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트 미
멬루
~537 스포 있음
유혈 묘사와 이것저것 주의...
할로윈 기념 글
설정 오류가 있어도 너그럽게 봐주세요...
알버트 메클렌부르크는 어릴 적에 들은 동유럽의 흡혈귀 이야기를 기억한다. 그리고 블라드 체페슈, 질 드레, 바토리 에르제베트 같은 이름들을. 사람의 피를 먹고 시체를 부활시키는 사이비 종교 단체가 나오기 전부터 이는 흔한 공포의 소재였다. 어릴 적 호기심에 몰래 읽었던 유행하던 공포 소설에서 나온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으면 오랫동안 살아 있는 귀족 흡혈귀의 모습은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 때문에 10살 시절의 알버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악몽을 꾸기도 했다. 이 소설은 그 매니악한 소재에도 대중의 미지에 대한 관심을 자극했는지 때문인지 굉장히 히트를 쳤다. 그리고 평민들은 이런 이야기를 가십 삼으며 흡혈귀가 실존하냐는 등의 주제로 토론을 해댔지만, 대공 세자였던 자신에게 그런 수준 낮은 괴담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해오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한 친구가 그렇게 물었던 것 같다.
알버트, 너는 누군가가 너에게 피를 달라고 하면 어떡할 거야?
그 질문에 자신은 어떤 대답을 했던가.
https://www.youtube.com/watch?v=QVPMMKAFQ8Q
한 번 있던 일은 두 번도 있을 수 있다고 했던가. 인간은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던가. 두 번 씩이나 이 거지 같은 곳에 버려지다니, 라고 해야 할까. 복잡하게 돌려 말할 거 없고, 아무튼 알버트 메클렌부르크와 루카스 아스카니엔은 또 다시 둘이서 플레로마의 좌표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플레로마의 메시아라는 누명을 벗기 위해 루카스는 계획보다 급하게 니콜라우스 에른스트의 신분이 아닌 루카스 아스카니엔의 신분으로 황실 마법사연합회와 함께 베를린 근처 플레로마 지부 토벌을 계획했다. 엑스트라 챕터를 통해 교구의 정보를 빼내기를 시도하며 진입의 예행연습을 하던 도중, 어디서 정보가 새어 나갔는지, 바이에른에서의 플레로마 지부 격파의 여파인지, 혹은 자신들의 메시아를 되찾겠다는 욕망 때문인지 그들은 자신만을 위한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었다.
훈련 중 발을 내딛자 갑자기 느껴지는 공간상의 위화감. 이제 몇 번 느꼈던 감각이 발끝부터 느껴져 온 몸으로 퍼져 나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손을 잡는 감촉. 이윽고 도착한 세상은 온통 까맸다. 잠시 뒤 눈을 깜빡이자 세상은 원래의 세계와 같은 공간, 하지만 다른 모습으로 변모해 있었다. 자신의 곁에 있던 동료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아니, 한 명 빼고 말이다.
그리고 Z 좌표의 오류와 중력의 흐름에 의해 루카스는 바닥으로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예상외로 느낌이 푹신하다. 그것이 단순히 바닥이 아님을 루카스는 바로 깨닫는다. 자신의 밑에는 아까 잡았던 손의 주인이 있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의외의 얼굴이었다. 루카스의 미간 사이 거리가 좁아진다. 여기 왜 저 사람이... 라는 실례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도 루카스는 먼저 일어나 손을 내밀고 자신의 밑에 깔려 있던 그 사람 -알버트 메클렌부르크-를 일으킨다. 메클렌부르크는 순순히 그의 손을 잡고 일어선다.
"선배님,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당신은요?"
"이 짓도 몇 번 하니까 슬슬 적응이 되네요."
"잘도 그러겠습니다."
메클렌부르크는 자신이 일부러 강한 말을 하는 걸 알았는지 자신을 비꼬았다. 친해졌다는 게 이런 면에서 안 좋았다. 내가 저 쪽을 파악한 만큼 저쪽도 이제 나를 파악했다는 거다. 루카스는 대충 어떻게 그가 이곳에 같이 오게 됐는지 경위를 파악했다. 내가 끌려가는 걸 보고 끌어내려고 손을 잡은 것 같은데, 같이 떨어지게 됐나 보다. 이런 곳에 떨어지는 데 같이 올 최선의 상대는 아니었지만, 최악의 상대도 아니었다. 그래도,
"저 때문에 선배님까지 말려들게 돼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뇨, 제가 선택한 일입니다. 당신이 사과할 필요는 없습니다."
