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열 (단편)

[백호열] 뒷모습 (下)

* 배경지식의 한계 : 퍼슬덩 O 원작 X 애니 X (사실 세모에 가까울 수 있으나 이제는 기억도 거의 안나서 제로에 가까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뒷모습이었다. 백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천재 스포츠맨으로서 각성하고 농구에 진심을 느끼면서부터 자신을 비롯한 백호 군단 녀석들도 무언가를 느낀 모습이 보였는데. 이상하게도 그의 모습에서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자신을 응원하면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진로에 대해, 꿈에 대해 고민을 시작한 녀석들과는 다르게. 이상하게도.

매니저인 한나와 소연의 옆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면 매니저의 길을 가나 싶다가도, 농구부 활동이 끝나면 자신의 훈련을 돕는 게 아닌 한 체육관에 남아있지 않는 모습을 보면 그건 또 아닌 듯 했다.

낙제하면 시합에 나갈 수 없다는 소식에 머리 쥐어싸매고 공부할 때 웃으면서 같이 머리 싸매는 모습을 보면 대학이라도 갈까 싶었는데 자신의 시험기간이 끝나기 무섭게 엎드려 잘 때 책을 베개로 삼는 모습을 보면 또 아닌 듯 했다.

자신의 훈련을 돕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의 시간을 아르바이트에 쓴다고 해서, 적성에 맞는 일이라도 찾았나 싶었는데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군것질을 하거나 오락실에 탕진하고 나오는 모습을 보면 또 아닌 듯 했다.

다들 저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이든 해보거나 고민이라도 하는데. 너는 어째서.

부상을 딛고 코트로 복귀한 자신을 위해 함께 훈련을 돕기도 하고 아침마다 있는 러닝을 스쿠터가 아닌 자전거로 함께할 때까지만 해도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그와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이 소중하고, 자신을 위한 그 마음이 느껴져 사랑스럽기만 했다. 자신이 무리할 때나 힘들어할 때를 귀신같이 알았다. 자신을 멈춰세울 줄 알고, 격려할 줄 알고, 그 암록색 눈으로부터, 입술로부터, 사랑을 전할 줄 알았다. 그래서 마냥 좋기만 했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미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게 될 때까지.

그의 뒷모습을 본다. 자신과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함께하는 그의 뒷모습을 본다. 강백호라는 파도가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휩쓸려 다니는 해파리 같은 뒷모습을 본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을까. 그는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연인이며 그의 행동은 오로지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면서도.

그의 모든 것은 전부 자신에게 비롯되었다. 그의 모든 시간을 자신에게 할애하고 있었다. 시간, 공간, 생각, 사랑, 미래. 그 모든 것을.

그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강백호는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이 인연에 끝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이 아니어도 양호열은 어디서든, 언제든 잘 지내야 했다. 잘 살아야 했다. 자신은 그의 발목을 붙잡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란히, 당당히 서서. 함께 미래를 향해 걸어가는 사이가 되고 싶었다. 일방적으로 그가 자신을 위해 목을 매고 자신에게 매달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모순적이게도.

그래서 이별을 고했다. 흔들리는 시선을 하고서, 하얀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리는 모습을 보면서, 순식간에 무너지는 표정을 하는 너를 보면서. 알면서. 이별을 고했다. 강백호라는 사람의 뒷모습만 보느라 그의 미래가 가려진 모습을 원하지 않았기에 이별을 고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이별만 말했다. 뭐라고 말한다고 해도, 그는 무조건적으로 ‘괜찮아.’ 라고 할 것임을 알기 때문에.

당장에라도 뒤돌아서고 싶었다. 쓰러지는 자전거의 소리가 들렸다. 털썩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질끈 감았다.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내가 너의 미래를 가리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고, 네가 너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면 좋겠다고 그를 끌어안고 외치고 싶었다. 함께 앞으로 더 나아질 우리를 위해 나아가자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너에게 그 목소리가 닿지 않을 것을 알았다. 이제서야 깨달을 정도로 은근하게 삶 자체를 자신에게 맞춰 스며들어오지 않았나. 강백호만을 바라보고 강백호만을 위해 사는 삶을 양호열이 부정할 리 없었다. 오히려 그것을 기꺼워했을 것이다. 그러면 안됐다. 강백호는 양호열과 당당한 사이가 되고 싶었다. 저마다의 미래에 도달하여 멋지게 성장한 모습으로 함께하는 사이가 되고 싶었다. 지금의 양호열은 그 판단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별은 불가피했다. 양호열을 위해서.

