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화] Unifier (1)
하이어로팬트 그린의 숙주에게도 이름이 있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게 됐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적으로 스탠드사로서의 두각을 나타낸 - 다르게 말해서, 태어나자마자 스탠드로 분만실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다. - 그를 우리는 부모에게서 넘겨받아 키워왔다. 우리는 하이어로팬트 그린을 단련시키기 위해 숙주에게 적당한 영양분만을 공급하면서 정신적 수련을 폭발적으로 집중시켰다. 다양한 관점의 사상을 담은 책을 읽게 했고 정규 교육 과정 못지않은 공부를 시켰다. 숙주가 조금이라도 따라가지 못할 것 같으면 호되게 혼내거나 살살 달래가며 그의 정신력의 근원인 두뇌를 단련하고, 정신력까지 날카롭게 벼려낼 수 있도록 가끔 극한적인 상황에 혼자 두었다. 그에 따라 하이어로팬트 그린은 나날이 강해졌고 아름다워졌다. 하이어로팬트 그린이 우리 연구소에 들어온지 17년째. 여기서 한 번 소개하자. 우리는 선천적 스탠드사를 상대로 대규모 실험을 하는 프로젝트의 일원들이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 뭔지, 언젠가 끝나기는 하는 건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고매하신 윗분들이 우리에게 충분한 예산을 주기만 한다면 우리는 주어진 연구를 성실하게 해낼 뿐이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이 프로젝트도 몇십 년 가까이 이어져 오고 있다는 루머를 선배 연구원들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프로젝트의 연구 대상은 수없이 많았지만 이 정도로 버텨낸 실험체는 하이어로팬트 그린이 유일하다. 하이어로팬트 그린이 특별대우를 받는 이유다.
하이어로팬트 그린은 활동적인 스탠드다. 호기심이 왕성하여 관찰용 유리창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려 연구원들의 관심을 끌기도 하고,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개인실 안의 물건들을 집어던지기도 한다. 연구원들 사이에선 너무 오냐오냐 키운 것이 아니냐는 말도 돌지만, 뭐 어쩌겠는가. 대개 5년도 못 채우는 실험체들 중에 10년을 넘게 생존해 있는 건 하이어로팬트 그린 뿐인걸. 하이어로팬트 그린이 그렇게 왕 대접을 받고 있는 동안 숙주는 가만히 허공을 바라보며 구석에 앉아 있다. 물론 우리는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숙주는 말 그대로 숙주다. 하이어로팬트 그린에게 영양분을 제공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새로운 연구 주제로 숙주에 대한 것이 위로부터 내려오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까진 그런 일이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없겠지. 하이어로팬트 그린만으로도 힘에 겨운데 숙주가 얌전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기도 하다. 우리가 주는 희여멀건한 죽을 군말없이 받아먹고 교육을 시키면 얌전히 받는다. 이 얼마나 모범적인 숙주인지. 덕분에 우리도 숙주에 관한 걱정은 잘 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에 새 연구 주제가 내려왔다. 또 무엇이 목적인지, 어떤 결과를 바라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건 신경쓰지 않는다. 17년간 거의 고립되다시피 살아온 하이어로팬트 그린을 사회에 내보내는 것이 이번 실험의 주제란다. 아직 스탠드란 것은 세상에 공표된 적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유령, 악마, 폴터가이스트 따위로 부를 것이다. 만약 하이어로팬트 그린이 연구소 안에서처럼 밖에서 마구 날뛴다면 단숨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것이고 이는 비밀리에 진행되던 우리의 연구도 세상에 들통나는 결과를 맞을 것이다. 이런 위험천만한 실험을 왜 하는 건지……. 프로젝트의 존속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월급이 문제인 거다. 우리는 저마다 우려를 입에 담았지만 위에서부터 내려온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숙주와 하이어로팬트 그린에게 바깥 세상에 대해 가르치고 현대 과학 기술을 체험시켰다. 숙주의 나이에 따라 다니게 될 학교 구석구석에 감시카메라를 달아놓고 우리는 하이어로팬트 그린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물론 사람의 신체는 스탠드의 몸을 통과해버리기 때문에 그냥 그의 손 위치에 우리의 손을 올려두는 것으로 대신했다.)
“가서 말썽부리지 말고 잘 지내야 한다!”