메클렌부르크는 지금 자발적으로 자신을 구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아무리 전보다는 우리의 사이가 개선됐어도 의외인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결벽증은 다 나으셨나 봅니다? 그 상황에서 저에게 손을 다 내미시고."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냥 본능적으로 손이 먼저 나갔던 것 같습니다. 만약 절벽으로 누군가가 떨어지고 있다면, 누구라도 손을 내밀 것 입니다. 이건 그런 감각인 겁니다."
음, 과거 베스테 오버하우스의 사건에서 부채감이라도 느낀 것일까. 그때 나는 분명 절벽에서 그와 함께 낙하했고, 손을 내밀어 그를 구했다. 역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행동이 제격인 것일까.
우리 둘이 이런 쓸데없는 대화를 하는 걸 봐서 알겠듯이, 당장 근처에 플레로마 같은 것이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 좌표 전송 측면에서 오류가 있었는지, 아니면 한 사람이 더 오게 돼서인지, 원래 플레로마의 계획이 조금 틀어진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떨어지자마자 플레로마 무리와 마주쳤다면 그거야말로 재앙이다.
"그래서 어떡할 겁니까. 몇 번이나 이런 경험을 한 당신이 봤을 때 우리의 상황은 어떱니까?"
메클렌부르크는 자연스레 자신에게 작전과 지휘권을 넘겼다. 루카스는 우선 초조하게 상태 창을 켜 재시작 가능 포인트를 본다. 몇 번 남지 않았다. 그래도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이미 나는 이런 상황을 몇 번이나 겪어 왔다. 어쩌면 재시작을 하지 않고 탈출 할 수 있을 지도...
...아니, 솔직히 이건 너무 희망적인 생각이다. 우리는 마력이나 수면제 담배나 외 안경 아티팩트를 지금 소지하고 있지 않았고, 아직 주교급 사제들의 능력 또한 미지수였다. 둘은 그냥 각자 총 하나 완드 하나로 정면 돌파를 하는 수 밖에 없는데, 성공 확률은... 솔직히 어려웠다.
아니면 아예 재시작을 지금 해 진입 작전을 자신이 납치당하기 전으로 앞당기자고 하는 건? 우선, 내 말을 들어줄 지도 모르겠고. 진입하기에는 정보도 부족했다. 그러나 만약 들어준다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는 최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돌아가는 게 맞다.
"...일단 정면 돌파보다는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는 걸 최우선 목표로 잡을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플레로마 지부를 둘이서 무너뜨리겠다는 생각은 자살행위임을 선배님도 알고 계실 겁니다. 바깥에서 우리가 사라진 것을 알고 진입 작전을 앞당겨 우리를 구하러 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 생각에는 그리 간단히 해결되지 않을 것 같군요."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 예감은 들어맞았다.
루카스와 메클렌부르크는 한 구석진 좁은 방을 찾아 공간 마법을 사용해 입구를 없는 것 처럼 위장하고 플랜 B를 세우며 기다렸다. 그렇게 이곳의 시간으로 거의 반나절을 기다렸으나, 시차 때문인지 기존의 좌표계 진입 방법이 막혀서인지 구조는 오지 않았다. 루카스는 속이 답답해졌다. 메클렌부르크 역시 초조한지 다리를 가만 두지 못하고 있었다. 몸이 가까이 붙어있어서인지 그 초조함이 루카스의 몸까지 전파됐다. 루카스는 마침내 입을 다시 연다.
"...아무래도 저희 끼리 나가는 방법을 찾아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뭔가 책략은 있는 겁니까?"
"일단 지금까지 저희를 찾지 못한 걸 보면 그냥 운이 좋았다고 하기보다는 의도된 것이라고 봅니다. 저쪽은 우리를 잡는 게 급박하다고 판단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만큼 저희를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고, 바깥쪽에서 지원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겠죠. 부정적인 얘기만 계속해서 죄송합니다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군요.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면. 갑시다."
