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히카

냥오드 침대에서 같이 자는글

느루네 by 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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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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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쏟아지는 밤이군. 제 머리의 물기를 털어내며 에스티니앙이 한 생각이었다. 하의만 입은 채 머리를 말리던 그는 하늘을 보며 점점이 박힌 것들과 같은 이름을 가진 제 파트너를 떠올렸다.

자신의 몸을 태워가며 세상을 구하려는 꼴이 실제 별과 그리 다를 것도 없긴 했다. 별이 가장 빛나는 때는 죽기직전이라고 했던가.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를 생각하며 하늘을 보는 용기사의 눈이 달빛을 받아 푸르게 빛났다.

덜컥.

귀족은 못 되는 모양인지 노크도 없이 방문이 열렸다. 마찬가지로 가벼운 잠옷을 입은 오드가 문 앞에 서있었다. 코를 찡긋대며 방으로 들어와 자연스레 문을 닫았다.

"파트너, 아직까지 머리도 안 말리고 뭐하고 있었어? 슬슬 잘 시간이잖아."

"머리만 말리면 끝이다. 너야말로 갑자기 문을 여는 건 관두지 그래. 노크 정도는 해라."

가볍게 타박하면서도 침대로 향하는 자신을 막지는 않는다. 아니지, 가만 보면 침대에는 베개가 두개 놓여있다. 자신이 꺼내둔 적은 없으니 그가 꺼내둔 것이겠지. 모험가는 소리내어 웃으며 침대 위에 풀썩 앉아 옆자리를 두드렸다.

"뭐 어때. 너도 이제 나 없으면 잠 못 자잖아. 빨리 말리고 와. 아니면 내가 말려줄까?"

"쓸데없는 소리."

짧게 일축한 그는 파트너가 웃던 말던 수건으로 머리를 꼼꼼히 말렸다. 제법 긴 머리는 제대로 말려두지 않으면 하루종일 꿉꿉한 냄새가 나 기분이 좋지읺았다. ...사실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다기 보다는 시도때도 없이 등이나 팔에 매달려(정말로, 말 그대로의 의미로 매미처럼 매달렸다.) 머리카락을 가지고 장난치는 모험가가 미묘한 표정을 짓고는 했다.

왠지 그 표정을 보는게 별로라서 머리는 늘 말끔하게 말리게 된 것이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고 흩어지는 은발을 대충 뒤로 넘긴채 여전히 침대옆을 두드리는 오드의 옆에 앉았다. 힘은 비슷했어도 체격과 무게가 달라서 앉은 자리가 푹 들어갔다.

옆에 앉은 모험가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가벼운 말투로 내뱉었다. 손가락으로 제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것은 덤이었다.

"살찐 거 아냐? 에스티니앙. 누나가 대련이라도 좀 해줄까?"

"그 입은 도대체 쉴 생각이 없는거냐? 말을 하려면 제대로 된 말을 하던가, 매번 헛소리만 골라서 하는군."

"뭐? 너무하네. 이런 농담도 하고 그래야 분위기가 가벼워지고 그러는 거 아니겠어? 아니면 뭐야, 나랑 무겁고 끈적한 분위기라도 타고 싶어?"

짓궂게 웃으며 어두운 눈가를 부드럽게 휜다. 온몸이 푸르고 검은 주제에 휘어진 눈만이 달처럼 빛난다. 누구에게나 보이는 모습이다. 모험가는 평범한 어른이라 아이들, 즉 쌍둥이들 앞에서는 시종일관 저런 표정이었더랬다. 

어쩐지 속이 꼬이는 기분이 된 그는 갑작스레 모험가를 눕히고 그 위로 올라탔다. 커다란 몸이 작은 몸을 덮듯이 가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그제야 만족스러워 느릿하게 웃음을 흘렸다.

"못 할 것 같아서 묻는 건 아니겠지. 오드."

