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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와 연지와 섬유유연제

공미포 5,274자

Rusty Sky by 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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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06. 15 포스타입 글을 옮겨왔습니다

* 키스데이 기념 단항카일 첫키스 하는 단문.. 이었는데 다 쓰고 나니 키스데이가 지나서 13분 뒷북친 사람됨

* 공식과 다른 설정 주의. 스포일러는 아마 게임 초반? 우주정거장 이후 스토리 언급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될것 같습니다.  

* 퇴고x 의식의 흐름ㅇ 얘네로 이런저런 기념일을 챙기고 싶은데 시간이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오늘이 지나기 전에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고백하고, 그에 대한 대답만큼이나 따끈따끈한 포옹에 파묻히는 일이 있었다고 해서 이전과 전혀 다른 관계가 되지는 않았다. 소소하게 달라진 점이라면 카일루스가 자료실을 찾는 횟수가 늘었다는 것 정도. 이전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이었다면, 지금은 기본이 네댓 번이다. 그 외에 달라진 점이라고 하면 스킨쉽이 늘었다는 것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함께 자료실에서 옛날 영화를 보거나(최근에는 인류가 별바다에 오르기 전에 만들어진 조악한 화질의 물건을 감상 중이다) 각자 할 일을 하기도 하고, 이부자리를 펴고 누워서 이런저런 잡담을 하기도 했다. 가끔은 손을 잡기도 했고, 품에 안아주거나 안겨있기도 했다. 때로는 무릎을 내어주기도 했다. 그 이상의 무언가는 없었지만, 꽤 만족스러운 나날이다. 상대는 어떻게 생각할지 알기 어렵다는 점이 가끔 신경 쓰이기는 했다. 

카일루스는 호오가 분명한 편이니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지 예측하기 쉬울 거라고 여겼던 때가 있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함께하며 겪게 된 온갖 기행 때문으로,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건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물으면, 나름대로 궁리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는 걸 알만한 답변이 돌아오기는 했다. 왜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건전한 스킨쉽에 인색하지 않은 애인을 둔 덕분에, 요즘은 푹신푹신하지는 않지만 껴안으면 말을 걸어주고 마주 안아주는 대형 바디필로우가 된 것 같다. 누구 말을 덧붙이자면 희미하게 좋은 냄새도 나는. 글쎄, 이 정도 크기에 이렇게 생긴 바디필로우가 수요가 있을까? 그리고 좋은 냄새라니. 그쯤에서 단항은 얼굴을 붉혔다. 

은하열차의 경호원이라는 직책, 그리고 개척임무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온갖 위험을 헤쳐나가다 보면 피나 소독약 따위의 냄새가 몸에 쉽게 스미고는 한다. 물론 일과가 끝나면 곧장 욕실로 들어가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제 뒤를 따르는 옅은 쇠비린내를 전부 떨쳐내기는 어렵다. 향기든 악취든 지나치게 강하면 몸을 숨기거나 적의 뒤를 밟을 때 들킬 위험성이 있다 보니 따로 향수를 뿌리지는 않는다. 

한쪽 눈가를 덧그리는 붉은 연지에서는 희미하게 화장품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미약해서 얼굴을 가까이하지 않는 한은 맡기 어렵기도 하고, 주술적인 힘이 담긴 물건이기도 해서 꼬박꼬박 사용하고 있다. 누가 봐도 피 냄새를 풍기는 무인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데 좋은 냄새라니. 머리칼이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고는 서늘한 냄새가 나서 좋다고 말하면 대답할 거리가 곤궁하다. 뭐라도 말했어야 했지? 너한테서는 볕에 말린 이불과 섬유유연제 냄새가 난다고? Mar. 7th가 너한테 선물한 인형이랑 비슷한? 연인끼리 주고받기에는 좀……. 심심한 말이 아닌가?     

어쨌든, 제가 향수를 뿌리는 것도 아니고, 은하열차에서 사용하는 이런저런 세면도구는 정비와 물품 보충을 위해 들르는 우주정거장이나 행성에서 적당한 품질의 물건을 사들이고 있다. 정차하기 어려울 때는 우주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 소형 함선이나 운반용 대형 드론(무역용으로 등록된) 등등을 통해 구메한다. 

