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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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逸失 : 일실] “후우…….” 거친 숨을 뱉어내는 사이로 누군가가 언뜻 스쳤다. 그 순간 잔뜩 모아져있던 집중력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금룡은 벌써 몇 개째 해먹었는지 모를 목검을 내려뜨렸다. 잔뜩 예민해진 시선은 방금 전 지나간 인영을 뒤쫓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시선이 움직이곤 하는 것은, 아마도 그날 이후부터 였을 것이다. 지워지지 않을 패배의
* 짧음 * 아침에 약한 진금룡 [一朝 : 어느 날의 아침] 해가 뜨는 것이 빨라져 사방에 여명이 흩어지고 있었음에도 사위는 아직 고요하기만 했다. 아마 이각 뒤부터 슬슬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할 것이다. 이렇듯 송백의 아침은 남들에 비해 이르게 시작되었다.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산아래까지 가볍게 뛰어갔다가 다시 올라와서 검을 휘두르기 까지가 빠듯하게
* 혼례를 강요당하는 진금룡 “금룡아. 네 혼례를 더는 미룰 수가 없겠구나.” 찻잔을 들던 금룡의 손이 뚝 멎었다. 아버지를 마주보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탁자 위에는 아까부터 무엇인지 의아하던 서한과 두루마리, 그리고 작은 함이 있었다. 이것들이 무엇인지 깨달은 순간 손끝에 든 찻잔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봉문을 하면서 이 나이까지 미뤄진 혼례였
* 짧음 [午睡 : 오수] 드물게 한갓진 오후였다. 매일매일, 주야가 어제와-, 또 그제와 같게 돌아가는 나날 중에서도 가끔은 그런 날이 있기 마련이었다. 해야할 일들이 예기치 못하게 손을 떠나는-, 그런 날. 최근 들어 사문 내에서 큰 일이 없다보니 각 전각마다 한가해진 참이었고, 그로인해 오늘은 이쯤하고 쉬어도 괜찮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렇게
* 진금룡이 어려졌습니다. [還童 : 환동] 잠에서 깬 금룡은 무언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누운 자리에서 눈을 여러 차례 깜박이던 금룡은 무엇이 이상한지를 추측해 보았다. 그렇게 조금 지나서야 위화감 하나를 깨달았다. 창에 비친 햇살이 평소보다 더욱 밝은 것이다. 하-. 한숨이 터졌다. 답지 않게 늦잠을 잔 것이 틀림없었다. 무인이란 놈이-.
* 짧음 [雪裏 :설리] 눈 내리는 가운데 문득 글씨를 써내리던 손을 멈추고 창을 쳐다보았다. 잠을 깨기 위해 열어둔 창밖으로 어느새 눈이 나리고 있었다. 제법 일에 집중을 했었던가. 눈이 쌓이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일을 멈춘 금룡은 한참동안 하얗게 쏟아져내리는 눈송이들을 쳐다보았다. 눈이 내리는 순간-, 가끔은 모든 것이 하얗게 지워져내린 것처럼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