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열 (시리즈)

[백호열] 바보같아

업로드 2023.09.16

* 백호열 전력 110분 소재 중 얽히는 손끝, 너 나 좋아하잖아 소재 두 개 하나로 퉁치기

* 인간 강백호 X 인어(문어수인) 양호열

* 인어 태섭(우태) 세계관 겹침







사랑에 빠진 인어는 참 바보같아. 

호열은 인간이 되는 법을 알려달라며 찾아오는 인어들을 볼 때마다 생각했다. 사람이 되기 위해 주로 제물로 바쳐지는 것은 목소리. 경우에 따라서는 운 좋게 목소리를 되찾는 경우가 있다지만 희박하다. 인어로서 살아오던 기억을 모두 잃는 경우도 있다. 주된 부작용만 언급한 거지 꼽아보자면 셀 수 없이 많은 위험을 가진 주술이었다.

인어는 사랑에 약해지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을 위해 종족을 바꾸고 싶다는 강한 마음을 갖게된다. 인간이 사랑한 것은 같은 인간이 아니라 아름답고 신묘한 미지의 영역일텐데.

덕분에 목소리도 잃고, 재수 없으면 기억도 잃어 사랑한다던 그 인간에게서 버림받은 인어가 이다지도 많지 않은가. 인어의 개체 수가 많지 않다더니 인간을 사랑해 같은 인간이 되고싶어 종족을 변화시킨 탓에 개체 수가 적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인간이 그렇게 사랑스럽나. 

가면 갈수록 바다를 더럽히는 쓰레기같은 존재들인데. 기억을 잃고, 목소리를 잃으면 누가 알아주나. 인간이 되었으나 버려진 인어는 물 속에서 호흡하던 것에만 익숙해 변화한 신체에 적응하지 못 해 쉽게 죽어갔다. 몸을 덮은 비늘이 떨어져 나가면서 드러난 맨 살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제대로 치료받지도 못 해 감염으로 다리를 잃거나 패혈증으로 죽는 경우가 많았다. 바다에 그대로 살았다면 고통도 모르고 살았을텐데. 참 바보같지. 호열이 생각했다.

인어들을 관리하는 신과 같은 존재들은 항상 사랑에 빠진 인어들을 걱정하고 우려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기 위해 다리를 얻고 뭍으로 나갔다 버림받고 죽어가는 시체를, 울면서 심해 깊은 곳 인어들의 무덤에 묻어주던 것이 몇 번인지 세아릴 수도 없었기 때문에. 신이기에 뭍에서도 멀쩡히 살아있을 수 있는 그들은 전국을 돌며 버려진 인어들을 찾고 관리할 수 있는 센터를 육지에 만들어 그들을 데려와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러길 몇 년 후. 전국에만 한하던 활동은 전세계로 확장하는 것에 이른다. 그만큼 인간을 사랑한 인어가 많다는 뜻이다. 어리석게도.

버려짐에 상처입은 인어들은, 그 상실을 견디지 못 하고 대부분 죽었지만- 드물게 삶에 대한 의욕이 강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경우도 있긴 했다. 하지만 언급한 바와 같이 목소리를 잃은- 인어였다 인간이 된 이를 누가 쓰겠는가? 몸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훈련도 해야하는데. 정말 말 그대로 걸음마부터 밥 먹는 법, 씻는 법, 옷 입는 법 등 모든 것을 가르쳐야 하는데 어느 세월에 누가 일을 시키겠냐고.

그래서 센터에 들어오는 과거 인어 현재 인간들은 오래도록 시간이 멈춰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시간선은 몇 백년을 살 인어와는 다르게 흘러가는데도.

그런 의미에서 친우인 태섭이 인간이 되고 싶다며 찾아왔을 때는 영 내키지 않았다. 활동하는 해역이 달라 자주 마주치지는 못 했지만 알에서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인어는 한 해역에서 자라기 때문에 그 때가 인연이 되어 제법 친하게 지낸 사이였다. -사실 태섭이 약 70년 정도 먼저 태어났으나 호열이 무시했다.- 듣자하니 좋아한다는 인간이 바다와 먼 곳에 살아서 1년에 한 두 번 올까말까라는데 굳이 인간으로 변해서 부작용과 0에서 시작되는 인간 교육을 감당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인어가 인간이 되는 주술이 이행되어온 것은 인어들의 평균 수명만큼의 역사가 있긴 했다. 그러나 주술이 발전을 거듭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거겠지. 인어가 인간이 되길 바라지 않았던가, 아니면 이것이 종족 변환의 한계점이던가. 

호열은 ‘그래서 도와줄거야 말거야’ 하며 미간을 찌푸리고 저를 보는 제 친우를 보았다. 

