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열 (시리즈)

[백호열] 추억 언덕

업로드 2023.08.04

* 8월4일 백호열데이를 맞이한 백호열

* 연성하는 모든 백호열은 친구들과 백호열 트친들을 위해 씁니다.

* 음악은 분위기 참고용으로 들어주시면 좋습니다. 가사는 전혀 모릅니다....

영상이 비공개처리가 되었는데 노래를 … 못찾음…

#8月4日は花洋の日

#8월4일_백호열데이


산 속을 헤쳐나가는 발길에 두려움은 없다. 오히려 모험으로 눈을 반짝이며 힘차게 앞을 향해 내걷는다. 여름을 알리는 매미의 힘찬 울음소리는 울창한 숲을 더욱 여름으로써 돋보이게 했다. 내리쬐는 하얀 햇살이 숲의 나뭇잎과 나뭇가지에 부딪혀 은은하게 부서져내렸다. 소년은 밀짚모자를 고쳐쓰며 모험을 계속했다. 숲의 안쪽으로, 안쪽으로 걷는다. 소년의 뒤로 보이던 마을은 순식간에 점이 되어 사라졌다. 


문득 소년이 뒤를 돌아보았다. 뒤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그제야 주위를 살펴본다. 빽빽한 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곳에 소년 혼자 서 있었다. 매미의 울음이 줄고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가 소년의 주위를 가득 채웠다. 소년이 고개를 젖혔다. 떨어지려는 밀짚모자를 붙잡았다. 살짝 벗겨진 모자 사이로 흔히 보기 힘든 붉은 머리가 비쳤다. 모자를 고쳐 쓴 소년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조금 더, 조금 더. 앞으로 걸어간다.

"혼자야?"

"눗!"

낯선 목소리에 소년이 눈에 띄게 움찔했다. 여유있는 목소리에 웃음기가 달렸다. 소년이 삐걱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제 나이 또래로 보이는 검은 머리의 소년이 소년에게 한 손을 들어보였다. 

"안녕?"

"아, 안녕."

"여기까지 혼자 왔어?"

"응? 응. 당연하지!"

"당연해?"

"이 천재님은 친구 없어도 이런 산 하나쯤은 쉽게 정복할 수 있으니까!"

붉은 머리의 소년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검은 머리의 소년이 가볍게 말했다.

"친구 없구나?"

"누웃!"

아까보다 더욱 크게 움찔하자 흔들린 밀짚모자가 뒤로 벗겨졌다. 아! 소년이 다급히 모자를 잡아보았지만 이미 붉은 머리가 모두 드러난 채였다. 검은 머리의 소년이 휘파람을 불었다.

"친구가 없었을 법도 하네. 마을 사람들이랑 다른 색이니까."

"흐, 흥!"

온통 검은 머리 일색인 마을 사람들은 혼자 타오르는 불꽃을 닮은 붉은 머리 소년을 불길하게 여겼다. 그것은 불꽃과도 같았지만, 피와도 같은 붉음이었으니까. 시골의, 시골에서도 도태된 작은 마을은 그런 것에 예민한 구석이 있다. 속으로 혀를 찼다. 머뭇거리는 붉은 머리 소년을 보던 검은 머리 소년이 이내 씩 웃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같이 놀까?"

잠시 경계하는 듯한 붉은 머리의 소년이 검은 머리의 소년이 건넨 말에 활짝 웃는다.


숲에서 소년들의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꺄르르 웃는 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아주 신나보이는 목소리였다. 숲을 이루는 나무들을 이리저리 피해다니면서 달려간다. 나무의 수액을 먹는 곤충을 골라 채집하고, 다람쥐 등의 작은 동물에게 다가가다 들키고는 허탕 치기도 했다. 신나게 뛰다 작은 언덕이 보이면, 언덕 꼭대기까지 누가 먼저 도착하는지 시합도 했다. 언덕 꼭대기에서, 소년들의 몸만한 커다란 잎사귀를 타고 신나게 썰매를 탔다. 언덕으로 다시 뛰어올라가는 두 소년의 표정이 밝다. 붉은 머리 소년이 활짝 웃었다. 검은 머리 소년은 그 모습이 썩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이봐! 빨리오라고! 이 천재가 화려하게 내려가는 모습을 보라고! 의기양양하게 외치는 모습에 알았다며 대답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소년들의 두 뺨이 발갛게 상기될 때까지 뛰고 또 뛰었다. 재밌다! 하고 풀밭에 풀썩 드러누운 붉은 머리의 소년을 보며 옆에 앉은 검은 머리의 소년이 물었다.

"왜 여기에 온 거야?"

"모험하러 왔다니깐?"

검은 머리의 소년이 붉은 머리의 소년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붉은 머리의 소년은 불그스름하게 물들기 시작한 하늘을 말없이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잠시 더 보던 검은 머리의 소년이 물었다.

"그래? 그래서 신나는 모험이 된 거 같아?"