즉, 은하열차팀은 기본적으로 다들 비슷비슷한 냄새를(섬유유연제와 샴푸, 비누 등등) 풍긴다고 할 수 있다. 향수를 뿌리거나 커피처럼 특유의 향이 남는 먹거리를 즐길 때, 활동하면서 체취가 조금씩 짙어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서서히 냄새가 달라지지만, 막 씻고 나왔을 때는 기본적으로 다들 비슷비슷한 냄새를 풍긴다. 

인간보다 감각이 예민한 용족에게도 막 씻고 나왔을 때만은 비슷하게 느껴질 정도이니, 평범한 인간이라면 아마 누가 누군지 후각만으로는 구분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몸에 묻은 물기가 마르기 전이라면, 굳이 몸을 가까이하고 체취를 한껏 들이키지 않아도 특색이랄 게 없는 냄새밖에 나지 않을 텐데. 그런데도 좋은 냄새가 난다면서 몸을 붙여온다. 

아니, 사실 피 냄새나 붉은 연지에서 풍기는 오묘한 향내 따위는 이제 연연할 필요조차 없다. 

카일루스는 열차에 탄 다른 사람에게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머리칼이나 목에 얼굴을 파묻지도 않고, 허리에 팔을 두르거나 손을 잡아채지도 않으며, 어깨에 가만히 이마를 대어보지도 않는다. 몸을 포개고 미묘하게 어긋난 호흡이 서서히 겹쳐지는 걸 기다리지도 않는다. 그런 것들을 오로지 저만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애인이 그 나름대로 저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언행을 주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손끝에서 만져지는 종잇조각에, 그는 다시 한 번 얼굴을 붉혔다. 온갖 상념에 휩쓸린 것 때문에 공책 귀퉁이를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찢고 말았다. 단항은 까맣게 잠든 단말기를 슬쩍 건드렸다. 카일루스가 자료실에 들르겠다고 말한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오후 9시 4분을 지나고 있으며, 기다리던 얼굴이 객실 문을 열고 들어오기까지 약 이십여 분 정도 남았다. 

퍼스널 스페이스와 개인 시간에 대해 카일루스도 나름대로 생각해본 모양인지, 늦은 시간에 찾아왔을 때는 금방 돌아가고는 했다. 길어봤자 두어 시간이 지나면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했는데, 언젠가 이유를 묻자 넌 혼자 있는 거 좋아하니까, 라는 대답이 돌아왔었다. 그 말에 뭐라고 대꾸했었더라. 확실한 것은 카일루스가 막 열차에 올랐을 때, 그에게 자료실은 대화를 위해 준비된 공간은 아니라고 말했던 걸 뒤늦게 후회했다는 거다. 

가끔은 전처럼(카일루스가 막 열차에 올라 자료실 룸메이트로 지낼 때처럼) 자고 가도 된다는 말을 꺼내기까지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어떻게 해야 성적인 함의 없이, 말 그대로 잠만 자고 가라는 뜻을 오롯이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말을 고르는데 사흘 걸렸다. 나흘째 되는 날, 그러니까 오늘, 단항이 이미 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 없음을 깨닫고 애꿎은 공책과 펜을 괴롭히는데 몰두하던 도중 카일루스가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으면 아마 공책 몇 장을 더 버렸겠지.  

애인의 바디필로우(……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노릇은 마음에 든다. 그 이상의 접촉? 지금 생각할 일은 아니다. 물론 포옹 이상의 무언가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건 아니지만, 그게 오늘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 좀 더 내밀한 스킨쉽은 미래의 일이고, 지금은 그저 제 몸에서 쇠 냄새가 심하게 나지 않으니 다행일 따름이다. 한동안 평화로운 퀘스트만 해결하고 다녔더니 그림자처럼 따라붙던 피비린내도 흐릿해졌다.   

똑, 똑.

단항의 손에 밀린 단말기가 반짝이며 오후 9시 10분을 지나고 있다고 종알거린다. 예고했던 것보다 조금 이른 방문이었다. 그는 단말기를 움켜쥐고 연신 볼륨버튼을 짓누르면서 문을 향해 들어오라고 말했다.  

