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머리 위에서, AC 특유의 부스터 소리가 들려온다. 늑대가 오고 있었다. 이구아수도, 들개도 심도 위를 올려다보았다.

[메인 시스템, 전투 모드 기동.]

말하지 않아도 둘은 기체를 전투 모드로 전환한다. 맞붙을 시간이다.

쿠궁…

강철로 이루어진 대심도. 금속성 울림을 내며 기동을 정지한 네펜테스 위로 해오라기가 가볍게 내려앉았다.

“텅 비었군, 보나마나 네 작품이겠지 레이븐…”

“아니, 전우라고 불러야 할까?”

가라앉은 목소리로, 늑대가 그리 말했다.

“…?! 어이, 들개!”

이구아수가 다급히 그를 부른다. 헤드 브링어의 고개가 로더 4를 향했다. 전우라니, 이번 생에서 늑대가 들개를 만난 것은 아이스 웜이 처음이었다. 그때에 러스티는 놈을 전우라고 부르지 않았다. 단순히 아이스 웜을 함께 처치했기에 들개를 전우라고 부르는 것인지, 아니면 늑대 또한 기억을 되찾았기에 그리 부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하기로 한 결판은, 지금 내도록 하지.”

그것으로 확실했다. 늑대는, 러스티는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협상의 여지는 없어 보였다. 놈이 레이저 슬라이서를 빼든다.

“…이구아수, 끼어들지 마라.”

로더 4가 앞으로 한 발 나섰다.

“끼어들지 말라고? 그딴 말 할 거면 왜 나를—”

“—에어.”

이명이 한층 더 강해진다. 뇌를 쪼갤듯한 고주파 음이 들려왔다. 뇌 속의 코랄이 비명을 지르듯 이명과 함께 공진했다. 손가락 하나 뻗을 수 없다. 머리가 울린다.

“씨발…! 멋대로, 남의 머릿속을…!!”

네 좋을 대로 헤집지 말라고, 이구아수는 말을 마치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오토 파일럿 모드가 활성화된 헤드 브링어는 심도 내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이구아수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상황이 종료된 뒤였다. 헤드 브링어 옆에 콕핏을 드러낸 로더 4가 나란히 서 있었다. 무방비한 모습으로 조종석에 기대 앉은 들개. 놈의 붉던 눈이 감겨있다. 들개는 잠에 든 것 같았다.

“미안합니다, 이구아수. 하지만 필요한 일이었어요.”

“필요한 일? 싸우자고 멋대로 데려간 전장에서 억지로 도로 끌어내놓고, 그런 말이 나와?”

이구아수가 신경질적으로 답하자, 이명은 다시 잦아든다. 에어는 의도적으로 그의 말을 무시하고 교신을 끊기를 선택했다. 두 녀석이 쌍으로 침묵을 택했다. 짜증을 표할 곳도, 받아줄 곳도 없기에 이구아수는 속으로 삭여야만 했다.

“씨발…”

레이더로 보나 기체 바깥의 소리를 들어보나, 주변은 조용했다. 아직까진 다른 녀석이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다시 네펜테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대심도의 초입, 네펜테스가 있던 자리는 그 커다란 기계 덩어리라고는 온데간데 없이 부서진 고철 파편만이 바닥에 쌓여있었다. 고철들과 벽에 난 스크래치, 그리고 총탄 자국들로 그곳에서 있었던 전투가 격렬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승자가 누구였는지도. 나흐트라이허 풀 프레임. 검푸른 도색의, 이젠 고철 조각에 불과한 AC가 그 한복판에 모로 누워있었다. 팔과 다리 파츠는 하나씩 소실되었고, 코어는 비교적 멀쩡해 보였지만… 글쎄. 파일럿의 생사를 알기란 어려워 보였다.

“미친 놈…”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까지 밀어붙이나? 이구아수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아마 들개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본인도 이맘때쯤 저 꼴이 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는 파편을 뒤로하고, 다시 들개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심도의 상층부와 중층부를 연결하는 격벽 문이 다시금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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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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