양호열은 그 뒤로 체육관에 나오지 않았다. 아침마다 러닝하는 시간을 알면서도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학교에도 나오지 않았다. 다른 녀석들 중 누구하나 양호열과 연락이 닿는 이가 없었다. 초조했다. 걱정됐다. 양호열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이별을 고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부질없었다. 이별은, 강백호의 두 눈이 퉁퉁 불게 만들었지만 필요한 것이었다. 양호열을 위해서였다. 그를 위한 이별이었다. 그의 미래를 가리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 무리하지 말라며 등 뒤로 닿아오는 따뜻한 체온도, 웃으면서 이온음료를 내미는 손도, 헤어지는 길에 아쉬워하면서 입을 맞춰오던 그 모습도. 양호열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강백호가 그를 위해 결심한 이별이었다. 그것을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림에서 튕겨져 나오는 농구공을 허망하게 쳐다보았다. 정신 놓지 말라고 외치는 송태섭의 잔소리가 귀에 메다꽂혔지만 그 뿐이었다. 후회하고 싶지 않아. 모든 것은 양호열을 위해서다. 강백호가 농구공을 주워들었다. 이별을 후회하고 싶지 않다. 그의 부재에 흔들리고 싶지 않다. 더 강해져서, 더 성장해서, 더 당당하고 멋진 농구선수가 되서 그의 앞에 다시 서는 모습을 상상한다. 미래의 농구천재 슈퍼스타 강백호가 되서, 미래에 어떻게 성장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 양호열의 앞에 다시 서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니까 후회하면 안 된다. 후회해서는 안 된다. 자신마저 흔들려서는 안 됐다. 모든 것은 양호열을 위해서이기도 했고 강백호를 위해서기도 했다. 미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오늘의 MVP! 강백호 선수를 모셨습니다! 강백호 선수, MVP 수상 축하드립니다!”

“이 천재 강백호의 MVP 수상은 당연한 거죠!.”

“오! 이 대단한 자신감! 역시 자신감 하면 강백호 선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시즌 활약도 아주 대단했는데요! MVP 선수로 뽑힌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천재의 활약은 이번 시즌만 있는 게 아닙니다. 다음 시즌도, 그 다음 시즌도. 모든 시즌 MVP는 이 농구 천채 강백호의 것입니다! 하하!”

“엄청난 포부입니다! 이 열기가 강백호 선수를 여기까지 이끌어온 게 아닌가 싶은데요, 혹시 이번 인터뷰를 통해 하고 싶은 말씀이라도 있으실까요? 라이벌 선언도 좋고, 사랑 고백도 괜찮습니다! 고백이면 더 좋을 것 같긴 하네요!”

인터뷰어의 말에 강백호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항상 자신감 넘치고 긍정적인 기운으로 넘치던 그가 입을 다물자 무언가 분위기가 가라앉는 기분이 들어 인터뷰어가 주위를 살폈다. 시선을 잠시 내리깔았던 강백호가 고개를 들었다. 중압감이 느껴질 정도로 입을 다물고 있던 그의 눈빛은 카메라 너머에서도 느껴질 정도의 열기를 품고 있었다.

“고백을 해보려고 합니다.”

“네? 정말요? 와, 뭔가 강백호 선수가 이런 분위기를 잡다니 기분이 굉장히 미묘하네요….”

인터뷰어가 침을 꼴깍 삼켰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백호가 입을 열었다.

“양호열.”

낯선 이름의 등장에 낄낄 웃으며 그의 인터뷰를 지켜보던 모두의 시선이 몰렸다. 강백호의 시선은 여전히 카메라를 향한 채였다. 이 화면을 보고 있을, 화면 너머의 누군가를 향해서.

“내 모습을 봤을 거라 생각해. 그러니 너도 더이상 숨지말고 당장 나와. 내가 멋대로 끝낸 사이, 내가 멋대로 다시 시작할 거니까.”

“어… 어? 이거 정말 고백입니까? 강백호 선수! 아까 호명한 분이 연인인 건가요?”

인터뷰어가 다급한 표정과 목소리로 물었으나 강백호는 시선 하나 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난 이 순간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거다. 내가 너의 미래를 망치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아서 이별을 고했던 거야. 네가 너를 살피고 너 역시 앞을 향해 나아가길 바라서.”

강렬한 시선이 카메라 렌즈를 잡아먹을 듯 했다.

“이런 핑계는 필요 없다는 거, 알아. 너를 다시 만나면 네게 미안하다고 얘기하고 싶어. 그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어. 서로의 미래를 위해서 그랬다는 말이 의미없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아. 다시 시작하자는 말 또한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너의 미래가, 나와 마주하는 미래 안에 내가 있다면. 내게 응답해.”

이상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강백호가 인터뷰어를 향해 꾸벅 인사하고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당황한 인터뷰어가 특종 아닌 특종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를 쫓기 시작했다. 수많은 스포츠 기자들이 그를 따라 달리고, 강백호의 모습을 담던 카메라맨만이 가만히 서 있다 카메라를 내린다. 푹 눌러썼던 모자를 벗는다.

“후……. 진짜, 강백호 저 녀석의 눈썰미에는 못 당하겠다니까.”

카메라를 응시하던 그 눈빛. 사실 카메라가 아닌 카메라를 들고 선 자신을 응시하는 눈빛이었다. 마치 자신이 누구인지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핑계라고 생각할 리가 없잖아…….”

호열이 쓰게 웃었다. 모두가 강백호를 따라간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돌아서 체육관 밖으로 나선다. 주머니에 깊게 쑤셔넣었던 휴대폰을 꺼낸다. 눈을 감고도 익숙하게 터치할 수 있는 그의 번호를 누르면서.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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