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binogi OC] #화이트데이
공백 포함 3,324 플레오x낙청월
※ 이 페이지에 올라오는 글은 마비노기 게임 내 동양 대륙이 있다는 것을 착안해 만들어진 세계관 썰입니다.
현재 마비노기와 배경이 매우 다를 수 있습니다.
지인님 자캐 무단 납치 죄송합니다.
밀려오는 피곤 속에 목덜미를 주물렀다.
금일은 작은 이벤트가 있는 날로, 기루는 평소보다 복작했다.
그놈의 화이트데이가 뭐라고 저리 난리인지 모르겠다. 작은 선물을 들고 온 손님부터 마차에 가득 실은 꽃다발까지. 그래,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늘 하던 일을 하면 되었으니까. 하지만 늘 그렇듯, 사람이 몰리면 자연스레 사건이 일어난다. 저기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로비 한 보판에서 난감해하는 직원, 화이트데이라는 점을 이용해 범죄 책임을 회피하는 녀석이 경비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한숨을 쉬며 그들에게 다가가려는데, 2층 난간에 서 있던 마담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이었지만 그녀의 눈이 살짝 휘었다.
뻐끔거리는 입.
마담 따라 고개를 돌리니 그 곳엔 카텔리안이 있었다. 특유의 무표정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뭐라 말하는 모습, 당황하는 고객.
다시 2층을 올려다봤을 땐, 마담은 그 자리에 없었다.
늘어지듯 의자에 앉으니 찻잔을 내려놓던 마담이 웃는다.
“매년 이럴 텐데 벌써 지치면 안되지 않겠어?”
“그렇지. 하지만 지치는 건 어쩔 수 없다.”
한참 전에 떨어진 당을 충전하기 위해 이제 막 예쁘게 놓인 양갱 하나를 덥석 입에 집어넣었다. 입안 가득 단맛이 퍼지니 좀 살 것 같다.
“후후, 차차 익숙해질 거야. 그때까지 힘내주길 바랄게. 그래, 맞아. 말 나온 김에 물어볼게.”
슬 목이 막혀 차를 한 모금 크게 들이켰다.
“청월씨에게 줄건 챙겨뒀어?”
푸웁!
차로 녹이던 양갱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그리 멀지 않던 마담의 얼굴에도 골고루.
“미, 미안. 무, 뭐라 했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닦은 마담이 재차 질문했다.
“청월씨 말이야. 둘이 사귀는 사이잖아?”
“내가…. 말했었나?”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식은땀이 났다.
첫째. 에린에 넘어온 지 이제 1년 차라 아무것도 몰랐다.
둘째. 그렇다 하더라도 분위기를 봐서 하나 정도는 준비해둘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셋째. 청월과 사귀는 건 아무도….
“당신 내가 누군지 잊었어?”
답을 하듯 마담이 자리에서 일어나 눈앞의 참사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먹을 수 없게 된 다과를 치우고 테이블보를 거둬 이름 모를 바구니에 집어넣는다. 그때까지 머릿속은 사고를 정지한 것처럼 새하얗다.
작은 힌트조차 언질 주지 않았던 지난날을 곱씹던 차, 마담과 눈이 마주쳤다.
“괜찮아. 나만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조심하지 않으면 모두가 알게 될걸?”
“마담, 그, 어떻게….”
작게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입을 막았다.
“들어오렴.”
조심스레 열린 문 너머에는 낮에 보았던 작은 엘프가 있었다. 귀가 예민한 아이니 분명 우리의 대화를 다 들었을 것이다. 딱히 숨길 생각은 없지만 이런 식으로 사방에 알려지는 건 다른 얘기다. 청월이 바라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안녕하세요.”
우물쭈물하며 들어온 카텔리안이 문을 닫고 그 앞에 섰다.
“시간 비워줘서 고마워. 하…, 차를 대접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서 괜히 미안하네.”
카텔리안에게 엉망이 된 테이블보를 펼쳐 보인 마담이 이쪽을 향해 웃었다. 그녀를 따라 날 보는 카텔리안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잠깐, 그 긍정은 뭐지?
“괜찮아요.”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대신 여기까지 왔으니까 선물이야. 자, 받으렴.”
마담이 고풍스러운 장식이 새겨진 작은 목함을 하나 건네주니 카텔리안의 얼굴엔 의문이 서린다.