붉은 머리의 소년이 그제야 검은 머리의 소년을 돌아보았다. 붉은 머리의 소년의 검은 눈과 검은 머리의 소년의 녹빛섞인 검은 눈이 마주쳤다. 붉은 머리의 소년이 고개를 팩 돌리며 말했다.

"재, 재밌는 거 같아."

"?"

순진하게 그를 내려다보던 검은 머리의 소년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렇게 한참을 뛰어놀았던 것 같다. 배가 고픈지 꼬르륵 소리를 우렁차게 울렸을 때는 그 머리색과도 같은 색으로 얼굴이 빨개지는 게 너무 웃겼다. 검은 머리의 소년이 눈물까지 머금어가며 깔깔 웃자 붉은 머리의 소년의 얼굴이 울그락푸르락했다. 볼을 부풀리며 고개를 팩 돌려버리자 그러고도 한참 웃던 검은 머리의 소년이 붉은 머리의 소년의 앞으로 다가가 손을 꼭 잡았다. 손을 잡고 앞서 걸어가는 검은 머리의 소년을 좇는 붉은 머리의 소년의 뺨이 여전히 붉었다.

검은 머리의 소년이 지나가는 길에서 많은 것을 먹었다. 커다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과일을 따먹기도 했고, 맑은 물살이 흐르는 계곡을 찾아 작은 물고기를 잡고 어떻게 했는지 검은 머리의 소년이 피운 불에 그것을 구워서 먹기도 했다. 붉은 머리의 소년의 뺨에 검게 그을음이 묻었다. 검은 머리의 소년이 손을 내밀어 뺨을 훑었다. 붉은 머리의 소년의 뺨이 여전히 붉어 있었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다. 밝은 대낮의 하늘이 불그스름하게, 점차 거므스름하게 물들었다. 붉은 머리의 소년이 땀에 젖은 얼굴로 말 없이 태양이 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숲의 밤은 빨리 찾아왔다. 붉은 머리의 소년이 뒤를 돌아보았다. 어둠에 순식간에 잠식된 숲의 입구가 소년을 배웅하고 있었다. 불빛이 곳곳에 켜진 마을 입구를 희미하게 밝혔다. 분명 아까까지 숲 속에서 신나게 뛰어놀았는데. 어느 새 숲에서, 산에서 빠져나와 있었다. 붉은 머리의 소년이 검은 머리의 소년을 휙 보았다.

"뭐야?"

"인간은 인간들과 살아야지. 이런 위험한 곳에 어린애 혼자 오게하는 게 아니라."

"뭐?"

"마을 사람들에게 한번씩은 들었지? 이 곳은 혼자 찾아오는 아이를 잡아먹는 요괴가 사는 바다숲이라고 말이야."

"……!"

붉은 머리의 소년이 놀란 표정을 했다. 검은 머리의 소년이 쓰게 웃었다. 간만에 만나는 외부인이었다. 마을에서 버리듯 두고간거면 마을에 바로 데려다놓고 마을에 짓궃은 장난을 칠까 했는데 뒤에서 봤을 때 그렇게 씩씩하게 걷길래 슬쩍 멀리서 앞질렀더니 겁에 질린 표정을 하잖아. 애들 혼자 함부로 보내지 않는 숲인데. 누가 버리고 간 게 아니라 스스로 들어왔다는 뜻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타의가 아닌 자의로.

그래서 개입을 했다. 혼자여도 괜찮은 척 하는 붉은 머리 소년에게 다가갔다. 친구가 없냐는 물음에 당황스러워하면서도 함께 놀자는 말에 세상 활짝 웃었으니까. 솔직하고 때로는 어버버 거리는 모습에 웃음이 새었다. 이렇게 웃어본 게 얼마만인지 솔직히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산 썰매도 타고, 열매도 따먹고, 물고기도 구워먹고. 이 산에서 할 수 있는 놀이는 다 해본 것 같다. 붉은 머리의 소년이 여기가 마음에 든다며 웃던 것이 떠올랐다. 오늘 같은 일은 더이상 없다. 이 숲은, 일명 아이를 잡아먹는다는 요괴가 사는 바다와 같이 검은 나무가 빽빽한 산의 숲이었으니까. 자의로 찾아오지 않는. 귀찮거나, 병든 이를 처리하기 위해 버리고 가는 처리장과 같은 곳이었으니까. 인간들에게 있어서 이 산은, 이 숲은 일종의 쓰레기장이었다. 검은 머리의 소년은 숲의 취급이 썩 기분 좋지 않았으나 굳이 먼저 나서서 인간을 잡아먹지 않아도 되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흉흉한 소문과 죽어가는, 버려진 자들을 먹는 입장에서 맛도 썩 싱싱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귀찮게 뛰어다닐 필요는 없는 거니까. 그러니 자의로,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눈을 반짝이고 붉은 소년의 등장은 반가웠다. 버려진 것도 아니었고, 약한 것도 아니었다. 어린 아이가 홀로 이 숲에, 이 산에 발을 들인 것만으로 뭔가 복잡한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거기까지였다. 간만에 만나는 어리고 신선한 인간은 반가웠다. 어린 아이처럼 뛰어노는 것도 즐거웠고. 눈 앞의 소년은 자신의 실제 나이를 들으면 까무라칠 것이다. 그것도 반응이 내심 궁금했지만 참기로 했다. 

