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르굴의 검

[셰타르 알시아]

※inSANe 팬메이드 비공식 시나리오 <공존의 역사>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원본 시나리오)




셰타르 알시아, 이노르굴의 정의를 수호하는 검. 지키기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자원한 이유는 사실 별 것 아니었다. 어렸을 적, 정말 나약하고 나약했던 그 시절의 잔상을 잊을 수 없어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어린애처럼 굴고 싶어서. 누구 앞에서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이유였다. "날데샤처럼 영웅이 되고 싶어요."라느니, "용을 만나고 싶어요."라느니. 어린애도 안 가질 허무맹랑한 소망 아닌가.

그러니 누군가가 이유를 묻거든 대답할 말은, "다른 이들의 불운과 고통을 그냥 보아 지나치는 것은 기사가 할 일이 아니지요."라든가, "'이노르굴의 정의'를 수호하는 것이 '이노르굴의 검' 아닙니까."라든가. ...이정도면 괜찮겠지?

미르종으로 가는 내내 변명거리를 생각해 두었다.


고통, 증오와 분노와 악의. 사천년을 지탱한 선의조차 손쉽게 무너뜨리는 것들.

마을에 치솟는 불길을 보았다. 그 분노의 땔감이 되었을 고통. 고통 받았기에 분노했고, 그 분노는 또 고통을 불러일으킬 뿐이라서.

그저 어린 시절에 못다 이룬 꿈이나 이루겠다고,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올 곳이 아니었다. 이 고통을 목격하고서도, 그 불길의 온도를 느끼고서도 그래서는 안됐다. '이노르굴의 검'. 그 본분을 잊어서는 안되었다.



고룡. 신화의 지배자. 나의 유년, 나의 나약함, 그러나 그마저 강함으로 이끌어 준, 나의 목표, 나의 꿈, 나의 길. 나의 모든 것을 쌓아올린 그 위대한 기억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 올랐다.

검은 하늘과 대비되는 새하얀 몸, 날개.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그 모습을 보며. 아. 그 시절 내가 가졌던 꿈은 이다지도 찬란했구나. 그 신화는 아직 죽지 않았구나. 순간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보고서 어찌 감히 다른 것을 바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위대한 그 단 하나의 선의를, 그대로 증오에 묻어버릴 수 없었다. 가장 약한 자들을 희생하고 신화를 태우며, 이기로 점철된 인간의 시대를 여는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그저, 그저, 공존의 역사를 믿었다. 선의로 지탱하고 선의로 유지해 온 굴레를 믿었다. 사람들의 증오를 거두고, 그 악의를 다시금 선의로 돌려놓을 수 있으리라고.

과거를 답습하지 않고 미래를 향하는 이노르굴의 정의. 약자를 지키고 정의를 수호하는 이노르굴의 검. 그것이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으리라. 벨 수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베고 파괴하는 것이 검의 역할은 아니리라.

솔직히 확신은 없었다. 나의 길에 확신을, 자신을 가졌던 적은 없었다. 나의 길을 믿는 사람도 없었다. 인생의 어느 길에서도 의심을 받고 비웃음을 사는 삶이었다. 아직도 영웅이라느니, 용이라느니, 닿지 못할 소망에 빠져 사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해냈지 않은가. 나는 결국 이노르굴의 검이 되었고, 용을 보았으며, 이곳에 서 있었다.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정도도 해내지 못하면 똥고집 셰타르의 이름이 울겠지.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후련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노르굴이시여, 당신의 검은 지키기 위해 나아가려 합니다. 부디, 이 날카로운 검의 끝을 올바르게 이끌어 주소서.


일제-바냐의 학장님께,

'이노르굴의 검' 셰타르 알시아입니다. 답장이 늦어 죄송합니다. 염려가 많으신 것 같아 먼저 적어두자면, 저는 별 일 없이 건강합니다. 그저 검으로서의 임무가 많아 복귀를 서둘렀고, 그 후에 정말 눈코뜰 새 없이 바빠 쌓여 있는 편지를 읽을 시간도, 펜을 들 시간도 이제야 낸 참입니다. 복귀하자마자 여러 일이 겹쳤거든요. '마지막 노래', '리가 평원'에서의 일도 보고해야 했고, '이노르굴의 검' 내부의 일들과, 집안일과, 개인적인 일들과... 이건 불필요한 내용이니 줄이겠습니다.

어찌되었든, 이제야 늦은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몸 건강히 지내셨습니까? 이사벨, 그 아이도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겠지요? 미온님은,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는 조금 다치신 것 같았는데, 이제는 괜찮으십니까? 다른 '등불' 분들은 다시 만나셨습니까? 다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일제-바냐에 들르지도 못하고 급히 귀향하게 된 것이 아쉽습니다. 도움을 받은 분들도, 다시 뵙고 싶은 분들도 많았는데 말이죠. 모든 분들이 신과 용의 축복 아래 평안한 날들을 보내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사벨과 미온님이 곁에 있다면 안부와 감사를 전해주십시오. 정말 많은, 그리고 귀중한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이사벨에게는 보내고 싶은 선물이 있었는데... 아직 구하지 못해 이번에는 동봉하지 못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함께 전해주십시오.

그러고 보니, 등불분들께서도 편지를 보내주신 것 같았는데, 그것도 찾아봐야겠습니다. 사실 정말로 바쁜 시간을 보냈던지라, 이 편지도 편지 무더기에서 겨우 찾아낸 참입니다. 굳이 쓸 필요는 없는 말이었던 것 같아 지웠습니다. 별 말 아니니 크게 신경쓰지 말아주세요. 사실 제가 '등불' 중 하나라는 사실도, 날데샤님과 용을 만났다는 사실도, 지금은 와닿지가 않습니다. 전부 꿈속에서 있었던 일인 것만 같아요. 바로 티림-위르에 돌아와 바쁜 일상을 영위하고 있으니 더더욱 그 날들이 멀게만 느껴집니다. 역시 그 일들은 실제로 일어난 게 아니라 제 꿈이었던 것이 아닐까요? 대륙을 밝히는, 공존의 역사를 잇는 등불... 저에게는 너무 과분한 이름인 것 같습니다. 제가 정말로 신화에 나올 것만 같은, 그런 일을... 사실 제가 동경하던 모습이 된 것 같아 조금 설레 아니, 제가 술을 한 잔 걸쳤더니 너무 흥분한 모양입니다. 양피지가 조금 흉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어찌되었든 용도, 사람들도... 잘 해결된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등불 분들과, 그런 분들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저 혼자였다면 아무것도 해낼 수 없었겠죠. 그러고 보니, 라일리 경과 알피어스 경, 밀러드 경에게 제대로 감사인사도 전하지 못하고 온 것 같네요. 혹시 등불분들이 일제-바냐에 머무르고 계시거나, 근시일 내에 들르신다면, 미리 감사인사를 전해주세요. 아무래도 제 책상에서 편지를 찾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들도 많아 언제 다시 펜을 들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괜히 부족한 글솜씨로 의욕만 앞섰네요. 역시 긴 편지를 쓸 만큼 봐줄 만한 글솜씨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조금 짧은 편지를... 아니, 조만간 시간이 난다면 일제-바냐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때까지 부디 무탈하게, 건강하게 지내십시오.

이노르굴의 축복을 담아,

셰타르 알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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