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코토] 크리스마스 데이트 (完)

[카미코토] 크리스마스 데이트 : 데이트 시작

앞으로 2편 더 있어요

「마지막 학교생활에 불미스러운 일을 만들지 말도록.」

미코토는 파티가 끝나고 제시간에 나갈 수 있나 싶었다. 쿠로코는 마침 크리스마스의 시기라 밀려오는 저지먼트 일로 중간에 빠져나간 지 오래였고(언니와 크리스마스를 함께 할 수 없다는 슬픔에 울며 매달리는 것을 달래느라 애먹었지만 말이다), 자신을 좋아하는 애들도 파티를 보낸 것으로 마음이 풀렸는지 순순히 자신을 배웅해 줬기에 안심했으나, 사감에게 붙잡혀버린 미코토는 토키와다이 중학교에 걸맞은 사람으로서 행동하고 오라는 연설(이라는 이름의 잔소리)을 듣느라 시간이 지체되어 버린 것에 조급해졌다.

그와 데이트할 복장으로 갈아입은 미코토는 서둘러 그가 기다리는 장소로 달려갔다.

그렇게 미코토가 도착한 곳은 제5학구에 위치한 어느 광장이었다.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알려주듯 캐럴이 울려 퍼지고 일루미네이션으로 예쁘게 꾸며진 거리에 대학생 커플이 몇몇 보이는 현장은 정말 크리스마스 날 거리에 나와 있다는 것을 실감 나게 해줬다.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주위를 살피며 걸음을 옮기던 미코토는 분수 앞에 서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을 보고 멍해진다.

야간경관조명이 설치되어있어 주변을 아름답게 비추는 분수 앞에 서 있어서 그런지 그가 좀 더 눈부시게 보이는 듯한 효과를 주는 듯했다. 라벤더 포그 색의 셔츠와 남색 바지의 평범한 옷차림새에 밤색 코트를 걸쳐 입은 그의 모습은 평소보다 멀끔해 보이기까지 해 한층 더 멋있어 보이는 현상을 주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미코토의 필터가 씌워진 채로 설명한 카미조의 모습이다. 현실은 추위에 몸을 덜덜 떨며 코트를 여며 입고, 추운 바람에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꼴사나워 보일까 목에 둘러맨 붉은 머플러를 들어 올리는 것으로 얼굴을 감춰내고 있었다. 발이 시려운 모양인지 붉은 계열의 두꺼운 운동화를 신은 발이 가만히 있질 못했는데,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미코토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핫, 이럴 때가 아니지.”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추운 거리에 오래 서 있게 둘 수 없었던 미코토는 서둘러 카미조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많이 기다렸어?”

“별로, 괜찮아….”

뒤에서 들려온 미코토의 목소리에 카미조는 발놀림을 멈추곤 몸을 돌렸다.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는 말로 안심시키려 미코토를 향해 몸을 틀었던 카미조는 마주한 미코토의 모습에 말이 막힌다.

정확히는 숨이 삼켜졌다.

분명 규칙상 토키와다이 중학교의 복슬복슬한 더블코트와 그 밑에 교복의 짧은 스커트 자락이 흩날리는 복장을 해야 하니까 익숙한 교복의 모습으로 마주할 줄 알았던 미코토가 완전히 다른 사복 차림으로 나타났으니까.

새하얀 후드티에 연분홍색 코트를 걸쳐 입은 그의 모습은 안 그래도 뽀얀 피부가 화사하고 눈부셔 보였다. 밝은 상의와 상반되게 하의는 어두운 계열의 체크무늬 스커트로 자주색 기모 스타킹(보이지 않겠지만 반바지도 입고 있다)에 검은색 부츠를 신고 있어 그를 멋들어 보이게 했다. 그의 패션 센스를 엿볼 수 있는 옷차림새에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그 시선을 부담스럽게 느꼈는지 그는 몸을 움츠렸다.

“뭐야, 이상해..?”

서둘러 와버린 것에 머리가 헝클어졌거나 옷이 구겨지기라도 한 것인가 싶어 불안해하는 눈치로 머리를 매만지고 옷매무시를 가다듬는 미코토에 카미조는 그런 건 아니라며 두 손을 내저었다. 그럼 뭐냐는 눈초리로 미코토가 노려보면, 카미조는 눈동자를 굴리며 말하기를 주저하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예뻐서….”