쇠와 연지와 섬유유연제

단항×카일루스(남개척자)

객실 문을 열고 들어간 카일루스는 "기다렸어?" 나 "조금 더 일찍 올 걸 그랬네." 라고 말하지 않기 위해 입안을 가볍게 씹었다. 문을 열자마자 이쪽을 향하는 시선이, 어찌할 수도 없이 곧다. 눈이 조금 커지는 것을, 입가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는 것을 똑똑히 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이쪽을 향하는 시선이 곧다. 기다렸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귀엽기도 하고,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미 잠자리에 들 준비를 끝마친 애인의 얼굴을 보고, 세 개나 놓인 베개를 보고(자신이 가끔 베개를 껴안고 이불 위를 굴러다니고는 했다), 자료실 한쪽 벽을 차지한 이런저런 설비를 쳐다본 뒤에야 입을 열 수 있었다. 

"단항. 나 오늘은 금방 갈 거야."

그러자 예상했던 일이 일어났다. 침착한 표정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하더니, 녹색 눈동자가 약간 흔들렸다. 은하열차 경호원의 견고한 포커페이스 운운하던 치들이 저 모습을 봤으면 뭐라고 말했을까? 저것도 적을 교란하기 위한 어쩌고 하면서 헛다리나 짚었겠지. 그냥 당황했을 뿐인데. 단항은 기본적으로 침착하고, 시종일관 무표정을 고수하지만 이제는 그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여러 가지 감정을 어느 정도는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처럼 흐트러진 표정을 금세 갈무리하는 것도 눈치챌 수 있게 되었다. 내내 붙어있었던 덕분이라고 할까. 

"……그렇지. 늦었으니까."

"음, 나 자고 간다는 말 안 했었지?"

"안 했어."

하지만 아무래도 애인은 제가 자고 갈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조금 실망한 것도 같았던 표정은 이미 온데간데없고, 평소의 차분한 얼굴로 몸을 조금 물린다. 이리로 오라는 뜻이다. 카일루스는 바닥에 깔린 이불 위에 주저앉았다. 베개 하나를 집어 품에 안고 턱을 올려도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 

그러고 보니 사귀기로 한 뒤에는 자료실에서 자고 간 적이 없었던가? 얼른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없는 모양이다. 아, 나 방금 말실수했나? 자고 간다는 말은 안 했다는 거나, 금방 갈 거라는 말 대신 오늘은 늦게까지 놀자고 말했어야 했던 걸까? 연애경험이 없었던지라 어디서부터 틀려먹은 건지 알기 어렵다. 

옆에서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베개를 턱짓으로 가리킨다. 카일루스는 제 손아귀에서 거의 절반 크기로 압축된 베개를 살살 주물러 원상복귀 했다. 머릿속으로 서툴게나마 한 시뮬레이션은 자료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이미 무용지물이 되었다. 안 되겠어. 얼른 끝내고 가서 자야지. 아마 잠을 좀 설치겠지만. 

카일루스는 구깃구깃한 베개를 툭툭 털어 단항에게 떠넘겼다. 얼결에 품에 베개를 껴안게 된 단항은 이제 완전히 평소와 같은 얼굴이었다. 조금 전 내보인 실망이나 당혹스러움 같은 감정은 까맣게 잊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자 이쪽도 덩달아 침착해졌다. 포커페이스도 옮는 걸까? 

어쨌든, 덕분에 두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뺨을 감싸 쥐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이미 혼자 생각했을 때와는 한참 달라졌지만. 뺨을 감싸 쥐고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는 손길에 순순히 응한다. 카일루스는 가볍게 내쉬는 숨이 제게 와 닿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마주 본 옅은 녹색 안의 동공이, 아주 날카롭게 좁아지는 걸 본 것도 같았다. 

그 체온만큼이나 서늘한 입술이었다. 

가벼운 입맞춤일 뿐인데 얼굴에는 열이 오르고, 입술은 뜨끈뜨끈하게 달궈진 것처럼 느껴진다. 맞닿은 입술이 차가웠기에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정말로 얼굴이 타는 듯이 달아올랐을지도 모르겠다. 카일루스는 가벼운 입맞춤을 끝내기 위해 몸을 뒤로 물리려고 했지만, 그가 움직이는 것보다 상대가 아랫입술을 깨무는 게 더 빨랐다. 

"……아!"

그런 소리를 낼 만큼 아팠나? 자문할 틈도 없었다. 깨물린 사실에 놀라 입을 열자 벌어진 틈으로 차갑고 습한 것이 파고든다. 빈틈없이 꼭 맞물리면서 무언가 날카로운 것에 여린 점막이 긁힌 것 같았는데, 얼음장 같은 혀가 입천장을 꾹꾹 눌러대자 스쳐 지나간 피맛 같은 것은 금방 잊어버렸다. 입을 좀 더 벌리라는 것처럼 집요하게 눌러대는 통에 목에서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입가로 누구 것인지 모를 타액을 흘리면서 순순히 입을 열었다. 