"...으음~너무 놀렸나? 화내지마, 파트너. 지금은 생각도 없으면서 갑자기 눕히면 놀라잖아. 안 그래?"

"먼저 도발한 게 누구인지나 생각해라."

쯧, 하고 혀를 차며 그의 몸 위에서 그림자를 치워냈다. 오드는 눕혀진 채로 꾸물대며 이불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어서 누우라는 듯이 이불을 걷어내고 다정한 눈으로 자신을 본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더라. 

아, 그랬다. 함께 합을 맞추고 시간이 제법 지난 뒤 깔끔하게 전투가 마무리 되었던 날.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지 제게 대련을 권했었다. 요마와 계약한 후로는 흥분이 쉬이 멈추지 않는 듯 했다. 자신도 몸이 달아있는 상태였으므로 흔쾌히 수락했다.

그렇게 한참 무기를 맞부딪히며 둘 다 기력이 쏙 빠져버린 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장 가까운 여관으로 기어들어갔다. 

방이 하나밖에 없다고 했었나, 열쇠를 받아들고 방에 들어갔더니 다행히 욕조가 있는 방이었다. 문제는 침대가 하나뿐이었다. 온 몸이 욱신거리는 상태에서 어느 한쪽이 바닥에서 자기에는 문제가 있었고, 침대가 작은 것도 아니었기에(지금 생각해보면 커플용 침실을 준 것 같았다.) 씻고 나온 후 둘 다 침대에서 기절하다시피 잠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주 편안했다.

잘때 사람이 있으면 감각이 예민한 그로써는 제대로 잠에 들기가 어려웠다. 아마 그건 제 파트너도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일까. 불편함을 각오하고 든 잠자리였는데 눈을 뜨니 오후였다. 심지어 서로 껴안은 상태로.

할로네에 맹세코 무언가를 끌어안고 자는 버릇이 없었던 에스티니앙은 많이 당황했다. 당황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괜찮지 않은가? 그리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잠이란 것을 편안하게 잔 게 얼마만이었는지 모른다. 수면의 질이란 것은 생각보다 더 대단해서, 그의 컨디션은 눈에 띄게 좋아졌었다. 

장난을 좋아하는 제 파트너는 종종 자신을 놀려먹고 싶어했지만 그 컨디션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듯했다. 

그리하여 그들 사이에는 암묵적인 약속이 생겼다. 밤이 되면 둘 중 하나가 준비를 끝내고 상대의 방문을 여는 것이다. 거부는 하지 않는다. 밤에 찾아올 사람따위 따로 있을리가 없었다. 그리고 별다른 일 없이, 함께 안고 잠들었다. 

소문이 나면 귀찮아질테니 동료들에게도 말은 하지 않았다. 가끔 마녀가 묘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것을 보면 눈치는 챈 것 같았지만.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아예 잠만 자지는 않을때도 있었지만. 성인남녀인데 그럴수도 있는 것 아닌가? 별 신경은 쓰지 않았다.

잠시 상념에 잠긴 사이 파트너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우뚝 서있는 파트너가 이상해보였나보지.

"에스티니앙? 냐-앙? 푸른 용기사씨, 시간이 늦었어요. 안 들어오면 잘 수가 없잖아요~?"

"냥이라고 하지마. 지금 누울거다."

"하지만 대답 안했잖아. 어디 아픈거면 빨리 말해. 괜히 오래 아파봤자 좋을 것 없잖아?"

"안 아파. 조용히 좀 해라."

상념을 털어낸 그는 여전히 이불을 들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파트너의 옆에 누웠다. 이불이 제 위로 덮어지는 것을 느끼며 다소 단단한 비늘과 부드러운 피부가 이어지는 몸을 끌어안았다. 그다지 긴 말은 필요치 않았다. 제 등 뒤에도 둘러지는 익숙한 손길에 곧 눈을 감았고, 이내 방에 고른 숨소리만 남는다. 창밖에서 쏟아지는 별빛은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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