예뻐서 자신도 모르게 멍하니 봤다는 의도였지만, 카미조는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면 혼날 거 같아 용기 내서 말한 것이기도 하고, 거기까지 말하는 것만으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했던지라 카미조는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손등으로 제 입가를 가려냈다. 큰 손으로 입가를 가려냈다고 해도 홍조를 띤 얼굴이 다 가려지는 것은 아니기에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있는 카미조를 미코토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하게 제 복장에 대해 예쁘다고 칭찬한 발언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빤히 바라보던 미코토는 뒤늦게 쑥스러움이 몰려오며 펑, 하고 터질 듯한 얼굴에 고개를 푹 숙였다.

마치 사귄 지 얼마 안 된 커플이 첫 데이트에 서로의 모습을 보고 한 번 더 반해서 두근두근 설레고 있는 느낌이었다. 두 사람의 주위로 핑크빛 분위기가 형성되며 보는 사람도 간질간질해지고 있을 때, 미코토는 멀리서 느껴지는 시선들에 털이 삐죽 서며 등 쪽에서 소름이 돋는 느낌이 쫘악 퍼지자 퍼뜩, 고개를 들어 놀란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두려워하듯 주위를 살피는 미코토의 모습에 이상하게 생각한 카미조는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 애들이 온 거 같아….”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전자파로 인해 시선에 예민했던 미코토는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이들이 정말 데이트하러 온 것인지 보러 온 무리인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대로 데이트해도 문제는 없지만, 그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즐기고 싶지 않았던 미코토는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그한테 예뻐 보이고 싶어서 사복을 입은 것도 있지만… 눈에 띌까, 교복에서 사복으로 갈아입은 보람이 없어진 것에 풀이 죽었다.

축 처진 미코토를 말없이 바라보던 카미조는 오른손을 뻗어 미코토의 왼손을 엮어 잡았다. 손깍지를 확실하게 끼워서 연인처럼 손잡기를 해오는 카미조에 놀라 고개를 든 미코토는 자기가 먼저 해왔으면서 부끄러워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어리둥절해한다. 저와 시선을 마주하자 그는 볼을 긁적이며 점점 사람들이 모여들기도 하고, 주위를 보면 대부분 이러고 있으니까 어색하지 않을 거라며 둘러댔다. 이런 혼잡한 자리에선 사람들에게 치이기 좋아 위험하니 잡아둔 것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그들이 주위에 있다고 하니까 데이트처럼 보이기 위해 손을 잡아 온 것이 제일 큰 이유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미코토의 동의 없이 손을 잡은 것이니까 싫다면 손을 떼겠다고 잡았던 손에 힘을 풀려고 하니 미코토는 빠져나가려는 그의 손을 꽉 잡아냈다.

“좋아. 좋으니까 놓지 마!”

카미조와 맞잡은 손이 좋았는데 그 손을 빼려고 하는 그에 미코토는 그의 손을 붙잡으려 제게로 당겨왔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빠져나가려는 그의 손을 붙잡아 당긴 것으로 인해 그와 팔이 제 팔과 와닿으며 한껏 가까워지게 됐다.

솔직해진 미코토의 발언과 가까워진 거리감으로 팔에 닿는 부드러운 뭉클함에 카미조는 큥, 심장이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미코토로 인해 긴장감이 오른 카미조는 자신이 긴장한 것을 눈치채게 하지 않으려 침을 꼴깍 삼켜내고는 조용히 앞장서 나가기 시작했고, 미코토는 맞잡아준 손으로 시끄러웠던 주변이 조용해진 느낌에 헤실헤실 웃어 보이며 카미조의 걸음에 맞춰 걸어 나갔다.

“그럼, 어디부터 갈까?”

손을 마주 잡은 것이 익숙해질 때쯤, 나란히 거리를 걸어가던 카미조가 어디부터 갈지 묻자 미코토는 생각해 둔 곳이 있는데 거기로 괜찮냐 물었다. 카미조는 괜찮다며 따라가겠다고 했고, 미코토는 즐거워하는 얼굴로 안내했다.

미코토가 데려온 곳은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크리스마스인데 평범한 패밀리 레스토랑에 온 것에 카미조는 의아해하며 여기로 괜찮은 것이냐고 물어보았지만, 미코토는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직원의 인사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크리스마스라 그런지 커플과 가족끼리 놀러 온 사람들로 가득한 모습에 두 사람은 멈칫했다. 이런 풍경을 생각 못 했던 것은 아니지만, 핑크빛에 온화한 분위기가 흐르는 공간을 보니 가슴 안쪽에서 몽글몽글한 감정이 올라오며 뭉클해지고 간질간질해졌다.