- 이렇게까지 해야해?

- 자주 만날 수 없다면 내가 만나러 가야지.

- 다른 인어들 자신만만하게 인간되서 올라갔다가 선택도 못 받고 비참하게 산다는 얘기 못 들었어?

- 알아.

- 근데도 그렇게까지 해야해?

대부분 버림받고 인간의 모습을 적응하지 못해 죽는다고. 목구멍 속에서 겨우 집어삼킨 호열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태섭을 보았다. 호열의 말에 태섭이 푸스스 웃었다. 호열은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 네가 인간을 사랑하게 된다면 알게 될 거야.

사랑에 빠진 바보같은 얼굴을 한 송태섭은 처음 보았으니까.






네가 인간을 사랑하게 된다면 알게 될 거야, 라고?

호열은 태섭의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그러니까, 인간이 되고난 후의 이야기를.

역시 바보같아.

센터의 안쪽에서 바다와 연결된 구간에 얼굴을 내민 호열이 마중나와있던 직원에게 다가갔다. 바다를 누비며 잡아온 해산물들이 호열의 몸 밑에 빨판 붙은 여섯개의 팔을 통해 잔뜩 올라왔다. 문어의 팔-다리로 알고있는 이가 많은데 사실 팔이다-에 감싼 신선한 해산물들이 줄지어 오른다. 나머지 두 팔은 인간형으로 직원이 내민 체크리스트를 받아들어 내용을 확인한다. 직원에게 체크리스트를 건넨 호열이 고개를 끄덕이자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마주 고개를 끄덕인다. 옆에 대기시켜둔 아이스박스 속에 호열이 가져온 해산물들을 넣고 얼음을 쏟아부어 챙긴다. 직원이 그것들을 싣고 빠져나가기 전 다시금 호열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호열은 직원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말없이 보기만 했다.

- 그래도 건강해보이죠?

직원이 마중나와있던 곳에 언제 나타난건지 알 수 없는 안나가 호열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 안 내켜하더니 잘 도와주네요, 대왕문어씨.

- 안 내키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거든요?

인어들의 작은 신님. 호열의 말에 안나가 눈을 휘며 웃었다. 호열은 인어들의 작은 신과 큰 신을 볼 때마다 태섭을 떠올렸다. 너무 닮았으니까. 태섭도 그것을 신기해했지만 그 뿐이다. 호열이 센터 안으로 시선을 주는 것을 본 안나가 말했다.

- 송태섭은 사랑하는 인간과 잘 지내고 있어요.

- …….

- 목소리도 되찾았고, 기억도 되찾았고.

호열이 안나를 보았다. 안나가 한쪽 눈을 찡긋해보였다.

- 생각보다 더 잘 하길래. 상을 줬죠.

- 다른 인어들은―,

안나가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아는 호열이 다시 센터 안을 비추는 큰 유리벽을 보았다. 바다가 맞붙은 이 면만 유리로 되어있었다. 그 안에서 인간이 된 인어들이 조용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호열을 발견하고 웃으며 손을 움직이기도 한다. 들리는 소리는 없었다. 센터는 고요했다. 유리벽에 손을 대고 멀거니 바다를 보는 인어도 있었다. 인어들을 위한 센터는 그래서 바다와 인접한 곳에 지어졌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가까이서라도 보라는 듯이.

- 사랑에 빠진 인어는 참 바보같아.

호열이 중얼거렸다.

몇 백년을 살 수 있는 삶을 버리고, 목소리를 버리고, 노화하지 않는 육신을 버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목숨 걸고 인간이 되는데 버려지면 끝이니까.


- 사랑에 빠지는 건 문제가 안되죠. 인간을 사랑해서 문제인거지.

안나가 센터 안의 인어들에게 손을 흔들어보이며 물었다.

- 요즘도 인간이 되게 해달라는 인어들이 많아요?

- 뭐. 그렇죠.

- 마음이 아프겠어요.

- …….

인어들을 인간으로 바뀌는 주술, 대왕문어 일족만 쓸 수 있잖아요.

호열이 잠시 말 없다 어깨를 으쓱했다.

- 어차피 못 말리니까요. 인간을 사랑하는 인어들에게는 맹목적인 무언가가 있어요. 아무리 말리고, 혼내고, 달래도 효과가 없죠. 다행히 나를 원망하는 인어는 아무도 없었지만… 사지로 몰아넣는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네요.

제물. 혹은 댓가. 인어의 목소리는 인간의 다리와 육신을 위한 매개체가 된다. 그는 외형만큼이나 아름답고, 노랫소리는 누구라도 홀려낼 정도로 위협적인 힘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했다. 인어들은 제 사랑을 위해 기꺼이 목소리를 내놓았다. 종족 자체를 변화하기 위한 제물로 바친 댓가로 평생 목소리를 잃고 산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사랑에 빠진 인어는 그 선택에 일말의 망설임이나 후회가 없다. 이후의 삶은 본인의 선택이니까.

