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신인 불명] 음성 메시지 도착.
[이나카가타 센노]
※ inSANe 팬메이드 비공식 시나리오 <롱샷(w.이백오)>의 PC2 비밀사명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원본 시나리오 - 공개배포 종료)
(녹음 시작음)
잘 지내?
내 목소리, 아직 기억하고 있지? 벌써 잊었다면 조금 서운할 것 같은데. 나는 물론 기억해. 그러니까 이런 것도 녹음하는 것 아니겠어?
이게 과연 무사히 도착할 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닿는다면 벌써부터 꺼버리진 말아줘. 나 나름 사과하려고 하는 거거든.
그러니까, 그 날... 그렇게 사라져 버린 거? 미안해. 그런데 알지? 뭐라고 미리 말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말하면 당신들이 날 가만히 두지도 않았을 거잖아? ...뭐, 죽을 각오도 하긴 했지만... 아니, 포기했다고 해야 하나?
그 무렵엔 뭐가 어떻게 되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거든. 어차피 내가 판단 내릴 수 있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곳이야. 다들 나를 범죄 계수라는 숫자로만 보고, 나라는 '인간'은 쓸모 없는 곳이었고... 어차피 아무도 나를 '나'로 봐주지 않는 곳이었고.
12살에 잠재범이 된 이후로, 친구도 가족도 모두 나를 버렸고, 난 그후로 끝없이 고민할 수 밖에 없었어. 내가 있을 곳이 어딘지, 내 쓸모는 뭔지, 내가 사는 이유는 뭔지... ...그 모든 것이 없다면, 내가 '사람'이 맞긴 한 건지.
어렸을 때는 꽤 여러 가지를 좋아하고, 싫어하고,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 같기도 한데 말이야... 잠재범으로 산 세월이 길어질 때쯤, 어느 순간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나라는 사람이 필요하긴 할까? 사람이 아니라 필요가 없는 걸까, 필요가 없어서 사람이 아닌 존재로 만들어 버린 걸까.
하하, 이런 생각을 해서 잠재범이었던가? 내가 이런 생각을 할 것이라고 시빌라가 예측한 걸까? 아, 그래, 그러면 어차피 내가 이럴 것도 예측하지 않았을까. 언젠가는 시빌라를 부정하고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고. 시빌라가 그렇게 예측했다면 내 쓸모는 거기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그들에게 합류했어. 동료라고 생각했던 사람, 친구라도 생각했던 사람도 버리고. 내가 가져온 희망도, 믿음도 버리고. 내 목숨까지 버리고 나면... 그러면 편해질 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선택'하기를 시빌라가 기다려 온 거라고...
그런데...
...
...모르겠어, 그때에서야 '살고' 싶더라고.
아이러니하지?
그렇게 모든 것을 버린 것처럼 굴었는데 결국 그 순간 내가 선택한 것은 삶이었어. 인생. 집행관이 아닌, 사냥개가 아닌, 스스로 판단내린 '이나카가타 센노'로서의 인생.
그래, 내가 진정으로 '선택'한 건 '나'의 인생이었어. 감시관님이 그랬지. '결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떠밀리듯이 어딘가로 향하는 걸 자유라고 할 수 있냐'고.
그 말대로야. 결정하지 못하고, 결정할 권리도 가지지 못한 채, 떠밀리고 떠밀려서 낭떠러지 앞에 선 사람이 결국 떨어져 죽기로 결심했을 때... 그건 자유의지였을까? 진정으로 '선택'이었을까? 그 사람이 떨어지기 전에 붙잡고 올라갈 수 있는, 혹은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손이라도 있을 때, 그때 떨어지겠다고 결심해야 그것이 '선택' 아닐까?
정말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에게도 선택지라는 것이 주어졌을 때... 그때에야 깨달았는 지도 몰라. 원래 '사람'의 삶은 다른 사람이 쉬이 짐작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임을. 당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나야말로 '나'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임을. 그러니 그때 그들을 선택하고, 살아남기를 선택한 나야말로 정말 '사람'의 삶을 살고 있는 나였던 거야.
이건 이것대로, 당신들에게 '이나카가타 센노'로 남았을까? 이왕이면 최악의 사람으로 남았길 바라. 좋았던 것보단 싫었던 일이 더 기억에 잘 남거든. 난 좋은 일이 별로 겪어보지 못해서, 조금 좋았다 싶은 것들조차 오래오래 간직하지만... 당신들은 아닐 거 잖아? 좋은 일이 더 많고, 나쁜 일을 더 많이 곱씹고... 그렇게 나를 생각해.
이따위로라도 누군가에게 남고 싶은 나를 이해할 수 있겠어? 아니, 아니다, 이해하지 마. 풀지 못할 수수께끼로, 난제로, 그래,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남겨 두고 두고두고 생각해. 평생을 함께하는 거야. 어머, 방금 좀 로맨틱하지 않았어?
농담이야. 귀 잡아 당기는 것도, 간지럼도 사절이야?
...
그렇게 난리까지 치며 떠났지만, 지금의 삶이 이전의 삶보다 좋은 건지, 아직은 모르겠어. 평생을 자유 없이 살아온 사람한테 갑자기 자유가 주어진다고 뭔가를 할 생각이 들진 않더라. 왜, 평생 목줄에 묶여 산 개는 목줄이 풀려도 그 반경을 벗어나지 못한다잖아. 그런 거지. 더는 나를 개라고 칭하고 싶지 않지만... 어쩌겠니? 짐승뿐 아니라 사람도 쉽게 변하진 않더라. 말버릇이란 게 참 무서워.
그래도 이런 말까지 하고 있는 걸 보면, 아직까지 당신들보다 좋은 건 못 찾았나 봐. 조금 왁자지껄하게 놀고, 놀리고, 쫓고, 쫓기던 시간들이... 꽤 좋았나 봐. 내 손으로 망쳐놔서 더 좋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 후회하는 건 아니야. 인간으로 태어나서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은 존재가 있을까? 없을 거야. 나도 그랬을 뿐이고.
이런 내가 끔찍하게 느껴질까? 더 경멸해줘. 분노하고 미워해.줘 최악의 인간이었다고 말해줘. 그러다 보면... 어느 때엔가는, 나를 잊어도 되는 순간이 올 거야. 나에게나, 당신들에게나.
당신들에겐 너무 가혹한 말일까... 그래, 당신들도 나같은 생각을 하며 고통받을 이유는 없겠지. 당신들은 그 안에서도 충분히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
...역시 이건 보내지 말아야겠다. 괜히 잘 살겠다는 사람들 사이코패스까지 탁해지게 할 순 없지. 이제 나랑은 상관 없는 거라고 해도 말이야...
음, 좋아, 삭제. (기계 조작음)
그럼... 더 할 수 있는 말은 없네.
...그래, 그럼...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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