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열 (단편)

[백호열] 해진 빤쓰

* 느바 강백호 X 물리치료사 양호열로 연성 내 모든 등장인물은 성인

* 백호열 동거중

** 마따 약간의 우태탱 느낌 있읍니다

농구천재 강백호를 농구의 성지, 미국으로 떠나보내고. 호열은 멀고 낯선 땅으로 떠난 연인을 생각하며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북산고 시절 부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백호를 떠올렸을 때 호열의 진로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호열은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미국으로 떠난 백호를 보며 저마다 무언가를 느꼈는지 백호 없는 백호 군단도 호열과 같이 저마다의 목표를 찾게 되었다. 공부면 공부, 일이면 일. 뒤늦게 시작한 공부로 머리는 매일 지끈거리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감도 잡히지 않아 책을 베개삼아 잠든 적도 많았다. 그래도 미국에서 훈련을 하고, 끊임없는 테스트의 연속에서 어떻게든 버텨내고 이겨내는 백호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전문대의 물리치료과에 진학 성공한 호열은 뭐 하나라도 백호에게 도움이 되고싶다는 일념으로 대학시절을 보냈다. 물리치료 뿐만 아니라 작업치료 영역에도 손을 뻗었다. 각종 기구 사용법을 배우고, 백호와 안부를 자주 주고받으면서 그의 상태를 확인해가며 그에게 가장 필요한 치료법을 배웠다. 타인을 맨손으로, 혹은 기구를 사용하여 치료하는 것은 자신의 기운을 많이 소모하는 일이어서 호열은 자신의 체력관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백호의 훈련 소식, 테스트 소식, 벤치 신세에서 교대 선수로 활동하는 소식에 이어 주전으로 출전하게 되는 소식을 접하기까지. 호열 역시 운동도, 술기도,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대학을 무사히 졸업하고 신규 졸업생을 위주로 뽑는 재활병원에 들어갔다. 병원은 신규 위주로 뽑다보니 주는 월급도 짜고, 가르침 명목으로 부려먹기도 엄청 부려먹어댔다. 환자들이 초짜를 붙여놨다며 더 잘 하는 베테랑 치료사를 붙여달라고 대놓고 컴플레인하는 것을 들으면서 주먹을 꽉 쥔 적도 많았으나 참았다. 경험이 중요했으니까. 이 병원에 오래 일하는 사람이 없는 이유를 알겠다 생각하고 속으로 궁시렁거리기만 했다. 이 병원에서 자신을 후려치기 급급한 것처럼, 자신 역시 이 병원에서 경력이 쌓일 정도로만. 백호에게 원활한 재활치료를 적용할 수 있을 정도까지만 일하고 바로 때려치울 거라 다짐했다. 자신의 기술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단 한 명의 연인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참을 수 있었다.

백호가 NBA 에서 한창 물 오른 선수로 떠오를 때. 호열은 고대하던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꼬부랑 언어까지 공부하느라 정말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 어색하게 한국과 영어를 섞어쓰던 백호가 유창하게 영어를 하는 모습이 그렇게 멋질 수 없더라. 호열은 미국 핫가이가 된 백호를 누군가 채가진 않을지 답지 않은 초조함에 뒤섞여 글자가 눈으로 들어오는지 코로 들어오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영어공부에도 매진했다. 읽을 줄 알아야하니 단어와 문장을 공부하고, 들을 줄 알아야하니 잘 때도 미국 일상 드라마를 틀어놓고 잤다. 말할 줄 알아야하니 혼자서 책을 보며 계속 중얼거렸다. 이 모든 것이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제가 생각해도 미친 것 같았다. 물리치료사가 되고, 미국행을 택하면서 영어를 배우는 양호열이 자신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사랑은 사람을 바보로만 만들 것 같더니 개과천선도 시킨다고 생각했다. 비행기에 타기 전 연락한 애인의 들뜬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했다. 미국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십 수시간 걸린다는 걸 알면서도. 멀게만 느껴졌다.

농구 핫가이 백호의 등장은 공항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가 반갑게 맞이하는 이가 저보다 한참 작은 동양인 남자를 봤을 때까지만 해도 그저 친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공항에서 보는 눈 따위 의식하지 않고 뜨거운 키스를 선사하는 모습이 사람들의 탄성과 함께 플래시를 터뜨리게 만들었다. SNS가 뜨겁게 불타올랐다. 백호의 행적을 따라다니는 파파라치의 셔터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호열은 당황했으나 백호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야, 강백호! 이래도 되는 거야? 오자마자 네 정체성을 까발려도 괜찮은 거냐고!”

“엉? 뭐 어떠냐! 누가 너 건드리는 것보단 낫지!”