- 음?

- 아. 왔나보다.

조용하기만 하던 센터 안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섭이 목소리를 되찾았다곤 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껄렁이는 듯한 목소리.

- 외부인?

- 그 사람은 안전해요.

안전? 인어에게 안전한 사람이라는 게 있었나. 호열에게 있어 인간은 사랑에 빠진 인어들을 사지로 몰아넣으면서 같은 인간이 된 그들을 제대로 케어하지 못 하고 버리기 일쑤인 파렴치한 종족이었다. 안나가 안전하다곤 했지만 온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큰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호열은 언제든 몸을 뺄 수 있도록 가슴께까지 바다에 잠겼다.

- 안나씨! 여기 있었네요!

- 안녕하세요, 백호 오빠!!

땀을 뻘뻘 흘리며 양손 가득 큰 택배상자 여러개를 가져온 남자가 밝게 웃었다. 안나가 남자에게 다가갔다. 조심스레 상자들을 내려놓은 백호가 안나에게 주문확인서를 내밀었다. 안나가 상자를 열고 물품을 확인하며 싸인하는 동안, 땀을 닦던 남자가 호열을 발견하고 눈을 둥그렇게 떴다.

- 어, 문어씨! 

- 어?

나를 알아? 당황한 얼굴을 돌아본 안나가 말했다.

- 백호 오빠도 대왕문어씨의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대왕문어씨가 인간이 된 인어들을 위해 식재료들을 수급해주는 덕에 백호 오빠네와 식재료 거래를 끊게 되서.

- 어… 이거 내가 미안해해야 하나요?

- 아니죠! 말은 못 했지만 신선식품들인데다 무게도 상당해서 힘들었던 참이라 전 좋았어!…요!

- 그렇대요.

- 반가워요! 천재 택배기사 강백호입니다!

천재 택배기사…? 택배기사도 천재가 있나…? 근데 이 인간 거리감이 왜 이렇게 없어? 손 내민 거 악수하자는 건가?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가? 밑이 안 보여서 그런가? 그치만 나를 문어라고 불렀는데. 이거 손…잡아야하나?

- …양호열입니다.

호열이 한쪽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여 제게 내민 백호의 손을 살짝 잡았다. 원래 체온이 높은건지 일을 해서 높아진건지 서늘한 호열의 손과 다르게 백호의 손이 데일 듯 뜨거웠다. 서로 다른 종족이니 더욱 차이가 날 수도 있고. 백호가 내밀어진 호열의 팔을 보더니 입을 동그랗게 모았다.

- 인간형 팔에도 빨판이 있네.

- 문어니까요.

안나의 대답에 백호가 호오… 하다 호열의 시선에 머쓱하게 웃었다.

- 민망했다면 미안해요. 문어는 처음이라.

- 처음?

- 백호 오빠가 덩치도 산만하고 인상도 무서운 느낌이지만 잘 하거든요. 우리에게. 그래서 안면 트고 친해진 인어들도 있어요. 물론 백호 오빠가 우리를 안다는 건 바깥에서는 비밀.

보송할 정도의 길이로 짧게 깎은 붉은 머리에 시선을 두던 호열이 말했다.

- 나 말고도 식재료 수급하는 녀석들이 있었나? 동족이 힘들어하는 모습 못 본다고 꺼려했는데.

- 고래일족이 한번씩 도와줬어요. 그들은 사람을 좋아하니까 더 안쓰럽게 생각했겠죠.

- 아. 그쪽이면, 뭐.

- 근데 대왕문어씨.

- 네.

- 그 손은 언제까지 잡고있을 거?

- 뭐?

호열이 화들짝 놀랐다. 분명 살짝 잡은 것 같은데 깍지끼듯 얽혀있는 손가락들이 기가 막혔다. 안나의 말에 백호가 크게 움찔하더니 손을 놓고 머쓱하게 웃었다.

- 미, 미안합니다! 촉감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몸을 일으킨 백호가 안나에게서 싸인된 주문확인서를 받았다. 한참 키가 큰 백호는 안나를 두 명 놓고 쌓아올려도 더 클 것 같았다. 호열이 그를 멍하게 올려다보고, 무안해하던 백호가 누웃… 하는 소리를 내다 둘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허둥지둥 센터를 빠져나갔다. 안나가 센터 내에서 일하는 인어들을 호출해 상자를 옮기게한 후 호열에게 다가갔다. 어라.

- 대왕문어씨?

- 어, 으응? 아니, 네?