그렇게 둘은 플레로마 좌표 탐험을 시작한다. 그리고 루카스의 불길한 예측이 사실이었는지, 둘이 운이 안 좋았는지 처음부터 둘은 부제나 사제가 아닌 몬시뇰을 만났다. 브란덴부르크의 때처럼 사제를 찾아 옷을 빼앗고 위장해서 시작하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한 번 당한 수법이라 쉽게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첩첩산중이었다. 어떻게 힘을 합쳐 이를 처리했더니 또 다른 몬시뇰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뒤로도 조금만 이동해도 새로운 플레로마가 추가됐다.
그 플레로마들과의 전투 과정에서 루카스는 느낀 위화감을 깨닫는다. 이번에 플레로마는 자신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동행인을 공격했다. 물론 자신이 끼어들거나 공격을 하면 이에 반격하는 차원에서의 공격은 했지만, 자신에 대한 마력 사용은 오히려 포박이나 무력화를 목적으로 두었다... 진짜 구세주 취급이라도 할 건지. 그들의 목표는 루카스 아스카니엔을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루카스 아스카니엔은 계속 살아서 자신들을 구원해주어야 할 존재였다. 자신이 사이비 종교의 구세주가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 루카스는 역겨움에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고 싶었다.
게다가 자신들의 그리스도와의 1대 다 실물 영접 기도회를 방해받았다는 생각에서인지, 그들은 메클렌부르크에게 큰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만난 플레로마는 우선 메클렌부르크를 이 상황에서 배제하고 싶어 해 그부터 노렸고, 그의 목숨을 살려둘 이유 또한 없었기 때문에 죽일 각오로 달려들었다.
그 탓에 자신은 비교적 멀쩡한 데에 비해, 메클렌부르크는 곳곳에 부상이 많았다. 그의 이타심 덕분에 이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생긴다. 원래 이 상황은 원래 자신만을 위해 준비되어 있던 거였다. ...만약 나 혼자 떨어졌다면 잡혀서 사이비들의 구세주로 이상한 의식을 당하는 일은 있어도 그냥 죽이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러면 혼자 시간을 돌리면 되는 일이었다.
슬슬 둘 다 마력이 바닥나고 엘릭서를 다 먹어가며 기진맥진해졌을 때, 부주교가 나타났다. 그 지위 값을 하는지 부주교와의 전투는 그리 쉽지 않았다. 루카스와 메클렌부르크는 완드를 든다. 그는 특이하게도 마력에 더해 체술이 뛰어난 타입 같았다. 한 손으로는 완드를, 다른 손으로는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성격 또한 비슷하게 과격한 면이 있는지 자신을 보고 갑자기 구세주가 정말 왔다며 상기된 얼굴로 정신이 나간 것 처럼 찬양을 시작했다. 동시에 비트리올이 검격과도 같이 강인하게 날라왔다. 구세주에게 왜 공격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정신 공격까지 동시에 당하는 기분이었다. 귀를 성수나 신력으로 씻고 싶었다.
어쨌든 부주교는 뛰어난 실력자지만 다소 과격하고 감정적인 면이 있었기에, 루카스는 그와 몇 합을 겨룬 뒤에 입을 열었다.
"당신, 혹시 이 교구의 주교와 사이가 안 좋습니까?"
"뭐?"
"우리가 다수고 상대가 소수인 경우 다 같이 행동하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것은 다섯 살 짜리 아기도 알 것 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혼자서 우리를 상대하러 왔죠. 계속 의문으로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이 교구는 계획이 틀어져 내분이 일어난 상태이고, 당신은 혼자 공을 세우고 싶었던 게 아닙니까? 구세주를 잡아가, 자신이 주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말이죠."
"...하하, 그렇다면?"
"그건... 정말이지 논할 가치도 없는 근시안적이고 무능한 계획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선택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서 죽을 겁니다."
루카스는 씨익 웃으며 그렇게 부주교를 도발한다.
"...하. 그렇단 말이지?"
