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열] 뒷모습 (上)
* 강백호 X 양호열
* 산왕전 부상 이후 (퍼슬덩O 원작X 애니X 인 사람의 연성이므로 캐붕주의)
* 문득 생각나서
호열은 앞을 향해 달려가는 백호의 뒷모습을 보았다. 지치지 않도록, 자세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봐달라고 얘기하던 게 시작이었다. 호열은 매일 아침마다 런닝하는 백호의 뒷모습을 좇았다. 그의 페이스를 방해하지 않도록 스쿠터가 아닌 자전거를 타고.
산왕전에서 부상을 입고, 회복하는데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다. 백호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복귀하는데까지 북산고도 많은 성장을 이루었다. 백호는 농구에 진심이 되었다. 진심으로 농구를 좋아하고, 꿈으로 삼았다. 그렇기에 백호는 북산고 선수들에게 뒤쳐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진정한 스포츠맨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호열은 그의 부상을 우려했으나 말리지 않았다. 여태까지 봐왔던 모습 중에 가장 진지하고, 멋있었으니까. 사나이 강백호, 진정한 스포츠맨 강백호는 이런 모습일테니까.
그래서 호열은 그를 말리기보다 그의 뒤에서 함께 달리기를 택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거니 달린다고 할 수 없으려나.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도 달린다고 하지않나. 그런 심심한 생각을 해본다. 호열은 백호가 병원생활을 하는 모습까지 지켜봐왔다. 그래서 그가 무리하는지는 기가 막히게 알았다. 백호도 그걸 알아서 호열을 콕 집어 자신을 봐달라고 얘기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호열은 백호가 무리하거나, 욕심을 부리면 기가 막힐 정도로 그 순간을 잘 잡아냈다. 페이스오버하는 순간 그를 나직히 부르면 백호는 숨을 몰아쉬며 달리기를 멈추는 것이다. 운동에 몰입한 백호의 눈은 너무나도 강렬하고 아름다워서, 호열은 마음 약해질 뻔한 순간을 몇 번이나 겨우 넘겼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 생각을 강백호는 절대로 모르겠지만.
그래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였다. 호열은 나직하게, 하지만 단호하게 백호를 불렀고 백호는 끙 앓는 소리를 내다가도 납득했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가 천천히 몸을 움직인다. 그러면 호열은 다시 달리는 백호의 뒷모습을 보는 것이다.
백호는 여전히 농구부 훈련이 끝나면 부족한 부분을 극복하기 위한 특훈에 매진했다. 아침에는 상대적으로 훈련이 덜 짜여있다보니 체력 보강을 위해 런닝을 하는 것이었다. 매니저인 한나가 특별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도록 짜준 스케쥴이었다. 코트로의 복귀를 열망한 그의 눈을, 그녀도 보았으니까.
호열은 점차 땀으로 젖어가는 등을 보았다. 티셔츠가 땀으로 젖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이전에는 잦은 싸움으로 인한 근육이라면, 이제는 운동하는 사람답게 크게 발달한 근육이 땀에 젖은 셔츠 위로 드러나는 것 같았다. 문득 호열은 그의 뒷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원래 알던 백호와 지금의 백호는 사뭇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강백호는 진정한 스포츠맨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거니까. 그래서 낯설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의 등이, 뒷모습이. 호열에게 멀게 느껴졌다. 항상 손을 뻗으면 잡히는 거리에 있던 친구였는데. 이제는 꿈을 찾고, 꿈을 좇는 평범하면서도 빛나는 고등학생 농구선수가 되었다. 되고 싶어하고, 되려 한다. 그래서 호열은 낯설게 느껴진다. 백호 군단이라는 이름 하에 뭉쳐다니는 시간이 갑자기 철없게 느껴졌다. 그 시간이 소중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고등학생이면 충분히 철없을 나이지만, 뭐랄까. 자신의 미래를, 꿈을 찾은 백호의 모습이 갑자기 어른스러워보여서. 멀게 느껴져서. 그래서 낯설게 느껴졌다.
백호가 훌륭한 농구선수가 되면. 우리는,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농구 천재 강백호, 진정한 스포츠맨 강백호. 그가 세간에 주목을 받으면 받을수록 그의 모든 것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것이다. 학생 시절의 모습을 파헤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는 그의 발목을 잡는 존재가 되는 게 아닐까?
백호의 모습에 진지해진 것은 호열뿐만이 아니었다. 백호군단의 모두가 백호를 보면서 농구에 진지해졌다. 그저 반한 여자아이가 농구를 좋아하냐고 물었던 그 한 마디에 가볍게 농구부에 들어왔던 그가 이제는 이런 진지한 눈빛을 하고 진심으로 농구를 좋아하고 좇기 시작한 이후부터. 백호군단의 모두가 무언가를 깨달았을 것이다. 백호가 잘 되기만을 바라는 거지 그의 발목을 잡을 과거의 조각이 되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호열은 백호의 뒷모습을 보았다. 느리게 숨을 내뱉는다. 아직 자신은 무엇을 하면 좋을지 찾지 못했다. 애초부터 그런 것을 염두하고 살지도 않았고. 그것은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일 테다. 그러니 저마다 고민의 시간을 갖겠지. 백호에게는 딱히 얘기하지 않았다. 얘기할만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고, 신경쓰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것은 백호 없는 백호군단의 암묵적인 약속이다. 농구선수가 될 백호의 앞에 당당하게, 떳떳하게 나서고 싶다는 암묵적인 약속.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달리는 것만으로도, 그의 훈련을 돕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매니저를 쉽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필요하다면 관련하여 공부를 해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놀러왔다는 핑계로 농구부에서 백호가 훈련하는 모습을 자주 지켜보았다. 팀원들과 전술이라던가, 역량에 대해 평가하고 훈련을 짜는 한나의 뒤를 서성이며 귀동냥을 하기도 했다. 쉬운 듯 어려운 대화를 들으면서 백호는 어떻게 하고 있을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은 나름 즐거웠다. 백호의 성장과정을 지켜봐서 그런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잘 짜인 근육이 비치는 뒷모습을 보았다. 성장해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앞으로의 일은 이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지금은 오롯이 백호의 훈련을 돕고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누가 보면 엄마냐고 할 수 있지만, 글쎄. 그것보다는…….
백호가 우뚝 멈췄다. 딱히 정지 신호를 주고 멈춘 것이 아니어서 호열도 다급하게 자전거의 브레이크를 잡았다. 백호가 숨을 몰아쉬었다. 힘들었나? 하지만 특별히 이상증상은 보이지 않았는데. 호열이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백호의 옆까지 다가갔다.
“백호야. 왜 그래? 무슨 일,”
“호열아.”
땀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에서도 눈빛은 여전히 죽지 않은 채였다. 속절없이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눈빛.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호열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백호가 입을 열었다.
“우리 헤어질까?”
“…어?”
“아니다. 헤어지자.”
그가 이별을 고한다. 갑작스럽게.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이별을 고했다.
호열은 제게서 대답도 듣지 않고 돌아서 달려나가는 백호의 뒷모습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멍하게. 그저 멍하게. 그 뒷모습을.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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