- 밑에 빨개졌다.

- 뭐?

호열이 다급하게 문어팔을 들어올렸다. 바다의 색에 맞춰 어두운 갈색을 띄던 팔들이 새빨개져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여섯개의 모든 문어팔들을 확인하자 하나같이 새빨개져있다. 안나가 그것을 보며 살풋 웃었다.

- 대왕문어씨한테도 봄이 오려나? 역시 인간은 곤란하긴 한데… 그래도 백호 오빠정도는 괜찮으려나?

- 무슨 말도 안 되는!!

인간과의 접촉이 처음이라서 그래! 상체는 색상변화 없이 멀쩡했잖아! 정신차려, 양호열! 인어에게 호의적인 인간을 처음봐서 그래! 그래! 이게 맞지! 나는 아무 느낌도 없었다고!!






아무 느낌도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는 아닌 모양이다. 자신이 식재료 수급을 위해 방문할 때마다 안나의 옆엔 항상 백호가 있었다. 이 시간대에 센터쪽 지역 배달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호열은 수급 시간을 바꿨다.

그러길 몇 번, 안나의 옆에 또 백호가 서 있었다. 배달이 두 번 있었단다. 다음 수급일의 같은 시간에 또 서 있었다. 배달이 두 번 있다고 했다. 호열은 배달 시간을 하나로 합치는 게 어떻냐 했고 안나는 센터의 인어들이 백호를 두 번 본다고 좋아해서 안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안나의 말 중 어디서 속이 부글거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이번에는 요일을 바꿨다.

또 안나의 옆에 백호가 있었다. 퇴근하고 같이 밥먹으러 왔단다. 이건 진짜 어이가 없었다. 퇴근하면 집에 가야지 왜 여길 와. 그랬더니 백호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으며 하는 말.

- 호, 혼자라 같이 밥 먹는 게 좋아서…눗.

- …….

호열은 뭐라 받아칠 말을 찾지 못했다.

백호를 일부러 피하냐고 묻는다면 마냥 부정하지는 못 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과는 되도록이면 마주치지 않고 싶기도 했다. 세상 모든 인간들이 나쁘진 않다는 것을 태섭의 케이스나 목소리를 잃어도, 모습이 변해도 변함없이 아끼고 사랑해주는 인간의 케이스를 호열도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호열은 모든 인간을 의심하고 경계해야했다. 인간에게 친말감을 느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인간을 사랑해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찾아오는 인어들을 호되게 꾸짖고 설득하고 달래는 것이 호열의 역할이었으니까. 인간에 대한 판단이 기울어져서는 안됐다. 설령 자신이 저 인간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이 맞다 하더라도 자신이 인간이 될 일은 없었다. 그래선 안됐다.

문어일족에서 대왕문어는 자신이 유일한 개체였으니까. 대왕문어가 더 태어나 주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적어도 그때까지는. 호열이 인간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면 안됐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되게 해달라는 인어들을 말리는 것도 호열이고, 인어를 인간이 되게 해주는 것도 호열이었으니.





- 내가 싫어?

- …….

호열이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몇 번 마주쳤다고 친밀감이 오르기라도 하셨는지 말이 짧다. 그 큰 덩치와 강해보이는 인상과는 어울리지 않게 울망하게 내려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왜 오늘은 안나도 없어선.

호열이 말 없이 백호의 시선을 피해 수급해온 식재료들을 위로 올렸다. 시무룩하게 호열이 하는 것을 보면서도 아이스박스에 옮겨담는 손길이 익숙하다. 그새 일을 배웠나? 택배기사여서 익숙한가? 몇 개되는 아이스박스들을 쌓고 단박에 들어올린 백호가 호열을 홱 돌아보았다.

- 이거 갖다놓고 올 때까지 가지마!

그러곤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간다. 호열은 어이가 없을 뿐이다. 지가 뭔데 가라 가지마라야. 지가 가지 말라고 하면 여기 그대로 있어야하나? 참나.


- …안 갔네.

- …….

호열은 놀란 눈치의 백호를 보곤 수면 밑으로 코 끝까지 가라앉았다. …아니 저렇게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하는데 어떻게 가? 문어팔들이 물결에 흐느적대며 서로 꼬아댔다.

- 왜 자꾸 내가 올 때마다 있는 거야.  당신 나 좋아해?

- 응. 좋아해.

- !?

- 맛있을 것 같아.

- ……!?!?!?!!

- 아. 아! 아!!! 아니야!! 진심이 아니야!! 물론 빨개진 게 푹 쪄진 문어찜 같아서 맛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아!! 아니야!! 아니야!!!!!!! 

내가 미쳤지. 

