는 녀석도 있었다. 백호는 10년의 세월동안 만나지 못했던 백호 군단의 모습이 즐거우면서도 아쉬었다. 함께하지 못한 시간이 너무 길었기에.

“야, 양호열. 너는 뭐하고 살았냐?”

“나?”

대용의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호열에게 몰렸다. 호열은 그 시선을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하며 피식 웃을 뿐이다. 그의 콧대 위로 검은 뿔테 안경이 걸려있었다. 백호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미국에서 날뛰고 있는 천재 농구스타 강백호의 인지도가 치솟은 탓에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소식을 들은 팬들에게 둘러싸였던 순간을 떠올렸다. 공개적인 스케쥴로 북산고등학교를 찾아가 농구부 후배들과 같이 게임을 하기도 했고, 건강과 나이로 인해 감독직에서 물러났다는 안 감독을 찾아가 안부를 전하기도 했다. 저마다 활발히 활동하거나 일상으로 돌아간 북산 농구부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 모든 스케쥴을 소화한 뒤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던 백호가 선택한 것은 비즈니스 룸을 잡아 백호 군단을 따로 만나는 것이었다. 백호가 성장한 만큼 백호 없던 백호 군단도 저마다 훌륭한 성장을 이루어낸 모습을 보니 괜히 코 끝이 시큰거리는 느낌이었다.

특히 외형의 변화가 많았던 다른 녀석들에 비해 안경의 존재 외에는 다른 변화가 전혀 없어보이는 양호열을 보았을 때.

그 때와 변함 없이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기고, 흰 반팔 티셔츠 위로 청재킷을 걸치고 검은 바지를 입은 그의 모습 위로 낯선 검은 뿔테 안경을 보았을 때.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두근거림이 백호의 심장을 두드렸다.

호열을 비롯해 친구들이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백호의 넓은 시야 속에 호열 단 한 명만 비쳐지고 있었다. 눈을 접어 웃고 있는 그 눈꺼풀 속의 암록색의 눈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씩 웃는 미소가 제법 멋진 놈이라고 생각은 했었는데, 지금의 호열이 씩 웃는 모습은 그때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10년의 세월은 호열에게 어떤 양분이 되었을까. 어떤 시간을 보냈길래 그 때의 양호열과 지금의 양호열이 이토록 다르게 느껴지는 걸까. 이 두근거림은 도대체 무엇일까.

농구를 할 때와는 다른 느낌의 두근거림이었다. 백호는 멍하게 호열을 쳐다보았다.

“그래서 너는 어땠어, 백호야?”

“…어, 엉?”

보고싶다고 생각했던 암록색 눈이 저를 향하고야 백호는 얼빠진 대답을 겨우 내놓았다. 호열의 시선이 제게 닿아온다. 저를 본다. 근사하게 웃는 호열의 미소가 백호를 향해있었다.

“TV나 인터넷으로 네 경기하는 모습이나 인터뷰 같은 걸 다 보긴 했는데, 그래도 당사자만 알고 있는 에피소드가 많지 않겠어? 그치?”

“어, 어… 그렇지?”

“그래, 백호야! 이제 네 얘기 좀 해봐라!”

“미국에서 연애 좀 했냐? 예쁜 누나들 많았어?”

“누, 눗?!”

“진짜 슈퍼스타 농구천재 강백호잖냐! 여자들이 줄을 섰을 것 같은데! 51번 차인 그 때의 강백호와는 다르게 말이야!”

와하하! 고백만 했다 하면 줄기차게 차이기 바빴던 자신의 과거를 끄집어내며 놀려대고 웃어대는 놈들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백호의 시선이 같이 웃고 있는 호열을 향했다.

백호는 그 순간 ‘너는 이런 얘기를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라는 생각을 했다. 호열에게.

왜?

그런 얘기가 나왔을 때 양호열 네가 기분 나빠했으면 좋겠어.

왜?

그 ‘왜?’ 에 대해서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던 백호는 깨달았다.

기습은 의외의 순간에 이루어진다고.

-fin.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BL

댓글 1


  • 토닥이는 꿀벌

    기습이라는 게 백호의 자각의 순간을 말하는 것이었군요! 백호가 호열이를 보고 두근거리는 마음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듯했어요...🩷🩵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