‘우리도 저렇게 보일까…?’

손까지 잡고 들어온 두 사람의 모습은 어딜 봐도 앳된 커플처럼 보였고,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도 자신들이 그들처럼 보일까 쑥스러운 감정이 몰려왔다. 이상한 상상을 하게 될까, 미코토는 서둘러 자리에 앉자며 걸음을 옮겼고, 카미조도 뒤늦게 알았다며 미코토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외투를 벗어둔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앉아 종업원이 오기를 기다렸다. 왠지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 한동안 말없이 있던 미코토는 눈치를 보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있잖아.”

“응?”

“그 아이들도 나쁜 의도는 아녔겠지만.. 감시하는 듯한 시선이 불편했거든.

–그렇지만 당신이 오른손으로 잡아준 덕에 시선을 지워낼 수 있었어. 그러니까, …고마워.”

낯간지럽긴 했지만, 카미조 덕분에 마음 편하게 올 수 있었던 것은 감사를 표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 미코토는 고맙다고 인사했다. 자연스럽게 꺼낸 감사 인사로 미코토는 자신도 모르게 웃어 보였고, 그런 미코토의 부드러운 미소에 카미조는 가슴 한편에서 간질거림을 느꼈다.

그럴 의도로 잡은 것은 아니었지만, 미코토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다행스러워하던 카미조는 문뜩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지금은 괜찮냐고 물었다. 마주 앉게 되면서 잡았던 손을 풀어냈으니까 많은 이들의 시선을 느끼고 힘들어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어 묻는 카미조에 눈이 동그래진 미코토는 괜찮다고 답했다. 마음 같아선 그럼 손을 잡고 있어도 되냐고 묻고 싶었지만, 미코토에겐 그런 용기 따윈 없었기 때문에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주문받겠습니다.”

긴장감이 몸을 누르고 있을 때, 주문을 받겠다고 온 종업원에 미코토는 화들짝 놀란다. 하필 이럴 때 온 종업원에 미코토는 긴장했단 걸 티 내지 않으려 급히 메뉴판을 펼쳐낸다. 촥, 촥, 촥, 빠른 속도로 메뉴판을 넘기던 미코토는 혼란스러운 눈동자를 굴려 게코타 그림이 박힌 메뉴를 찾아낸다. 크리스마스 한정 메뉴를 시키면 게코타 굿즈를 준다는 정보를 미리 찾아놨던 미코토는 망설임 없이 게코타 그림과 같이 있는 메뉴를 달라고 주문을 넣었다.

“이거 주세요!”

미코토가 가리킨 메뉴를 본 종업원은 확인차 주문한 메뉴명을 읊었고, 메뉴명을 들은 미코토는 이상함을 느꼈다. 자신이 찾아본 정보랑 다르게 읽어진 데다가 없던 단어까지 생겨 의아해하던 미코토는 제 손가락이 가리킨 메뉴가 무엇인지 확인에 나섰다. 천천히 눈동자를 굴려 제 손끝이 가리킨 메뉴가 무엇인지 살폈다.

‘내가 뭘 주문한 거야—!!’

미코토는 혼란스러웠다. 생각지도 못한 실수를 해버렸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잘못된 것을 느낀 미코토는 주문을 취소하려 고개를 들었으나 종업원은 바쁘고 떠들썩한 공간 속에 불리기라도 한 것인지 이미 주문을 받아 가고는 자리를 떠나버린 뒤였다. 이게 아닌데.., 쩔쩔매던 미코토는 꼬여버린 일에 어쩔 줄 모르며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뭐가 잘못됐어?”

종업원과 미코토를 번갈아 보는데 바빠서 제대로 된 내용을 듣지 못한 카미조가 뭐가 잘못됐냐고 묻자 살짝 고개를 들어 보이던 미코토는 그런 건 아닌데.. 말을 더 잇지 못한 채 메뉴판을 가리켰다. 미코토가 가리킨 메뉴판을 살펴보니 크리스마스 한정 세트 메뉴를 시키면 게코타 굿즈를 준다는 내용의 전단이 끼워져 있었다. 그걸 보고 나서야 게코타 굿즈를 얻으려 여기에 왔음을 알아차린 카미조는 이해했다는 듯 가벼운 웃음을 흘리던 중 게코타 굿즈를 주는 세트 메뉴가 2종류 있는 것을 확인하고 눈이 동그래진다.