“이건….”
“오늘이 화이트데이잖니. 맛있게 먹었으면 해서 준비했단다.”
“어, 전….”
안절부절 못하는 카텔리안에게 호탕하게 웃던 마담이 내 쪽을 본다.
“후후, 부담스러우면 입막음 뇌물이라고 생각하면 돼.”
대체 뭔 상황이냐는 듯 두 사람을 바라보는 내게 카텔리안은 결의에 찬 고갯짓을 했다.
환장하겠네.
“그래서, 수습은 하고 왔나?”
건조하고 억양 없는 목소리가 회상을 끊어냈다.
청월은 금고를 정리하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금고 문 너머로 공허한, 새카만 눈이 보인다.
“그…. 수습은 마담이 다 했지.”
고개를 끄덕인 청월은 다시 금고로 눈을 돌렸다. 한참을 부스럭거리며 정리하는 소리가 날 나무라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물론 청월이 남을 탓할 성격이 못 된다는 건 알지만, 수습하나 못한 정인에게 실망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 절로 무릎을 꿇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
“신경 쓰지 말게. 이곳에서 비밀은 곧 정보지 않은가. 곧 모두가 자연스레 알게 될걸세. 되려….”
“되려?”
금고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곧 찰칵하며 잠기는 소리가 날 때까지 청월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 정적이 가져다주는 공포는 이로 설명하기 힘들다. 어찌 사고를 옮겨야 할 것 같아 눈을 이리저리 놀렸다. 그렇게 안착한 곳은 무언가를 덮고 있는 창백한 손이었다.
청월은 입을 여는 것 대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가 불편할까 저어되네.”
“응? 내가?”
“자넬 이용해 먹는 자들이 생길까 봐 두려워.”
어느새 눈앞까지 걸어온 청월이 멈추어 섰다.
“그래서 비밀로 하고 싶었네.”
“이거 참....”
서로 생각하고 있었다니, 얼마나 웃긴 이야기인가.
행복에겨워 말을 못하고 있으니 청월이 천 뭉치를 앞으로 내민다. 그건 잘 포장된 상자였다.
“이건….”
“이곳에는 본래 화이트데이라는 날이 없었네. 이건 밀레시안이 넘어오면서 생긴 문화지.”
열어보라는 듯 청월은 내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내가 초콜릿을 주던 날은 기억하는가?”
설명을 배경음으로, 푸른 천을 조심스레 풀어내고 목함을 열었다.
그날도 이렇게 선물을 받았었다.
“그렇지.”
“화이트데이는 그 보답일세.”
입이 절로 벌어졌다.
“넌, 늘 예상을 뒤엎는 구나. 네가 만든 거냐?”
보답이라면 내가 준비해야 하는 것인데.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청월의 얼굴은 툇마루로 향해 있었다. 그래서 볼 수 있었다. 석양처럼 붉게 물든 귀를. 어설프게나마 부끄러움을 숨기려는 모습을.
그렇구나. 이렇게나마 네 마음을 표현하는 거구나.
“먹기 아까운데.”
정말 먹기 아까웠다.
정성을 넘기더라도 형형색색의 알사탕 사이, 우리를 상징하는 귀여운 한 쌍의 여우가 코를 맞대고 있는 걸 보면 누구든 그러할 것이다.
“내 정성인데도?”
미간을 바짝 좁힌 청월이 나를 보며 볼멘소리를 낸다.
“그럼 눈에 담아두고 나서 먹어야겠군.”
이내 만족한 대답이었는지 미간의 주름이 펴졌다.
상하기 전에 먹으라는 말은 덤으로.
“네 말대로라면... 이를 어쩌지? 난 준비를 하지 못했는데.”
마담이 대신 준비해 주었던 사탕은 줄 수 없게 되었다. 대신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청월에게 줄 수 있는 방법이 딱 한 가지 있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것.
“별것 없네. 다 먹으면 용서해 주…!”
청월의 손목을 당겨 안았다. 작은 몸이 품에 들어오자마자 목함에서 알사탕 하나를 꺼내 입에 넣었다.
빤히 내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을 청월의 얼굴이 상상된다. 이 선물을 받고 나면 넌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고개를 숙이고.
입을 벌려 사탕을 넘겨준다.
커다랗게 떠진 눈은 곧 나를 받아들이 듯 천천히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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