붉은 머리의 소년의 눈에서 읽히는 아쉬움처럼 여기에 더 머무르게 하고 싶었지만. 인간이었다. 인간은 인간이었다. 아이는 자신에 대해 취급이 좋지 않다고 판단했을지라도 요괴의 눈에서 봤을 때는 아니었다. 깔끔하게 바짝 깎아놓은 머리나 깨끗하게 차려입은 옷, 그리고 햇빛에 탄 색이 아닌 붉은기가 도는 깨끗한 피부인 걸 봐도 그랬다. 본인은 모르지만 소년은 분명 사랑받고 있었다. 가족일 수도 있고, 투박하게 도와주는 주위어른들일 수도 있었다. 분명 소년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소년을 사랑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는 뜻이었다. 보통 쫒겨나 맨몸으로 바다숲까지 도망쳐오는 이들의 몰골을 생각하면 분명 그랬다. 그래서 소년과 신나게 놀면서 마을로 돌아갈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 숲에 들어온 자들의 결말은 정해져 있으니까. 그래서 마을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소년이 재밌다며 또 하자며 저를 기꺼이 따랐다. 그 모습마저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숲에 들어온 자들의 결말은 정해져 있으니까.

붉은 머리의 소년은 검은 머리의 소년을, 요괴를 원망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손이 웃옷 끝을 꾹 잡고, 발바닥이 땅바닥을 지글지글 문지른다. 소년의 발치에 깔린 작은 돌멩이며 모래가 움직이는 대로 굴러다녔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움직임이었다. 명백한 반항. 어째서 요괴는 그 모습이 못내 사랑스럽다고 느꼈을까. 욕심이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선 안되었다. 인간은 인간이 사는 곳에서 살아야 했다. 인간들 속에 치여서 미움받고, 문제아 취급을 받아도. 그래도 인간은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야했다. 결말이 정해져있는 이런 곳이 아니라. 죽음이 아니라, 삶이 있는 곳에서 살아야 했다.

이 숲을 완전히 빠져나가면 여태까지 숲에서 살아나간 이들과 마찬가지로 기억을 지울 것이다. 그러면 오늘 있었던 일들은 평생 잊은 채로 살 터이다. 이번에 같이 뛰어놀았던 게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었는지 요괴 역시 잔뜩 아쉽게 두근거리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켰다. 단순히 아쉬운 마음에 두근거리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더 깊게 생각하면 안됐다. 인간은, 인간들 사이에서. 죽음이 아니라, 삶이 있는 곳에서. 요괴가 소년의 등을 부드럽게 떠밀었다. 소년이 요괴를 돌아보았다.

"다시 만날 수 있어?"

소년의 눈가가 새빨겠다. 요괴가 그 반응에 옅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 우리는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붉은 머리의 소년이 훌쩍였던 것 같기도 했다. 요괴는 저를 자꾸만 뒤돌아 보는 소년에게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손을 들어 살짝 흔들어보였다. 붉은 머리의 소년이 입술을 꾹 깨물다가, 휙 몸을 돌려 그대로 마을을 향해 뛰어가버렸다. 아쉽긴 하네. 요괴가 김빠진 웃음을 흘렸다. 네가 원한다면 우리는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제가 한 말을 천천히 곱씹는다. 마을에 도착할 때 즈음이면 붉은 머리의 소년에서 이 숲에 대한, 이 산에 대한, 그리고 자신에 대한 기억은 모두 사라져있을 것이다. 지워져있을 것이다. 이제 붉은 머리 소년에게서 이 숲은, 산은, 자신은 없다. 요괴는 그것이 조금 아쉽고, 서운하고. 가끔 생각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호열아 무슨 생각하냐."

"응? 아. 아냐. 잠시 옛날 생각 좀 하느라."

백호의 물음에 퍼뜩 정신 차린 호열이 옅게 웃었다. 작은 시골마을로 향하는 마을 버스가 조용히 도로를 달렸다. 익숙한 풍경을 눈에 담던 호열이 물었다.

"근데 백호야, 이런 시골까진 무슨 일이야?"

익숙한 숲과 주위의 작은 언덕들을 말없이 창가에 턱을 괴어 보던 백호가 호열을 보지 않고 대답했다.

"첫사랑 찾으러 간다."

"첫사랑!?"

"다시 만날 수 있대놓고 거짓말 했거든. 내가 원한다면 꼭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했는데. 여태 못 만났어. 그래서 직접 가보는 거야."

"...그래. 그랬구나. 꼭 찾았으면 좋겠네."

호열이 눈을 감으며 웃었다. 네가 원하면 꼭 다시 만날 수 있을테니까. 그게 누구든 간에.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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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밥먹는 래서판다

    그 첫사랑이 바로 너야 호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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