거침없는 비판에 부주교는 화가 났는지 우리에게 단숨에 달려들었고, 이에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던 메클렌부르크의 호박색 마력과 나의 붉은색 마력이 합쳐서 마치 밧줄처럼 부주교의 몸 곳곳을 속박했다. 그리고 부주교가 그 탓에 움직임이 부자유해졌을 때 메클렌부르크는 완드를 검으로 바꾸어 부주교의 다리를 그었다. 찝찝한 액체가 공중에 튄다. 나는 동시에 부주교의 숨통과 코어에 공격을 퍼부었다. 그렇게 부주교는 그대로 힘을 잃고 엎드렸다. 그리고 팽팽했던 긴장감도 잠시 누그러진다.
"...잘하셨습니다."
"당신도요."
잠시 긴장을 풀고 한숨 돌리나 싶더니, 이어서 들리는 것은 또각또각 울리는 구두 소리. 쉴 틈을 주지 않고 지부의 주교가 나타났다. 무슨 게임 보스 레이드처럼 한 명씩 더 센 놈이 튀어나왔다. 그냥 이대로 비트리올의 늪에 빠져 죽을 것 만 같았다.
그렇게 평소에 훈련을 했는데도 슬슬 체력이 부족했다. 실전의 긴장감과 익숙하지 않은 환경, 그리고 플레로마의 언행들이 주는 스트레스에 루카스는 머리 끝까지 민감해진 상태였다. 루카스는 이곳에 있는 유일한 자신의 편을 보며 정신을 붙잡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입을 열어 주교와 대화를 시도했다. 선례를 생각했을 때 주교 쯤 되면 대화를 시도할 가치가 있었다. 그들의 동기를 파악해야 할 필요도 있었고.
"나를 이곳에 오게 한 이유는 뭡니까."
주교는 자신의 질문에 건조한 어조로 대답한다.
"그저 당신이 원래 있어야 하는 곳으로 돌려놓았을 뿐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난을 겪은 뒤, 사흗날에 부활해 돌아오신 이전의 선지자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부활절로부터 40일이 지난 오늘은 당신이 승천할 날인 겁니다."
루카스는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식도에서 막고 이에 반박한다. 누굴 마음대로 승천시키는 거냐. 아니, 이는 성경에 따라 제대로 의미부여를 하지 못한 자신의 패착이다. 이 정도 계획은 읽었어야 하는데, 프랑고 이탈리아고 일이 많아서 차마 플레로마 쪽을 신경 쓰지 못했다. 그래도 플레로마가 원하는 대로 되어줄 생각은 없다.
"저는 당신들의 구세주가 아닙니다. 그리고 당신을 구원할 생각 또한 없습니다."
"이는 당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는 것 입니다. 이 세계가 만들어질 때부터 예정된 것입니다."
주교는 그렇게 본인조차 의미를 알고 있을지 모를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이윽고 이 대화 시도는 결국 실패였는지 자신을 생포하려는 듯 공격성보다는 그릇된 욕망을 품은 비트리올이 자신에게 날라왔다. 그러자 메클렌부르크는 플레로마가 후배에게 한 모욕에 충격이라도 받아 루카스를 지켜줘야 겠다는 생각이라도 했는지 자신이 그 앞에 나서 이를 막아낸다. 이를 본 주교가 자신과 그리스도 사이에 불순물이 끼어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당신, 방해입니다. 저희와 구세주님 사이를 가르려는 사탄과도 같은 그 존재를 당장 치우시죠."
그리고 그 비트리올은 곧장 날카로운 형태로 바뀌어 공격성을 띠며 메클렌부르크의 호박색 마력과 맞붙는다. 게다가 주교의 고유 능력은 전기여서 그런지 메클렌부르크와 상성이 안 좋았다. 메클렌부르크는 주교의 마력으로부터 받은 충격에 살짝 뒤로 물러난다. 주교는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자 본능적으로 루카스는 과거에 메클렌부르크가 한때 그랬듯 그 앞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자신의 완드를 들어 재빨리 주문을 외웠다.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하지만 주교의 공격에 그에게 더 빨리 닿는다. 그는 명치 부근에 큰 충격을 느낀다. 코어의 마력이 녹아 사라지듯 빨려 나간다. 저절로 무릎이 꿇린다. 숨이 턱하고 막혀 더 이상 주문을 외울 수 없었다. 그렇지만 루카스의 공격은 무의미하지 않았는지, 주교 또한 숨을 몰아 내쉬며 쿵 소리를 내며 벽에 박혀 날아가 있었다.