낯뜨거운 소리를 잘도 한다. 호열의 뺨과 귀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백호의 품에 꽉 안겨 가슴이 터질 듯 요동친다. 이 심장소리가 자신의 것인지, 백호의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귓가에서 북을 둥둥 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한 편으로는 그런 백호가 너무 좋아서, 그의 가슴팍 옷깃만 꽉 쥔다.

호열은 백호가 마련한 단독주택에 발을 들였다. 넓은 마당이 있고 그 위로 농구골대가 있었다. 집으로 들어서니 넓은 거실과 두 개의 방, 한 개의 화장실과 한 개의 샤워실을 확인한다. 짐을 풀고 거실로 나온 호열을 백호가 다시금 꽉 껴안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선이 마주치고 입을 맞춘다. 공항에서보다 더욱 열정적인 키스로 서로를 환영한다. 호열은 백호의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체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렸다. 장시간 비행으로 몸이 힘든 상태여서 더 했던 것 같다. 다음 날은 오후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백호가 머쓱하게 ‘너무 오래 참아서 그만…’ 이라고 말했다. 밤이 될 때까지 백호가 호열의 시중을 자처했다. 호열이 온다고 새로 마련한 커다란 욕조에 같이 씻는다고 들어갔다가 또 한바탕 하고 말았다. 호열은 다음날 오후가 되서야 겨우 일어났고 백호는 저녁 러닝 나갈 새도 없이 혼나기 바빴다. 풀린 분위기에 같이 밥 준비하고 밥 먹었다가, 정리하면서 시선이 마주치면 또 붙어먹고. 또 혼나고. 그렇게 며칠을 호열은 바깥 구경도 못 하고 백호에게 붙잡혀야만 했다.

호열은 백호가 활동하는 동안 집 근처 마트나 식당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다. 호열이 물리치료사라는 것을 아는 백호는 의아해했지만 호열은 태연했다.

“난 너만 보려고 배운 거야. 남의 몸 만지는 건 경력 쌓던 그 때만으로 충분해.”

“호열아…….”

백호의 눈이 반짝이며 감동 받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거기서 끝나면 좋았을텐데 뭐에 또 불이 붙었는지 백호가 지치지도 않고 호열을 덮쳐왔다. 백호를 받아들이고 그의 넓은 등을 껴안으며 호열이 순간 정말 그거 하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 진짜 왔네.”

“태섭 선배…랑 태웅이? 그리고, 어… 산왕 빡빡이?”

“뭣이?”

백호가 호열을 놓지 않는 바람에 무한정 미뤄졌던 호열의 환영 파티가 시작됐다. 백호가 미국에 도달하기 전 먼저 길을 밝히고 화려하게 날뛰던 일명 ‘미국조’ 였다. 산왕의 빡빡… 정우성? 과 송태섭, 그리고 서태웅이었다. 백호가 유명세를 떨친 만큼 그들의 유명세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미국물 먹은 백호도 산 만하게 커졌는데, 정우성과 서태웅마저 원래 컸던 키와 덩치가 더욱 커져있었다. 송태섭도 북산고 시절보단 성장한 게 보이나 태생의 체격은 어쩔 수 없는지 백호와 우성, 그리고 태웅 사이에 선 태섭은 북산 시절과 마찬가지로 작은 다람쥐와 같은 느낌이었다. …다들 저마다 미국물 먹고 뭔가 느끼해 보이는 건 착각일까?

호열은 태섭에게 다가가 그와 주먹을 맞대었다. 북산고 시절에도 나름 친하게 지냈던 사이이다. 태섭은 호열이 백호와 연인이 된 것을 가장 먼저 눈치챈 사람이기도 했다. 포인트 가드 아니랄까봐 눈치는 진짜 귀신같다. 들킨 김에 호열이 유일하게 속을 보이는 사람이기도 했다. 태섭을 마주하자마자 뭔가 마음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태섭은 그런 호열을 눈치챘는지 한쪽 눈을 찡긋하며 픽 웃을 뿐이다.

“공항에서 완전 핫했던데? 백호 품에 가려져서 얼굴이 잘 안보여서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아. 여기가 그?”

관중석에서 정우성을 봤기에 그를 아는 호열과는 달리 정우성은 호열을 몰랐다. 손님들이 선물로 가져온 고기를 부엌으로 가져간 백호 대신 태섭이 호열을 정우성에게 소개한다. 태웅은 예나 지금이나 한번 흘끗 보기만 할 뿐이다. 손만 들어 인사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게 그 성격 어디 안갔다 싶다.

“근데 왜 너랑 이렇게 친해보여? 둘이 친해?”