차갑고 매끈한 것이 혀 아래로 기어들어가는 느낌에 몸을 떨면서 신음했다. 으응…….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다는 자각은 있었지만 소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목소리뿐만이 아니라 머리가, 몸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는 걸 고스란히 느끼면서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무력감만 있어야 할 텐데, 해소할 곳을 모르고 치솟는 열기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제 체온이 옮은 건지 차갑게만 느껴졌던 혀도 뜨거웠고, 허리를 단단히 감싼 팔도, 맞닿은 입술도 이제는 뜨끈뜨끈했다. 

입을 벌리고, 눈가며 뱃속에 고이기 시작한 열기에 어찌할 줄 모르고 있는 동안, 상대방은 입안에 숨은 혀를 요령 좋게 끄집어내더니 거기에 이를 세운다. 날카로운 통증과 피 맛을 떠올리자 갑자기 허리가 뻣뻣하게 굳고 아랫배에 고인 열기가 척추 어딘가를 찌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잠깐, 이거 좀 이상해. 단항, 잠깐만. 안 돼, 지금 깨물면― 그러나 입술 사이에 빈틈이라곤 없이 맞물린 탓에 입안에서, 목구멍 안에서 앓는 소리에 그쳤다. 

***

"내가 깨물지 말라는 말 안 했지?"

단항은 눈을 굴리다가 입을 열었다. "……했을걸."

카일루스는 턱으로 단항의 어깨를 두어 번 눌렀다. "아니야, 안 했어."

굳이 따지자면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게 맞다. 제가 못 하게 만들었으니까. 단항은 한 손으로 화끈거리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다른 손으로는 품에 안긴 이의 등을 가볍게 다독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직도 어깨며 가슴이 크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품 안으로 파고들 것처럼 꿈틀거리던 카일루스가 몸을 뒤로 물린다. 왜? 가려고? 단항은 그렇게 묻고 싶은 걸 겨우 삼켰다. 

"왜?"

"베개 때문에 불편해."

그러더니 두 사람 사이에 끼여 거의 납작해진 베개를 끄집어낸다. 카일루스는 베개를 대충 주무르다가,  아무렇게나 던져두고는 다시 단단한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단항은 다시 작업을 재개했다. 아직도 진정하지 못하는 애인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리자 귀걸이를 매만진다. 나름대로 숨을 고르려고, 평소와 같은 태도를 보이려고 노력하는 모양이었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는지 씨근대는 숨소리는 이내 가라앉았지만 맞닿은 가슴팍에서 연신 거센 박동이 느껴졌다. 오감이 평소보다 예민해진 탓인지 몸통이 울리는 것 같다. 

"오늘은 금방 가려고 했는데."

"……."

"좀 지친다. 나 자고 가도 돼? 이제 와서 취소하기에는 늦었어?"

"아니."

"으음."

지쳤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전신의 힘을 빼더니 무게를 실어 안겨온다. 제법 묵직한 게, 부러 힘을 준 게 틀림없다. 카일루스, 너 방금 일부러 그랬지. 아닌데. 겨우 이걸로 엄살이야? 그러는 단항 넌 왜 갑자기 팔에 힘주는데? 날 아까 그 베개처럼 만들 셈이야? 아니. 거짓말. 영양가 없는 잡담이 얼마간 이어지다가 이내 잦아들었다. 

단항은 회색 머리칼을 걷어내고 목과 어깨 사이에 고개를 파묻었다. 햇볕에 잘 말린 부드러운 이불에서 날 법한 냄새에 희미하게 섬유유연제 향이 섞이자 가만히 있기만 해도 절로 졸음이 쏟아질 법한 조합이 되었다. 역시, 제 몸에서 이런 냄새가 나는 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숨을 깊이 들이쉬자, 용족의 예민한 후각으로 붉은 연지와 피비린내를 감지할 수 있었다. 인간의 코로는 이렇게 옅은 체향이 뒤섞이는 것까지는 잡아내기 어렵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지만, 저만의 사소한 비밀로 남을 거라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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