"...당신! 괜찮습니까?"
그 모습을 본 메클렌부르크가 뒤돌아 자신을 향해 뛰어온다. 루카스는 눈을 크게 뜬다.
"선배님, 뒤에!"
그때였다. 쓰러진 줄 알았던 총알이 박혔던 부주교가 좀비처럼 일어나 있었다.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는 망설임 없이 구시대적인 날붙이 무기로 메클렌부르크의 목을 찌른다. 메클렌부르크는 차마 비명조차 내지 못했다.
공중으로 붉은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피다. 자신의 마력 색과 눈 색과 닮은. 이미 질리도록 보고, 흘리고, 심지어 입 안에 넣기까지 한 그 체액이다.
루카스는 곧장 쓰러진 메클렌부르크를 들고 도망친다. 뒤에서 부주교와 주교가 다시 일어나 쫓아오는 것이 느껴진다. 마구잡이로 날뛰는 비트리올의 흐름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달렸던 것 같다. 자신 또한 몸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불과하고 위급한 상황은 초월적인 힘을 내게 해주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처음의 방과 비슷한 구조의 외진 곳이었다.
루카스는 속으로 욕설을 읊조리며 메클렌부르크를 눕힌다. 일단 간단하게 옷을 찢어 지혈을 시도한다. 이는 미봉책밖에 되어주지 못함을 안다. 하필 공격당한 곳이 목이었다. 세로로 길게 찢어져 그 안을 개방하고 있는 상처는 치명적이었다. 그대로 둔다면 메클렌부르크는 이대로 죽을 것이다. 떠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두 방법 모두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안 좋은 방법과 더 안 좋은 방법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둘 중 어떤 것이 더 안 좋은 방법인지를 가려내야만 했다.
하나는 재시도.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알버트 메클렌부르크는 가장 자신의 기질을 알리고 싶지 않은 상대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그는 진실에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하나였다. 과연 자신의 기질을 안다면 그는 어떤 반응을 할까. 그는 자신의 기질을 시험하는 심문에 직접 참여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팔에 상처를 내 이를 얼굴 앞에 내밀어 자신의 피를 직접 주려고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는 이를 숨기려는 지 옷도 다 갈아입고 찾아와서는 자신이 피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기쁘다고 했다. 내가 플레로마로서 부역하지 않았다는 걸 믿는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하지만, 과연 그는 자신의 기질을 알고도 자신을 플레로마로 여기지 않을 것인가? 혐오스럽고 두려운 존재로 여기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자신의 기질을 독일 제국에, 또 내 가경자이자 그의 친구에게 보고하지 않을 것인가?
이를 저울에 올려두고 면밀히 분석을 하고 싶었으나 시간은 촉박했다. 지금도 메클렌부르크는 실시간으로 창백해지며 시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루카스는 한 손으로는 그의 손을 잡아 맥박을, 나머지 한 손으로는 심장을 확인했다. 호박색 눈동자가 자꾸 감겼다. 루카스는 그의 어깨와 얼굴을 때려 그를 깨우려 한다.
"선배님, 눈 감으시면 안 됩니다..!"
과거의 상황이 플래시백처럼 루카스의 뇌에 새겨진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재수 없는 짓만 골라서 한 후배인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몇 번이고 자신의 앞에 몸을 던졌던 그를. 더 이상 그가 죽는 걸 보기 싫었다. 시체가 되어버린 동료를 자신만이 기억하는 시간과 두고 혼자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때 한 것이 최선의 선택임을 알고 있지만 그와 함께했던 과거의 47일은 망령처럼 영원히 루카스를 따라다닐 것이다. 그럴 바 에는 차라리.
"선배님."
"......"
"선배님의 피가 필요합니다."