“뭐, 우리는…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었으니. 백호에게 그만큼 영향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흐응.”

호열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정우성의 시선에 미묘한 감각을 느꼈다. 그가 은근하게 태섭의 옆에 붙어섰다. 그러자 별 흥미 없어보이던 태웅이 눈을 번쩍 뜨더니 태섭의 반대쪽으로 붙어왔다. 정우성이 서태웅을 보고, 서태웅은 그런 정우성을 무시할 뿐이다.

“호오.”

호열이 턱을 쓰다듬으며 태섭을 보자 시선을 느낀 태섭이 호열을 보았다.

“왜 그래?”

“호오오.”

눈치 빠르기는 귀신만하던 송태섭이 이걸 모른다고? 호오오오. 이걸 흥미롭다고 해야할지 불쌍하다고 해야할지. 호열은 자신을 경계하는 정우성과, 그런 정우성을 경계하는 서태웅을 보았다. 중간에 선 태섭만 소파 두고 왜 자신에게 들러붙냐고 양쪽에 붙은 북산과 산왕의 에이스들을 인정사정없이 밀어내고 있었다. 진짜 재밌네. 남 일에만 눈치가 빠른가? 호열은 애먼 연애사업에 끼고 싶지 않아 호기심을 바로 접어버렸다. 내 연애사업 규모 키우는 것만 해도 바쁘다. 저쪽은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만큼 귀찮을 것 같으니 나중에 선배만 따로 불러서 얘기해봐야겠다. 호열이 자신을 찾는 백호에게 다가가며 생각했다.

백호가 훈련이나 시합하러 나가는 동안 호열은 파트 타임으로 일을 한다. 대부분 먼저 돌아오는 게 호열이었으므로 호열이 자연스럽게 집안일도 도맡게 되었다. 백호는 자신도 할 테니 놔두라 하였으나 호열은 백호와 함께하는 공간에서는 무엇을 하든 좋았기에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오늘도 어느 날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오늘은 파트 타임도 쉬는 날이라 오전 늦도록 늦잠을 잔 호열이 천천히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밀린 빨래를 돌리고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간단하게 아침 겸 점심을 해결했다. 바깥으로 비쳐 들어오는 햇빛이 따뜻했다. 빨래 널기 좋은 날씨였다. 호열이 다 돌아간 빨래를 널고, 다 마른 빨래를 걷어왔다. 천천히 빨래를 정리하는데 뭔가 해진 천이 손에 잡혔다.

“뭐 이렇게 오래된 게 있었지?”

호열은 손에 잡힌 천을 집어들었다. 백호의 속옷이었다. 검붉은 색을 띈 드로즈. 꽤나 잘, 오래 입었는지 밴드 여기저기 올이 풀려있고 천이 슬쩍 문지르기만 해도 해진 느낌이 대번에 느껴질 정도였다. 호열은 속옷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중얼거렸다.

“백호 이 녀석, 이정도로 오래됐으면 그냥 버릴 것이지 그게 그렇게 귀찮았나.”

호열이 손에 들린 해진 속옷을 뚜껑이 없는 통에 던져넣었다. 다른 빨래를 집어든다. 던져넣은 속옷을 제외하고는 해진 옷이나 속옷이 하나도 없었다. 버려야지 해놓고 잊어버렸나.

“이게 왜 여깄어!”

“엉?”

귀가 인사가 아닌 비명같은 외침에 저녁을 준비하던 호열이 황급하게 거실로 나갔다. 백호가 등지고 서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강백호? 무슨 일이야?”

호열이 그의 옆까지 다가갔다. 여전히 부들부들 떨고 있던 백호가 호열의 코 앞에 무언가를 불쑥 내밀었다.

“깜짝이야.”

“이거 호열이 네가 버렸냐?”

“엉? 뭔데? 아… 그 팬티?”

코 앞에 내밀어진 것은 호열이 빨래를 정리하며 버렸던 백호의 오래된 속옷이었다. 호열이 그것을 보다 백호를 올려다보았다.

“너무 오래됐잖아. 엉덩이 부분은 구멍이 금방 뚫릴 것처럼 맨들맨들해졌어. 속옷 살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건 왜 놔둔거야?”

“눗…!”

“그거 버려, 백호야. 오래됐잖아. 새로 사자.”

“…안 버려!”

“응?”

백호의 큰 손이 해진 속옷을 꽉 움켜쥐었다. 호열이 백호을 올려다보았다. 백호가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한다.

“이거! 절대! 안 버린다고!”

“왜? 다른 속옷들도 있고, 이거 버려서 모자랄 것 같으면 더 사면 되잖아. 오래된 거 갖고 있어서 뭐하려고.”