미코토는 분명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원래 계획했던 것은 가족이나 친구끼리 먹을 수 있는 세트용이었는데, 조금 전 자신이 고른 것은 크리스마스 한정 커플 세트였다. 물론 미코토에겐 커플 세트로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데이트만으로 벅찬데 커플 세트를 시킬 용기는 없었다. 포즈만 다를 뿐인 둘 다 똑같은 종류의 게코타 굿즈를 주니까 우정 세트여도 좋았는데, 사고지만 자신의 의지로 커플 세트를 시켜버린 것에 엄청난 쑥스러움이 몰려온 미코토였다.

그에 반해 커플 세트의 메뉴를 주시하던 카미조는 별로 괜찮지 않나? 하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저 두 세트 메뉴의 차이점이 별다를 바 없어 보이니까 그런 생각을 한 것이겠지만… 왠지 그것뿐만은 아닌 거 같았다.

“실례합니다.”

“ㄴ, 네!”

갑자기 말을 건네는 종업원에게 놀란 미코토는 엎드렸던 몸을 벌떡 일으키며 답했다. 고개를 들어 종업원에게 향하면, 아까와 다른 남자 종업원이 와있었다. 미모가 뛰어난 남자분의 등장에 카미조의 눈썹이 꿈틀거렸고,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 미코토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방금 주문받은 종업원이 이번 크리스마스 한정 커플 세트를 시키면 커플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그걸 잊은 모양이라며 해주길 바란다고, 미코토의 질문에 조곤조곤 답하는 그에 미코토는 후에?! 하고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진 것에 놀랐는지 그의 얼굴에 살짝 홍조가 띠는 듯했다.

지금 미코토에게 그런 거리감 따위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커플 세트는 잘못 고른 것이라고 알릴 수 있는 찬스였다. 사실은…, 미코토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주문을 잘못한 것이라 알리려는데 뒤에서 포옥, 들어오는 무게감에 휘둥그레진다. 동시에 후욱, 들어오는 시트러스의 상쾌한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고, 귓가에 닿는 숨결에 몸이 파르르 떨려왔다. 긴장감이 가기도 전에 카미조는 미코토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미코토는 싫은 거야?”

“그, 그런 게 아니라..!”

“그럼, 이거로 하는 거지?”

“네, 넷!”

무슨 대화의 흐름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카미조의 물음에 미코토는 이성적으로 생각할 틈도 없이 답해버렸고, 카미조는 이거로 됐다네요, 라며 앞에 있는 종업원을 향해 웃어 보였다. 그는 이 정도면 이미 인증됐다는 듯 차게 식은 눈으로 예, 하고 답하곤 주문한 것을 가져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그가 자리를 뜨고 나서야 숨을 돌리던 카미조는 풀린 얼굴로 미코토에게서 떨어져 제자리에 앉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카미조의 반응에 미코토는 어리벙벙해진 얼굴로 카미조를 내려다봤다. 미코토의 시선을 알아차린 카미조는 아무렇지 않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어제 본 드라마에서 커플이 그런 식으로 구는 장면이 있어서 해봤는데 잘 넘어갔네~.”

능글스럽다고 해야 할까, 잘 넘어가서 다행이라고 웃어 보이며 머리를 긁적이는 카미조에 미코토는 분노로 몸이 떨려왔다. 훅하고 안아와선 이름을 불린 행위에 이쪽은 영문도 모르고 설렜는데 그게 다 연기였고, 자신은 그것도 모른 채 속아 넘어갔다고 생각하니 열이 뻗쳐왔다.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미코토의 주변으로 파직, 파직, 희푸른 불꽃이 튀어 오르며 잘 정돈되어 있던 머리카락은 정전기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헷갈리게 하지 마―!!”

외침과 동시에 커다란 창의 형태를 취한 뇌격이 카미조를 향했다. 카미조는 순간적으로 내민 오른손으로 그 일격을 튕겨 보냈고, 콰광! 엄청난 음향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 우와아! 소리치며 도망쳤다. 분을 못 이기며 씩씩대던 미코토는 흥, 하고 고개를 돌리고선 자리에 앉았다.

강렬한 작렬음으로 보아 아마 전압은 억 단위로 달해 있을 것이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뇌격의 창에 무서워하면서도 카미조는 조심스럽게 오른손을 내리며 미코토의 상태를 살폈다. 아무리 봐도 화 나 있는 모습에 카미조는 이해하지 못했다. 페어 계약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스트랩의 건처럼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와 커플 세트로 시킨 것이라 생각해 도움을 주었던 것인데 되레 화를 낸 미코토에 영문을 몰랐다.