뒤에서 호열아! 하고 부르는 소리를 무시하고 빠르게 바다속을 헤엄쳤다. 말도 반토막이더니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불편했다. 호열이 심해를 찾는 속도가 빨라졌다.


다음날. 수급일이 아니지만 호열이 센터를 찾았다. 백호는 없고 안나만 있었는데 전날 있었던 일을 얘기하자 안나가 배를 잡고 굴렀다. 미친듯이 웃었다는 말이다. 호열이 눈물까지 흘리는 안나를 흘겨보았다. 그러면서 항상 있던 크게 솟은 빨간 머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서운하다고 생각하는 건 뭐지. 미친건가.

- 아 진짜 완전 대박…….

- 그만 웃어요.

- 아, 미안해요. 진짜 너무 백호 오빠답다 싶어서. 아니 근데 대왕문어씨도 낭창하다. 어떻게 그걸 단박에 물어봐요?

-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이 안 되잖아요. 내가 일부러 본인이 없을 시간과 요일에 오는데 그걸 다 맞춰서 오고 있는데. 당연히 그쪽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잖아요.

- 하하. 대왕문어씨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네. 그 성격에 인어들 식사 수급 끊지도 못 할텐데.

- …….

안나는 인간에게 냉정한 편인 호열을 퍽 재밌다는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인간에게 냉정하고, 의심하고, 경계하는 그를 이해한다. 스스로 인어들을 사지로 몰아넣는다고 생각하며 태어난 제 종을 저주한 것을 본 적도 있다. 무력해지면서도 인간이 되길 희망해 인간이 되는 방법을 어렵사리 알아와 찾아오는 인어들을 설득하면서도 기어이 인간으로 변하게 해주는 마음 착하고 가여운 대왕문어.

왜 하필 인간일까. 인간이 조금만 더 착하고, 책임감 있었더라면. 대왕문어씨도 마음 편하게 인간을 사랑할 수 있었을텐데.

인어들을 관리하는 신의 입장에서 인간은 애정보다는 증오에 더 가까운 감정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소중한 인어들이 인어이길 포기하고 인어의 증명 그 자체인 목소리를 포기하고 인간이 된 건데. 그걸 이해하지 못 하고 희귀성이 사라졌으니 버리고, 몽환적인 아름다움이 사라졌다고 버리고, 말 못 한다고 버리고, 걸음마부터 다 가르쳐야해서 손이 많이 간다고 버리고… 인어들의 큰 신인 카오루는 눈물로 인간이 되어 버려진 인어들을 품고 가르쳤지만 작은 신인 안나는 어린 만큼 감정에 솔직했다. 카오루에게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인간이 된 인어를 버린 인간들을 찾아가 크고 작은 저주를 걸어준 적도 제법 있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모든 것을 버리고 인간이 된 인어에게 눈물 흘리며 입을 맞추고, 사랑으로 품어 평생을 함께한 인간도 분명히 있었기에. 인어들의 작은 신은 인간을 애정하면서도 증오했다. 애정과 증오라는 이름의 저울은 항상 이리저리 기울어졌다. 최근에는 그래도 우성과 태섭의 사랑으로 기분이 좋아져 애정에 저울 추가 조금 기울어진 상태였고.

그래서 안나는 호열이 인간을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이 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 다만 인간의 수명이 더욱 짧고 그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한정적이라 그렇지. 하지만 그정도는 인간이 감안해야하지 않나? 인간이 인어가 되는 방법은 없으니까. 인어는 인간이 되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데 인간은 아니니까.

- 오늘은 백호 오빠 없어요.

- …안 찾았어요.

그짓말. 눈이 계속 주위 살피는 게 보이는데. 여섯 개의 문어팔 중에 네 개가 센터의 끝에 닿아있는데 무슨. 안나가 피식 웃었다.

- 한동안 안 올 거에요.

- …왜요?

- 택배기사는 2인 1조거든요. 교대했다는 말씀.

- 아…….

- 왜, 아쉬워요?

- 아니에요!

호열이 발끈하더니 그대로 바다속으로 돌아갔다. 안나가 빙글 웃었다. 반응은 솔직한데 입은 솔직하지 못 하네. 보글보글 올라오는 기포를 보던 안나가 흐음, 하며 눈을 휘었다.

좀 솔직해도 될텐데.


그 뒤로 오래도록 백호가 보이지 않았다. 센터가 조용했다. 인간이 된 인어는 전보다 늘었다. 새로운 얼굴이 보이고, 눈에 익은 얼굴이 사라졌다. 대부분은 건강악화로 죽었고, 일부는 드물게 인간생활에 익숙해져 사회활동을 하러 나갔다. 말을 하지 못 하니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었지만. 끝까지 살아남은 인어는 그렇게 자신을 버렸던 인간을 극복했다.

