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히카
오르나리 청소썰
기실 나리엔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첫번째로, 그녀는 혼자 집안일을 해온지 20년이 넘었으며, 두번째로는 누군가에게 집을 보이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했다. 자연히 청소며 빨래 같은 것에 익숙해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익숙한 것과 잘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었지만, 어쨌든 그는 제법 깔끔히 집을 손질할 줄 알았다.
다만 섬세한 작업은 전투 외에 사용해본 적이 없었으므로(그가 요리를 지독히 못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할 것이다.) 언제나 끝마무리는 다소 어설펐다. 구석에 쌓인 먼지를 보지 못하고 지나친다던지, 빨래를 하고나서 다림질을 깜박해 구깃한 옷을 입고 동료들 앞에 선 것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랬으므로 오늘 하는 대청소에서도 침대 밑의 먼지를 생각지 못하고 빗자루를 옮긴 것은 당연했다. 아마 끝날때까지 몰랐을 것이다. 혼자였다면.
콧노래를 부르며 빗자루질을 하는 모험가의 어깨위로 두텁고 단단한 손이 올라왔다. 투박하지만 부드럽게 감싸오는 손에 대번 누구인지 알아챈 나리엔은 가볍게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응, 오르슈팡. 뭐 도울 일 있어?”
말하는 목소리가 물이 흐르는 소리같다고 생각하며 그의 뒤에 서있던 은발의 남성도 입을 열었다.
“넨, 여기. 침대 밑까지 부탁해도 되겠나. 걸레질을 할거라서.”
“아, 또 깜박했네. 미안해. 매번 이래서…”
눈썹을 찡그리며 모험가가 사과를 건넸다. 그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오르슈팡은 눈썹 한쪽을 치켜 올렸으나, 곧 어쩔 수 없다는 듯 등을 천천히 두드렸다.
“미안할 일은 아니지! 그보다 나하고 약속했잖아. 미안하다는 말은 줄이기로.”
“미안…음. 또 말했네. 어려워서 큰일났다. 그치.”
곤란한 듯 엷게 웃는 녹색눈이 온기를 담고 햇살을 받아 빛났다. 그 일상이 기꺼워 기사는 침대 밑의 먼지따위는 아무래도 좋아졌다. 자신이 한 번 더 쓸고 닦으면 되는 것 아닌가?
아무렴, 이렇게 어설픈 면이 있는 것도 인간미가 있는 거지. 그렇게 자연스레 합리화를 마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 차차 고치면 되지. 하루종일 쓸고 닦았으니 이제 빗자루는 내게 주고 앉아서 쉬어도 돼. 마무리는 내가 하면 된다. 자, 어서.”
다시 한번 모험가의 눈이 곤란함으로 물들었다. 제 연인은 함께 살기 시작한 후로 간혹 이런 식이었다. 같이 시작을 했다가도, 결국 제가 마무리 하겠다며 청소도구를 가져가 열심히 움직였다. 물론 그가 이정도로 지칠 사람은 아니었지만 같이 사는 집을 혼자 청소하게 두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이번에는 뺏기지 말아야지. 홀로 다짐하며 빗자루를 꾹 쥐었다.
“안 돼. 또 혼자서 다하려고? 집이 그렇게 넓은 편도 아니니까 같이 하면 금방 끝날텐데 매번 그러면 어떡해. 나 버릇나빠져.”
“하지만 거의 다 끝난 것도 사실인데? 네가 이정도로 버릇이 나빠지지 않는 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다. 오히려 너무 혼자 해결하려고 해서 문제였잖나. 응? 넨. 내게 주고 어서 가서 쉬어.”
남성 특유의 강아지 같은 쾌활한 웃음과 어깨를 감싸며 빗자루를 가져가는 손길에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평생 그를 이기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언젠가는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우선 지금은 아니었다. 텅 비어버린 제 손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고는 오르슈팡을 올려다 보며 가볍게 말했다.
"알았어, 나 그러면 같이 마실 차라도 준비할테니까 금방 끝내고 오는거야? 이 방 걸레질 까지만 끝내면 될테니까. 나머지는 다 한거지?"
"그래. 다 끝났다. 빨래도 다 널었고, 환기도 다 했으니 네가 끓여주는 차로 티타임을 가지면 되겠군. 후후...아주 좋아!"
"응, 좋아. 기다릴게."
말을 끝맺은 모험가는 기습적으로 뒤꿈치를 들어 고개 숙인 오르슈팡의 뺨에 입술을 댔다. 부끄러운듯 약간 붉어진 얼굴로 웃은 그는 그대로 남자에게서 빠져나와 부엌으로 사라졌다. 자리에 남은 사람만 멍하니 제 뺨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부엌에서 알싸한 향이 퍼져 나올 즈음에야 정신을 차린 그는 평소보다 조금 더 급한 움직임으로 빠르게 빗자루질과 걸레질을 끝마쳤다. 어서 끝내고 가야 제 연인과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을 것이다.
빗자루가 쓸리는 소리와 함께 싸한 생강냄새가 방에 가득한 것이 만족스러워, 둘은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아주 나중의, 두 사람의 집이 생긴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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