……카미조는 전혀 모르고 있다. 처음엔 커플 인증을 해달라는 그의 말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아 지켜보기만 했으나 서로 나란히 서서 말을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에 몸이 절로 나가버렸다는 것을.

미사카가 곤란해 보였으니까.

이런 자기 설득으로 넘어간 카미조는 무자각으로 나선 행동에 의문을 가지지 않고 그저 화난 미코토의 눈치를 보며 앉아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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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코토의 전격이 엄청나게 무시무시했기에 놀랐던 사람들에게 사과하느라 가라앉았던 두 사람의 공기가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다행히 이해해 주는 어른 분들이 계셔서 크게 번지지 않았지만, 커플 싸움은 자중하라거나 남자가 붙잡혀 살 게 생겼다는 등의 우스갯소리를 들은 덕에 풀린 게 컸다. 다만, 그런 것에 면역력이 없는 두 사람은 어떤 반박도 하지 못한 채, 불그스름해진 얼굴을 숨기려 서로에게서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주문한 메뉴 나왔습니다.”

“……?”

드디어 이 어색한 공기를 풀만한 음식이 나온 것에 두 사람은 한숨 돌리며 몸을 틀었다. 크리스마스 한정 케이크와 음료가 도착했고, 주문한 메뉴에 시선을 둔 두 사람은 의아함이 가득한 얼굴로 멈칫한다.

크리스마스 한정 케이크와 음료가 도착했는데 사랑스러움으로 장식되어 있는 케이크는 사진을 찍어서 SNS에 인증샷을 올려야 할 수준이었고, 분명 사람은 2명인데 음료는 하나만 와있었다. 하나 더 와야 하는데 종업원이 까먹은 건 아닐까 싶겠지만, 음료에 꽂혀있는 빨대가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그야 하나로 이어진 하트 빨대가 꽂혀있고 양쪽으로 나눠마실 수 있는 게 훤히 보이는데, 잘못 준 게 아닌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빨대의 길이도 짧아 마주 앉은 채로는 편히 먹을 수 없어 음료를 마시려면 나란히 앉아 먹는 게 편해 보였다.

‘음료 하나 마시겠다고 일일이 일어나는 것도 꼴사나워 보이니까…. 그래서 그런 거뿐이야!’

어차피 시킨 메뉴이고, 먹을 거 편하게 먹는 게 좋으니까. 자기 설득을 한 미코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힘주며 일어서는 미코토에 움찔하며 올려보던 카미조는 세찬 발걸음으로 제 옆자리에 오는 미코토를 멍하니 지켜보았다. 자연스럽게 털썩, 제 옆자리에 앉은 미코토는 음료를 마셔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앉는 거야, 라며 이유를 알렸다.

‘가까워..’

이유는 납득했지만, 어깨가 닿을 듯한 거리감에 살짝 홍조를 띠던 카미조는 분위기를 바꿔보려 케이크부터 먹자고 나눠 자르기 시작했다.

먹기 좋게 조각낸 케이크를 먹던 중, 카미조는 입가에 생크림이 묻은 미코토를 발견한다. 성숙한 분위기를 내보이는 아가씨라 해도 애는 애구나 싶어 희미한 미소를 띠던 카미조는 미코토에게 입가에 묻은 것이 있음을 알려주려 미코토를 불렀다.

“웅?”

우물우물 케이크를 머금은 채 돌아보는 미코토의 모습에 카미조는 심쿵한다. 케이크의 맛을 즐기는 데만 집중하고 있던지라 미코토는 의도치 않게 귀엽게 답해버렸다. 케이크를 먹느라 어떻게 답했는지 모르는 걸까, 미코토는 왜 부른 거냐는 얼굴로 바라보다 할 말 없으면 됐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생크림이 묻은 걸 전혀 모르는 미코토에 카미조는 입을 가리키며 알리고 싶었지만, 아직 우물거리며 먹고 있는 사람한테 하기란 좀 그런 거 같았다.

“미사카, 나 좀 봐봐.”

“왜 그래?”

카미조는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미코토한테 자기 좀 보라며 어깨에 손을 올렸고, 미코토는 이제야 입에 머금고 있던 케이크를 다 먹었는지 왜 그러냐며 고개를 들었다. 카미조는 비어있는 손을 들어 미코토의 입가로 가져가더니 엄지로 쓱 닦아선 자연스럽게 입으로 가져와 날름, 생크림을 핥아 먹었다. 휴지로 닦았다면 그럴 필요가 없었겠지만, 인덱스를 챙기듯 먼저 몸이 나가 챙겨버렸기 때문에 이미 묻어버린 생크림이 아까워서라도 먹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가난한 학생 카미조씨에겐 객식구도 생겨 먹을 수 있으면 먹는 게 중요해져 버렸으니까….