하이어로팬트 그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숙주는 여느 때와 같이 허공을 바라볼 뿐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하이어로팬트 그린은 처음 보는 바깥 세상의 모든 것을 신기해 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차가운 먼지를 잡아보려고 애쓰기도 했고 촉수로 등굣길 학생들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기도 했다. 다행히 넘어진 학생들은 길이 미끄러워 넘어진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하이어로팬트 그린이 앞서 나가고 숙주가 천천히 걸으며 뒤따르는 것을 감시카메라로 지켜보던 우리는 한 순간 숨을 급히 들이켰다. 하이어로팬트에게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여학생들이 몰려 있었다. 그 뿐이라면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학생들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은 충분히 놀랄 만했다. 키가 2m에 육박하는 덩치에, 온통 검은색을 두르고 교복 재킷에는 굵은 쇠사슬을 단, 딱 봐도 불량배 같은, 그러나 연구원들을 모두 놀라게 할 정도로 아주 잘생긴 남학생이 귀찮은 듯 여학생들을 쫓아내고 있었다. 학교에 대해 자세히 조사하지 않은 것을 우리는 후회했다. 어느 학교에나 불량배는 있지만, 불량배와 하이어로팬트의 등굣길이 겹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일반인과 스탠드를 비교하면 스탠드가 압도적으로 강하다. 키가 2m든 5m든 우리가 고이 키워온 하이어로팬트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단 말이다. 다만 흥분한 하이어로팬트가 사람들의 눈에 띄는 행동을 한다면……. 그야말로 귀찮아질 게 뻔하다. 근처 주차장의 연구용 밴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우리는 급히 회의를 시작했고, 결과는 빨리 나왔다. 일단 등굣길 변경은 내일부터. 오늘은 저 불량배와 하이어로팬트가 마주치지 못하게 하자! 막내 연구원 다나카가 재빨리 밴을 나서선, 불량배가 지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계단 위에 미끄러운 물질 - 기름과 비슷하지만 길에 쌓인 눈을 녹이지는 않는 물질인데, 우리 연구소에서 독자 개발한 것이므로 이름과 레시피는 알려주지 못하는 것을 양해 바란다. - 을 바르고 다시 돌아왔다. 우리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스크린만을 뚫어지게 지켜보았다.
“꺄악, Jojo!”
“Jojo!!”
불량배 녀석은 우리가 발라놓은 물질을 밟고 거하게 미끄러졌고 큰 덩치가 무색하게 계단 위를 붕 날아올랐다. 이, 이렇게까지 되길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날아오른 높이와 궤도를 계산하면 저 죠죠라는 불량배는 바닥에 머리를 박고 사망할 것이었다. 하이어로팬트의 등교 첫날부터 이런 사고가 일어나면 안 되는데…!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우리가 모두 눈을 질끈 감고 3초쯤 지났을까, 왜인지 두개골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살짝 눈을 떴더니 불량배는 바닥에 사뿐히 서 있었다. 낙법을 연마한 불량배라도 되는 것일까? 눈을 크게 뜬 우리에게 일어나선 안 될 일이 보이고 말았다.
“…네가 구해준 건가?”
“…….”
왼쪽 다리를 나뭇가지에 베인 건지, 바지가 찢어진 틈 사이로 피를 흘리는 불량배에게 숙주가 우리에게서 공급받은 손수건을 내밀고 있었다. 초점 없는 눈인 건 여전했지만 숙주가 스스로 무언가 행동을 해보인 건 처음이라 연구원들은 다같이 놀랐다. 불량배는 아무 말 없이 손수건만 내밀고 있는 숙주가 짜증날 만도 한데, 묵묵히 손수건을 받아들더니 제 다리를 스스로 응급처치했다. 피가 멎도록 다리를 손수건으로 꽉 묶은 불량배는 눈을 피하고 있는 숙주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뭐하는 녀석이지?”
“…….”
“전학이라도 온 건가?”
“…….”
불량배는 등을 살짝 굽혀 저보다 키가 작은 숙주의 얼굴에 제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래도 숙주는 불량배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어떤 의지가 있어서라기보단……. 아니, 오히려 상대와 소통하고자 하는 어떤 의지도 없어 보이는 행동이었다. 불량배는 이내 몸을 거두더니, 정확히, 하이어로팬트 그린이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네 스탠드인가.”
“…….”
“신세를 졌군. 쿠죠 죠타로다. 손수건은 나중에 돌려주도록 하지.”
하이어로팬트는 불량배가 자신을 알아보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는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불량배는 이윽고 다시 여학생들을 이끌고 사라졌고, 하이어로팬트와 숙주도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일단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더니, 하이어로팬트가 그 불량배와 같은 반에 배정될 줄이야. 하이어로팬트도 그 불량배에게 흥미를 가진 것처럼 보였고, 불량배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물론 실험 주제 자체가 스탠드의 사회 교류이지만, 그렇다고 불량배와 엮이길 바란 것은 아닌데……. 우리의 타들어가는 마음도 모르고 담임 교사는 전학생을 소개한다며 숙주를 교실 앞에 세웠다. 어떤 사연 때문에 홈스쿨링을 하다 처음 학교에 다니게 된 것이고, 그러니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모두 배려해주고, 어쩌고저쩌고……. 지루한 5분간의 연설이 끝나고서야 교사는 숙주에게 자기소개 시간을 주었다.
