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히카

지인 에스히카 글 에스냥 사망소재

느루네 by 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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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적 서사가 있습니다. 에스히카 연인드림, 동거중

퍼가지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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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언제나 우리를 노리고 있다.

그것이 언제가 되었든 간에 시커먼 입을 벌리고 삼켜올 듯 노려본다. 

그리고 그것은 빛의 전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 전직 푸른 용기사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컥....."

예기치 않은 상황이었다. 전투를 위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었으나, 아무리 머리가 좋은 이라도 이중으로 매복한 것을 쉬이 눈치챌 수는 없었겠지.

그러니 감이 가장 좋은 에스티니앙이 모험가에게 향하던 화살을 제 몸으로 막아선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으리라.

전직 푸른 용기사, 현직 새벽의 혈맹, 도룡의 에스티니앙. 그를 빛내는 수식어는 여럿 있었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그리고 그가 가장 좋아하는 수식어는 뭐니뭐니 해도 빛의 전사의 하나뿐인 파트너였다. 

너를 위해 창을 빌려주겠노라, 나를 네 적들 앞에 세우라던 용기사는 그렇게 창을 짚고 무릎을 꿇었다. 곧 무거워지는 몸을 가누지 못해 흔들리다 바닥에 쓰러지는 그를 보며 모험가는 비명을 내질렀다. 

단어가 되지 못한 울부짖음이 싸움터를 울린다. 그건 안된다는 말이었을까, 그의 이름이었을까? 가물해지는 시야로 저를 향해 달려오는 여자가 보였다. 바보같은 표정.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웃음이 나왔다.

전투는 순식간에 종료되었다. 용기사가 쓰러짐과 동시에 적들이 철수한 것이다. 덕분에 빛의 전사는, 에오르제아의 영웅은 에스티니앙 발리노의 마지막을 지킬 수 있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수식어가 빛의 전사의 하나뿐인 파트너 라고 했던가? 사실은 하나 더 있다. 그건...

"에스티니앙. 안 돼, 안 돼요. 안 돼...일어나요."

빛의 전사, ——의 하나뿐인 연인.

푸른 갑주를 입은 남자의 몸에 꽂힌 십여발의 화살이 숨통을 조여왔다. 숨이 멈춰가는 것은 누워있는 사람일진대, 손을 잡는 모험가의 손이 더 차가운 것 같았다. 누가보면 화살을 네가 맞은 줄 알겠어. 그렇게 농을 치고 싶었으나, 나오는 것은 바람이 새는 소리 뿐이다. 고통에 익숙해질 때까지 호흡을 고르던 그는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입을 열었다.

"——, 이리로."

몇음절짜리의 속삭임이었으나 제 진짜 이름을 아는 유일한 남자의 부름이었으므로 모를리 없었다. 모험가는 위태롭게 흔들리는 남자의 숨을 붙잡으려는 것처럼 애타게 손을 잡으며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댔다.

"응, 응...나 여기 있어요. 나 여기 있어...제발 나만 두고 가지 말아요. 우리 이제 정말 둘이서만, 둘이서 여행이나 다니기로 했잖아요."

"....미안하지만, 그건 조금 어려울 것 같다. 네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싫어요. 안 들을래. 알피노 씨! 위리앙제 씨! 빨리!"

"——."

내뱉는 목소리가 힘겹다. 곧 그의 숨이 멈출 것을 직감했다. 교황청에서처럼, 자신을 지켰던 사람의 등불이 꺼질 것이다. 알피노와 위리앙제는 빠르게 달려왔지만, 참담한 표정이다. 에테르를 쏟아부어도 생명력이 차오르지 않는다. 자신의 길이 여기까지임을 알고 있는 용기사는 담담한 말투였다.

"——. 내가 없다고 해서 쓸데없는 생각 하지말고, 밥은 잘 챙겨먹어라. 큭.....하, 그리고, 웅크리고 앉아있지마. 등, 쿨럭, 등 펴고, 고개 들어. 그리고...잊지마, 이건 네 잘못이 아냐."

모험가는 이미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었다. 차마 말로 하지 못하는 울음소리를 삼키며 그를 본다. 당신이 죽는다면, 그렇다면...나는 정말로 나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럴리 없었다. 자신은 죽지 못해 살아가게 되겠지. 그의 목숨을 짊어지고. 그럼에도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입꼬리가 만족스럽다는 듯 올라간다. 야속한 사람. 바람처럼 내 곁에 머물었으면서 자기 마음대로 또 떠나가려 해. 이건 불공평했다. 제발, 제발. 전능하지 않은 신에게 하염없이 기도했다. 