이윽고 루카스는 허락 없이 메클렌부르크의 목을 물어 그 액체를 입에 담는다. 이런 식으로 노골적인 흡혈귀의 방식으로 피를 섭취하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정말 괴물이나 짐승이 된 기분에 불쾌해진다. 하지만 내가 이러면 피를 뽑히는 사람은, 비록 반 기절 상태지만 얼마나 더 기분이 더러울까 하는 생각에, 루카스는 행위의 목적에 집중한다. 흡혈귀라기에는 작은 루카스의 이빨이 메클렌부르크의 목에 박힌다. 그대로 언젠가 입에 댔던 메클렌부르크의 피를 상처로부터 입술을 통해 빨아들여 들이마신다. 아무리 먹어도 적응되지 않는 비릿함과 쓴맛이 혓바닥 위에 안착한다. 미각이 역겨움에 비명을 지르는 게 느껴진다. 이를 중화시키기 위해 나온 루카스의 타액이 피와 뒤섞여 끈적하게 메클렌부르크의 목에 흘러 흔적을 남긴다. 상처에 침 바르면 낫는다는 민간신앙도 아니고, 2차 감염이 걱정될 지경이었다. 루카스는 피를 뱉어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다시 입을 열어 차마 다 삼키지 못해 목 아래로 떨어지는 핏방울을 혀로 핥았다. 놓친 피가 자신의 흰 셔츠 칼라에 숨길 수 없는 증거처럼 묻는다. 동시에 자신의 몸에 부족했던 마력이 돌아옴을 느낀다. 눈 앞에 호박색이 불꽃놀이처럼 마구 튄다. 메클렌부르크의 마력이 증폭되어 몸 안을 적혈구처럼 순환한다. 이 미친 행위를 접고 입을 떼어내고 보니 자신의 이빨 자국이 메클렌부르크의 목에 살짝 남은 게 보인다.
동시에 메클렌부르크는 멍한 의식 속에 자신의 목에 새로운 통증이 더해짐을 느낀다. 목덜미에 무언가가 박히는 느낌이 났다. 검과 같은 무기는 아니었다. 그보다 조금은 약하고 조심스러운 무언가였다. 그리고 상처 위에 따뜻하고 물컹한 무언가가 닿았다. 그리고 그 온기는 원래 자신의 몸 안에 있어야 할 액체를 빨아들였다. 지금 뭐가 일어나고 있는 거지? 아니, 방금 후배가 피를 달라고 했던가? 환청이 아닌 건가? 메클렌부르크는 언젠가 루카스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제가 피를 달라고 하면 주실 겁니까? 설마, 지금...
하지만 제대로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메클렌부르크는 너무나도 신성한, 흡혈귀와는 어울리지 않는 하얀 불빛이 자신의 몸을 감싸는 것을 느낀다. 아스카니엔이 외우는 주문과 함께 반쯤 박살 났던 코어와 상처가 아물고, 빠져나왔던 혈액이 다른 것으로 가득 채워진다. 어둠과 빛을 오가며 흐려졌던 시야가 제대로 고정된다. 그리고 본 것은 흔들리는, 평소보다 흰자위까지 붉은 눈동자와 함께 입가에 피를 묻히고 있는 루카스 아스카니엔이었다.
둘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도무지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아스카니엔이었다.
"...제 피 아닙니다."
이 대화 또한 익숙하다. 설마 그때도. 머리 속에서 모든 것이 이어지며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왜 굳이 자신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거지? 왜 변명을 하지 않는 거냐고. 루카스 아스카니엔은 자신을 속이려면 100번은 속일 인재였다. 원한다면 지금까지 본 모든 것을 잊으라고 정신조작 마법을 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스카니엔은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고 그냥 이 상황에 직면했다.
"선배님이 생각하는 그게 맞습니다."
"...아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방금 선배님의 피를 마셨습니다. 이로 제 마력을 회복해 선배님을 치유했습니다. 이제 저를 제국에 넘기실 생각입니까?"
"......."
아스카니엔은 말투에서 불안함을 숨기지 못했다.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그 모습은 황실 마법사연합회 101기 부단장이나 바이에른 특임장관이 아닌, 그냥 자신보다 7살 어린 18살 학생으로 그를 여기게 했다. 루카스는 쉬지않고 말을 계속했다.
"바이에른의 차기 수상이자 제국의 영웅이 사실은 플레로마라고, 피를 필요로 한다나. 참으로 제국에게는 통탄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황제 폐하에게는 기쁜 일일까요? 이제 다시 저를 잡아서 심문하실 겁니까?"
"아스카니엔 경."