인간이 된 태섭과 그의 연인도 만났다. 남자여서 의외였지만 종족도 뛰어넘는 사랑인데 성별이 문제일까 싶다. 태섭의 손이 주먹쥐어 다가오자 호열이 문어팔 끝을 말아 묵직하게 부딪힌다.

- 어떻게 왔어?

- 한번씩 도와주러 와.

몽환적인 울림이 사라진 목소리가 낯설었다. 조금 거칠어진 느낌도 났다. 호열이 말없이 태섭을 훑자 그가 웃었다.

- 나 괜찮아. 목소리도, 기억도 되찾았고. 우성이가 나를 잘 보살펴줘서 제법 인간처럼 할 수 있게 됐거든.

- 태섭아, 인간처럼이 아니라 인간이잖아.

부드럽게 웃으며 정정하는 시선에 애정이 묻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우성이 호열을 보며 말했다.

- 태섭이를 인간이 되게 해줘서 고마워요.

호열이 우성을 보았다. 우성이 태섭의 양어깨를 부드럽게 감싸쥐고 말을 이었다.

- 덕분에 제가 무엇에 더 집중해야하는지 깨달았거든요. 같은 땅을 밟고 함께할 수 있게 해주셨고.

- …고생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 그동안 태섭이를 제대로 보지 못한 제 업보라고 생각해요. 목소리도, 기억도 잃고 새로 태어난 아기가 된 거나 다름 없던 태섭이를 가르치고 보살피면서 제가 얼마나 태섭이를 사랑하고, 인어임을 버리고 인간이 될 정도로 태섭이가 얼마나 저를 사랑하는지 그제서야 알았거든요. 지금은 태섭이가 목소리와 기억을 찾았다는 것에 감사해요.

- 목소리도, 기억도 되찾지 못 했으면?

태섭과 우성은 몰랐지만 호열은 안나가 태섭의 목소리와 기억을 되찾아주었다는 것을 알았다. 왜 태섭에게만 특혜를 주었냐고 다른 이들이 따질 수 있지 않나 싶지만 따질 이가 없었다. 인간은 인간이 된 인어를 버렸고, 인간이 된 인어는 대부분 인간의 몸에 적응하지 못 하고 죽었으며, 살아남은 인어들은 버려진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고 순응했기에 호열을 탓하지 않고 안나에게 따지지 않았다. 인어는 그런 종족이었다.

호열의 질문에 우성이 난처하게 웃다 대답했다.

- 태섭이의 마음을 빨리 알아채지 못하고 힘들때 혼자 둔 저를 탓해야죠. 하지만 태섭이가 평생 목소리와 기억을 잃었더라도 저는 태섭이를 사랑했을거에요. 평생 보살펴야한다 할지라도.

제법 단호한 목소리. 단호한 표정. 호열은 왜 태섭이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찾아왔을 때의 태섭이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둘과 이야기를 한참 나누고 집으로 보낸 호열이 어느새 까만 밤이 찾아온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태섭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봤으니 그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친우가 버려져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제 아무리 호열이라도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후회할 것 같았다. 누구든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찾아오면 안 된다고만 하고 돌려보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과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마냥 동족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건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나는 인간이 된다거나 그럴 생각은 없지만.

그들은 그들이고. 자신은 자신이었다. 행복한 결말을 맺는 인어들보다 버려지는 인어들이 더 많기에 누구보다 냉정하고 이성적이며 의심하고 경계해야했다.

- 양호열?

…그래야하는데.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가 다잡은 마음을 순식간에 흐트려놓았다. 호열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어느새 센터 바닥 끝까지 다가와 엎드린 백호와 눈이 마주쳤다.

- 나 너 좋아해. 그때 당황해서 말실수를 해버려서 네가 겁 먹게 해버렸지만. 좋아해.

눈이 마주친 순간 쏟아지는 말에 호열이 눈을 깜빡였다. 백호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 너도 나 좋아하잖아.

백호가 한 팔을 뻗어 호열의 앞쪽 바닷물을 휘적였다. 몸이 점점 앞으로 쏠려 빠질듯해 호열의 문어팔 하나가 백호의 손바닥을 잡고 밀어올렸다.

-  …….

- 이거 봐. 생존을 위해서 눈에 띄지 않는 색으로 보호색을 쓰는 문어가, 나랑 마주칠 때마다 새빨갛게 익어있는데.

- …….

- 너 나 좋아하잖아.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처럼. 백호의 목소리가 조용한 센터 밖을 울렸다. 

인지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호열이 빨판붙은 제 인간형 팔을 내려다보았다. 색의 변화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보던 백호가 조그맣게 말했다.

- 너, 너어… 나랑 마주칠 때. 처음 손잡았을 때 얼굴 빨개졌었어.