“…….”
당연하게도 숙주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연구소에서도 먹고 씻고 자고 우리가 시킨 것을 하는 것만 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숙주다. 무엇을 스스로 할 수 있겠는가. 아까 불량배에게 손수건을 준 것은 그냥 가끔 있는 오작동일 것이다. 그저 허공을 바라볼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숙주를 모두가 이상하게 바라볼 때쯤 하이어로팬트가 나섰다. 숙주의 몸 안에 기어들어가더니, 숙주의 팔을 들어 분필로 칠판에 제 이름을 썼다. Hierophant Green. 학생들이 당황하여 저마다 쑥덕이는 것을, 담임 교사가 외국에서 살다왔나 보다며 애써 진정시켰다. 교사조차도 hierophant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린 군은 쿠죠 옆 빈 자리에 앉으라고 지시하자, 그제서야 ‘명령’을 들은 숙주가 움직였다. 자리에 착석한 숙주와 하이어로팬트 그린을 불량배는 지긋이 바라보았다. 숙주는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고 하이어로팬트만이 불량배 주위를 빙빙 돌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녹색 몸체와 촉수가 마찬가지로 빛나는 궤도를 그리며 불량배를 마치 감싸듯, 혜성이 태양 주위를 돌며 빛나는 꼬리를 남기듯 그렇게 돌았다. 몰려드는 여학생들에겐 귀찮다고 일갈하는 그여도 하이어로팬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책상에 발을 올려두는 꼴을 보면 딱히 수업시간이라고 정숙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첫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 우리의 지시에 따라 수업 시간에 성실히 공부하던 숙주에게 불량배는 결투장이라도 보내는 것처럼 위압적인 아우라를 뿜으며 말을 걸었다. 자신에게 도마뱀처럼 찰싹 붙어있는 하이어로팬트를 불량배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숙주도 하이어로팬트나 불량배, 둘 중 누구에게도 신경쓰지 않았다.
“옥상으로 따라나와라.”
“…….”
아뿔싸. 옥상은 우리가 유일하게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애초에 잠겨 있었을 뿐더러 하이어로팬트가 불량배들의 아지트 같은 옥상에 올라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방법을 쓴 건지는 몰라도 이 불량배는 잠긴 옥상으로 드나드는 길이 있거나 애초에 옥상을 잠근 것이 그인 모양이었다. 역시나 반응이 없는 숙주의 팔을 억지로 잡아끌다시피 하며 불량배는 옥상을 향해 그를 데려갔다. 우리는 제발 그 곳에서 아무 일도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이어로팬트 그린. 네 이름인가.”
“…….”
내 상체에 달라붙은 녹색 스탠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머리를 가진 남자는 그저 멍하니 바닥을 바라보기만 했다. 세상에 수십억이 넘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스탠드사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할아버지가 데려온 보스턴테리어처럼 동물이 스탠드사인 경우도 있었고 물건이 스탠드 그 자체인 경우도 봤다. 그러니 이 남자도 스탠드가 본체고 신체 자체는 그냥 껍데기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다면 굳이 껍데기를 향해 대화할 필요는 없을테다. 나는 나의 스탠드, 스타 플래티나를 불러내 내 몸에 찰싹 붙은 하이어로팬트 그린을 떼어냈다. 하이어로팬트 그린은 자신 말고 다른 스탠드는 처음 보는 듯 흥분해서 수많은 촉수로 스타 플래티나의 몸을 기어올랐다. 촉수로 몸을 쓰다듬어지는 감각은 그다지 기분 좋지 못하지만 그보단 하이어로팬트 그린에게 중요한 말을 해야 했다. 스타 플래티나를 거의 잡아먹을 듯이 촉수로 감싼 하이어로팬트 그린에게 물었다.
“학교 전체에 감시 카메라가 깔려 있던데,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없었던 것들이다. 그리고 하이어로팬트, 네가 오늘 전학 왔고. 나한텐 너와 감시 카메라 사이에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
하이어로팬트 그린이 한 번 고개를 기울이더니 순순히 끄덕였다.
“그 말은, 너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너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거군?”
한 번 더 끄덕였다.
“…너는 대체 뭐지?”
하이어로팬트는 천천히 스타 플래티나에게서 빠져나와 내 앞에 사람의 형태로 섰다. 그리고 옥상 바닥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僕
마지막 획을 그은 하이어로팬트가 샐쭉 웃어보였다. 그와 눈을 마주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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