그것을 모르는 미코토는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해선 제 입가에 있던 생크림을 왜 굳이 먹냐며 화를 냈다. 어찌 보면 간접키스처럼 느껴진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 카미조한테 두근거렸던 것이 분해서 화낸 것이 컸지만…. 그것을 전혀 모르는 카미조는 미코토한테 혼나고 나서야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인식했다. 여자아이에게 해선 안 될 행동인데 자신이 그것을 해버렸고, 미코토가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흥분하며 화낼 정도라면 언제 또 전격이 나올지 모른다고. 위기를 감지한 카미조는 그 상황을 무마하려 무심코 외쳐버린다.

“하지만 버리면 아깝잖아?!”

“뭣, 겨우 생크림이잖아!”

“그래도 맛있는걸!”

어느 쪽이야!!

원래 생크림이 맛있어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제 입가에 묻어 있던 거라 더 맛있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타들어 가는 마음에 음료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한 미코토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몸을 숙였다. 쪼옥, 빨아먹고 있으면 혼자 먹을 때와 다른 느낌에 미코토는 시선을 올려다봤다.

“—?!”

마침 카미조도 목이 축이려 빨대에 입을 물고 있었고, 하트 모양을 따라 흘러간 음료는 서로의 입으로 들어갔다. 숙인 키가 알맞다 보니 서로의 시선이 딱, 맞닿았고 두 사람은 동시에 흡, 숨을 삼켰다. 당연히 빨대에 입을 댄 채 숨을 삼켰으니, 음료는 빠른 속도로 두 사람의 목구멍을 타고 흘러갔다. 차가운 음료가 목을 적시고 나서야 퍼뜩 정신이 든 두 사람은 스프링에 튕겨 나가듯 몸을 뒤로 내뺐다.

아까까지만 해도 서로 눈치를 봐가며 음료를 잘 나눠마셨던 두 사람이었지만, 입가에 묻은 생크림을 해결해 주는 것으로 머릿속이 새하얘진 두 사람은 타이밍 맞출 정신이 안 됐고, 결국 이 지경에 이르렀다. 둘은 새빨개진 얼굴로 떨어져 나갔고,

“그, 그만 먹을까?”

“으, 응..”

그렇게 둘은 얼마 먹지 못한 채 식사가 종료되었다.

▹◃┄▸◂┄▹◃┄▸◂┄▹◃┄▸◂┄▹◃

남은 케이크를 포장해 주는 것을 카미조가 기다리는 동안, 계산대 앞에 있던 미코토는 전부 계산하려는 것인지 가볍게 카드를 넘기고 있었다. 포장한 케이크를 받아온 카미조는 같이 먹은 데다가 남은 것을 가져가기까지 하는데 자신도 부담해야 하지 않냐고 물었지만, 미코토는 자신이 데려온 곳이니 괜찮다며 케이크 받았으면 얼른 가자고 카미조의 등을 손으로 꾹꾹 누르며 밖으로 밀어냈다.

그렇게 남은 케이크를 손에 쥔 채 찜찜한 마음을 안고 가던 카미조는 역시 반은 자신이 지불하는 게 좋겠다며 미코토를 향해 고개를 들어 보였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원하던 게코타 굿즈를 얻고 어린아이처럼 눈을 빛내며 좋아하는 미코토를 보고 뭐라고 따질 수 없었다. 동그란 원형 판 위에 함께 산타 복장을 하고 나란히 붙어 서 있는 게코타와 퓽코의 피규어를 얻게 된 것에 기뻐하고 있는 미코토의 기분을 깨트릴 순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채 기분 좋아 보이는 미코토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던 카미조는 그 미소가 옮은 듯 기분 좋은 웃음을 짓게 되는 것에 졌다는 듯 짧게 숨을 내뱉었다.

미코토의 옆으로 다가온 카미조는 이번엔 자신이 데려가고 싶은 곳이 있다며 따라오지 않겠냐고 한다.

“흐응, 어디 당신 센스가 어떤지 보자고~.”

장난스레 말하는 미코토에 카미조는 너스레 웃어 보인다. 카미조씨의 센스를 얕보지 말라며 가자고 미코토의 손을 잡아 이끄는 카미조의 행동에 미코토가 두근, 하고 설렜음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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