"...——. 언약의 맹세를 하겠다. 사실 나는 모험가가 아니라...맹세가 어떤 것인지는 몰라. 그래도 할테니 들어라."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남자는 허튼 말을 하지 않았다. 한번 약속한 것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키는 사람이니 당연히 쉬이 약속하지 않았다. 자신도 마찬가지라서, 너무나 무거운 영원은 당연히 맹세하지 않았다. 그리고 제 기억이 맞다면, 언약의 맹세는 영원의 맹세였다.

"....에스티니앙. 당신..."

"...나, 에스티니앙 발리노는...살아서나, 죽어서나, 후... ——를 사랑할 것이다. 네 곁에 머물며, 너의 편이 되어...내 혼조차 남지 않게 되더라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이 맹세는, 큭, 이 맹세의 기한은...영원이야. ——, 너는, 맹세하겠나."

엉망진창이었다. 제가 알고 있는 맹세의 내용과는 전혀 달랐다. 그런데도, 그가 삶의 마지막 순간 맹세하는 영원은 절절할 정도로 무거워서 모험가는 그저 입술을 달싹이며 눈물젖은 눈으로 에스티니앙과 시선을 맞췄다.

자신의 입에서 아무런 대답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남자는 그를 바라보며 웃음지었다. 빌어먹을 정도로 얄미운, 그다운 웃음이다.

"좋아. ...이제...그만 울어."

용기사의 눈에서 빛이 꺼져간다. 다정한 잿빛눈에서 온기가 빠져나갔다. 시선이 닿는 마지막 순간까지 제게서 눈을 떼지 않으려는 듯, 그렇게 눈을 감지 않은 채 숨이 멈췄다. 

——는 울지 않았다. 눈물이 메마른 사람처럼 어두워진 청록색 눈동자로 할 일을 했다. 

그의 장례식이 끝나고, 은퇴준비를 끝낸 모험가는 그대로 연락이 끊겼다.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연락이 되지 않은지 일주일이 됐을 무렵, 참지 못한 알리제와 그라하 티아가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런 방문에 놀라지 않도록 야슈톨라와 산크레드가 동행했다. 알피노와 위리앙제는 면목이 없다며 거부했다.

커르다스 서부고지, 용숨결 온천의 바로 옆 작은 집이 모험가와 용기사의 보금자리였다. 사람이 드문 곳에 살고 싶다는 영웅의 바람에 따라, 둘이서 신중하게 선택하여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올린 곳이라고 했다. 집이 크지는 않았으나 늘 딱딱한 성격이었던 남자가 총괄을 맡았다고는 믿지 못할 정도로 따스한 외형이었다. 오로지 둘을 위한 곳에서, 그는 혼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야슈톨라는 답지않게 떨리는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결론만 말하자면, 답은 없었다. 기척에 예민한 사람이니 모를리가 없었는데도. 에테르를 볼 줄 아는 마녀가 없었더라면 그대로 돌아갔을 정도로 고요했다. 야슈톨라는 '그 사람의 에테르는 확실히 느껴져요. 그런데...미약해요. 일주일 전보다.' 라며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당황한 이들의 소란을 뒤로 한채 문을 열었다. 잠겨있지 않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조금 전까지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 생활감 있는 거실이었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었다. 그 모습 그대로 먼지가 쌓여있었다. 그러니까, 모험가는 이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것이다. 본인의 의지이든 아니든. 

어디론가 떠난 건가 싶어 여러 문을 열어보는 새벽의 손이 분주해졌다. 허탈하게도 발견된 곳은 침실이었다. 문이 열릴때까지도 반응 없이 널브러진 자세로 누워있던 그는 알리제가 ––! 하고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눈을 굴려 그들을 쳐다봤다.

선명하지만 어두운 청록빛 눈동자가 자신들을 응시하자 일순 소름이 돋았다. 자지도, 먹지도 않은 듯 퀭한 눈가가 그의 절망을 짐작케했다. 입을 열어 나오는 목소리는 그간 한마디도 하지 않은 듯 낮게 찢어졌다.

"아, 어쩐 일이에요? 온 줄도 몰랐네. 큼, 목은 왜 이렇담. 급한 일이라도 있어요?"

나오는 말은 의외로 태연하다. 멈춰있는 그들 사이로 산크레드가 발을 내딛었다.

"급한 일이라니. 너 일주일 동안 아무 연락도 안 받았다고. 행선지 정도는 알릴 법도 한데 걱정이 돼서 찾으러 왔지. ...––, 괜찮은거야?"