루카스는 답지 않게 매서운 말투를 메클렌부르크에게 쏟아냈다. 이 상황에 대해 무언가 해답을 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사경을 헤매다 오고 피를 뽑힌 건 이쪽인데 어찌 저쪽이 더 상태가 안 좋았다. 메클렌부르크는 일단 그를 진정시켜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당신을 플레로마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째서?"
그 말이 송곳니처럼 메클렌부르크의 심장에 날카롭게 꽂힌다. 어째서라니, 그야 당신은... 당신은 니콜라우스 에른스트고, 어릴 적부터 이어져 온 소문 때문에 그 신분을 만들었고, 플레로마 같은 것과 어울리지 않는 누구보다 빛나고 위대한 신력을 가지고 있고, 제국에 충성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플레로마를 소탕해왔고, 플레로마에 대항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수 백만의 생명을 구했고, ...가장 잔혹했던 부활절 날 그렇게 억지로 고문을 통해 주입한 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토해냈고, 나의 팔을 갈라서 나온 피에도 반응하지 않았고. 당신은... 방금 내 목숨을 구한 사람이 아닌가. 또 다시. 이걸로 루카스 아스카니엔에게 구해진 목숨만 몇 개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것들보다, 그냥... 당신이 내가 아는, 나와 함께 몇 달을 보낸 루카스 아스카니엔이기 때문이다.
"내 머리는 당신이 위험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내 마음은 당신을 믿으라고 하는 군요."
"......"
"...나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나는 당신을 믿고, 당신을 믿기로 한 내 결정을 믿습니다. 설령 이 믿음 때문에 언젠가 당신에게 속아 온 몸의 피가 빨려 죽는 일이 있다고 해도 말이죠. 나는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루카스는 침묵했다. 그의 반응을 알 수 없으니 메클렌부르크는 자신이 정답을 말한 것인지 불안해졌다.
"...어쩌면 저는 당신에게 너무 많은 정을 준 걸 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답이 되었을까요?"
"...선배님도 참 이상한 사람이시네요."
이상하다라. 부정적인 어휘였지만 아스카니엔은 부정적인 의미로 이를 쓰지 않은 것 같았다. 메클렌부르크가 생각해도 최근의 자신의 변화는 이상했다. 모두 이 아스카니엔 때문이었다. 이 사람이 자신의 25년을 바꾸었다. 새로운 자신은 분명 이상했다. 하지만 그 변화가 싫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누군가를 닮아 가는 과정이기 때문일까.
"당신도 충분히 이상합니다. 그러니 내가 같이 좀 이상해져 주는 겁니다."
"...하하!"
루카스는 좌표계에 떨어진 이후 처음으로 웃는다. 그것이 실소여도 말이다. 오히려 진심이 담긴 웃음이라는 점이 좋았다. 메클렌부르크는 조금은 안심한다. 그렇게 보다 하고 싶었던 말을 한다.
"내 불찰로 나를 믿기 어려운 건 압니다. 하지만 내가 당신을 믿듯이, 당신도 나를 신뢰할 날이 언젠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아뇨 선배님, 저는 이미."
이 상황에서 당신의 피를 마셨고 내 친구들 조차 아는 사람이 몇 되지 않는 기질을 알렸다는 것은 당신을 믿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나도 당신이 보여준 변화를 기억하며, 당신을 신뢰한다.-그렇게 말하려 했으나,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난다. 두 사람을 담고 있던 공간 좌표가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그리고 그 어두웠던 세계에 빛이 들어온다. 그리고는 익숙한 제복을 입은 아는 얼굴들이 보인다. 두 사람의 신뢰 우정 테스트는 그렇게 조금 뒤로 미뤄졌다.
밤이 끝나고 아침이 밝아 왔다.
알버트 메클렌부르크는 더 이상 흡혈귀가 두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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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매력적인 백조 구매자
너무 맛있어요 선생님 평생 멬루해주세요ㅜㅜㅜㅜㅜㅜㅜ
긍정적인 너구리
최고에요~~~~~!!!!!!! 플레로마 아스카니엔이 아닌 눈 앞의 루카스 아스카니엔을 믿고, 머리 대신 마음을 믿기로 한 메클렌부르크 속 흐름에 대한 서술이 너무 좋아서 검은 텍스트카 마치 알버트의 눈동자처럼 호박빛으로 반짝이는 듯 했어요 재밌는 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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