- …하.

거기였냐고. 호열이 제 얼굴을 쓸었다. 어째서 처음 만난 인간과 손 한 번 잡았다고 이렇게 되는 걸까. 호열은 이해할 수 없었다. 백호를 밀어올린 문어의 팔 끝에 여전히 백호의 손이 닿아있었다. 차가운 팔 반대쪽에 자리한 빨판에 백호의 손가락이 닿았다. 본능적으로 빨판이 좁아지며 손가락을 물었다. 아픈지 백호가 살짝 인상을 쓰자, 그 모습을 본 호열이 말했다.

- 정신 차려요. 넌 인간이고 나는 인어. 종족이 다른데 좋아할 게 뭐 있다고 그래요? 그저 인어인 내 모습이 신기해서 잠깐 생긴 관심과 흥미에서 기반된 감정이라는 걸 알아요. 시간이 지나 관심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기간한정 감정이라고요.

호열이 백호의 주변으로 문어팔들을 올렸다. 빨판이 바닥에 들러붙고 그 힘을 이용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문어팔 하나하나가 성인만 했다. 백호를 가두듯 문어팔들을 바닥에 짚은 호열이 몸을 숙여 그에게 말했다.

- 어때요? 무서운가요? 징그러운가요? 인간들이 상상하는 아름다운 인어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죠? 나는 당신이 연애감정을 품기 적절하지 않아요. 센터 인어들이 당신을 좋아한다니 이 정도로만 하는 거에요. 택배기사면 택배기사답게 본인 할 일만 하세요.

- …….

무미건조한 표정과 목소리. 호열을 보던 백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호열의 문어팔이 하나씩 바닥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빨판이 바닥과 분리되며 떠올랐던 몸이 유연하게 바다로 떨어진다. 풍덩 하는 소리와 솟아오른 물기둥이 백호에게 쏟아졌다. 머리위로 쏟아지는 바닷물이 차갑고, 짭짤했다.

바다속에 들어갔던 호열이 백호에게 등 돌린채 수면 위로 솟았다.

- 환상을 깨서 미안하지만 현실을 봐요. 당신같은 인간 때문에 홀린 인어들이 자꾸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찾아온다고요. 동족을 사지로 몰아넣는 기분, 알아요? 그러니 다른 인어들에게도 그런식으로 굴지 말고 일적으로만 대하세요. 다른 인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 얘기 다 했냐?

- ?

호열이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았다. 첨벙 소리가 들린 것은 동시였다. 무의식적으로 우성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헤엄을 못 친다는 말이. 저 인간도 헤엄을 못 칠지도 몰랐다. 호열의 크고 긴 문어팔이 바다를 헤집었다. 쫙 뻗어 백호를 찾았다. 네번째 문어팔이 몸통과 이어지는 부분에 무언가가 닿았다, 고 느끼자마자 바로 등 뒤에서 백호가 솟아올랐다.

- 다른 게 필요해? 내가 좋아하는 건 너라고. 대왕문어씨.

- 밤바다는 인간에게 차가워서 위험,

- 걱정은 해도 되고 좋아하는 건 하면 안 돼?

- …….

밤바다에 푹 젖은 백호의 손이 호열의 어깨에 닿아왔다. 뜨거웠다. 분명 밤바다는 얼음같이 차가울텐데도.

- 인간이 되어달라고 할 생각 없어. 인간이 된다 해서 버린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는 대왕문어인 네가 좋은 거라고. 그럼 안 되냐? 다른 인어들은 왜 얘기를 하는 거냐? 내가 널 좋아한다니까? 너도 날 좋아하잖아. 보호색도 잊어버릴 정도로 내게 끌렸잖아. 아니야? 난 이대로인 너를 좋다고 하는 거야. 다른 인어들이 아니라.

- …나는 인간이 되길 원하는 인어들의…….

- 아, 그래. 알겠어. 알겠다고. 근데 그건 그 녀석들 얘기지 네 얘기가 아니잖냐. 넌 어떻게 하고 싶냐?

-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아.

- 그래. 그거면 됐어.

백호가 호열에게서 떨어졌다. 백호에게서 느껴지는 열기가 줄어들어 황급히 문어팔로 백호를 감싸쥐고 그를 센터 바닥으로 올렸다. 몸을 추스리며 킁, 소리를 내는 백호를 보는 호열의 표정이 멍하다. 그런 호열을 보던 백호가 말했다.

- 내가 감기에 걸리면 싫지?

- …….

- 한동안 내가 안 보여서 신경쓰였지?

- …….

- 네가 올 때마다 내가 와있으면 좋겠지?

- …….

호열이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백호가 푸핫 웃었다.