고개를 흔드는 영웅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렀다. 긴 속눈썹이 팔랑거리며 그림자를 만들었다. 잠시 입을 다물었던 그는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그랬나요. 미안해요. 폐를 끼쳤네요! 전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은걸요? 조금 피곤했던 모양이에요. ...정말 괜찮으니까, 이제 돌아가셔도 돼요. 제가 연락할게요."

그 말이 끝이었다. 입을 다물고 입꼬리를 끌어올려 그들에게 무언의 축객령을 내렸으므로, 그리고 에스티니앙이 죽은 지금 모험가의 선 안에 존재하는 이가 없었으므로 그들은 집에서 나와 돌의 집에 모였다. 

그제서야 침묵하던 야슈톨라가 입을 열었다.

그 사람. 단 한번도 우리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어요.

...마치 우리를 처음 봤을때처럼.

모두의 동의로, 당분간 그에게 시간을 주자는 결론이 났다. 그 생각은 옳았던 건지 다소 시일이 흐른 후 모험가는 다시 연락이 되기 시작했다. 은퇴를 번복하지는 않았으나 오는 연락은 꼬박꼬박 받았고, 가끔은 혈맹에 얼굴을 비추기도 했다. 

단지 야슈톨라와 산크레드만이 가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여전히 모험가는 그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났을즈음, 그의 집에 초대 받을 수 있었다. 어쩌다보니 말이 나와 그가 거절하지 않았던 것에 가깝지만, 둘만의 집을 열어주었다는 생각에 이제는 조금 상처가 나아진 것 아닌가 하는 희망이 그들 사이에 맴돌았다.

그리고 문을 여는 순간 깨달았다. 모험가는, 영웅은, 여전히 에스티니앙이 죽었던 그 날에 머물러 있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연락이 되지 않아 방문했던 집.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방문한 오늘의 집이— 기이할 정도로 똑같았다.

사용감조차 없다. 그 날 그대로 멈춰버린듯 물건의 배치조차 그대로였다. 야슈톨라가 스치듯이 보았던 소파의 쿠션 위치조차 그 날과 같았다. 

다른 것은 먼지의 유무. 그들의 영웅은 용기사의 흔적을 그러모아 버텨내고 있던 것이다.

가까스로 뒷걸음질을 막은 그들은 결국 도망치듯이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밤낮으로 토론이 이어졌다. 그를 어떻게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인가? 그 자격이 우리에게 있기는 한가? 지지부진한 나날이었다.

그리고 답은 생각보다 싱겁게 나왔다.

영웅의 죽음으로. 

강도에게 당한 것이었다. 전쟁터를 떠난 수호자는 누군가 제 앞에서 쓰러지는 것에 트라우마가 생겼다. 마침 장을 보러 나왔던 곳에 강도가 칼을 휘둘렀고, 눈 앞의 사람이 죽기직전 그의 몸이 뛰어들었다. 무기도, 갑옷도 없던 은퇴한 모험가는 그렇게 쉽게 스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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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시야가 흐리다. 눈송이가 이마에 닿아 차게 녹아내린다. 피는...이미 치명적일만큼 흘렸나. 제 숨이 시시각각 차가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야, 드디어 당신을 만나는걸까. 못된 사람, 나쁜 놈. 꼭 화를 낼 것이다. 주먹으로 때리고, 멱살을 잡고 흔들어야지. 그러면, 그러면....당신은 아랑곳않고 웃으며 나를 끌어안고, 무릎위에 나를 앉히고 내 볼에 뺨을 부빌 것이다. 그리고 내게 입을 맞추겠지. 달래려는듯이. 그럼 나는 삐죽이다가도 따라 웃을까. 그리고 말해줄 것이다. 나도 영원히 사랑하겠노라고. 이미 계속 그러했으며 너무나도...보고 싶었다고. 

이제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화끈한 통증만 느껴지는 것이, 끝인듯 싶었다. 마지막 숨이 나가려는 순간 제 코를 톡 건드리는 감각과 함께, 정말로 그리운, 한순간도 그리지 않은 적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울지 말라니까 이런 식으로 안 울줄은 몰랐다. 밥도 잘 먹으랬더니. 응?"

그제서야 ——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 언젠가 따스한 집에서 그의 품에 안겨 보였던 환한 웃음과 함께였다. 

마지막의 마지막에서야, 나에게 와주었구나. 

많이 기다렸어요, 많이 보고 싶었어요. 에스티니앙.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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