호열이 백호를 달래듯 얘기하는데도 백호의 얼굴이 울그락푸르락 했다. 호열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속옷이 뭔가 중요한 거기라도 한 걸까? 왜 난 기억이 없지? 그래도 오래된 속옷을 입힐 순 없었다. 아무리 펄럭이는 유니폼 속에 스포츠용 속바지를 받쳐입는다고 해도 유니폼을 입고 출퇴근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디서든 방심하면 속옷이 노출될 수 있었다. 공항에 숨어있다 자신에게 키스를 퍼붓는 백호의 모습에 벌떼처럼 몰려들던 파파라치가 떠올랐다. 파파라치든 그의 팬이든 누구에게도 이런 덜떨어진(?)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백호가 혼자 지냈으면 또 모르겠지만(??) 옆에서 백호를 케어할 자신이 붙어있는 한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백호의 모습에 호열에게도 반항심이 생겼다. 이걸 반항심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백호야. 너는 공인이잖아. 혹여라도 발생할 수 있는 노출에 대비해야지. 어디가서 네 엉덩이가 찍힌 사진에 이렇게 해진 빤쓰가 보이면 어떡하려고 그래? 파파라치는 집 앞에서도 죽치고 있다는데 이런 거 입고 돌아다니거나 하다가 딱 마주치면 어떡해.”

“내가 빤쓰 입고 밖을 나돌아다닐 리 있겠냐? 정신차려! 이거 절대 못 버려! 너도 버리지 마! 알겠지!”

“백호야. 너 진짜 빤쓰 없어? 내가 이번에 빨래 널 때 보니까 그렇게 모자라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속옷을 잘 사는 타입이 아니었던가, 네가? 뭐가 됐든 빤쓰가 필요하면 새로 사면 되잖아. 내가 사줄게.”

“누웃…!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그럼 대체 뭐가 문제야?”

호열이 기가 막히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백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씨근덕 거리며 호열을 노려볼 뿐이었다. 호열이 백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리 줘. 버리게.”

“안 된다고 했지!”

“왜 자꾸 고집을 부리지? 백호야, 새로 사준다니까?”

“양호열 이 바보 멍청이! 절대 못 버려!”

“그래, 그래. 나 바보에 멍청이다. 됐지? 그러니까 빨리 그거 이리줘. 당장 버리게.”

“안 된다니까!”

“다 해진 빤쓰 버리지 말아야하는 이유가 어디있어? 얼른 내놔!”

“싫어!”

“줘!”

“싫어!”

“달라니까!”

“아- 진짜! 양호열!”

백호가 버럭했다. 호열이 눈을 꿈벅였다. 백호가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호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눈은 어떻게 보면 울망울망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응? 울망울망?

“…백호 너 울어?”

“천재가 울긴 왜 울어!”

“그치만 너 눈이,”

호열이 백호를 살피기 위해 내밀었던 손을 위로 향했다. 그 순간 백호가 호열의 손을 잡아채고, 그를 한껏 당겨 품에 가두고는 으르렁 거리며 외쳤다.

“이거 네가 나 미국갈 때 사준 속옷이라고! 네가 준 소중한 걸 왜 버리라고 하는거야! 이 멍청한 양호열 같으니라고!”

“…아?”

정말로 멍청한 표정을 지은 호열을 내려다보던 백호가 품에서 그를 팩 놓더니 그대로 발을 쿵쿵 구르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거칠게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한참 서 있던 호열이 뒤늦게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그걸 여태 갖고 있을 줄 내가 어떻게 알아!! 백호야!!”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기도 채 전에 호열이 백호의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한참 대화소리가 들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호열의 신음소리가 새어나온다.

온몸이 지끈지끈할 정도로 잡아먹힌 호열이 겨우 눈을 떴다. 하얀 벽이 시야에 들어오다 불그스름한 무언가가 걸린 액자가 눈에 들어온다.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들어올린 호열이 그것을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떴다. 평소에는 본 적 없던 실루엣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용을 확인한 호열의 얼굴이 겉잡을 수 없이 붉어진다.

“가, 강백호!”

저걸 액자로 걸어놓으면 어떡해!!!!!!! 왜 수치가 내 몫이야, 백호야!!!!!!

“흥.”

호열의 외침을 멀리하고 그가 깨어나면 챙겨주기 위해 샌드위치를 만들던 백호가 콧방귀를 뀐다. 양호열 이 바보 멍청이. 눈치없는 자식. 그 선물 받고 얼마나 기뻤는데. 힘들 때마다 이 천재가 네가 준 선물 생각하면서 얼마나 힘냈는데. 멍청한 자식. 감히 뭘 버린다는 거야. 평생 보고 살 거다, 이 자식아.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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