- 나도 한 바보소리 듣지만, 너도 참 바보다. 그게 다 뭐냐. 나를 좋아한다는 뜻이잖아. 대왕문어야, 아니. 양호열아.

저를 보는 시선이 뜨겁다. 백호가 호열을 마주 보았다.

- 너도 날 좋아한다는 뜻이잖냐.

- ….

- 인간이 되기 싫으면, 안 하면 돼. 인간과 인어의 수명이 많이 차이나는 것도 알고, 내가 늙어도 너는 늙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 여기 배송 자주 하면서 친해진 인어들이 얘기해줬거든. 글로 써서.

- …….

- 인상 찡그리는 거 봐. 진짜 솔직하네. 하핫! 알았어, 다른 녀석들 얘기 더 안 할게. 아무튼 말이야. 네가 변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 

인어가 모든 것을 맞춰주는 사랑만 있는 게 아니란 소리야. 난 네가 좋아. 넌 날 최근에 봤겠지만 나는 아니거든. 이런 소리하면 좀 미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전에 택배 배송한다고 센터 안에 짐 풀어놓을 때 네가 온 걸 본 적 있어.

그때도 너는 해산물 수급해왔었는데, 아직 몸에 적응 덜 된 인어가 온 터라 자꾸 실수하는 걸 보고 도와주러 가려고 했거덩? 근데 네가 그 큰 문어팔로 슉슉 도와주고 정리까지 다 할동안 네가 어떤 표정이었는지 알아?

당연한 걸 한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어. 네가 그 인어를 못 났다 하지 않고, 귀찮아하지도 않고. 인간으로서 적응이 덜 됐다고 뭐라하지도 않고. 잘 다독이고 보내는 모습을 봤다고. 그러고 나서 그 인어가 돌아가고나서야 인상을 찡그리고 자기 탓을 하는 널 봤어. 그리고 느꼈지. 그런 표정을 짓는 너를 안아주고 싶다고.

나는 그때부터였어. 네가 인간을 경계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안나 씨로부터 전해들었을 때. 나만큼은 네게 있어 해롭지 않고 부정적이지 않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 처음으로 마주한 날 손을 잡았는데 너무 좋아서 깍지를 껴버린 탓에 너를 놀라게 해버렸지만. 그럼 어떡해. 네 보호색이 사라지고 얼굴까지 새빨갛게 물들었잖아. 나는 너를 봐왔다가 마주한 거고 너는 나를 처음 봤는데 그렇게 귀엽게 새빨게지면. 내가 욕심이 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나는 너를 만날 때마다 더 좋아한다는 감정을 느꼈어. 나를 마주칠 때마다 빨개지는 게 귀여웠다고. 

- 호열아.

백호가 처음 호열을 만났을 때처럼 손을 내밀었다. 호열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백호와 그의 손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 이 천재 강백호님이 널 봤을 때. 너도 분명히 나를 좋아하는 게 맞거덩? 근데 잘 모르겠으면, 기다릴게. 대신 나 피하지만 말아주라. 부담스럽게 하지 않을게. 네가 네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까지 옆에 있게만 해주라. 네게 인간이 되라고 하지도 않을거고, 시간이 흐르는대로 지금의 너를 좋아하게 해주라.

푹 젖은 손이 여전히 내밀어져있었다. 호열이 망설였다. 백호가 말한대로 이 감정에 대해 정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말한대로 그가 보이지 않으면 신경이 쓰였고 지금의 그가 아프지 않았으면 했다. 다른 인어들처럼 인간이 되고싶지 않았다. 그가 옆에 있으면 했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지금 백호의 손을 잡아야 그를 건물 안으로 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호열이 조심스레 인간형 팔을 뻗었다. 느릿하게 다가온 손 끝이 백호의 손 끝에 닿았다. 백호의 손이 천천히 호열의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깍지 낀 손이 맞잡혔다. 백호가 웃었다.

- 에, 에, 에엣취!

- …얼른 들어가요.

호열이 깍지 낀 손을 풀고 문어팔로 그를 뒤돌려 세워 그대로 등을 밀었다. 코를 훔친 백호가 순순히 센터 안으로 들어가며 고개만 돌려 씩 웃어보인다. 문이 닫히고 백호가 사라지자 혼자 남은 호열이 백호와 맞잡은 손을 내려다보며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지금은 그저 그가 아프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 fin

* 원래는 상어류 쪽으로 하려고 했는데 인어ㄱ주에서 마녀가 문어...같은 거 였던 거 같아서 인어를 인간으로 바꿔주는 게 호열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문어로 결정.

근데 문어로 쓰고나니까 뭔가 안 멋진 거 같고 자꾸 삶은 문어 생각나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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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페어
#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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